인도네시아 서부 칼리만탄에서 땅을 잃은 상당수 주민은 신탕라야 농장에 취직해 직원으로 일한다. ⓒ공익법센터 어필 제공

대상그룹 지주회사 대상홀딩스가 지분 50%를 보유한 인도네시아 주식회사 신탕라야(PT Sintang Raya)가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보고서를 냈다. 현지에 팜유 농장을 세우면서 기후위기에 치명적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주민들과 적절한 협의 없이 땅을 수용했으며, 2014년 인도네시아 대법원이 이런 사실을 인정했는데도 판결에 따른 후속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신탕라야와 한국 기업 대상에 연락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팜유는 야자수 열매로 만든 식물성 기름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팜유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인도네시아 토양에서 꽤 비중이 높은 ‘이탄지(Peatlands, 수세기 동안 죽은 식물들이 분해되지 않고 쌓여 형성된 습지대로 일반 산림보다 탄소를 18~28배 보유)’에는 탄소 약 800억t이 저장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전 세계 토양에 저장된 모든 탄소의 약 5%에 해당한다. 이런 이탄지를 개간해 대규모 팜유 농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팜유 생산에 이탄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규범을 갖고 있다. 이런 이탄지에 팜유 농장을 건설한 업체 중 하나가 신탕라야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법률적으로 이탄지 개간을 금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02년 설립된 신탕라야는 2004년, 인도네시아의 칼리만탄 서쪽 쿠부라야 지역에 있는 땅 2만㏊에 대해 3년간 입지 허가와 플랜테이션(대규모 농장) 사업 허가를 받았다. 2007년 입지 허가를 연장받았고, 이를 근거로 2009년 인도네시아 토지청으로부터 1만1129㏊의 땅(여의도 면적의 25배)에 대해 토지사용권(HGU)을 취득했다. 대상그룹이 신탕라야를 인수한 것은 2009년 11월이다.

문제는 이 땅에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세루앗 두아를 비롯해, 신탕라야가 2007년부터 이탄지를 개간해 야자수를 심은 마을들에는 1930년대 도착한 자발적 정착민과 1950년대 정부 프로그램으로 온 이주민들이 섞여 산다. 인도네시아 토지 당국은 이주민들에게 이미 할당한 토지에 대해서도 신탕라야에 사용권을 허가했다.

이 사용권 취득에 법적 하자가 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신탕라야의 토지사용권이 자신들의 소유권과 중복된다며 주민 5명이 제기한 소송에서다. 2014년 2월27일 내려진 인도네시아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2007년 신탕라야가 받은 입지 허가 연장은 폰티아낙 시장이 아니라 부시장이 서명한 것이다. 그런데 부시장은 그럴 권한이 없다.

사용권 취득의 전제가 된 토지수용도 위법했다. 인도네시아 법에 따르면 토지 양도는 이해당사자 간에 직접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신탕라야가 수용한 토지의 경우, 해당 토지에 권리를 가진 주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다섯 마을 면장이 ‘일방적으로’ 땅을 넘겼다.

이런 법적 하자를 인정하면서 인도네시아 대법원은 이렇게 쓴다. “신탕라야 명의로 된 총 1만1129㏊ 면적의 2009년 6월5일자 사용권 제04/2009호(…)를 취소한다.” 동시에 이렇게 명령한다. “피고(쿠부라야 토지청장)에게 신탕라야 명의로 된 총 1만1129㏊ 면적의 2009년 6월5일자 사용권 제04/2009호를 취소하고, (…) 원고 1~5 소유의 토지(5㏊)를 제외한 후, 취소된 주 행정명령(사용권)을 대체하는 명령을 재발령할 것.”

칼리만탄 주민이 신탕라야에 땅을 돌려달라고 시위하고 있다. ⓒ공익법센터 어필(현지 시민단체 제공)

주민 허락 없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다

공익법센터 어필이 인도네시아 변호사에게 의뢰한 판결문 검토에 따르면, 신탕라야의 사용권은 ‘무효’가 되고 모든 것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2014년 2월27일의 대법원 판결 이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신탕라야는 재심을 청구했으나 인도네시아 대법원은 2016년 2월24일 이를 기각했다. 그럼에도 신탕라야는 사업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2016년 7월 ‘사건’이 일어난다. 신탕라야의 사용권을 취소한 법원 판결이 이행되길 바라는 여러 마을 주민들이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일군의 주민들은 항의 차원에서 신탕라야가 심은 야자수 열매를 땄다. 신탕라야는 이를 절도 행위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주민 4명을 절도 용의자로 체포했다. 다른 주민 70명을 조사하거나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지역사회는 공포를 느꼈다. 주민 수백 명이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 서부 칼리만탄 대표사무소로 향했다. 인도네시아 일간지 〈자카르타 포스트〉 2016년 8월8일자 기사(‘회사가 경찰에 주민 체포를 요청하자 주민들이 달아나다’)는 이렇게 적는다. “(신탕라야는) 해당 지역을 확보하고 주민들을 체포하기 위해 경찰에 돈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의 가혹한 조치는 주민들을 놀라게 했고 (…) 어린이를 포함한 주민 최소 47명이 (5일째) 보호를 받기 위해 인권위 사무실에서 잠을 자고 있다.”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 서부 칼리만탄 대표사무소의 넬리 유스니타 위원장은 〈시사IN〉에 보낸 이메일 답변서에서 당시 인권위가 취한 조치를 이렇게 전했다. “2016년 8월24일 인도네시아 인권위원회는 서부 칼리만탄 주지사와 지방경찰청장에 보내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주지사에게는 분쟁지역의 상황과 여건을 회복하고 토지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요청했다. (…) 지방경찰청장에게는 범죄 혐의가 토지분쟁에 기인한다는 점을 고려해, 특히 회사의 신고로 법 집행 절차를 수행할 때 경찰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며, 이런 문제를 다룰 때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처벌과 통제보다 피해자의 피해 복구와 관계 회복을 중시하는 것)를 우선시해 접근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정작 회복된 것은 신탕라야의 사용권이었다. 신탕라야와 대상의 설명을 종합하면, 2014년 2월 대법원 판결과 2016년 2월 재심 청구 기각 이후 일어난 일은 이랬다. 2016년 7월 인도네시아 토지청은 ‘신탕라야의 사용권을 취소할 필요는 없고 일부 데이터를 수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의견을 서부 칼리만탄 토지청에 보냈다. 2016년 8월 서부 칼리만탄 토지청은 신탕라야와 함께 토지를 측정해 도로와 공공시설 10㏊, 사용권 중복이 의심되는 46㏊를 합해 약 56㏊를 신탕라야 사용권에서 빼내기로 했다. 2017년 4월 소송을 냈던 원고 3명과 신탕라야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신탕라야의 사용권에 대해 더 이상 문제 제기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2017년 12월 56㏊가 신탕라야의 사용권에서 제외되었다.

신탕라야는 1만1129㏊에서 56㏊가 줄어든 1만1073㏊의 사용권을 보유하고 그 땅에서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신탕라야는 이 중 약 9000㏊에 대해 보상을 완료했고 나머지 약 500㏊만 더 보상하면 된다고 밝혔다. 세루앗 두아 마을에서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았다는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외국 기업이 사업을 하고 싶다면 먼저 주민들과 협의하고, 반대하는 주민이 있는지 알아보고 나서 사용권을 받아야 하는 게 인도네시아 법이다. 신탕라야는 그 순서대로 하지 않았다. 주민 허락 없이 사용권을 먼저 받고, 그 땅에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 뒤에 주민들이 항의하자 협의와 보상을 진행했다. 지금까지 보상을 받은 주민도 있고 안 받은 주민도 있는데, 보상을 받은 주민도 할 수 없이 땅을 판 것이다. 이미 신탕라야가 땅을 쓰고 있으니까.”

전직 대상 직원인 이상우 신탕라야 대표는 〈시사IN〉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대상이 신탕라야에 투자한 게 2009년 11월인데, 사용권 취득은 (대상의 신탕라야 인수) 이전의 주주사들이 잘못한 일이다. 우리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서 믿고 투자했다. 우리도 희생자다”라고 주장했다. 투자 이후 대법원 판결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2014년 대법원 판결 뒤에) 우리가 인도네시아 토지청에 사용권을 취소하라고 했다. 그러면 사업 접고 철수하겠다고. 토지청이 취소하지 않았다. 사용권 취득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으라고 판결문에 써 있는 것도 아니고, 소송을 낸 원고들도 요구하지 않았다. 일부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만 제외하면 사실상 다 끝난 얘기다.”

신탕라야의 설명에 따르더라도 사업을 시작한 지 십수 년이 지나도록 보상 절차가 끝나지 않았다. 이는 인도네시아 국내법뿐 아니라 국제기준 위반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강제퇴거 관련 문서에 따르면, 토지개발 등 과정에서 대체 토지를 포함한 “충분한 보상이 ‘사전에’ 제공되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7조 2항은 이렇게 쓴다. “누구도 임의로 재산을 빼앗겨선 안 된다.”

인도네시아의 토지분쟁은 악명 높다. 지방정부가 주민 협의 등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기업에게도 사업 허가를 남발하며, 이 과정에서 부패가 극심하다(공익법센터 어필·환경운동연합, 〈빼앗긴 숲에도 봄은 오는가〉). “인도네시아에는 모든 부처마다 별도의 지도가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리베카 헨더슨, 〈자본주의 대전환〉).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6월3일 낸 보고서 . ⓒ휴먼라이츠워치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 기업이 투자하고 정부가 지원했다

농장 인근에서 쌀이나 채소, 코코넛을 재배하던 주민들은 바닷물이 이전보다 더 많이 범람해 수확량이 줄었다. 이탄지를 개간하면 지반 침하가 일어나 바닷물이 더 자주 스며들기 때문이다. 해충이 늘기도 했는데, 단일 작물을 대규모로 재배하면 해충이 많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땅을 잃은 상당수 주민들은 신탕라야 농장에 취직해 직원으로 일한다. 일일 목표 수확량이 너무 높아 미성년 가족을 동원하기도 한다. 신탕라야와 대상은 이 모든 것이 신탕라야와 무관하거나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2018년 3월부터 9월까지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서쪽에서 90명 넘는 주민을 인터뷰하고 이번 보고서를 쓴 줄리아나 노코 메와누 휴먼라이츠워치 선임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2016년 인권위 진정으로부터 2년이 지난 시점에 방문했는데도,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언제든 경찰에 체포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회사에 대해 말하길 꺼려했다. 또한 신탕라야의 농장 영역이 더 커지고 있어서, 자신들이 경작하는 토지를 빼앗길까 봐 불안해하고 있었다. 신탕라야나 대상이 주민들과 만나서 자신들의 사업 경계선이 어디에 있으며 확장할 계획이 있는지 등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들이 호소하는 여러 부정적 영향을 완화할 방법을 협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업들은 지역 주민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완화할 책임이 있다. 신탕라야와 대상은 핑계를 대는 대신에, ‘우리가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주민들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특히 여성들이 토지 관련 협의와 보상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이에 대해 신탕라야와 대상은 ‘인도네시아 호주제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주장했으나, 줄리아나 연구위원은 “인도네시아의 사법 시스템상 남성이 토지 양도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들이 이를 근거로 남성과만 협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업 차원에서 여성, 남성과 각각 협의하는 등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임정배 대상 대표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2021년을 ESG 경영의 원년으로 삼겠다”라고 말했다. ESG란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지배구조를 기업 평가에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 기업과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ESG를 외치지만, 정작 지난 6월 나온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는 국내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신영 공익법센터 어필 대표는 “인도네시아같이 거버넌스가 취약한 저개발 국가에서 고위험 산업인 팜유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려면 공급망과 관련해서도 인권침해 조사를 스스로 해야 하는데 대상은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나중에 신탕라야를 인수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전부터 발생해 지속되는 인권에 대한 영향(이른바 ‘레거시 임팩트’)도 책임져야 한다. 한국 정부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라고 말했다.

2011~2012년 산림청은 대상홀딩스에 인도네시아 팜유 사업과 관련해 69억2400억원을 융자 지원했다. 대상홀딩스의 반기 보고서를 보면, 수출입은행이 3300만 달러(약 393억300만원), 산업은행이 1000만 달러(약 119억1500만원)를 대상홀딩스를 통해 신탕라야에 빌려줬다. 인도네시아의,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인권침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인권이 중요해서기도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회사에 한국 기업이 투자하고 정부가 지원했기 때문이다. 대상은 “투자에 참여한 법인인 만큼, 앞으로도 신탕라야의 현지 활동에 관심을 갖고 대상주식회사가 지향하는 ESG 경영의 가치에 부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살피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