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준우 일병의 어머니 강경화씨가 아들의 죽음 이후 3년간 직접 모은 자료를 들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2019년 7월6일은 군대에 간 아들이 첫 정기휴가를 받고 집에 온 날이었다. 6박7일 휴가였다. 어머니 강경화씨(55)는 가족 여행도 계획했다. “아들 얼굴을 쳐다보는데 눈을 안 마주치더라고요.” 2년여 전을 회상하던 강씨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돌이켜보면 이상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던 아들이 “의병제대(依病除隊) 할까?”라고도 물었다. 그날, 대학 동기를 만나러 나가던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새벽 3시30분경 아들 조준우씨(당시 20세)는 당시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되었다. 강씨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다. “아무리 팔을 꼬집어봐도 안 아파요. 지금은 아픈데. 이거 꿈이지, 꿈이야.” 목이 메었다.

조씨는 대학교 2학년을 막 마치고 2019년 1월28일 입대했다. 어학병에 지원하려 했으나 시기를 놓쳤다. 육군 통신병에 지원한 건 단순히 제대 일정이 맞아서였다. 강경화씨는 “복학하자마자 자기가 좋아하는 수학과 교수 강의를 들을 수 있겠다고 기대했어요”라고 말했다. 병무청 복무적합도 검사에서 ‘양호’ 판정을 받았다. 3월14일부터 국군지휘통신사령부 산하 부대에 배치돼 통신병으로 복무했다. 계획대로라면 2020년 9월1일에 전역해야 했다. 하지만 군대에 간 아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사건을 수사한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은 타살 혐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신 대학 동기들에게 “여기 너무 오래 있었더니 춥네” “마지막 말 전하러 왔단다” 등 죽음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조씨의 방과 군대 관물대에서 스프링노트 네 권이 발견되었다. 군 입대 전부터 쓰기 시작한 2년여 치 일기장이다. 그곳에서 조씨는 수차례에 걸쳐 꾸준히 우울감과 수면장애를 호소했다.

‘또다시 우울감과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짐. 삶이 무채색이고 건조하다는 생각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음(2019년 4월29일).’ ‘자살하고 싶다는 말들은 전혀 빈말이 아니다. 일기가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다(2019년 5월9일).’ ‘눈은 따가운데 잠은 오지 않는 이 피로. 집에 가고 싶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며칠 푹 쉬고 싶다. 여긴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2019년 6월10일).’ ‘사회에 의해서 손발이 묶여선 삶을 삭제당한 채로 2년을 죽은 듯 북어처럼 살게 되다니 너무나도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이다(2019년 6월16일).’

조준우씨가 군 생활을 어려워했다는 건 대학 동기들의 공통된 진술이었다. 유가족은 일기장 내용을 근거로 군대 내에서 괴롭힘과 가혹행위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부대 측 이야기는 달랐다. 당시 동료들에 따르면 조씨는 “활달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뭘 물어보면 대답도 잘 하고 잘 웃는” “매일 책을 끼고 살 정도로 열심인” “일도 잘해서 선임들의 미움을 살 일이 없었던” 병사였다.

조씨와 3개월여 함께 생활했던 선임 병사 ㄱ씨는 조씨의 우울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만 취침 시간 이후에도 연등(소등 시간 이후 허가를 받아 점등하는 것)을 하고 수학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며 ‘잠이 부족하겠다’ 정도로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수면장애가 심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조씨는 간부로부터 ‘졸지 말라’는 주의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5시간 정도 잔 것으로 추정된다.

구타나 가혹행위가 있었던 건 아닐까. ㄱ씨는 조씨에 대한 폭력행위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장난 식으로 툭툭 때리고, 폭언하고, 멱살을 잡거나 헤드록을 걸면서 괴롭히는 행정보급관 때문에 부대원들이 스트레스를 받긴 했어요. 근데 준우한테 그렇게 하는 걸 본 적은 없어요.” 해당 간부는 2019년 10월 병사들의 신고로 징계처분이 내려졌다. 군 검찰과 헌병대 수사기록 등에서도 조씨에 대한 가혹행위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사IN〉이 접촉한 조씨의 군대 동료들은 “가혹행위는 없었지만 군대에 오지 않았다면 준우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라고 입을 모았다.

고 조준우 일병이 군에 있을 때 쓴 ‘자살 금지 서약서’와 일기장. 유족의 동의를 얻어 고인이 남긴 일기 일부를 공개한다. ⓒ시사IN 이명익

‘순직’ 여부 심사받아야 하는 유가족

군인이 군복무 중 자살하면, 이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최근 10년간 군부대 사망사고는 줄어들고 있지만 군인 자살은 그렇지 않다. 2019년 군 사망자 86명 중 62명이, 2020년 55명 중 4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모두가 국가 보훈보상 대상자가 되는 건 아니다. 현역 군인의 죽음은 군사 경찰과 검찰이 수사한다. 그 후 국방부 중앙전공사망심사위원회의 심사에 따라 전사·순직·일반사망 등으로 ‘분류’된다.

‘자해사망(군에서는 자살을 이렇게 부른다)’ 사건에서는 그래서 군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중요해진다. 연관성이 인정되면 ‘순직3형’으로 보훈보상 대상자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반사망자’로 처리된다. 타의 귀감이 되는 고도의 위험을 무릅쓴 직무수행 중 사망하면 순직1형,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와 관련된 직무수행 중 사망하면 순직2형, 1·2형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 중 사망하면 순직3형이다.

어떤 군인의 죽음은 국가의 책임이지만, 또 어떤 군인의 죽음은 개인의 몫이 되는 셈이다. 〈시사IN〉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군 자해사망 사건에 대한 각 연도별 전공심사 결과’를 보면 2019년 자해사망 사건 중 44%(22건), 2020년 37%(11건), 2021년 33%(2건)만이 순직3형을 받았다. 나머지는 일반사망자로 처리됐다. 군에서 자식을 잃고도 ‘순직’ 여부를 심사받아야 하는 유가족들은 병영 부조리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직접 입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조준우씨의 죽음이 그런 경우였다. 2019년 12월27일 ‘일반사망’으로 결정되었다. 가혹행위 정황이 발견되지 않아서였다. 육군 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파악한 사망 원인은 ‘군 생활에 대한 단조로움’과 ‘대인관계 단절로 인한 스트레스’였다. 판단 근거가 된 헌병단 조사 결과 보고서에는 “병영 부조리로 인한 군 복무 염증보다는 개방적인 사회생활 속에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하다가 군의 특수한 상황과 내성적인 성격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심리적인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적혀 있다. 육군참모총장 직인이 찍힌 ‘일반사망’ 확인서를 붙들고 어머니 강씨는 이렇게 물었다. “나라에서 건강하다고 판정 내서 훈련까지 잘 마친 아들이 개인의 나약함으로만 세상을 등졌단 말입니까?” 강씨는 진정제 두 알을 삼키고 아들의 일기장을 다시 열었다.

조씨의 수면장애와 두통이 심해진 건 2019년 5~6월 들어서였다. 조씨 소속 부대는 다른 부대에 비해 병사 수가 적어 밤샘 당직 근무가 4~6배 많은 편이었다. 선임 병사 ㄱ씨는 부대 분위기에 대해 “간부들과 늘 같이 근무하다 보니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후임 병사들에게 당직이 자주 할당되면서 문제 제기도 있었다. 조씨는 2019년 6월 첫째 주에 24시간 밤샘 당직을 세 차례 했다. 그 여파는 조씨의 일기장에 이어진다. ‘오늘 진짜 오후 6시까지 기절했다. 이런 적 없었는데 당직을 연속으로 서니까 피곤하긴 했나 보다(2019년 6월6일).’ ‘왜 피곤할까? 지난주에 당직을 세 번이나 서긴 했지만 주말에 분명 쉬었을 텐데(2019년 6월9일).’

2019년 3월과 6월에 진행한 신인성검사(군복무 중 심리검사)에서도 ‘위기 신호’는 있었다. 잠재적 스트레스와 대인관계에 대한 어려움이 드러났다. 전문 상담이 이뤄져야 했다. 하지만 군에서는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이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았다. “특이사항 없음”이라 적힌 면담 기록과 달리, 그 시점 조씨의 일기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2019년 6월10일에는 “7월 중순에 휴가 나가면 정신과 가봐야겠다. 진짜로. 진짜로?”라고, 정기휴가 일주일 전인 6월30일에는 “나중에 명절 때 휴가 혹시나 받게 되면 그때 정신과에나 한번 가볼까”라고 썼다. 불면증이 심해지자 본부대장 면담(6월26일)에서 ‘생활관 커튼을 교체해달라’고 요청한다. ‘커튼이 얇고 빛이 투과돼 아침에 빨리 눈을 뜨게 된다’는 이유였다. 복무한 5개월간 정기 및 수시 면담이 16차례나 있었지만, 부대 간부 중 누구에게도 위험신호가 닿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 중 일부는 강경화씨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은 당시 기록을 통해 드러났다. 군복무 중 사망한 아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입증하는 건 유가족 몫이었다. 국방부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보공개청구 사이트 아이디를 ‘dkemfdk(아들아)’라고 했어요. 도저히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아들의 빈자리는 수사 기록 수백 장으로 채워졌다. 강씨는 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제기했다.

“군대에서는 자살도 명령으로 보나 봐요”

2021년 8월13일 국방부는 조준우씨의 사망을 ‘순직’으로 결정했다. 조씨의 사망 원인이 군 직무수행과 연관성이 있다고 2년 만에 판단이 바뀐 것이다. 연속적인 당직 근무로 인해 업무 과중이 있었다고 봤다. 또 직접적인 가혹행위는 아니더라도 행정보급관의 비위행위가 조씨에게 무언의 압력과 스트레스를 주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21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도 이 사건에 대해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자살 사건의 경우 상급자에 의한 폭언·욕설 등과 같은 병영 부조리가 있었는지 여부만을 그 요건으로 해서는 안 된다. 급격한 심리적 변화를 국가의 제도가 감지해내지 못한 것이므로, 국가가 군인에 대한 생명권 보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경우로 보아야 한다.”

홍영표 의원은 “군 자해사망 사건은 병영 부조리, 방관자에 머무는 중간관리자들, 구태의연한 수사 관행, 차별적인 보훈 처우 등 군 내 여러 구조적 문제가 담긴 비극이다”라고 지적했다. 군이 자해사망 사건에 대처하는 방식에 병영 문화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유다. 홍 의원은 군이 ‘제 식구 감싸기’라는 오명을 쓰지 않도록 수사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 부대는 전수조사를 통해 은폐된 여죄는 없는지, 다른 피해자는 없는지 남김없이 의혹을 밝혀야 한다.”

강경화씨가 정보공개청구로 수령한 기록에는 2019년 3월 아들이 자필로 쓴 ‘자살 금지 서약서’도 있었다. 자대 배치된 신임 병사들에게 일괄적으로 쓰도록 한 것이다. 순직 판정을 받은 날 강씨는 허무함에 눈물을 쏟았다. “군대에서는 자살도 명령으로 보나 봐요. 순직 처리가 났지만 어느 누구하나 미안하다, 바꾸겠다 말 한마디 없어요.”

조 일병이 복귀하지 못한 부대에는 이제야 생활관 커튼이 불투명색으로 교체되고, 당직 근무가 개선되었으며,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이 채용되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Tag
#군대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