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진씨는 1955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2남4녀의 장남으로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다. 만 19세였던 1974년 12월, 국세청 9급 일반 공채에 합격했다. 자신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대신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다. 동생 가운데 한 명(윤대진 검사장)을 서울대 법대에 진학시켰다.

그는 가장 낮은 세무서기보 직급부터 시작해 2006년 서기관(4급)에 올랐다. 서기관은 국세청 전체 직원 가운데 상위 2%에 해당하는 간부급이다. 행정고시 출신이나 세무대학 출신도 아닌 일반직 9급에서 사무관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윤씨는 관계·법조계·언론계 등에 인맥을 쌓으며 ‘너른발’로 통했다.

특유의 친화력뿐 아니라 동생 윤대진 검사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 검찰 인맥이 그의 인맥 쌓기에 도움이 되었다고 국세청 동료들은 증언한다. 그는 재직 시절 “경찰이나 검찰에 일이 있으면 나한테 얘기하라”며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 걸로 알려졌다. 윤씨는 서울국세청 조사국, 국세청 정책홍보담당관실, 국제세원정보 태스크포스팀(TF) 등 요직을 거쳤다.

2013년 4월, 해외 도피 중 타이에서 불법체류 혐의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된 윤우진씨.ⓒ연합뉴스

〈시사IN〉은 2013년 8월7일 윤우진 사건을 검찰로 넘기며 경찰이 작성한 송치 의견서를 입수했다. 윤씨가 육류 수입업자 김 아무개씨로부터 뇌물 등을 받은 혐의를 수사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의 기록이다. 이 송치 의견서에도 윤우진씨의 너른발 행태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경찰은 윤우진씨가 서기관으로 특별 승진한 뒤 파견되었던 기관에 주목했다. 윤씨는 2006년 12월부터 2008년 4월까지 2년4개월 동안 국무조정실 기획차장실 조사심의관실에 파견되어 경제조사1팀을 이끌었다. 당시 조사심의관실은 ‘암행감찰반’으로 불릴 만큼 모든 정부 부처 공직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경찰은 송치 의견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조직(조사심의관실)의 감찰 내용이 공무원들의 인사 자료로 활용된다는 사실은 공무원들에게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이 조직의 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윤우진도 이 조직에서 활동하면서 국세청 등의 고위 간부 및 핵심 인물들과 교류하고 각종 영향력을 행사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윤우진씨는 국무조정실 파견이 끝난 뒤 곧바로 경기 안산세무서 서장(2008년 4월~2009년 7월)으로 발령이 난다. 이어 중부지방국세청 소득재산세과장 자리를 거쳐 서울 성동세무서 서장(2010년 1월~2010년 12월), 영등포세무서 서장(2010년 12월~2011년 12월), 용산세무서 서장(2011년 11월~2012년 8월)을 지냈다. 경찰은 송치 의견서에서 “국세청 창립 이후 이례적으로 서울 및 수도권의 세무서장을 4회나 역임하는 등 국세청 내에서 실질적이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라고 밝혔다.

경찰 송치 의견서에 따르면, 윤우진씨의 뇌물 수수액은 1억3900여만 원이다. 윤우진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2012년 3월 차명 전화(대포폰)를 새로 만들었다. 이 차명 전화의 개설 과정을 보면 윤씨의 광범위한 인맥 활용을 짐작할 수 있다.

차명 전화를 개설해준 이는 경북 울산시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ㅌ사 송 아무개 대표. 이 회사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였다. 송 대표는 윤우진씨에게 자신 명의로 010-7×××-×××× 휴대전화를 만들어주고 2012년 7월분 요금까지 58만원을 내주었다. 당시 용산세무서장이었던 윤우진씨는 송 대표에게 이렇게 약속한다. “현대자동차 이 아무개 부사장에게 하청업체 ㅌ사와 지속적인 협력관계로 유지할 수 있도록 청탁하겠다(경찰 송치 의견서).”

윤우진씨가 현대자동차의 하청 관계까지 영향력을 행사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씨가 현대자동차 청탁 대상자로 언급한 이 아무개 부사장은, 현재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대표로 있다. 이 아무개 대표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2012년이면 현대자동차 ○○본부에서 근무할 때였기 때문에 세무서장이던 윤우진씨를 업무상 몇 번 만난 적은 있다. 하지만 ㅌ 하청업체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윤우진씨는 이 휴대전화로 윤석열 검사 등 10여 명의 검사와 통화했다.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경찰 수사에 대비해 송씨 명의로 만든 차명폰으로 윤우진씨가 해외 도피 직전까지 윤석열 검사 등과 통화한 기록이 있다”라고 말했다.

윤우진씨의 너른발 영향력은 복직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2012년 8월30일 윤씨는 현직 세무서장 신분인데도 경찰 수사를 피해 도피성 출국을 했다. 국세청은 윤씨가 무단결근하자, 2012년 9월부터 3차례나 근무 명령을 내렸다. 2013년 2월13일 안전행정부 중앙징계위원회는 윤씨를 파면 의결한다. 2013년 3월5일 국세청은 무단결근과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한 해외 도피 등을 이유로 윤씨에게 파면 처분을 내렸다.

2013년 4월5일 해외 도피 중이던 윤우진씨는 파면 처분에 불복해 당시 안전행정부 소청심사위원회 소청심사를 청구했다. 4월19일 윤씨는 타이에서 불법체류 혐의로 체포되어 4월25일 국내로 압송됐다.

패소하고도 항소하지 않은 국세청

2014년 2월14일 윤씨는 국세청을 상대로 파면 취소 처분 행정소송을 냈다. 검찰이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고도 처리를 미루던 때였다. 윤씨가 행정소송을 낸 1년 뒤인 2015년 2월23일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검사 조기룡)는 윤우진씨를 무혐의 처분한다. 윤씨는 파면 취소 행정소송에서 검찰의 무혐의 결정을 자신에게 유리한 논거로 삼았다.

윤우진씨가 한 사업가에게 1억원 수표를 건네는 장면이 〈뉴스타파〉에 보도됐다.ⓒ뉴스타파 제공

2015년 4월1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차행전)는 검찰의 무혐의 결정과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파면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윤씨 복직의 길이 열린 것이다. 1심 판결인데도 국세청은 항소하지 않아 확정판결이 되었다. 국세청 안팎에서 윤우진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주요 간부들을 움직였다는 말이 돌았다.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국세청을 상대로 한 소송이었고 정부법무공단이 소송을 대리했는데, (국세청이) 패소하고도 항소를 하지 않았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처음 듣는 사례 같다”라고 말했다.

이 판결로 윤우진씨는 복직했다. 2015년 6월25일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열린 정년퇴임식에서 그는 직원 100여 명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이런 퇴임사를 남겼다. “젊음과 열정을 불태우며 혼신을 다해 일해왔던 국세청에서 공직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을 크나큰 영광과 기쁨으로 생각한다.”

2015년 6월30일자로 윤씨는 정년퇴직을 했다. 뇌물수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 해외로 출국해 8개월을 떠돌다 강제소환되었지만 복직해 정년퇴임까지 마친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은 ‘윤우진을 통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소문을 낳았다. 퇴직 뒤 그가 몸담은 세무법인 사무실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윤우진씨 스폰서 노릇을 했다가 피해를 당했다며 검찰에 진정서를 냈던 사업가 ㄱ씨도 이 가운데 한 명이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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