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8일 경남 합천가야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일본 오사카 미노어린이숲학교 학생들과 온라인으로 공동 수업을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일본인에게 이번 도쿄올림픽은 어떤 의미였나요?” “한국인은 매운 거 좋아한다던데 진짜 그런가요?” 9월7일 경남 합천군 합천면 가야산 자락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 교실 안에서 어린이들의 한·일 교류가 일어났다. 학생들은 온라인 화면을 통해 서로를 만났다. 화면 속에는 합천가야초등학교 6학년 학생 24명과 일본 오사카부 미노시에 위치한 미노어린이숲학교(미노숲학교) 학생 7명이 있었다. 학생들의 대화는 통역가가 실시간으로 각국의 언어로 옮겼다. 비대면과 언어의 장벽도 서로를 향한 호기심을 막을 순 없었다. 계획된 수업 시간이 끝난 후에도 질문을 하겠다고 위로 뻗은 학생들의 팔이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로 한·일 학생들이 수업을 함께하게 되었을까?

‘한·일 학교 온라인 공동 수업’은 두 나라 선생님들이 만나면서 시작됐다. 지난 7월부터 3개월간 한국과 일본의 유네스코 학교(1953년 유네스코 주도로 창설된 세계 학교 네트워크) 소속 교사 46명은 조를 나눠 한·일 온라인 공동 수업을 준비했다. 9월13일부터 서울대사대부설초등학교, 광주교대부설초등학교, 영선중학교, 대청중학교, 동원고등학교, 충남외국어고등학교 등 전국 14개 초중고교 한국 학생들이 오와다 미나미초등학교, 오키나와현 IE중학교, 지부현 가니고등학교 등 일본 학교 학생들과 실시간 중계 수업으로 만났다. 문화다양성, 기후변화 대응, 인권, 정의, 평화 등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2015년 유엔총회에서 결의한 인류 공동 목표)가 공동 수업의 주제다.

합천가야초 교사 3명도 한·일 온라인 공동 수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주제는 ‘생물다양성’. 7월부터 일본의 미노숲학교 교사들과 온라인을 통해 여섯 차례 만나며 수업안을 짰다. 완성된 교안으로 각자 교실에서 수업한 뒤 9월7일 처음으로 학생들의 온라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날은 인사 정도만 나누고 9월28일에 첫 교류 수업을 하기로 약속했다.

2학기 개학 후 한 달간 한·일 학생들은 공동 수업 주제인 생물다양성에 대해 공부하며 서로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거쳤다. 생물다양성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이를 보호할 수 있을지에 몰두했다. 한국 학생들은 책 〈이유가 있어서 멸종했습니다〉(마루야마 다카시, 2019)를 함께 읽었다. 생물이 멸종한 이유를 찾고, 멸종위기 동물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궁리했다. 일본 학생들은 환경운동가 다니구치 다카히사 씨를 강사로 초청해 기후변화가 생물다양성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들었다.

9월28일 오후 12시50분, 교류 수업을 준비하는 합천가야초 6학년 1반 교실에는 긴장이 맴돌았다. 점심 식사 후 잠이 몰려올 법한 시간인데도 학생들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일본 학생들이 화면에 나타나길 기다렸다. 맨 앞에 앉은 박정훈 학생은 일본 학생들이 접속하기 전부터 카메라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었다. ‘합천 토박이’인 정훈 학생은 일본인을 만나는 경험이 처음이다. 그는 “일본인 친구를 만난다고 들었을 때 너무 설레고 신났다”라고 말했다.

오후 1시, 수업이 시작됐다. 미노숲학교 학생들은 기후변화로 어떻게 야생동물의 터전이 훼손되고 야생동물의 생명이 위협받는지 설명했다. 2019년에 시작돼 2020년 초반까지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을 강타한 대형 산불로 생명을 잃은 코알라 등의 사례가 공유됐다. 미노숲학교의 한 초등학생은 발표자로 나와서 “한국과 일본 생태계의 양상은 다르지만,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점은 똑같다. 대기오염, 산림 파괴로 곰·도롱뇽·오키나와 철새 같은 다양한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이 지구 최대의 위기다. 지금 당장 지구가 평화로워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합천가야초 학생들은 이어 반달가슴곰, 꺽저기(꺽지과 민물고기) 등 한국의 야생동물이 멸종위기를 맞게 된 이유를 일본 학생들에게 전했다. 수업을 준비한 6학년 1반 담임 이종명 교사(40)는 “학생들이 소개한 반달가슴곰이나 수달은 합천 지역의 멸종위기 동물이다.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반달가슴곰의 흔적을 본 학생들이 흔적만 남게 된 이유를 직접 찾아보았다”라고 말했다.

왜 생태계를 보존하고 생물다양성을 보호해야 할까? 한국의 조현지 학생은 말했다. “벌이 있어야 꽃이 필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생물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하루키 학생은 말했다. “야생동물들의 생태계가 파괴된 건 인간의 탓이 크다. 인간이 잘못한 걸 책임져야 한다.”

환경 동아리 활동과 토론수업 덕분

양국 학생들의 고민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데려와 동물원 등에서 보호하는 인위적 개입이 필요한가’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미노숲학교의 한 학생은 “동물들은 놀고, 밥 먹고, 자고 이 세 가지만 해도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동물원이면 동물들이 지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합천가야초 하주민 학생도 처음엔 같은 생각이었다. 동물에겐 훼손된 자연보다 동물원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차례 생물다양성 수업을 들으며 동물이 동물원에 갇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동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 주민 학생은 바다생물들이 안전하기 위해 동물원에 오는 대신 바다에서 더 잘 살 수 있도록 바다 쓰레기를 주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박정훈 학생은 인간의 개입에 처음부터 반대하는 의견이었다. 야생의 동물은 자연에 남아야 한다고 본다. 코로나19도 인간의 욕심으로 산야에 살아야 할 동물을 데려왔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는 생각이다. 정훈 학생은 터전을 잃은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다소 비관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긴 하겠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어차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합천가야초 학생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심도 있게 환경문제를 주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 1년간 이어왔던 환경 동아리 활동과 토론수업 덕이 컸다. 합천가야초는 학생 수 감소로 인근 폐교된 3개 학교를 통합해 2019년 개교했다. 학년마다 ‘1반’만 있는 전교생 88명의 작은 학교다. 개교와 함께 합천가야초에 발령받은 이종명 교사는 6학년 학생들이 5학년이던 지난해부터 2년째 같은 학생들의 담임을 맡으면서 환경·평화·문화다양성 등 여러 이슈를 학생들에게 던지는 중이다. 이전까지 학생들은 자료를 찾아서 보고서를 쓰고 토론하고 발표하는 경험이 익숙하지 않았다. 지난해 토론 수업을 시도할 때만 하더라도 학생들은 A4 용지 한 장에 한 줄 쓰기를 벅차했다. 지금은 4절지를 꽉꽉 채워 그림을 그리고 자기 의견을 적는다.

이종명 교사는 학생들이 자기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수업이나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자신감이 생기고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인다. 아이들과 재밌는 수업을 많이 해보고 싶다.” 유네스코 한·일 교사 교류가 시작된 2011년 이후, 학생들끼리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민 학생은 다음 만남을 기대한다. “다른 나라 학생들이랑 얘기를 나누는 게 좋았다. 다음에는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라도 배워서 한 번이라도 통역 없이 얘기해보고 싶다.”

기자명 합천·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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