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지난 8월 말 충청남도는 작년 5월부터 추진해왔던 ‘충남형 더 행복한 주택’의 견본주택 공개를 예고하면서 임대료 감면 정책을 발표했다.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어 저출산을 극복하겠다는 원대한 포부와 함께 말이다. 입주 이후 자녀 한 명을 낳으면 임대료의 반액을, 두 명을 낳으면 전액을 면제해준다는 파격적 제안이었다. 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제 정책으로 다듬어 발표하기까지 꽤 많은 공무원들이 뿌듯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간의 반응은 싸늘했다. 왜? 지금은 엄연히 21세기니까.

지금도 다자녀 가정에게는 다양한 공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러 지자체들의 출산 축하금부터 시작하여, 공영주차장 할인에 임대주택 우선공급, 주택 구입과 전세자금 대출 우대, 도시가스와 하수도, 전기요금 감면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제도들이 ‘순수하게’ 아동빈곤을 예방하고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구상된 것은 아닐 터이다. 아동의 권리 보장과 부모의 돌봄 환경 개선이 목표라면 굳이 둘째 혹은 셋째 자녀부터라는 전제 자체가 불필요하지 않겠나.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정부는 두 자녀 이후 불임시술을 받은 가정에 공공주택 입주 우선권을 부여했다. 또 불임시술을 받은 이들에게 생업자금이나 복지주택 부금에 대해 우선적으로 융자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국가가 인구 조절을 위해 시민들의 삶의 계획에 개입하고, 특히 여성 시민의 성·재생산 권리를 재단하고 유보하는 전통 자체는 그리 변한 것이 없다. 충남도의 계획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문제일 뿐이다.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개별 시민의 신체와 삶에 대한 ‘통치’는 꾸준히 촘촘하게 작동해왔다. 의료보장제도 또한 충직하게 그 역할을 수행해왔다.

‘비급여’라는 단어는 이제 보건의료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꽤 익숙하다. 의료비 중에서 건강보험 혜택(급여)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을 말한다.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은 “의학적 타당성, 의료적 중대성, 치료효과성 등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사회적 편익 및 건강보험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하여 요양급여 대상의 여부를 결정”하도록 정해두었다.

건강보험 재정이 한정되어 있으니, 의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서비스, 또 비슷한 효과라면 비용이 적게 드는 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 원칙이 말해주듯, 무엇을 건강보험급여 항목으로 포함하고 무엇을 배제할 것인지는 사회적 진공상태에서, ‘순수한’ 의학적 판단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지난해 5월 충청남도가 추진하는 ‘충남형 더 행복한 주택’ 기공식에 참석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운데). ⓒ연합뉴스

비급여로 전환된 피임 시술

예컨대 자궁 안에서 황체호르몬을 지속적으로 미량 방출하도록 만들어진 ‘호르몬 루프’는 똑같은 시술이라도 목적에 따라 건강보험 적용 여부가 달라진다. 월경과다증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5만~10만원 정도 본인부담금을 내고 시술받을 수 있다. 만일 피임이 목적이라면 달라진다.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에 30만~40만원의 비용을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 또 다른 피임 시술인 ‘루프’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0만~20만원의 본인 부담 비용이 발생한다. 단, 임신하기 위해서 기존 루프를 제거하는 경우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한때 예비군 훈련을 가면 공짜로 해줬다는 정관수술 역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10만~40만원의 비용을 모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임신을 위해 복원 수술을 한다면? 당연히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해외 대부분의 국가에서 피임은 어떤 형태로든 의료보장이 적용된다. 피임을 필수 보건의료서비스 중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하물며 민간보험이 주를 이루는 미국에서는 규제를 통해서, 자원이 불충분한 중저소득 국가에서는 국제 원조를 받아서라도 피임에 의료보장을 제공한다. 예컨대 주변에 병의원을 찾기 힘든 에티오피아 농촌 마을 여성들은 3년 정도 장기 효과가 지속되는 이식형 피임제 ‘임플라논’을 보건소에서 무료로 시술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라 30만~40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의료보장에서 피임이 제외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70~1980년대에는 자녀 숫자가 많아질수록 의료보험료를 추가 부담하거나 분만급여 수준을 차등화하기도 했다. 불임 시술은 당연히 건강보험급여에 포함되었다. 그러다 2004년 12월1일부터 정관·난관 수술 등 피임 시술이 건강보험급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당시 복지부 관계자는 “그동안 가족계획사업의 일환으로 정관절제술과 난관결찰술, 자궁 내 장치삽입술 등을 보험급여 대상으로 분류해왔으나 출산장려정책과 맞지 않아 비급여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난임 시술에 대한 건강보험급여가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민법상 혼인 상태인 난임 부부에게만 건강보험급여를 적용하던 것을 사실혼 관계의 난임 부부까지, 또 여성 연령 기준도 만 45세 미만에만 한정하던 것을 이제 45세 이상까지 급여를 적용하는 것으로 확대해왔다.

국가는 어떤 행위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지 혹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매 순간 ‘판단’하고 있다. 건강보험제도는 급여라는 수단을 통해 그러한 판단을 사람들에게 학습시키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시종일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출산율을 보면, 이 노력이 그다지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건강보험을 통한 미시적 통제는 ‘급여 제한’ 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건강보험법 제53조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그 원인이 있거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에 보험급여를 하지 않는다고 정해두었다. 명백한 본인 잘못으로 건강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살 시도를 한 사람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 본인 스스로 초래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자살 시도자에게 ‘내재적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고의적 행동이라기보다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문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2014년 이후에는 업무지침이 개정되어 정신질환이 없는 자살 시도자도 건강보험급여를 적용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자살을 더 이상 개인 책임으로만 볼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대된 덕분이다. 자살 시도라는 ‘사실’이 변했다기보다 사실을 둘러싼 ‘인식’의 변화가 건강보험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의료보장제도는 누가 ‘우리’이고 누가 ‘타자’인지, 누가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지 끊임없이 판단한다. ⓒ연합뉴스

다쳤다는 사실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건강보험급여 제한이 이루어진 사례도 있다. 2009년 8월, 노동자들이 파업 농성을 벌이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경찰특공대, 구사대가 헬기와 크레인까지 동원하여 무력 진압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경찰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2010년 건강보험공단은 이때 다쳐서 병원 치료를 받은 해고자 4명에게 3000여만 원에 이르는 건강보험급여비 환수를 통보했다. 이를테면 파업 노동자들 식사를 준비하던 중 혼란에 휩쓸리며 공장 옥상에서 떨어졌던 한 노동자에게는 2000만원, 경찰에게 곤봉 등으로 폭행을 당해 치료받은 해고 노동자에게 410만원 반납 통지가 전해졌다. ‘불법’ 농성인 것을 분명히 알면서 참여했다가 다쳤으니 건강보험급여 제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은 수십 차례의 독촉 고지서 발송은 물론, 예금압류 조치와 연체금 추가 징수까지 강행했다.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의료보장제도가 바람직한 가치에 대한 은밀한 유도를 넘어서, 지배적 질서를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프고 다친 것에 대한 보호보다 국가가 정해준 것을 하거나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심판이 우선한 셈이다. 우리가 보호받을 자격을 갖추려면 어떤 국민이 되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해준다.

결핵예방법에는 입원명령 제도라는 것이 있다. 치료지침을 적절히 따르지 않거나 전염성 다제내성 결핵을 앓고 있는 환자를 강제로 격리 입원시켜 치료하는 것이다. 지역사회 감염 전파 차단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진다. 입원과 약제비에 대한 본인부담금, 그리고 간병비나 부양가족 생활보호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반인권적 조치 같지만, 진료 현장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가난한 환자들의 비급여 진료비와 생계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자유를 담보로 한 ‘강제’ 혜택을 받는 데에도 뜻밖에 국적과 혈통이 중요하다. 결핵균이 이 사실을 알 것 같지는 않지만! 예컨대 외국인의 경우, 법무부를 통해 정식 난민으로 인정되었거나 법에 따른 영주권자, 그리고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외국인 등록을 한 사람 중에서 다음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입원명령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 중인 자로서 본인 또는 대한민국 국적의 배우자가 임신 중인 사람,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 중인 자로서 대한민국 국적의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자, 배우자의 대한민국 국적인 직계존속과 생계나 주거를 같이하는 자, 대한민국 국민인 배우자와 이혼하거나 그 배우자가 사망한 자로서 대한민국 국적의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자 또는 사망한 배우자의 태아를 임신하고 있는 자.

2019년 1월 서울 경찰청 앞에서 복직한 쌍용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임금 가압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사IN 이명익

‘우리’ 핏줄만 치료해준다

복잡해 보이지만 원칙은 간단하다. 한국인과 결혼해서 한국인의 핏줄이 뱃속에 있거나 낳아 기르는 중이라면, 혹은 한국인 노부모를 봉양하는 중이라면 ‘우리’ 사람으로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뭔 놈의 핏줄에 저리도 집착하냐고 막장 드라마를 조롱하기 머쓱해지는 순간이다.

의료보장제도는 누가 ‘우리’이고 누가 ‘타자’인지, 누가 보호받을 자격이 있고 누구는 그렇지 않은지 끊임없이 판단하고 실행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생각하지만 이것이 바로 생명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생명권력(biopower)’ 개념은 지금까지 살펴본 개별 사례들을 관통한다. 권력은 총칼과 법전을 통해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신체를 예속시키고 인구집단을 통제하는 다양한 기술을 통해서, 즉 생명권력을 통해서도 작동한다. 생명권력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결정하는 ‘처방적’ 표준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일상을 규율하도록 만든다. 이것이 바로 통치성의 근간을 이룬다. 어떤 보건의료서비스에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되는가 제외되는가, 어떤 사람이 건강보장체계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인가 배제될 것인가는,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바람직한 것이고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지 말해준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일상을 규율하고, 사람들 사이의 정체성을 구분하며, 그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것을 합리화할 수 있다.

건강보장을 시끄러운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아닌 ‘순수한’ 의료 문제로 환원하거나 탈정치화하는 것은 때로 위험한 일이 되기도 한다. 일례로 미국에서 마약중독자들의 HIV 감염 예방을 위한 주사기 교환 프로그램을 확산시킬 때, 다수의 옹호 그룹들은 ‘이건 정치적 의제가 아니라 공중보건 의제’라고 강조했다. 도덕적 규범을 앞세우며 반대하던 보수주의자들의 공세를 피해가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프레이밍은 당시에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마약 사용을 둘러싼 규범적 논쟁을 피하면서, 효과적 공중보건 프로그램으로 제도권 안에 안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상향식 권리옹호 ‘운동’으로 시작된 캠페인이 점차 하향식 정책 수단으로 보편화되면서, 약물남용을 부추기는 사회적 맥락과 인종·지역 간 불평등 문제에 침묵하게 하는 편리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현존하는 건강보장체계에 깊이 뿌리내린 특정 편향의 정치성을 극복하는 길은, 순수한 의학적 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건강보장체계는 듣기 좋은 덕담을 주고받는 인심 좋은 부잣집 곳간이 아니라, 자원배분을 둘러싼 사회세력들 사이 경쟁의 장이다. 그것이 행사하는 이데올로기적 함의도 크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숨겨진 통치성, 은밀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고 평등과 인권을 향한 대안적 정치성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다. 즉, 비(非)정치, 탈(脫)정치가 아니라 ‘다른 정치’ 말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건강보장제도를 둘러싼 차별적 요소들을 더 많이 발견해내고, 의사결정이 더 많은 시민에게 개방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더 많은 문제가 발견되고 말해져야 한다.

기자명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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