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4일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225번지 일대 풍경. 하림그룹이 ‘양재동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파이시티 비리’의 진앙지인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는 현재 하림그룹으로 넘어간 상태다. 이곳의 개발 방향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손에 달렸다.

하림그룹은 오 시장이 ‘서울시 도시계획 규제완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는 점에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하림 측은 이 부지에 공식적으론 첨단물류단지를 개발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 사업계획 내용을 들여다보면 서울시 역대 개발 사례 중 최대 규모의 수익사업을 추진할 테니 특례를 적용해달라는 요구와 다를 바 없다.

가장 큰 쟁점은 용적률이다. 오랫동안 서울시는 양재동 일대의 교통정체와 주변 업무지역 간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화물터미널 부지엔 용적률 400%를 적용해야 한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반면 하림은 국토교통부 물류시설개발종합계획 관련 물류시설법을 근거로 용적률 800%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도시계획국은 ‘양재IC 일대가 상습 교통정체 지역이라는 여건을 감안해서 인접 14개 유통업무설비의 관리 기준인 용적률 400%를 준수해야 한다’는 시 측의 도시계획관리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며 용적률 높이기에 일단 제동을 건 상태다.

하림이 추진하는 양재동 개발사업은 파이시티(지하 6층~지상 35층) 때와 무게감이 다르다. 하림이 내놓은 계획안은 지하 7층~지상 70층의 대규모 물류단지다. 지하에는 22만㎡ 규모의 물류시설을 조성하고, 지상엔 백화점·호텔·공공주택 등 수익성 위주의 시설이 계획되어 있다. 지하는 용적률을 0으로 계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용적률 1600%’에 해당하는 초고밀도 개발이다.

과거 파이시티 당시 이 부지의 개발 용적률은 주변 시설과 똑같은 기준인 400% 이내로 지켜졌다. 하림의 요구인 80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30%였다. 그러나 당시 이명박-오세훈 시장 측근 실세들이 파이시티 부지의 용도를 대규모 점포와 업무시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변경하면서 ‘시행사 측에 막대한 개발이익을 안겨주기 위한 꼼수’라는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이후 파이시티 측이 자금난에 부닥친 상황에서 두 시장 측근 실세들이 뇌물까지 받아가며 용도변경을 해준 사실이 드러나자 파이시티 개발사업은 좌초했다.

파이시티 개발이 좌초된 뒤 정부는 정책적으로 이 지역을 R&D 집적단지로 육성·관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기획재정부와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는 도시계획상 유통업무설비로 구분된 이 부지는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용적률 400%를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기획재정부는 하림이 이 땅을 매입하기 전인 2014년부터 2016년에 걸쳐 화물터미널 부지가 포함된 양재 일대 기업 R&D 집적단지 조성을 추진했다. 2016년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는 이 지역 투자 활성화 차원에서 ‘양재 우면 기업 R&D 집적단지 조성 추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2015~2016년 양재 우면 R&D 마스터플랜 등 정책을 수립하고 학술 용역을 바탕으로 R&D 육성과 관련된 서울시의 정책 방향을 대외적으로 공개했다. 이런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시는 ‘R&D 육성 지표 서울시 관리지침’도 마련했다.

“너무 큰 특례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하림이 2016년 말 이 부지를 매입한 이후 정부와 서울시가 보낸 메시지는 통하지 않았다. 하림은 대외적으론 이 땅에 도시첨단 물류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내걸었다. 사업계획안으로 용적률 800%(지하 포함 1684%)를 요구했다. 하림이 요구하는 용적률 800%는 서울시가 구 파이시티에 허용한 용적률 330%, 제2롯데월드에 허가해준 용적률 573.2%보다 훨씬 높다. 비슷한 물류단지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 부지(상업지역/도시첨단물류단지)의 용적률도 330%에 불과하다. 결국 하림의 요구는 지나치게 특권적이고 무리하다는 것이 정부와 당시 서울시의 입장이었다. 그대로 수용할 경우 과거 파이시티 개발 비리 못지않은 특혜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우려했다.

박원순 시장 시절의 서울시는 지속적인 R&D 관련 정책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사업자 물류단지 개발 추진을 고집하며 용적률 800% 등 과도한 특례를 요구하는 하림을 불편하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교통도 문제다. 지역 여건상 상습 교통정체 지역인 양재IC 주변에 물류시설은 물론 백화점·호텔까지 포함한 초대규모 시설에 들어서면 이후의 교통 여건은 더 열악해질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화물터미널 부지는 청계산 등 그린벨트 인접지로서 과밀 개발은 부적정한 곳이라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이었다.

하림은 앞서 제출한 투자의향서에 교통체증과 관련된 대안을 명시하지 않았다. 하림의 요구가 관철될 경우, 서울시와 시민들은 여기서 비롯된 교통난을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적극적인 도시개발 공약을 내걸고 당선했다. 게다가 올해 들어서는 화물터미널 부지를 관할하는 서초구 측도 용적률 800% 특례를 요구하는 하림을 두둔하고 나서는 분위기다. 지난 2월에는 이를 둘러싼 지구단위계획변경안 문제로 서울시와 서초구가 한 차례 충돌하기도 했다. 서울시 안팎에서는 오세훈 시장의 의중에 따라 사업 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림의 요구에 매우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하림은 한때 1조원까지 호가되던 부지를 그 절반도 안 되는 돈(4525억원)으로 매입해서 파이시티의 갑절짜리 건물을 올리려 한다. 현대차가 10조원에 부지를 매입한 GBC와 비교할 때 하림 측이 계획한 연면적이 2배에 달한다. 너무 큰 특례를 바라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하림의 요구를 수용해 개발이 이뤄지면 이는 ‘서울시 역대 최대 규모’의 사업이 된다. 사업 수행에 따른 부작용이 드러나면 개발 기간 내내 오 시장은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개발사업인 만큼 인허가 책임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도 크다. 더구나 오세훈 시장은 파이시티 특혜 비리 때 측근인 강철원 실장이 연루돼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던 아픈 경험이 있다. 강씨는 보궐선거 과정에서 후보 비서실장을 거쳐 현재 서울시 민생특보를 맡고 있다. 하림 부지 개발을 둘러싸고 세간의 관심이 더욱 쏠리는 이유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국토부의 시범단지 선정 자체로 용적률과 높이 등을 구체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 개발계획 수립 과정에서 서울시의 정책 방향을 충분히 담을 수 있으며, 이는 전문가 협의와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잡음이 없도록 투명하게 오 시장이 결정할 것이다”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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