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위치한 이후북스 2호점.ⓒ황부농 제공

어째서인지 책방에 대한 글을 쓰기가 싫다. 책방에 대한 글이라면 책에 대해서도 말하게 될 텐데 책에 대해서도 쓰기 싫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책방지기로 6년을 살았는데 가장 가까운 것에 대해 말하기 싫은 이유를. 몇 가지 이유 중 하나. 나는 그것에 대해 너무 많이 말했다. 오늘도 말했다. SNS에 책방을 오픈하는 시간과 입고된 신간에 대해. 매일 이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매일 하는 일 사이사이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감정이 있는데 설렘, 실망, 우울, 분노, 환희 같은 것이다. 이런 감정에 대해 말해볼까?

설렘은 언제 오나? 언제나 책방 문을 여는 그 순간에 온다. 오늘은 누가 올까? 누가 어떤 책을 살까? 그 책을 좋아할까? 좋았다면 또 올까? 예상하겠지만 실망은 손님이 오지 않을 때다. 그때의 실망이 레벨 1이다. 가만히 있다 보면 자연히 사라진다. 가만히 있는데 나타나기도 한다. 21세기에 책이 잘 안 팔리는 건 기본이니까. 레벨 2의 실망은 책을 살 것처럼 굴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손님을 볼 때다. 손님을 탓할 수는 없다. 애써 모셔온 책이 언제고 그 자리에 있다면 책방이 부족한 것이겠지. 이런 자책은 우울을 동반한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겠지만 기대를 늘 하게 된다. 왜냐하면 SNS에서 어김없이 ‘좋아요’를 받기 때문이다. 가고 싶다, 읽고 싶다, 재밌어 보인다 등등 잔뜩 기대하게 만드는 말들이 많다. 우울은 스프레이로 분사한 것처럼 책방에 존재한다. 책이 많아서, 책이 없어서, 손님이 없어서, (안 사는) 손님이 많아서, 책이 안 팔려서. 곳곳에 우울이 있다. 이제 분노다. 분노는 한 사발씩 존재한다. 책방이 분노를 느끼는 곳이라고는 잘 상상할 수 없겠지만 나는 매일 분노한다. 저녁을 못 먹어서, 야근비도 없는데 야근을 해서, 퇴근해서도 쌓인 게 일이라서, 책이 구겨져서, 월세가 비싸서, 계산서를 잘못 발행해서, 누군가 화장실에 음식을 버리고 가서. 책방에 대해 글을 쓸 때 예쁘고 깨끗한 것만 건져서 쓰고 싶지만 늘 실망과 우울, 분노가 따라온다. 아, 그것을 감추고 싶어서 책방에 대한 글을 쓰기가 싫었나 보다. 그래서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퉁치곤 했다. 책이 안 팔린다는 둥 너무 안 팔린다는 둥.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그 말은 너무 흔해서 이제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뭐 책이 안 팔린다고? 세상이 망하려는 징조구나’라고 그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동네책방에서 책이 얼마나 팔린다고 예상할까? 나는 보기 좋게 그 예상을 뛰어넘으며 ‘우하하 사실 이만큼이나 팔고 있지롱~’ 하며 으스대고 싶지만 예상이 빗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매일 책방 문을 여는 것은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일은 이 감정들, 기대와 실망, 설렘과 우울, 분노가 범벅인 채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아~ 오늘 기분 정말 책방 같네’라고 하면 설렘 두 스푼, 실망 한 사발, 우울 세 드럼 정도가 섞인 상태다.

하나 쓰지 않은 게 있다. 환희.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한데 환희라니. 쓰고 나니 웃긴다. 토르의 망치처럼 강력하고 확실한 무기일 것만 같다. 내가 말하는 환희는 그저 고양이 울음소리처럼 작고 귀여운 것인데(야옹~). 환희 레벨 3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느긋이 앉아 책을 읽을 때 찾아온다. 책방에는 책이 많고, 안 팔리면 다 내 책이고, 나는 아무 책이나 골라 아무렇게나 읽고 바꿔 읽고 또 바꿔 읽는다. 그러다 집에까지 가져가야겠다 생각이 들면 계산도 하지 않고 가져간다. 마치 공짜 밥을 얻어먹는 기분이다. 기분이 삼삼하니 레벨 3 정도 되겠다.

황부농 책방지기가 서 있다. ⓒ황부농 제공

공기같이 소중한 레벨 2의 환희

환희 레벨 8은(레벨이 왜 불규칙적이냐면 나도 이 레벨의 수치가 가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책방으로 오는 작은 편지를 읽을 때다. 책방 한편에는 작가나 제작자, 독자들의 편지가 빼곡하다. 다 붙일 수 없어서 차곡차곡 쌓아둔 것만도 몇 뭉치다. 안녕으로 시작해서 고맙다로 끝나는 대부분의 편지야말로 우리 책방에서 가장 무해한 것이다. 책방이 이런 고마움을 업고 있으니 한 권이라도 더 팔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레벨 6은 손님의 재방문이다. 지난번 산 책이 좋아서 이번엔 선물하려고 왔다, 어느 작가의 다른 책을 사러 왔다, 친구들 데리고 왔다 등등 재방문 이유는 그때마다 다를 테지만 분명한 건 재방문이야말로 책방 유지의 든든한 기둥뿌리다. 그들이 오지 않는다면 기둥뿌리가 뽑힐 것이다. 이제 레벨 2를 말하겠다. 레벨 2는 누군가 책을 골라서 계산할 때다. 너무 평범해서 물 같은 느낌이다. 너무 익숙해서 공기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물과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가. 책방 문을 열면 누군가가 와서 책을 사는데 그 당연한 일이 책방의 환희이다. 가끔 레벨 2의 환희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날도 있다. 햇수로 6년 가까이 책방을 운영했는데 그런 날이 아주 드물게 있어서 일기장에 적어둔다(ex. 2021년 1월20일. 손님 0명. 판매 제로. 재수 없는 날이네. 두 번 다시 오늘 같은 날이 오지 않기를). 이제 레벨 1의 환희를 얘기할 때다. 이것은 고양이 솜털처럼 가볍디가벼운 일일지도 모른다. 작가 서귤은 2016년 3월에 이후북스를 방문했다. 우린 2017년에 같이 작업했다. 작가 이내는 2016년 겨울에 이후북스에 왔다. 2018년 책을 같이 만들었다. 작가 강민선은 2017년 여름 책방에 왔다. 같이 만든 책은 2018년에 나왔다. 작가 원도는 2019년에 이후북스에 왔다. 그해 여름 우린 책을 같이 만들었다. 작가 우세계는 2016년에 책방에 왔다. 2020년 같이 작업한 책이 나왔다. 독자로 만나 작가가 되어 우리가 함께 어떤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난 책방의 미래가 보인다. 아니 보이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암울한 미래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한 명 더 언급할 사람이 있는데 이후북스는 처음부터 동업자와 함께 시작했고 여전히 함께하는 중이다(이 부분은 절대 동업자가 자신의 공을 치켜세우라고 해서 쓰는 게 아니다. 에헴). 동업자는 낯선 사람 앞에서 말이 없어지는 나를 대신해 얘기했고, 돈 계산이 틀리는 나를 대신해 계산을 했고(걔가 더 틀린다는 게 문제), 디자인이 필요할 때는 디자인을, 편집이 필요할 때는 편집을, 청소가 필요할 때는 청소를 했다. 지금도 1호점이 있는 망원동에서 어깨에 파스를 붙인 채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제주에 있는 2호점에 있다. 혼자서는 두 군데의 책방과 출판사를 운영할 수 없으니 언제나 동료를 둔다. 뭔들 다 하는 원재희, 허리가 아픈 진스탭, 그냥 웃긴 우알바, 나보다 키가 큰 호연지. 지면이 더 길었다면 동료들 흉을 좀 봤을 텐데 짧아서 생략한다(아쉽네). 레벨 1의 환희는 늘 곁에 두고자 한다.

이런 감정이 합쳐져 책방이 된다. 아는 것들이지만 과연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책방지기들이다. 어떻게 오늘 책방 같은 기분으로 지내보시렵니까.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거기엔 분명 환희가 있을 것이다.

기자명 황부농 (이후북스 책방지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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