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5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 MBN 스튜디오에서 열린 ‘정의당 대선 경선 후보자 토론회’에 참가한 후보자들. ⓒ국회사진기자단

정의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불판’이 화두다. 시작은 심상정 의원의 출마 선언이었다. “34년 묵은 낡은 양당 체제의 불판을 갈아야 한다(8월29일).” 고 노회찬 의원이 2004년 제17대 총선에 비례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남긴 어록(“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매진다”)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자 대선주자로 나선 이정미 전 당대표는 9월2일 “15년 심상정 불판부터 바꾸자”라고 맞받았다. 같은 날 황순식 경기도당 위원장도 말을 얹었다. “국민들 보시기엔 15년 된 불판이나 10년 된 불판이나 별 차이가 없다.” 기수교체론으로 출사표를 던진 김윤기 전 부대표까지, 정의당 경선은 ‘그래도 심상정’과 ‘포스트 심상정’ 사이에 놓여 있다.

2017년 대선 때와 당 안팎의 공기는 확연히 다르다. 지난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는 6.17%(201만7458표)로 진보정당 역사상 대선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정의당에는 위기 국면이 이어졌다. 2018년 노회찬 의원의 사망과 2019년 조국 사태로 촉발된 ‘민주당 2중대’ 논란에 이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사활을 걸었던 제21대 총선에서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올해 초 김종철 당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진보정당 존립 기반까지 흔들렸다. 한때 ‘데스노트(장관 후보자에 대한 정의당의 부적격 판단이 낙마로 이어진다는 데서 온 말)’라 불리던 정의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언젠가부터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갤럽이 9월27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정의당 지지도는 3.8%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백척간두에 서 있는 상황이다.” 심상정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9월28일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밖으로는 거대 양당 중심의 선거판에서 진보정당으로서 존재감을 선보여야 하는 동시에, 당 내부에 짙어진 좌절감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당내 분위기가 바뀐 기점은 지난해 21대 총선 이후다. “9.67%로 창당 이래 최다 득표를 했음에도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정당 꼼수로 기대가 좌초되었다. 진보정당이 진출할 기회의 공간이 사라졌다(심상정 후보 캠프 관계자).” 21대 총선 결과 정의당은 총 6석을 차지했다. 원내에서의 정치적 입지가 미미해지자 당 내부로 위기의식이 번졌다. ‘심상정 리더십’이 약화되면서 당의 지속가능성과 세대교체 요구도 이전보다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의당 경선 판세는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심상정·이정미 후보의 양강 구도로 점쳐진다. 이번이 네 번째 대권 도전인 심상정 후보는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소임을 찾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이정미 후보는 포스트 심상정 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조국 장관 임명에 동의한 것에 대해) 반성과 성찰의 입장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9월16일 TV 토론).” 특히 2022년 대선은 6월 지방선거의 성패와도 맞물려 있어 신경전이 치열하다. 이정미 캠프 관계자는 “정의당이 심상정밖에 없는 당이 될까 봐 우려스럽다. 국민에게 진보정당으로서의 국가 비전을 가지고 새로운 막을 열어야 하는데 재방송이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또 심상정이냐’라는 비판에 대해 심상정 캠프 관계자는 “세대교체론에 공감하지만 당권과 대권은 다르다. 가장 준비된 후보가 나서 당이 재기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2030 여성 당원의 표심

지난 대선을 완주한 심상정 후보가 인지도 면에서 월등히 유리하지 않을까? 한 가지 변수는 정의당 경선이 선거인단 없이 100% 당원 투표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당내 주류 정파인 ‘인천연합’ 출신 이정미 후보가 심상정 후보에 비해 조직력이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정의당 당권자(당비 납부하고 선거권을 가진 당원)는 2만2000명 정도다. 당 관계자들도 막상 누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 A씨는 “선거 흥행을 못하면 조직이 있는 사람들만 투표할 것이고 심 대표가 아무리 활약하더라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말했다. 10월6일 경선 결과 과반 지지를 받은 후보가 없을 경우 10월12일 결선투표로 간다. 이럴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정의당 관계자 B씨는 “결선까지 가게 되면 반(反)심상정 노선이자 좌파계열 정파 ‘전환’ 소속 김윤기 후보가 이정미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심 후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정의당 전국위원들 사이에서는 경선 흥행을 위해 선거인단 투표(당원이 아닌 일반 시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방식)를 해야 한다는 안건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부침으로 당원들 사이에 패배감이 짙어 자부심과 정체성을 공고화해야 한다는 판단”이 더 우세해 해당 안건은 부결되었다. 당시 선거인단 투표를 찬성했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당내 복잡한 이해관계”가 그 이유였다고 말한다. 개방형 경선제를 처음 도입했던 21대 총선 이후 외부 인사 영입에 대한 당내 불만이 쌓였다는 것이다.

“대선주자를 선출하는 일인데 당내 경쟁에만 몰두하는 게 과연 당의 확장과 발전을 위해 좋은 선택일지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일련의 위기를 겪으며 당내 정파 구도가 이전보다 되살아났다는 관측도 있다. 정의당 관계자 B씨는 “결선을 하게 된다면 이를 단순히 세대교체 요구로만 읽을 수는 없다. ‘심상정 리더십’이 약화되고 당내 정파 구도가 고착화되는 신호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특정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당원들의 표심도 주요 변수다. 지난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가 성소수자의 인권을 언급한 ‘1분 발언’으로 존재감을 알린 후 2030 여성들의 당원 가입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이번 당내 대선후보를 결정짓는 표심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정미 캠프 관계자는 “지난 대선을 계기로 들어온 청년과 여성분들이 많았는데 1분 발언을 뛰어넘을 만한 심상정이나 정의당의 ‘무엇’이 없었다는 아쉬움을 많이 토로하더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대한 20대 여성 지지율이 떨어져도 그것이 정의당 지지율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정의당 경선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진보정당의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두 후보 모두 민주당과 단일화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정의당은 제3지대에서 활약하며 진보정당의 파이를 늘릴 수 있을까. 한 관계자는 판세 예측을 묻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누가 되느냐가 중요하다기보다 누가 되더라도 쉽지 않은 숙제를 받아들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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