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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검찰 견제할 시민 기구 필요하다”

외국에서도 피의자가 검찰 수사 도중 자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민은 그래도 검찰을 지지한다. 수사에 정치적 목적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호철 기자 shin@sisain.co.kr 2009년 06월 01일 월요일 제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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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일본 법무성·일본 검찰청·도쿄검찰청·도쿄재판소·변호사회관.
검찰 수사를 받아 압박을 이기지 못해 사회 저명인사가 자살하는 경우는 외국에도 종종 있다. 2005년 일본 세이부 철도 전 사장이 검찰 조사를 받다 목을 매 자살하는가 하면, 1998년 일본 금융 스캔들 조사 때는 한국계 아라이 쇼케이 의원을 포함해 4명이 자살했다.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본 국민은 딱히 검찰의 강압 수사를 비난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에 불순한 정치적 목적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003년 3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를 열었을 때 한 검사는 “일본 검찰은 국민 신뢰도가 1위다”라며 일본 검찰 모델을 동경한 바 있다.

일본 검찰은 노무현 정부도 많이 연구했던 모델이다. 하지만 일본 모델의 어느 쪽을 보느냐 하는가는 검찰과 청와대의 시각이 크게 달랐다. 

일본 검찰 조직과 사법제도는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 한국 법조인이 광복 이후 일본법을 베끼다시피 해서 형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 형사소송법을 한국어 자동번역기로 돌려보면 한국 형사소송법과 99% 흡사해 충격을 준다. 왜 비슷한 체제를 가졌는데도 검찰에 대한 국민의 태도가 다를까. 1% 미묘한 차이가 있는 데다 법에 나오지 않는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는 사법개혁 연구팀을 꾸렸고 시민단체도 포럼을 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주목했던 것은 일본의 검찰심사회 제도였다.

일본 검찰심사회는 마치 미국의 배심원처럼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검찰 견제 기구다. 검찰심사회는 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정당한지를 따지고, 검찰의 사무와 관련해 건의 또는 권고를 할 수 있다.

기소권보다 더 무서운 검찰의 권한이 불기소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검찰 말고는 누구도 기소를 할 수 없다는 독점성에서 검찰 권력이 출발한다. 국가기관의 인권유린 사건을 기소하는 것도 검찰이 응해줘야 한다. 하지만 검찰심사회는 이런 일본 검찰의 기소·불기소 권력에 제동을 건다.

검찰심사회는 각 지방재판소 관할 지역에 하나 이상 꼭 설치해야 한다. 선거권자 가운데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된 11명이 검찰 심사원을 구성한다. 임기는 6개월이다.

일본, 검찰심사회가 검찰 조직 견제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고소·고발인이나 피해자, 유족 등이 심사를 신청하면 검찰심사회가 열린다. 검찰심사회는 국가나 공공기관에 대한 현장 조사도 가능하고 증인 신문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일본 검찰은 검찰심사회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회의에 나와 의견을 진술해달라고 요구하면 이에 따를 의무가 있다. 만약 한국에 검찰심사회가 있었다면 용산 참사 수사에 대한 기록을 요구하거나, 담당 검사를 불러 따져 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검찰심사회는 각 사건에 대해 ‘기소가 타당하다’ ‘불기소가 타당하다’ ‘불기소가 부당하다’라는 3가지 결론을 두고 의결할 수 있다. 의결은 과반수(6명)의 동의에 따르지만, ‘기소가 타당하다’는 의결을 내려면 8인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2001년까지 검찰심사회가 다룬 사건은 약 13만 건이고 그 결과 검사가 다시 검토해 기소한 사건은 1100건에 이른다. 물론 검찰심사회 제도에도 허점은 있다. 심사회 결정이 존중받기는 하지만 강제력은 없다는 점이다.

일본이 검찰심사회를 처음 꾸린 것은 1948년 미국 군정 때였다. 당시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에 미국식 검찰 견제 시스템을 끌어오려고 했다. 하지만 일본 법조계의 반발이 크자 대신 대 배심제와 유사한 검찰심사회를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가 검찰심사회를 언급하자 검찰은 반발했다. 검찰은 대체로 “일본은 항고제도가 없고 한국은 항고제도가 있기 때문에 검찰심사회 같은 기구는 굳이 필요없다”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항고는 어차피 같은 검찰에게 다시 기소 여부를 묻는 것이어서 한계가 있다. 현재 항고를 해서 기소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0.1%도 안 된다.

검사들이 생각하는 일본식 모델의 장점은 조직의 안정성이다. 일본 검찰총장은 주로 정년 65세를 2~3년 앞둔 사람이 맡아 자연스레 정년 때까지 임기를 보장하는 관례를 따른다. 또 서열 2위 도쿄 고검장이 차기 검찰총장을 맡는 ‘예측 가능한 인사’를 지킨다. ‘검사와의 대화’ 때 반발했던 젊은 검사들은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지명한 것이나 연공서열을 깬 예측 불가능한 인사를 검찰의 중립성을 해치는 것으로 보았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검찰총장(위)은 월스트리트 금융 재벌의 비리를 단죄했다.
꼭 일본 검찰제도가 조직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한국 검찰처럼 순혈주의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일본 검찰청법에는 전직 판사였거나 3년 이상 대학에서 법대 교수였던 사람도 검사가 될 수 있다. 또 부검사 중 2급 관리나 기타 공무원으로 3년 이상 근무한 사람도 검사 임용 자격이 있다. 부검사도 통상 검사로 불리며, 부검사로 3년 이상 일한 뒤 별도의 시험에 합격한 경우 정식 검사로 임명될 수 있다.

정권을 네 차례나 바꾼 걸로 유명한 일본 검찰이 독립성을 얻게 된 진짜 이유는 검찰심사회나 조직 논리 외에 다른 게 있다. 먼저 일본은 검사 출신이 정치인이 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한국의 특정 정당에 검찰 출신 정치인이 와글와글하고 그들이 정당 안에서도 요직을 차지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에는 일본 특유의 ‘천직 문화’가 작용하는 듯하다. 일본은 기자 출신 정치인도 드물다. 곁눈질 안 하는 문화가 검사로 하여금 정치적 수사를 하기 힘들게 만든다.

무엇보다 일본은 총리 개인의 권한이 막강하지 않아서 권력자 1인이 검찰 조직을 시녀처럼 움직이기가 어렵다. 검찰이 총리를 수사해 물러나게 할 수 있는 까닭도 대통령제와 다른 일본 내각제의 특성이 크다.

요즘 일본 사법개혁심의회는 검찰 중립성을 더 높이기 위한 다양한 개혁안을 검토하고 있다. 검사가 변호사 사무실에 일정 기간 근무토록 해서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시민감각을 익히도록 한다든지 검찰심사회 의결에 강제력을 부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미국은 일본과 정반대 방식으로 검찰 중립성을 보장한다. 정치와 거리를 두는 일본 검찰과 달리 미국 검찰은 아예 정치인을 자처하는 것이다.

지난해 개봉한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미국 검사는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으로 묘사된다. 2005년 미국인 여론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공적 기관은 1위 군대, 2위 병원, 3위 검찰(경찰 지휘 포함)이었다. 교회와 학교보다도 검찰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그런데 이렇게 신뢰받는 검사는 <배트맨> 영화 속에서 검찰청장 선거자금 모금 파티에 한창이었다.
 
미국은 50개 주에서 주(州)검찰총장을 선거로 뽑는다. 정당 공천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가장 정치적인 검찰이 가장 중립적인 검찰’이라는 철학을 믿는 듯하다. 국민이 선출한 검찰총장은 아무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4년 임기가 보장되며, 대통령이나 주지사 등 다른 권력자와 당당히 겨룰 수 있다.

선출직 검찰총장은 민심(혹은 인기)을 얻기 위해, 사회 거물급 유력 인사를 수사하는 일을 즐긴다. 금융 위기가 불거지자 미국 검찰은 월스트리트의 거물 금융가들을 수사하며 ‘저승사자’라고 불렸다. 시민들이 열렬히 지지했음은 물론이다. 

   
100년 전인 1903년 미국 워싱턴카운티의 대배심. 미국은 배심원 제도의 역사가 깊다.
주검찰 조직은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법무부 장관이나 연방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 전혀 별개 조직인 것이다. 또 미국은 주 아래 행정단위인 카운티의 검찰청장도 주민 선거로 뽑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요즘은 카운티검찰청도 점점 주검찰총장의 지휘를 받는 추세를 보인다고 하지만, 아무튼 아직까지는 상당히 독립적이다. 이렇게 연방·주·카운티 검찰이 서로 견제를 하다보니 한국처럼 5대 사정기관을 한손에 쥔 권력자를 위해 표적 수사에 나서거나, 타깃의 약점을 들춰내는 저인망식 수사를 펼치기 힘들다.

이런 ‘선출직 검찰총장제’에 폐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검찰총장 임기가 끝나면 상원의원이나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인기를 끌기 위해 대중에 영합하는 수사를 하거나 언론 플레이에 치우치는 경우도 있다. 정치자금을 공개 모집하기 때문에 로비단체에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미국 유권자들은 대체로 주지사와 검찰총장을 서로 다른 당 출신으로 뽑아서 견제와 균형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주지사가 공화당이라면 검찰총장은 민주당 후보를 찍는 식이다.

미국의 검찰 견제 제도 중에는 대배심(grand jury)이라는 것이 있다. 배심원제도는 소배심과 대배심으로 나뉜다. 소배심은 흔히 우리가 미국 법정 영화에서 보는 배심원제도다. 유죄와 무죄를 가르는 소배심은 최근 한국에서도 시범 도입되었다.

대배심은 소배심과 마찬가지로 일반 시민으로 구성되며, 기소·불기소를 결정한다. 만약 검사가 부당하게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판단할 경우, 16∼23명으로 구성된 대배심 가운데 12명 이상이 찬성하면 기소장을 제출할 수 있다. 일본 검찰심사회보다 더 강하다.

미국, 선거로 검찰총장 선출


미국은 연방재판소와 50개 주 재판소에 대배심제가 있다. 대배심제도에 대한 논란은 미국 안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검사의 보복성 기소를 막을 수 있다는 여론도 있지만, 재판을 비효율적으로 진행하게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본과 미국 외에도 검찰을 견제하거나 검찰 권력을 제한하는 나라는 많다. 독일은 미국처럼 연방검찰과 주검찰이 분리되어 있다. 또 한국의 기소편의주의와 달리 기소법정주의를 따르기 때문에, 검사는 수사에 나섰다면 일단 기소해야 한다.

프랑스는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때는 서면으로 해야 하며 소송 기록에 첨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개별 사건에 대해 검사에게 수사 지시를 할 수 없다. 또 각급 검찰청의 수장은 상급자 명령을 따르지 않고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는 전권을 가진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 제도를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지만, 한국처럼 검찰이 외부로부터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막강한 권한과 조직의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검찰의 여러 결정이나 처분은 시민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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