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0일 유서를 남기고 사망한 CJ대한통운 김포 ㄱ대리점장 이 아무개씨의 분향소가 김포시 한 택배 터미널에 마련됐다. ⓒ시사IN 신선영

9월3일 오전 6시40분,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 터미널 작업장에서는 택배 분류 작업이 한창이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위로 택배 상자들이 쏟아졌다. 택배기사, 대리점장, 분류 전담 노동자들이 섞여 쉴 새 없이 허리를 굽혔다 펴며 상자들을 날랐다. 오전 7시35분, 분류 작업을 하던 작업자 한 명이 맞은편 천막으로 향했다. 임시로 설치된 천막은 지난 8월30일 사망한 CJ대한통운 김포 ㄱ대리점 이 아무개 소장(40)의 분향소였다. “꺼진 향을 다시 피우러 왔다”라고 말한 작업자는 사망한 이 소장과 7년간 알고 지낸 이 아무개씨(39)다. 이씨도 김포에서 CJ대한통운 대리점을 운영한다.

사망한 이 소장은 ‘노조 갑질’의 피해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소장의 유서엔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18명 중 12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12명 모두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조합원이었다. 이 소장은 “그들의 집단 괴롭힘,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태업에 우울증이 극에 달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너무 괴롭다”라고 유서에 적었다.

이 소장 사망 사흘 후인 9월2일 택배노조는 기자회견을 열어 “고인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비아냥, 조롱 등이 있었다”라며 택배노조 조합원(노조원)들의 괴롭힘을 인정했다. 노조 자정 노력과 함께 경찰조사 결과에 따라 해당 노조원들을 징계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소장의 주변 지인들은 그가 일터에서 고립돼 있었다고 말했다. 노조원은 단체로 행동했지만, 이에 대응해야 하는 이 소장은 혼자였다. 김포 ㄱ대리점 소속 노조원들은 5월20일부터 물품 ‘개선 요청’을 진행했다. 부피·중량에 비해 운임이 낮거나 포장 불량인 택배물을 배송하지 않고, 운임과 포장이 개선된 이후 배송하겠다고 요구한 것이다. 그렇게 하루 평균 200여 개 물품이 배송되지 않은 채 쌓였다. 이 소장은 혼자서, 또 가족과 함께 ‘개선 요청’ 물품을 배송했다.

그 모습을 지켜봤던 동료 대리점장 이씨는 “대리점 소장은 물품을 문제없이 배송하겠다고 본사(CJ대한통운)와 계약했기 때문에 제때 배송할 의무가 있다. 이 소장이 혼자서 그 많은 걸(개선 요청 물품) 처리하느라 무척 힘들었다. 노조원들이 비노조원도 이 소장을 도와주지 못하게 해서 혼자 처리하다 보니 심적·육체적으로 피폐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포 ㄱ대리점 소속 노조원 ㄴ씨는 “비노조원이 개선 요청 물품을 배송하는 건 택배기사 구역 침범이다. 개선 요청은 배송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택배 표준약관에 맞지 않는 물건을 개선해서 우리 자리에 가져다달라고 요구하고, 그게 이루어지면 배송하겠다는 의미다. 실제 개선된 물품을 배송한 사례도 있다”라고 말했다.

9월2일 전국택배 노동조합이 택배 대리점장 사망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사IN 신선영

제대로 운임이 매겨지지 않은 물품

오랫동안 곪아온 택배 물류업계 현장의 갈등이 이 소장 사망 이후 다시 부각되었다. 대리점장을 향한 노조원들의 조롱, 집단적 따돌림 등이 문제가 됐다. 9월9일 CJ대한통운택배대리점연합회(이하 대리점연합회)는 자체 조사에 참여한 대리점장 190명 중 절반 이상(102명)이 노조원들에게 폭언과 집단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택배노조 측은 “일부 노조원의 거친 투쟁 방식이 문제였다”라고 인정하면서도 “더 심각한 건 부당한 업무지시, 일방적인 대리점장 수수료 인상 등 ‘대리점의 갑질’”이라고 반박했다. 9월13일까지 택배노조 ‘대리점 갑질에 대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1665명의 CJ대한통운 택배기사 중 804명(51.2%)이 대리점의 갑질이 더 심각하다고 답했다. “언론 보도처럼 노조의 갑질이 심각하다”는 답변은 26.6%, “대리점 측의 갑질과 노조의 갑질이 비슷하게 있다”는 답변은 22.1%였다.

택배 대리점장과 기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갑질’을 당하고 있다며 싸우는 형국이다. 누가 진짜 권력을 지닌 ‘갑’이고 누가 착취당하고 있는 ‘을’일까.

2017년 1월 택배노조가 출범한 건 택배기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과로와 부당행위로 택배기사들이 숨지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던 시기였다. 같은 해 11월 고용노동부는 택배기사가 택배사와 대리점으로부터 업무와 관련된 지휘·감독을 받고 지정된 업무를 한다는 점을 고려해 택배기사가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택배노조에 설립신고증을 발부했다.

정식 노조가 된 택배노조는 조합원들이 일하는 택배사와 대리점을 상대로 ‘불평등한 수수료 체계 개선, 분류작업 조정’ 등 택배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노조원들은 “노조 가입 뒤에야 그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감수했던 본사와 대리점의 부당행위에 대항할 수단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노조 출범 이후 5년여 동안 택배사들은 단 한 차례도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택배기사의 죽음은 계속됐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배송량이 급증하면서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과로사나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노동자의 죽음이 21차례 발생했다.

택배사가 택배 현장의 갈등을 회피하는 사이 일선 대리점장들은 노조원들의 노동환경 개선 요구를 홀로 받아내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이를테면 배송비 단가의 문제다. CJ대한통운의 경우 물품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배송비가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문제는 온라인 쇼핑몰 등 물건을 공급하는 측과 배송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기준보다 운임을 낮게 받을 때 생긴다. 배송을 맡겨달라고 업체에 영업하는 과정에서 택배사, 대리점장, 때로는 ‘집하(택배 물품 수거) 담당 기사’가 운임을 낮게 받는다. 더 낮은 가격으로라도 해당 업체와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배송기사들이 받는 배송 수수료도 정해진 기준보다 낮게 지급된다.

배송비 인하로 소비자가 편익을 얻는 만큼의 부담이 고스란히 배송기사 혹은 대리점장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10년간 한진택배 대리점을 운영한 김명진 점장(가명)은 사망한 이 소장의 사정이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본사가 거래처로부터 말도 안 되게 싼 금액(배송비)으로 물건을 받아서 대리점으로 보낸다. 기사들은 가격 안 맞는(기준 이하의 배송비를 주는) 물건을 배송하지 않을 수 있다. 근데 대리점 소장은 본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어떻게 하겠나. 배송을 안 하면 대리점도 수익이 없고, 배송 사고가 나면 대리점 소장 책임이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는 최 아무개씨(26)의 생각은 다르다. “애초에 물품을 보내는 업체에 운임을 제대로 받으면 된다. 보통 운임이 문제가 되는 물건은 규모가 큰 회사에서 보내는 물품들이다. 큰 업체를 놓칠 수 없으니 가격경쟁을 하고 배송기사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거다.” 이 ‘제대로 운임이 매겨지지 않은 물품’들이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한 대리점 소장의 죽음이라는 비극의 한가운데 있었다.

택배사는 구역별로 대리점을 두고, 대리점은 택배기사와 계약해 배송 업무를 한다. 대리점장은 택배사가 보낸 배송 수수료를 택배기사와 나눠 갖는다. 본사의 배송 수수료는 물품 크기·지역별로 고정돼 있지만, 택배기사가 받는 수수료는 대리점마다 기준이 제각각이다. 택배기사와 대리점장이 본사가 지급한 건당 수수료를 각각 9(택배기사):1(대리점장), 8.5:1.5 등 ‘정률제’로 나눠 갖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정액제’로 어떤 물품을 배송하든 같은 수수료를 지급하는 곳도 있다.

김포 ㄱ대리점은 정액제(건당 760원)로 수수료를 지급해왔다. 2016년 820원이던 수수료가 2019년까지 매해 20원씩 줄었다. 2022년 1월부터는 수수료가 750원으로 10원 더 삭감될 예정이었다. ‘개선 요청’은 이 소장에게 ㄱ대리점 수수료 책정 근거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노조원들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매해 20원씩 수수료가 삭감된 근거를 공개하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개선 요청을 진행했다. ㄱ대리점 노조원 ㄹ씨는 “기사들은 대리점 운영에 드는 비용이나 전산 체계를 모르니까 자료를 공개해 왜 수수료가 삭감됐는지 이유를 밝히고 적정 수수료로 조정을 하자는 거였다. 택배기사와 서로 협의해 수수료를 결정해야 하는데 대리점장에게 늘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라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한진택배 대리점을 운영하는 대리점주 김명진씨는 소속 택배기사들에게 수수료 체계를 전부 공개한다. 택배기사가 전산시스템을 통해 언제든 수익 구조를 볼 수 있다. 김씨의 대리점에서는 900원짜리 물품을 배송하는 경우 택배기사가 840원, 김씨가 60원을 각각 나눠 갖는다.

대리점주와 택배기사 사이에서 ‘파이를 몇 대 몇으로 쪼갤지’에 대한 갈등이 점점 더 격화되어온 가장 큰 이유는, 택배 시장의 규모가 급속히 커지고 업무량이 늘어나는 데 비해 파이 크기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김명진씨가 택배기사 2년, 대리점장 10년을 일해오는 12년 동안 택배사가 지급하는 배송 수수료는 1원도 오르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택배 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0년 전인 2011년과 비교해 2020년 CJ대한통운의 매출액은 4.2배(2조5878억원→10조7811억원), 영업이익은 약 2.7배(1228억원→3253억원)로 늘었다. 같은 시기 ㈜한진(한진택배) 매출액은 1.6배(1조3907억원→2조2157억원), 영업이익은 약 3배(350억원→1059억원)로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김명진씨가 본사에 배송 수수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할 때 돌아오는 건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말뿐이다.

택배기사에게 지시를 내리는 대리점장도 택배사 앞에선 철저히 ‘을’이다. 대개 택배사는 입찰을 통해 1~2년마다 대리점장을 새로 뽑거나 재계약한다. 김포 ㄱ대리점 본사였던 CJ대한통운은 2년에 한 번씩 대리점과 재계약을 한다. 결정권은 본사가 쥐고 있다. 김씨도 1년에 한 번씩 본사인 한진택배와 재계약을 맺는다.

김포에서 CJ대한통운 대리점을 운영하는 황 아무개 소장은 노조원들이 원망스럽다. “노조원들도 원청(본사)에 수수료 올려달라고 해도 안 통한다는 것을 아니까 만만한 우리 대리점 소장들을 먼저 괴롭히는 거다”라고 말했다. 김태완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개별 대리점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택배사 교섭을 통해 현재 제각각인 대리점 수수료 가이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택배노조 차원의 개별 대리점 수수료 인상 요구는 노조원의 요구가 높은 곳에서만 제한적으로 진행한다. 김포 ㄱ대리점의 경우 수수료 지급 근거를 공개하고 제때 수수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하던 중이었다. 택배노조에서 수수료를 얼마로 해달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9월3일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 터미널 작업장에서 분류 작업을 하는 직원들. ⓒ시사IN 신선영

“본사 편을 들자니 노조가 걸리고…”

수도권에서 18년간 롯데택배, 한진택배 대리점을 연이어 운영한 박시환씨(가명)의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7명은 현재 모두 노조원이다. “기사들의 불평불만을 사소한 것까지 다 들어줘야 해서” 처음에는 노조가 껄끄러웠다. 하지만 노조원들과는 “여전히 같이 밥도 먹고 주말 되면 소주도 한잔하는 사이”다. 박씨에게 “택배는 결국 사람 싸움”이다. 택배기사들이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어야 장기 근무를 하고 박씨가 대리점 운영을 하기도 수월하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택배기사들의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김명진씨가 운영하는 대리점 소속 기사 15명은 모두 노조원이다. 택배노조를 바라보는 김씨의 마음은 다소 복잡하다. 김씨는 택배기사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단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택배노조가 결성되고 택배 터미널 작업환경이 개선되는 모습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택배기사 과로방지대책 사회적합의(이하 사회적합의)’ 이후에야 터미널에 택배사 측이 전액 부담한 분류 전담 인력이 투입됐다. 대리점장들이 터미널에 선풍기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할 땐 꿈쩍 않던 본사가 노조 활동 이후 움직이는 모습도 보았다. 현재 노조가 요구하는 터미널 내부 휴게실 설치, 화장실·조명 추가 설치, 결근자 배달 물량 처리까지 대리점장 개개인이 감당하기엔 벅차다. “본사 편을 들자니 노조가 마음에 걸리고, 노조 편을 들면 본사에 눈치가 보이고 재계약도 어려워질 것 같다.”

9월3일 이 소장의 분향소가 설치된 경기도 김포의 택배 터미널. 닷새 전 사람이 죽었지만, 이로 인해 택배 물류가 지연되지는 않았다. 대리점장과 노조원들은 화물을 지체 없이 고객 주택 문 앞까지 배송하기 위해 똑같은 동작으로 내내 작업을 했다. 이들은 다른 처지와 의견을 말하면서도 문제 해결의 방향에 대해 한 가지 공통적인 키워드를 언급했다.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대리점장이 아니라) 원청 택배사다(대리점장).” “운임 규정에 어긋나는 물품은 본사가 책임져야 한다(노조원).” 택배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결국 택배 본사라는 것이다.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진 본사가 나서지 않는 한 ‘을과 을의 갈등’으로 불거지는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없다. 이 소장이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9월23일까지 원청회사인 CJ대한통운은 별다른 입장이나 대책을 내지 않고 있다. 그동안 대리점장과 택배기사들은 택배 현장에서 매일 마주하고 있다.

기자명 김포·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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