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지난해 2월이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 여당 출신 지자체장들이 ‘재난기본소득’ 논의에 나섰다. 다만 이 지원책에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지를 두고서는 갑론을박이 오갔다(〈시사IN〉 제653호 ‘재난기본소득 지급, 보편적? 선별적?’ 참조). 결국 정부는 지난해 5월을 시작으로 5차례에 걸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진보 세력 안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특히 복지정책 전문가들의 비판이 거세다. ‘부를 나눠야 한다’는 사회적 당위를 실현할 방법이 기본소득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이에게 같은 금액을 나눠주는 것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몰아서 지급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 분배 방식이라고도 한다. 예컨대 구직 의사를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타당할까? 기본소득론자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2017년 나온 〈21세기 기본소득〉은 기본소득 이론을 집대성한 안내서로 꼽힌다. 저자 중 한 명인 필리프 판 파레이스 루뱅 대학 교수는 BIEN의 전신인 ‘기본소득 유럽네트워크’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모두에게, 무조건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사회적 약자들의 ‘협상력’을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본소득과 달리, 구직급여 같은 조건부 수당은 ‘구직 노력을 입증해야 지급한다’는 요건이 있다. 저자들은 사회학자 빌 조던의 글을 인용했다. “이(조건부 수당) 시스템은 국가의 수당을 주는 경우와 빼앗아가는 경우를 정해놓은 규정들에 기초한다. 고용주들은 바로 이러한 규정들 덕분에 권력을 쥐게 된다. 당국자들은 그런 규정들로 인해 사람을 아주 끔찍하고 보수도 형편없는 일자리에 억지로 밀어넣을 수 있게 된다.” 구직 의사를 입증하기 위해 사람들은 나쁜 일자리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노동자의 이런 처지를 아는 고용주는,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만 제시하고도 위험한 일을 할 사람을 구할 수 있다. 


〈21세기 기본소득〉 저자들은 기본소득이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 불균형을 흔들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균형추를 맞추려면 어떤 의무도 지우지 않고, 재산이나 소득 조사 없이 모두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의 ‘정의’가 중요하다. 무조건적 기본소득으로 생계가 해결되는 사람은 임금이 적고 고된 일자리를 거절하기 쉽다. 이렇게 되면 도태된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될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거나 그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면? 고용주는 임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저자들은 ‘좋은 일자리’의 상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돈보다 그 일자리가 충분히 매력적인가 여부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임금이 아주 낮더라도 일 자체가 매력이 있거나 유용한 훈련의 기회가 되거나 좋은 네트워크를 갖게 되거나 승진 전망이 밝거나 하는 조건이 충족되면 쉽게 그 일자리를 수락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그래서 ‘일하지 않아도 주는 돈’은, 일을 ‘하고 싶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생필품을 사는 데 충분한 소득을 노동 여부와 무관하게 지급하자”라고 주장한 버트런드 러셀은 1918년 발간한 〈자유로 가는 길〉에 이렇게 썼다. “경제적으로 게으름을 가능케 했을 때 얻게 되는 한 가지 이점은, 노동을 가급적 하고 싶은 활동으로 만들 강력한 동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가정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 대목은 기본소득이 ‘가구당 지급’이 아니라 ‘개인별 지급’을 고집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생산가능인구에 속하지 않거나 가사를 전담하는 가족 구성원 개인은 경제적으로 ‘가장’에게 의존한다. 하지만 임금노동을 하지 않고도 정기적으로 소득을 지급받는다면 구성원들의 권력관계가 바뀔 수 있다. 기본소득론자들은 개인별 지급이 가족 내부에 존재하는 억압과 통제를 완화할 방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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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난지원금 이후 바뀐 상황


예산 문제는 남는다. 기본소득이 개인의 협상력을 증진하려면 그 액수가 충분해야 한다. 〈21세기 기본소득〉 저자들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기본소득 정의에 부합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본소득이 “기본적 필요 욕구라고 간주할 수 있는 것들을 구매하는 데 충분한 액수로 정의되는 것은 아니”라고 썼다. 그러나 이들은 “지급 액수는 기본소득 제안을 평가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덧붙였다. 저자들이 제안한 액수는 각국 1인당 GDP의 25% 정도인데, 한국 기준으로 500조원 정도다. 국내에서는 도입 초기 GDP 10%를 지급하자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렇게 해도 연간 약 200조원이 든다.


2009년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를 창립한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증세를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강 교수는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공약을 자문해왔다. 지난해 7월 〈시사IN〉과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 사회가 긴급재난지원금 수령 경험을 겪었기에 기본소득 실현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두 가지 선입견을 넘었다. 첫째, ‘가계 지원은 경제에 해로운 포퓰리즘이다’. 하지만 막상 기업 지원의 10분의 1쯤을 가계에 줘보니 경제에도 좋았다. 둘째, ‘세금 운용을 믿을 수 없다’. 그런데, 진짜 돈을 다 주네?” 국가경제를 위해 지원금을 ‘사양’하거나, 세금 용처를 불신하던 사람들은 기본소득 제안 앞에서 이제 계산을 하게 된다. 증세론에 무조건 고개를 젓던 사람들이 ‘얼마 걷어서 얼마를 주는 건데?’라고 묻게 된 것은 큰 변화다. 강남훈 교수는 ‘공통 부’ 개념에 기대어 탄소세, 데이터세, 토지보유세 등을 기본소득 목적세로 걷자고 주장했다.


‘추가 세수가 발생하면 열악한 현행 사회보장제도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우선’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두고 강 교수는 “선후 관계가 잘못됐다”라고 말했다. 증세라는 사회적 합의를 용이하게 만드는 수단이 기본소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무조건 되돌려준다’는 보장이 없다면 세금을 더 내지 않을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게 강 교수의 견해다. 

2016년 5월14일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앞둔 스위스 제네바 시내에 ‘소득 걱정을 덜게 되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는 대형 펼침막이 등장했다. AP Photo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기본소득 도입 주장에 고개를 젓는다. 실례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정책은 ‘실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조세부담률이 높은 유럽 복지국가들은 기본소득을 도입하지 않았다. 2016년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기본소득 도입안은 찬성 23%, 반대 77%로 부결됐다. 핀란드의 중도우파 정부는 2017년부터 2년 동안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조건부 실업급여 560유로(약 70만원)를 받던 사람 2000명을 뽑아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준 것이다. 취업한 뒤에도 지급했다. 기본소득을 받으면서도 구직과 노동에 충실해서 노동일을 더 늘린다면, ‘기본소득이 근로의욕을 꺾지 않으며, 이에 따라 국가경제 차원에서 노동 공급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는 실증 사례가 된다. 실험 결과,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은 실업급여만 받는 사람에 비해 연간 평균 6일을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소득 수령자의 노동일이 늘어나긴 했지만 당초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기본소득이 노동 의욕을 고취하지 못한다는 게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반면 2019년 펴낸 책 〈소득의 미래〉에서 핀란드 실험을 다룬 이원재 LAB 2050 대표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핵심은 두 가지다. ‘(기본소득을 지급했을 때) 취업 일수는 늘지 않았다.’ ‘자유롭게 해주면 행복하다.’ 실험에서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에게 취업하지 않고 무엇을 했는지, 시간을 어디 썼는지 물었다. 대부분 자녀를 돌보았고 지역사회 활동, 봉사를 했다고 말했다. 고용 계약을 맺고 돈을 받지 않더라도 가치 있는 데에 자발적 활동을 한 것이다. 이것도 사회적 부가가치다.” 이 대표는 큰 규모의 사회복지제도가 오랫동안 뿌리내린 유럽보다 오히려 한국이 기본소득 도입에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제도가 견고한 유럽은 기본소득과 겹치는 수당이 많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아 제도 개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북유럽이 지금의 복지제도를 시작할 때와 지금은 상황이 판이하다. 백지 상태에서 사회 시스템을 설계한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굳이 1930년대 스웨덴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기본소득은 여당 경선 토론을 넘어 장기적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불거진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과 지급 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기본소득 논의와 매우 밀접하다. 사회계약의 쇠락과 감염병의 창궐, 최대 정치 이벤트가 만나 심상찮은 기류를 일으키고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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