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5일 오후, 한국 국방과학연구소는 충남 태안군의 종합시험장에서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의 수중발사 시험에 성공했습니다. SLBM은 수중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잠수함을 통해 유사시 ‘적국’을 위협하는 무기지만 개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의 이번 SLBM 성공은 미국, 러시아, 중국 등에 이은 세계 7번째 사례입니다.

9월15일은 동북아 역사의 흐름과 관련된 많은 일이 동시에 일어난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하고 있었습니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 한·중 경제 관계 발전 등을 논의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그 시간에 즈음해 북한은 동해상으로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충남 태안군으로 이동해서 SLBM 시험을 지켜본 것은, ‘문재인-왕이 접견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이은 사건이었던 셈입니다.

숨가쁘게 이어진 이날의 사건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시사IN 한반도 전문기자인 남문희 기자가 9월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기자의 프리스타일]로 소개합니다. 자세한 해설 기사는 추석 이후 발행될 시사IN에 실릴 예정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15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제(9월15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불편한 하루를 보냈겠군요. 어깨에 힘을 주고 서울에 왔을 텐데 하필 그 시간에 북한이 탄도 미사일 두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지요. 그리고 오후에는 우리가 세계에서 7번째로 SLBM을 잠수함에서 발사해 단 한 번에 멋지게 성공시켰지요. SLBM뿐 아니라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군의 숙원 사업들을 한꺼번에 다 해치웠습니다.

방어 미사일에 불과한 사드를 배치했다고 길길이 날뛰며 지금까지도 제재를 이어오고 있는 중국이 그보다 훨씬 강력한 SLBM 발사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반응밖에 보이질 못하는군요. 반면 중국 안에서는 난리랍니다.

우리 군이 절치부심하며 국방력 증강에 ‘올인’한 데는 사드 때의 설움도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우리가 힘이 없으니 미국이 시키는 대로 사드를 배치했고 억울하게 중국으로부터 얻어 맞는데도 참을 수밖에 없었지요. 

박근혜 정부 때 일이지만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까지 그 상황이 그대로 밀려왔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던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는데 중국 정부 측은 몹시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보였지요. 정권 초기 그 수모를 겪은 이 정부를 봤으면서도 ‘문재인 정부는 친중파’ 운운하는 사람들은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제 눈에는 그때 문재인 대통령이 입에 칼을 물고 절치부심하는 모습이 선했습니다. 이후 4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엄청난 속도로 국방력 증강을 밀어붙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15일 오전에 왕이를 청와대에서 만나고 오후엔 SLBM 발사 현장을 대참관했는데 이것은 우연일 뿐일까요? 확실한 것은 ‘중국에서 누가 온다고 하니 이날은 피해서 SLBM을 시험하자’고 하지 않은 사실인 듯합니다. 이른바 보수정권이라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온갖 방산비리로 들끓던 국방 부문이 단기간에 기적같은 일을 해냈습니다. 국방력 강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업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9월15일 도산안창호함(3천t급)에 탑재돼 수중에서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예전에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지요. ‘독일이 강해지면 유럽이 불안해지지만 한반도는 힘이 있어야 아시아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매우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일리가 있는 얘기입니다. 독일은 강해지면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해 유럽의 국제질서를 뒤흔들곤 해왔습니다. 유럽인들이 얘기하는 ‘독일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힘이 강했을 때가 아니라 힘이 약했을 때 늘 분란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한반도가 약하면 주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설치는 나라들이 생기고, 이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쌈박질을 벌이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려면, 한국이 힘을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어느 나라도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없게 하는 힘. 그 힘이 바로 한반도 평화, 나아가서 아시아 평화를 지키는 요체입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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