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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9일은 대법원 국장일이다”

삼성그룹의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의 핵심인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자 봐주기 판결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에버랜드 사건을 연구한 장덕조 교수를 만났다.

고제규 기자 unjusa@sisain.co.kr 2009년 06월 01일 월요일 제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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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웅 삼성 특검팀은 지난 4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장덕조 서강대 교수를 만났다. 장 교수는 에버랜드 사건과 관련해 검찰 쪽의 주요 논거를 뒷받침한 주인공이다.
이건희 전 회장의 1·2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난 터라 특검팀이 장 교수를 찾은 것이다. 마침 장 교수도 에버랜드 사건과 관련해 2006년 ‘전환사채 저가발행과 회사의 손해’, 2007년 ‘에버랜드 판결의 분석’에 이어 이 전 회장의 1·2심 무죄 판결을 비판한 논문을 쓰고 있었다.
특검팀은 장 교수한테 ‘전환사채 저가발행과 회사의 손해 그리고 주주의 손해’ 논문을 넘겨받아 대법원에 제출했다. 장 교수는 지난 5월1일 <법조>에 이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논문 끝 부분에 “피고인(이건희)의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우리의 법제가 왜곡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고대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5월29일 대법원은 경영권 편법 승계 사건의 핵심인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하듯 학자는 논문으로 말해야 한다”라며 언론 접촉을 꺼려온 그를 5월29일 대법원 선고가 난 직후 연구실에서 만났다.

   
장덕조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위)는 “수치스러운 판결이다”라고 비판했다.
대법원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을 무죄라고 판결했다. 예상은 했는가?

걱정이 되면서도 무죄가 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판결문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봐야 하는데, 우선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사건은 동일한 구조를 가진 내용인데, 법리를 떠나 사실 관계를 구분해 무죄(에버랜드 사건)와 유죄(SDS 사건)를 가른 게 이해가 안 된다.

대법원 판결을 보면 에버랜드 사건은 주주배정 방식에 따른 회사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 무죄, SDS 사건은 3자 배정에 따른 회사 손해가 발생해 유죄 취지 파기 환송인데?
대법원이 동일한 구조를 가진 에버랜드와 SDS 사건의 사실관계를 달리 평가한 것이다. 나는 그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대법원은 법리만 다투는 최종심으로, 사실관계는 2심인 고법에서 다투고 끝나는 것이다. 두 사건 역시 과거 허태학·박노빈 2심과 삼성특검 2심에서 사실관계가 확정됐다. 허태학·박노빈 2심 판결에서 3자 배정이라고 사실관계를 확정했다. 삼성특검 2심 재판에서도 에버랜드나 SDS 사건에 대해 조세를 회피하면서 회사 지배권 이전을 목적으로 전환사채나 신주인수부권사채를 발행했다고 밝혀, 실질적으로 3자 배정으로 본 것이다. 둘 다 3자 배정으로 2심인 고법에서 사실관계를 확정한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사실관계를 바꿔서 에버랜드 사건은 주주배정으로, SDS 사건은 3자 배정으로 달리 본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법리상으로도 사실관계를 고법과 달리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논리대로라면 허태학씨가 에버랜드 사건방식처럼 낮은 가격으로 전환사채를 주주배정방식으로 발행한 뒤 자기 아들에게 배정해 경영권을 넘겨도 되는 거 아닌가?
그렇다.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가능하다. 대표이사 허태학씨가 저가로 전환사채를 주주배정방식으로 배정하고 기존 주주들이 실권한 뒤 이를 이재용 전무가 아닌 허씨의 아들에게 3자 배정하면 된다. 허씨의 아들에게 에버랜드 경영권이 넘어가도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다른 회사에서도 에버랜드와 똑같은 방법으로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지 않나?
앞으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경영권 편법 승계가 이뤄지거나 전환사채를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발행해 회삿돈을 개인이 유용해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내가 최근 논문에서 극단적인 예를 들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액면가 100원 이상이면 전환사채나 신주를 발행할 수 있다. 어떤 회사의 주식이 경영상태가 좋아 한 주당 시가가 50만원이라고 치자. 그런데 이 회사에서 신주나 전환사채를 헐값인 100원으로 발행해 주주배정을 한다. 이번 판결 대로라면 주주가 그 주식을 50만원에 팔아서 회사에 투자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사용(유용)해도 문제가 안 된다. 우리 상법에서는 주주 이익과 회사 이익이 동일한 게 아니라 회사는 독립된 법인격으로 본다. 이것은 회사법의 대원칙인데, 유독 삼성 사건에서만 회사 이익과 주주의 이익은 같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대원칙이 무너졌다. 이번 판결은 결론을 미리 정하고 거기에 논리를 꿰맞춘 것 같다.

논리를 꿰맞춘 건 역시 삼성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보는가?
그렇다. 피고인이 이건희 전 회장이거나 삼성과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에 이런 결론이 나왔다고 본다. 그나마 허태학·박노빈 최종심에서 대법관이 다섯 명이나 유죄 취지의 소수 의견을 낸 것은 평가할 만하다.

   
2008년 6월 서울고등법원 공판에 출석한 허태학 전 삼성 에버랜드 사장(가운데).
에버랜드 사건과 관련해 이사회 정족수 미달이나 실권 과정에서 삼성 비서실이 개입했는데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그 부분이 더 큰 문제다. 이건희 전 회장처럼 대주주가 영향력을 행사해 주주배정으로 꾸민 뒤 특수 관계인으로 이뤄진 주주를 실권시키고 아들에게 3자 배정해 경영권을 넘겨도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었다.

에버랜드 사건의 경우 형사책임을 물을 사안이 아니고 손해를 본 주주들이 민사소송으로 구제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나는 3자 배정뿐 아니라 주주배정이라고 하더라도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신주나 전환사채를 발행하면 배임죄가 된다고 본다.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신주나 전환사채를 액면가 이상으로, 시가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에 발행하더라도 주주배정만 하면 주주 사이 이해관계의 조정일 뿐이어서 회사에 손해가 없다는 거다. 문제는 회사에 손해가 없다면 상법상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는 거다. 손해가 없는데 어떻게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는가? 주주들은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다. 대표소송은 회사의 손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희 전 회장 1·2심 판결문에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투로 언급되었나?
회사 손해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형사 처벌이 아니라 민사상 구제수단을 써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점을 흐리려는 의도이다. 나는 시민사회 활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 학자였다. 성실히 연구만 하는 학자였는데 삼성 사건을 보면서 약간 의문이 들었다. 공부 열심히 하면 뭐 하냐는 회의감이 들더라. 이 사건만큼은 결론을 정해두고 법원이 논리를 짜 맞추고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측면도 있더라. 그중 하나가 바로 형사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민사적 구제수단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거였다. 회사 손해를 인정하지 않아 민사상 구제수단이 없는데 자꾸 그런 주장을 해서 눈속임을 하려 들더라.

에버랜드 사건을 정리한다면?
나는 처음에는 주주배정이나 3자 배정 방식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나는 두 가지 다 같다고 봤다. 중요한 핵심은 전환사채나 신주의 발행 가격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으로 발행해 배정하는 것은 주주 간 부(富)의 조정이 아니라, 회사에 손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삼성 쪽에서 주주배정과 3자 배정을 나누고 주주배정이면 저가라도 죄가 안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주주배정인지 잘 따져보자. 에버랜드 사건은 전환사채 발행을 결의한 1차 이사회 정족수가 미달되어 무효였다. 2차 이사회 결의에 참석자로 된 감사는 참석한 기억이 없다고 하는 등 유효한 결의인지 의심이 갔다. 1차 결의가 무효이기에 당연히 2차 결의도 무효였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이사회 결의에 절차상 잘못이 없다고 봤다. 이 사건은 주주배정으로 꾸민 실질적인 3자 배정이라고 허태학·박노빈 2심에서 분명히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 2심 판결의 논리적 틀이 가장 정확한 것 같다.

   
삼성 법무실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왼쪽)가 2007년 11월 양심선언을 했다.
에버랜드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까닭은?

나는 보수적이고 우파이다. 시민운동이나 사회활동도 하지 않은 사람이다. 공부만 해왔다. 처음에 허태학·박노빈 1심 재판을 비판한 이철송 교수의 논문을 읽고 나서 학문적 호기심이 일었다. 그 논문을 읽으면서 상법에서 이전에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자본거래’라는 개념으로 이 사건이 무죄라고 설명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 호기심에서 출발해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발표 이후 삼성으로부터 직·간접 외압은 없었나?

언급하지 않겠다. 삼성이 나를 반기업적인 사람이라고 비판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2007년 발표한 에버랜드 판결 분석 논문 끝 부분에 “성실하면서도 공정한 연구 자세를 가진 법학자로서 비판한다”라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교수나 학자들에 대한 소회인데, 사회적 지위가 높은 특정인이나 영향력이 큰 특정 집단이 관계된 사안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성실히 연구해 이를 발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학자들이 있다. 교수들은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므로 선비정신 같은 신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대법원 판결로 법적 논란은 끝난 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사건에 있어서만은 앞으로 연구를 계속하겠다. 진보적이거나 참여하는 교수처럼 비칠 수 있겠지만, 너무 실망스러운 판결이라서 연구하고 발표하겠다. 5월29일은 대법원 국장일이다.  두고두고 대법원의 수치스러운 판결로 남을 것이다. 대법관이 어떻게 이런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학자로서 회의감도 든다. 사실관계 확증과 법리에서 다 의문이다. 최종 판결이 잘못되면 그것이 판례로 굳어져 왜곡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는데, 그걸 다 감수하면서 대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렸다. 판결 당시 대법관이었다는 것 자체가 수치로 남을 것이다. 상법학자들이 의사표현을 잘 안 해서 그렇지 이번 판결이 법리를 왜곡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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