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을 보면 에버랜드 사건은 주주배정 방식에 따른 회사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 무죄, SDS 사건은 3자 배정에 따른 회사 손해가 발생해 유죄 취지 파기 환송인데?대법원이 동일한 구조를 가진 에버랜드와 SDS 사건의 사실관계를 달리 평가한 것이다. 나는 그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대법원은 법리만 다투는 최종심으로, 사실관계는 2심인 고법에서 다투고 끝나는 것이다. 두 사건 역시 과거 허태학·박노빈 2심과 삼성특검 2심에서 사실관계가 확정됐다. 허태학·박노빈 2심 판결에서 3자 배정이라고 사실관계를 확정했다. 삼성특검 2심 재판에서도 에버랜드나 SDS 사건에 대해 조세를 회피하면서 회사 지배권 이전을 목적으로 전환사채나 신주인수부권사채를 발행했다고 밝혀, 실질적으로 3자 배정으로 본 것이다. 둘 다 3자 배정으로 2심인 고법에서 사실관계를 확정한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사실관계를 바꿔서 에버랜드 사건은 주주배정으로, SDS 사건은 3자 배정으로 달리 본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법리상으로도 사실관계를 고법과 달리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논리대로라면 허태학씨가 에버랜드 사건방식처럼 낮은 가격으로 전환사채를 주주배정방식으로 발행한 뒤 자기 아들에게 배정해 경영권을 넘겨도 되는 거 아닌가?그렇다.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가능하다. 대표이사 허태학씨가 저가로 전환사채를 주주배정방식으로 배정하고 기존 주주들이 실권한 뒤 이를 이재용 전무가 아닌 허씨의 아들에게 3자 배정하면 된다. 허씨의 아들에게 에버랜드 경영권이 넘어가도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다른 회사에서도 에버랜드와 똑같은 방법으로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지 않나?앞으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경영권 편법 승계가 이뤄지거나 전환사채를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발행해 회삿돈을 개인이 유용해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내가 최근 논문에서 극단적인 예를 들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액면가 100원 이상이면 전환사채나 신주를 발행할 수 있다. 어떤 회사의 주식이 경영상태가 좋아 한 주당 시가가 50만원이라고 치자. 그런데 이 회사에서 신주나 전환사채를 헐값인 100원으로 발행해 주주배정을 한다. 이번 판결 대로라면 주주가 그 주식을 50만원에 팔아서 회사에 투자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사용(유용)해도 문제가 안 된다. 우리 상법에서는 주주 이익과 회사 이익이 동일한 게 아니라 회사는 독립된 법인격으로 본다. 이것은 회사법의 대원칙인데, 유독 삼성 사건에서만 회사 이익과 주주의 이익은 같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대원칙이 무너졌다. 이번 판결은 결론을 미리 정하고 거기에 논리를 꿰맞춘 것 같다.
논리를 꿰맞춘 건 역시 삼성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보는가?그렇다. 피고인이 이건희 전 회장이거나 삼성과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에 이런 결론이 나왔다고 본다. 그나마 허태학·박노빈 최종심에서 대법관이 다섯 명이나 유죄 취지의 소수 의견을 낸 것은 평가할 만하다.
에버랜드 사건의 경우 형사책임을 물을 사안이 아니고 손해를 본 주주들이 민사소송으로 구제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이건희 전 회장 1·2심 판결문에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투로 언급되었나?회사 손해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형사 처벌이 아니라 민사상 구제수단을 써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점을 흐리려는 의도이다. 나는 시민사회 활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 학자였다. 성실히 연구만 하는 학자였는데 삼성 사건을 보면서 약간 의문이 들었다. 공부 열심히 하면 뭐 하냐는 회의감이 들더라. 이 사건만큼은 결론을 정해두고 법원이 논리를 짜 맞추고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측면도 있더라. 그중 하나가 바로 형사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민사적 구제수단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거였다. 회사 손해를 인정하지 않아 민사상 구제수단이 없는데 자꾸 그런 주장을 해서 눈속임을 하려 들더라.
에버랜드 사건을 정리한다면? 나는 처음에는 주주배정이나 3자 배정 방식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나는 두 가지 다 같다고 봤다. 중요한 핵심은 전환사채나 신주의 발행 가격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으로 발행해 배정하는 것은 주주 간 부(富)의 조정이 아니라, 회사에 손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삼성 쪽에서 주주배정과 3자 배정을 나누고 주주배정이면 저가라도 죄가 안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주주배정인지 잘 따져보자. 에버랜드 사건은 전환사채 발행을 결의한 1차 이사회 정족수가 미달되어 무효였다. 2차 이사회 결의에 참석자로 된 감사는 참석한 기억이 없다고 하는 등 유효한 결의인지 의심이 갔다. 1차 결의가 무효이기에 당연히 2차 결의도 무효였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이사회 결의에 절차상 잘못이 없다고 봤다. 이 사건은 주주배정으로 꾸민 실질적인 3자 배정이라고 허태학·박노빈 2심에서 분명히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 2심 판결의 논리적 틀이 가장 정확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