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를 배경으로 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3〉.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17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1.9%가 올해 추석에 귀성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설문에서 57.7%가 귀성을 포기한다고 답했는데, 2년 연속 귀성 포기자들이 절반을 넘었다. 어느 때보다 집에 머물 시간이 많은 추석이다. 〈시사IN〉 기자들이 ‘방콕 정주행’에 적합한 콘텐츠를 추천한다. 타이완 드라마, 자연 다큐멘터리, 스포츠 소재 다큐·드라마, 애니메이션, 웹툰, 게임 등 각자의 취향을 담았다. 랜선을 통해 세상과 감동을 만나는 추석 연휴가 되기를 소망한다.

〈크루세이더 킹즈3〉
가문의 번영을 위해 주군과 국가는 뒷전

함께 모이기 어려운 한가위, 가족의 의미를 간접적으로나마 되새길 수 있는 게임을 소개한다. 지난해 9월 출시된 〈크루세이더 킹즈3〉(〈크킹3〉)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제격인 ‘타임머신 게임’류에 속한다.

〈크킹3〉는 중세를 배경으로 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플레이 방식은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나 〈문명〉 시리즈와 유사하다. 배경은 867년과 1066년 유럽 전역과 아시아 대부분, 북아프리카다. 플레이어는 동로마제국 황제부터 아이슬란드 바이킹 영주까지,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모든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

〈문명〉 부류의 게임과 달리 〈크킹3〉는 국가나 사람이 아니라 ‘가문’이 중심이다. 〈삼국지〉보다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가깝다. 가문의 번영이야말로 이 게임의 지상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군의 안위는 물론 국가의 이익도 경우에 따라선 뒷전으로 밀린다. 이 게임에 ‘충의지사’는 없다. 잉글랜드가 프랑스를 공격했을 때 프랑스 봉신인 ‘나’는 도리어 쾌재를 부른다. 왕권이 약해진 틈을 타 독립을 꾀할 수도 있고, 이웃 봉신의 땅을 점령할 수도 있다. 이웃 나라와 동맹을 맺고 주군을 공격하는 일도 흔하다. 차근차근 봉토를 늘리고, 나와 같은 성씨인 사람들을 고관대작에 올리는 게 이 게임의 목적이다. 영지를 가진 가족과 친척들은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한뜻으로 도와준다.

식구들끼리 훈풍만 부는 건 아니다. 주된 갈등 요인은 상속 문제. 땅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가령 사망한 아버지가 서울·경기도·강원도 영지를 가진 공작(公爵)이었다면, 아들 셋은 저마다 영지를 상속받아 서울 공작·경기 공작·강원 공작으로 독립한다. 플레이어가 아버지 땅을 독차지하기 위해서는 형제를 암살하거나 수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여야 한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형제들도 같은 생각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제까지 연회에서 웃고 떠들었던 동생이 말도 안 되는 ‘명분’을 이유로 공격해오거나, 음식에 독을 타 나를 비명횡사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살얼음을 걷는 기분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기이하게도 이 게임의 재미는 계획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극대화된다. 두 아들의 상속을 정리해두고 죽을 날만 기다리던 도중 갑자기 늦둥이가 태어났을 때, 황제의 가족을 암살한 사실이 폭로돼 영지를 몰수당했을 때, 3대에 걸쳐 이룩한 제국이 흑사병 때문에 무너졌을 때 플레이어는 좌절과 함께 새로운 목표의식을 얻는다.

(특히 중세 유럽의) 역사를 알면 이입하기 쉽지만 몰라도 상관없다. 합스부르크나 호엔슈타우펜, 카페와 같은 유명한 가문을 골라잡아 그들의 행보를 재현하는 것도 즐겁지만,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이들을 가상 세계에서나마 빛나게 하는 것도 보람차다. 아일랜드 영주로 시작해 전쟁을 배우고 카스티야 왕이 되어 암살을 익히자. 연휴가 끝날 때쯤이면 일개 백작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대관시키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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