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낯선 손님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6월25일에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9월3일에는 야권 대선주자 중 한 명인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이곳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했다. 중요한 정치적 국면마다 봉하마을을 찾는 것이 여야 모두에게 ‘표준’이 되었다. 외연 넓히기를 시도하는 야권 정치인조차 발걸음하게 만들 만큼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한국 정치에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시사IN〉 신뢰도 조사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36.0%가 노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으로 꼽았다(〈그림 1〉 참조). 오차범위 이내 접전까지 포함하면, 벌써 8년 연속 1위다. 2위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26.3%, 3위인 김대중 대통령은 16.1%를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격차는 2016년부터 오차범위 이상 벌어졌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신뢰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강고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세부 수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와 다른 경향성도 발견된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비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 응답층이 다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2020년 신뢰도 조사 당시 노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은 41.9%에 달했지만, 1년 새 그 비율은 5.9%포인트 감소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도 하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지난해에 비해 9.4%포인트 하락했다. 두 사람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도는 함께 움직이는 경향을 보였다. 올해 노 전 대통령이 기록한 36.0%라는 수치는 최근 7년(2015년 이후) 사이 가장 저조한 기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는 가운데 2위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은 지난해(22.2%)보다 4%포인트 정도 높은 26.3%로 나타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역대 신뢰도 조사에서 15% 내외를 유지했는데, 올해도 16.1%로 나타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던 2018년(42.0%)과 비교해보면 세대별 ‘신뢰 응답’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가장 단단한 지지층으로 꼽히던 20~40대 응답자들이 흔들렸다. 특히 30대 응답층의 감소 폭이 가장 컸다. 2018년에는 30대 응답자 중 61.0%가 역대 대통령 중 노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지만, 이 비율은 올해 48.5%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에 19~29세(44.1%→37.4%) 연령층과, 40대(60.5%→54.8%) 연령층에서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 응답이 소폭 감소했다.
그러나 줄어든 신뢰 응답층을 ‘보수’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대로 흡수하지는 못했다. 19~29세(5.2%), 30대(9.3%)는 여전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응답률이 낮았다. 통상 박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하는 세대·지역·직업군은 60세 이상(54.1%), 대구·경북(44.0%), 전업주부(43.8%)인데, 이들 층위에서 신뢰 응답이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이 ‘신뢰의 공백’이 만들어낸 수혜는 의외의 인물이 가져갔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수감 중인 전직 대통령의 신뢰 상승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조사 때부터 두각을 보였다. 2018년 1.3%, 2019년 2.9%에 불과하던 ‘신뢰 응답’ 비율이 지난해 4.8%까지 상승했고, 올해 5%로 그 기류가 이어졌다. 지난해 갑작스러운 상승세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노무현·박정희·김대중에 이어 4위에 해당한다. 부정부패로 인해 수감 중인 전직 대통령의 신뢰가 지난 2년 사이에 오히려 증가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다.
보수 응답자 사이에서 존재감이 커졌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라고 응답한 이들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한 이들은 11.1%에 달한다. 박정희(37.1%), 노무현(20.6%)의 뒤를 착실하게 따르고 있다. 김영삼(4.9%), 박근혜(2.6%), 이승만(2.3%) 등 다른 보수 정치인과도 격차를 보인다. 보수층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거나, 보수층의 구성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층을 연령·지역·직업·성별 기준으로 살펴보았다. 19~29세(17.8%)와 학생층(22.2%)에서 이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특히 이들 젊은 연령대에서 성별에 따라 응답이 판이하게 엇갈렸다.
〈그림 2〉는 19~29세, 30대 응답층을 남녀로 구분해 비교한 결과다. 19~29세 남성 응답자 가운데 27.7%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30.4%)에 대한 응답 비율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반면 19~29세 여성은 노무현(45.7%), 김대중(22.3%) 두 전직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꼽았다. 30대 응답자 사이에서도 성별 격차가 나타났지만, 남녀 모두 이 전 대통령의 응답 비율이 10%를 넘기지는 않았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의 ‘선전’ 배경에는 19~29세 남성 응답층의 변화가 존재한다.
이 같은 경향은 지난 8월, 〈시사IN〉이 한국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웹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 여부’를 질문했는데, 20대 남성 응답자 가운데 38.2%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호감이 있다고 답했다(전 연령·성별 평균 18.3%). 반면 20대 여성 가운데 이 전 대통령에게 호감을 갖는다는 비율은 9%에 불과했다. 동일 세대 내에서 성별에 따라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신뢰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약진이 한국 정치 지형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여전히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한국 사회에서 ‘신뢰’받는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고, 박정희·김대중의 흔적 역시 진하게 이어지고 있다. 다만 미래 세대인 20대 일부가 이명박이라는 이름을 ‘신뢰’와 등치시키고 있다는 점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 변화가 전 세대로 확대될지, 아니면 특정 응답층 내의 ‘소란’에 불과한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이렇게 조사했다 조사 의뢰:〈시사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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