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서울역 앞 임시 선별진료소. ⓒ시사IN 신선영

2021 〈시사IN〉 신뢰도 조사는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인식을 알아봤다. 각 항목에 대해 응답자들은 전혀 신뢰하지 않으면 0점, 매우 신뢰하면 10점을 주었다. 5점이 넘으면 신뢰와 불신 사이에서 신뢰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질병관리청은 6.69점을 받아 2021년 신뢰도를 조사한 모든 공적제도 가운데 가장 높은 신뢰도를 기록했다(〈그림 1〉 참조). 지난해 7.39점과 비교하면 떨어졌지만 질병관리청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강력했다. 대통령, 정당, 국가기관, 정부 정책에 걸쳐 신뢰도를 물었는데 6점대 신뢰도를 보인 항목은 질병관리청과 K방역뿐이다.

K방역은 2021 신뢰도 조사에서 질병청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얻었다. ‘대규모 검사, 추적, 격리로 대표되는 확진자 수 억제 중심의 K방역’에 대해 신뢰하는지 물었을 때 평균 점수는 6.18점이었다. 6점대는 올해 조사뿐만 아니라, 2007년 창간 이래 매년 시행되는 역대 〈시사IN〉 신뢰도 조사에서 보기 드문 점수이다. 각각 임기 첫해였던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6.59점과 6.67점이었다. 방역 성과가 전체적인 신뢰도 결과를 끌어올렸던 2020년 질병관리청(7.39점)과 건강보험(6.51점)이 6점을 넘었다. 그 외에 15년간 신뢰도 조사를 통틀어 6점대 신뢰도는 없다(‘K방역’ 항목은 2020년 신뢰도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부정적인 여론이 높으리라 예상됐던 백신 수급도 5.36점으로, 신뢰한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시사IN〉은 코로나19 재난기 정부의 경제적 지원 정책에 대해 ‘전 국민 100%에게 지원된 1차 재난지원금’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에게 지원된 2·3·4차 재난지원금’ ‘전 국민 소득 하위 88%에게 지원될 5차 재난지원금’으로 세분화해 물었다. 이 역시 모두 5.3점이 넘어 신뢰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10점 만점 조사에서 5점대는 일견 높지 않아 보이지만 이는 결코 쉽게 나오는 점수가 아니다. 2021 신뢰도 조사에서 코로나19 대응과 관련된 항목 이외에 5점대를 넘긴 건 국세청(5.21점)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4.59점, 더불어민주당 3.97점, 국민의힘 4.02점, 국회 3.31점, 대법원 4.06점이었다(18~23쪽 기사 참조). 종합하자면 한국 시민들은 팬데믹이 1년8개월째에 접어드는 시점에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전반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길어지는 감염병 위기 속에서 시민들의 신뢰 기반이 유지된다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다. 코로나19 대응은 ‘방역 전략’이나 ‘백신접종’ 같은 정책 그 자체보다 정부가 설정한 정책적 방향에 시민들이 얼마나 동참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는 점에서 신뢰는 무엇보다 귀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는 코로나19 대응에서 나타난 신뢰를 마냥 낙관하기 어려운 징후가 동시에 엿보인다.

2021 신뢰도 조사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위태로운 가운데 코로나19 대응이라는 기둥 하나가 정권의 신뢰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시사IN〉은 이번 조사에서 ‘경제 정책’ ‘부동산 정책’ ‘대북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물었다. 경제 정책은 59.1%가 불신, 39.7%가 신뢰라고 답했다. 대북 정책은 불신과 신뢰가 각각 59.1%, 38.7%였다. 부동산에 대해서는 무려 78.4%가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부의 정책에 관해 ‘코로나19 대응’ ‘경제’ ‘부동산’ ‘대북’ 네 가지 분야로 나누어 물었는데 코로나19 대응을 제외한 나머지 정책에서는 모조리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응답이 ‘신뢰한다’를 크게 앞지른 것이다.

코로나19 대응이 정권의 신뢰도를 담보하는 거의 유일한 보루로 남은 상황에서 정부가 방역 성과에 집착하게 될 위험이 크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방식은 ‘K방역’이라는 브랜드로 명명된 이후 문재인 정부의 업적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지난해 9월22일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은 상징적이다. 문 대통령은 연설 내용의 절반가량을 코로나19에 할애해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며 코로나19 유행을 성공적으로 관리해온 K방역의 경험을 국제사회와 적극적으로 공유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재난기에 국가 지도자가 공동체에 자긍심을 불어넣고, 고양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시민을 결집시키려는 통치가 치적을 드높이는 용도로 미끄러지는 순간, 이는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오게 된다.

‘우리의 방식’이 성공 사례를 넘어 성공 공식, 성공 신화로 굳어지면 이후 그 공동체가 나가는 경로는 경직된다. 이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내포하기에 유연하고 탄력적인 대처가 중요한 신종 감염병 위기에서 제 발목을 잡는 결과로 돌아온다. K방역의 후광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중반, 한국 정부는 발 빠르게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나설 타이밍을 실기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코로나 유행 통제에 성공적이었던 국가 대부분이 백신 계약에 뒤처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넘어가기에는 이어지는 후과가 뼈아프다.

또 다른 부작용은 방역이 정파적 도구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방역의 성과를 정권의 업적으로 강하게 내세울수록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 대응이 공동체가 받아든 공통 과제라는 신뢰가 희미해진다. 2021 신뢰도 조사에서는 이러한 이탈 현상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질병관리청에 대해서는 5.55점으로 신뢰를 보였으나, 구체적으로 코로나19 대응 정책을 묻는 항목에는 일관되게 낮은 점수를 보냈다(〈그림 2〉 참조). K방역, 1차 재난지원금, 2·3·4차 재난지원금, 5차 재난지원금 신뢰도는 4점대였으며 백신 수급 신뢰도는 3.47점까지 떨어졌다.

이 대목에서 ‘방역은 과학’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지만 이는 협소한 해석이다. 코로나19 대응은 과학적 근거를 갖춰야겠지만 결국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확진자 수 증가를 일정 부분 감수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풀 것인지 말 것인지, 코로나19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누구를 얼마만큼 지원할 것인지, 한정된 방역 자원은 어디에 우선적으로 투입할 것인지는 정치적 판단의 영역이다. 따라서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정치 방역’은 멸칭으로 사용되기에 부적절하다.

어떤 정치인지가 중요하다.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이 시작된 이후 정부는 ‘○월까지 백신접종률 ○○% 달성’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달성할 때마다 대대적인 홍보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4월 목표는 300만명 1차 접종이었는데 당시를 회상하며 한 보건소장이 했던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4월 안에 300만명 접종을 달성하려고 몰아치는 분위기가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 했어도 며칠 뒤면 300만명이 백신을 맞았을 것이다. 그걸 당기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예방접종센터 인력이 상당히 무리를 했다. 현장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아무도 이해를 못했다.” 코로나19 대응을 트로피로 삼으려는 정치라면 그 신뢰도는 점점 더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등교 확대 지지하는 기혼 여성들

2021 〈시사IN〉 신뢰도 조사는 이 조사가 시행된 8월 말~9월 초 시점에 단면을 잘라 한국 사회의 신뢰도 지형을 보여준다. 여기서 코로나19 대응은 다른 어떤 부문보다 신뢰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시계열 조사들을 살펴보면 시민들의 평가는 박해지는 추세다. 한국리서치의 코로나19 대응 평가 정기조사에서 지난해 5월 81%였던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올해 8월 50%까지 떨어졌다. ‘못하고 있다’는 45%였다.

이번 조사에는 또 하나의 균열점이 드러났다. 자영업 직군이다. 자영업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골자로 하는 코로나19 방역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질병관리청(6.26점), K방역(5.58점), 1차 재난지원금(5.06점)에 대해서는 자영업자들도 신뢰를 보냈다(〈그림 3〉 참조). 반면 백신 수급(4.65점), 2·3·4차 재난지원금(4.35점), 5차 재난지원금(4.54점)은 신뢰도가 떨어졌다.

특히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인 ‘2·3·4차 재난지원금’에 대한 신뢰도가 제일 낮았다. 0점부터 10점까지 신뢰도 점수를 매긴 비율을 보면 자영업자 가운데 21.6%가 2·3·4차 재난지원금에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에 해당하는 0점을 줬다. 자영업자 5명 중 1명은 이 정책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과 올해 1월 지급된 2차 재난지원금(최대 200만원)과 3차 재난지원금(최대 300만원)은 연 매출 4억원 이하, 상시근로자 수 4인 이하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만 지원 대상이었다. 배제된 자영업자들의 박탈감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시흥에서 볼링장을 운영하는 이헌영씨는 “소상공인들은 투자비, 고정비도 소액이다. 가게 규모가 크면 그만큼 손해도 크다. 영업 금지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데 10원짜리 한 장도 오는 게 없으니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었다”라고 말했다. 올해 4월 지급된 4차 재난지원금(최대 500만원)부터는 연 매출, 상시근로자 수 기준이 없어졌다.

8월에는 ‘희망복지자금(최대 2000만원)’이라는 이름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재난지원금이 한 차례 더 집행됐다. 지난 7월1일 국회를 통과한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손실보상법)’에 따라 10월 말부터는 손실보상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법이 공포된 2021년 7월7일 이후 발생하는 손실만 해당하며 소급 적용은 되지 않는다.

8월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방역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김부겸 총리(맨 오른쪽). ⓒ연합뉴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재난기, 경제적 지원에 인색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5.4%, 영국 16.2%, 일본 15.8%, 캐나다 14.6%, 독일 11.0%, 폴란드 7.7%를 코로나19 재정지원에 썼으나 한국은 4.5%에 그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6월 ‘팬데믹, 신흥국 시장에 재정적 취약성을 안기다’라는 기사에서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예산을 더 지출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은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시사IN〉 제726호 ‘코로나 일년 반, 한국 정부는 돈 쓰는 시늉만 했나’ 참조).

〈시사IN〉은 2학기에 초·중·고 등교를 확대하는 정책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도 물었다. 신뢰도는 5.96점으로, 코로나19 유행 속에서도 학생들이 더 자주, 꾸준히 학교에 갈 수 있다고 보는 여론이 공고했다(〈그림 4〉 참조). 모든 그룹에서 등교 확대에 대한 신뢰가 높은 가운데 여성들이 매긴 점수가 6.25점으로 유독 높았다. 연령별로는 40대에서 6.37점이 나왔다. 학령기 자녀를 둔 여성들이 등교 확대를 더욱 바라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4월 〈코로나19 고용충격의 성별 격차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으로 기혼 여성은 기혼 남성보다 고용에 더 큰 타격을 받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등 기혼 남성의 고용률이 큰 폭으로 떨어졌던 과거 경제위기와는 매우 다른 패턴이다(〈그림 5〉 참조). 미혼 여성과 미혼 남성 사이에 고용충격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KDI 보고서는 학교가 문을 닫으며 가정 내에서 돌봄과 학습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자녀 양육을 포함해 가사노동을 주로 맡는 여성들이 경제활동에서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상황이 2021 〈시사IN〉 신뢰도 조사에서 등교 확대를 향한 여성들의 강력한 지지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조사했다
조사 의뢰:〈시사IN〉
조사 기관:칸타코리아
조사 일시:2021년 8월31일~9월2일
조사 대상: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35명
조사 방법:유·무선 전화면접조사(무선 81.5%, 유선 18.5%)
응답률:9.7%
가중치 부여 방식:성별, 연령별, 지역별 가중값 부여(셀 가중)
2021년 7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기준
표본오차:±3.0%포인트(95% 신뢰수준)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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