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5일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으로 의원직 사퇴 및 대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연 윤희숙 의원과 그를 찾은 이준석 대표. ⓒ연합뉴스
윤 의원 부친이 소유한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 일대 모습. ⓒ연합뉴스

국민의힘 소속 한 국회의원이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당내 대선주자 중 한 명이던 그는 출마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은 그의 결정을 추켜세우며 지지했고, 당 지도부도 사퇴안 처리에 찬성했다. 그런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사퇴에 반대하고 나섰다. 민주당 인사들은 그에게 탈당과 수사가 우선이라며 의원직 사퇴는 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야당 대선주자를 여당이 뜯어말리는 기묘한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부친의 세종시 땅투기에 관여했다고 의심받는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을 둘러싸고 연출된, 보기 드문 장면이다.

발단은 8월23일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발표였다. 권익위는 이날 국민의힘과 비교섭단체 5개 정당 소속 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조사 대상자 가운데 모두 13명이 투기 의혹 대상자로 분류되었다. 지난 6월 민주당 소속 의원 발표(당시 투기 의혹 대상자 12명)에 이어 두 달 만에 야당 의원들의 의혹까지 점검한 것이다. 이날 지목된 투기 의혹 대상자 가운데 한 명이 윤희숙 의원이다. 그는 권익위의 조사 결과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며 의원직 사퇴 카드를 던졌다.

윤 의원의 사퇴 선언 직후 그를 비판하던 민주당과 옹호하던 국민의힘의 입장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에게 윤 의원의 사퇴는 부담스러운 선례가 된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은 여야 국회의원 가운데 스스로 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힌 인물은 윤 의원이 처음이다. 양당은 앞서 의혹을 받은 의원들에 대해 탈당을 권고하거나 제명하는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그중 대다수 의원들은 여전히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윤 의원 사퇴가 실제로 이뤄진다면 ‘버티기’ 중인 다른 의원들과 소속 정당을 향한 비판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처지에선 마냥 ‘사퇴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도 부담스럽다. 윤 의원이 받는 의혹을 덜어주고, 그의 정치적 존재감을 키워주는 모양새가 된다. 사퇴 논의와 거리를 두는 게 최선이다. 국민의힘 역시 윤 의원의 사퇴를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다. 윤 의원의 정치적 선택이 여당에 대한 압박으로 작동하는 것은 국민의힘에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 당의 속내 역시 꽤 복잡하다.

국민의힘은 현재 윤희숙 의원을 포함해 총 105석을 확보하고 있다. 윤 의원에 이어 5석만 더 빠져도 개헌저지선(100석)이 무너진다. 윤 의원 선례에 맞춰 당내 투기 의혹 대상자들을 강하게 징계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선거법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의원들과 내년 지방선거를 노리는 현역 의원들까지 고려하면 의원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다.

양당은 결국 서로에게 공을 떠넘기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국민의힘이 적극적으로 요구하면 찬성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윤 의원 사직안 처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민주당에 ‘선택’을 압박한다. 현직 국회의원 사퇴는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에 안건을 올리고 표결로 처리해야 한다. 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인원의 과반 찬성이 나오면 사퇴시킬 수 있다. 전체 의석 300석 가운데 170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의 찬성이 필수다.

윤 의원과 제부의 미공개정보 활용 의혹

8월31일 열린 본회의에 윤 의원 사직안은 상정되지 않았다. 공은 9월1일부터 시작된 정기국회로 넘어갔다. 현재로선 민주당과 국민의힘 셈법, 지도부 및 개별 의원들의 생각이 각각 달라 사직안이 본회의에 오른다는 보장이 없다. 사직안이 처리돼도 문제가 일단락되는 건 아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내년 대통령 선거와 함께 보궐선거로 윤 의원의 빈자리(서울 서초갑)를 채워야 한다. 부동산은 내년 대선의 핵심 이슈 중 하나로 꼽힌다. 윤희숙 의원 관련 의혹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국회 안팎에 붙은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윤 의원 사퇴를 둘러싸고 여야 간 정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작 이번 문제의 본질인 국회의원과 그 가족들의 부동산 비위 의혹은 가려지고 있다. 권익위 조사 결과와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혹 등을 뜯어보면 면밀히 검증하고 확인해야 할 지점들이 적지 않다. 국회의원과 그 주변 인물들의 부동산 투기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논의도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이 해소되고 나서야 진척시킬 수 있다.

윤 의원 부동산 의혹만 해도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들이 적지 않다. 의혹의 쟁점은 둘로 나뉜다. 권익위 조사로 드러난 부친의 농지법 위반과 여당이 제기하는 미공개 정보 활용 의혹이다.

윤 의원 부친의 농지법 위반 문제는 사실관계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난다. 윤 의원의 부친은 2016년 5월9일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 소재 논 1만871㎡(약 3288평)를 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을 보면, 그는 당시 5개 필지를 3.3㎡당 25만원가량인 8억2200만원에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현지 부동산 관계자들은 현재 세종시 전의면 토지 시세를 3.3㎡당 40만~60만원으로 보고 있다. 단순 계산만 해봐도 5년 사이의 시세차익이 10억여 원에 이른다. 권익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의원의 부친은 직접 농사를 짓겠다며 땅을 샀지만 실제로는 다른 임차인과 계약을 맺고 땅을 빌려준 대신 매년 쌀 7가마니를 받았다. 농어촌공사를 거치지 않고 당사자들끼리 농지를 임대차 계약한 것은 농지법 위반이다.

이 땅의 입지와 매입 시점, 그리고 윤 의원 가족들의 이력 때문에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뒤따른다. 윤 의원 부친의 땅은 2018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연서면 부동리로부터 10㎞, 양곡리의 미래일반산업단지와는 2㎞ 떨어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미공개 정보가 활용되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윤 의원은 2003년부터 2016년 말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근무했다. 그의 부친이 땅을 산 시기와 겹친다. KDI의 업무 중 하나는 기획재정부로부터 국가산업단지 등 공공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위임받아 평가하는 것이다. 윤 의원의 제부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청와대를 거쳐 2014년 8월부터 2016년 1월까지 기재부 장관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개발 프로젝트를 미리 취득할 수 있는 윤 의원과 그의 제부로부터 윤 의원 부친에게 모종의 정보가 흘러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누가 미공개 정보를 활용했는지 여부는 검경의 수사 이외의 방법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당사자인 윤 의원도 결백 ‘입증’이 쉽지 않다. 윤 의원은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스스로 공수처나 합수본의 수사를 받겠다고 밝혔지만,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가 재직 중에 범한 죄를 수사하’는 기관이다. 문제의 땅이 매입된 시점인 2016년에 윤희숙 의원은 KDI 재정복지정책 연구부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윤 의원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KDI 소속이었지만 연구부 부장은 고위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공수처의 수사를 받을 수는 없다.

합수본 강제수사 받는 첫 현역 국회의원

권익위로부터 국회의원 부동산 관련 의혹 수사를 의뢰받은 합수본(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총괄)은 윤 의원 부친 땅 의혹을 세종지방경찰청(세종청)에 배당했다. 다만 권익위가 조사한 농지법 위반 의혹만 의뢰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경우엔 수사 범위가 윤 의원 부친이 땅을 사게 된 경위 및 과정으로 제한될 전망이다.

물론 윤 의원 부친이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은 있다. 윤 의원은 최근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 이용 혐의로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에 고발됐다. 검찰은 이 사건을 세종청에 이첩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 착수 여부는 이제 막 내사에 착수한 세종청이 검토 결론을 낸 뒤에야 알 수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제기된 의혹만으로 수사에 착수하진 않는다. 만약 수사로 이어지더라도 당사자의 ‘자백’이나 내부고발이 없는 이상, 어떤 정보를 어떤 과정을 거쳐 투기에 활용했는지 확인해보는 작업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 못지않게 국회 안팎의 주목을 받은 국회의원도 있다.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이다. 강 의원은 권익위 조사 발표 이후 당 지도부에서 만장일치로 탈당을 요구받았다. 그는 합수본에서 강제수사를 받는 첫 현역 국회의원으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권익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기윤 의원은 지난 2월 지역구인 경남 창원에 있는 7036㎡(2100여 평) 규모 과수원이 공원 부지로 수용되면서 토지 및 나무에 대한 보상금 44억6000만원을 받았다. 강 의원이 1998년 경매로 매입할 당시 이 부지의 가격은 약 2억원이었다. 권익위는 보상금이 과다 책정됐고, 조사 용역업체가 사실 확인 없이 강 의원 측이 과다 산정한 기준에 따라 보상금을 책정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또 강 의원이 국회의원 신분으로 담당 공무원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보상금이 적다는 이유로 자신의 토지를 공원 구역에서 제외시켜달라고 압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이와 별도로 강기윤 의원을 둘러싼 다른 의혹이 또 있다. 강 의원은 일진금속공업이라는 회사의 대표였다. 그의 부인 및 아들은 일진단조공업이라는 업체의 공동 최대주주다. 두 회사, 즉 일진금속과 일진단조는 2018년 경남 진해항 제2부두의 부지인 약 8만㎡(2만4000여 평)를 감정액의 절반인 270억원에 샀다. 이 8만㎡ 가운데 2만6000㎡(8000여 평)는 강 의원의 부인과 아들 회사인 일진단조가 100억여 원으로 매입한 땅이다. 일진단조는 이렇게 부동산을 사들이면서도 자기 돈은 한 푼도 투입하지 않았다. 은행에서 84억원, 강 의원이 대표였던 일진금속으로부터 29억원을 빌려 매입 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일진단조는 이후 2019년과 2020년에 토지 일부인 약 2만㎡(6000여 평)를 총 96억원에 팔았다. 매입 당시 3.3㎡당 110만원과 비교하면 3.3㎡당 50만원가량 올랐다. 2년 사이 시세차익은 약 30억원이다.

그 밖에 강 의원은 창원 비음산터널에 투기했을 뿐 아니라 본인과 가족의 회사가 양도세 면제 수혜를 받을 수 있는 법안을 스스로 발의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경찰은 지난 3월부터 이 의혹들을 종합적으로 수사 중이다. 4월22일엔 일진금속과 일진단조, 대출은행 등을 압수수색했지만 아직까지 결론은 내지 않고 있다. 강 의원 측은 “의혹들은 사실과 다르고 부동산 투기와 관계없다”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는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 ⓒ연합뉴스

권익위는 이 의혹을 조사조차 하지 못했다. 강기윤 의원 및 그 가족들과 관계된 부동산 거래는 법인(일진금속과 일진단조) 명의로 이뤄졌다. 권익위는 법인 명의로 거래된 부동산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 당초 권익위 조사 범위는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착수할 때부터 이미 국회의원 본인과 배우자 및 자녀, 부모까지로 한정돼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지배하는 법인을 통해 불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부동산 거래를 해도 이를 권익위 차원에서는 조사할 수 없었다. 국회의원의 형제자매, 친인척, 차명 거래, 불법·편법 증여, 미공개정보 활용 여부 등도 권익위의 조사범위 밖이다. 여야 구분 없이 드러나지 않은 국회의원 및 가족들의 부동산 투기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권익위의 국회의원 부동산 전수조사가 이런 한계 속에 마무리되면서 공은 합수본으로 넘어갔다. 합수본은 출범 이후 전현직 의원 23명을 내사 또는 수사해왔다. 이 가운데 7명에 대해서는 불송치 또는 불입건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나머지 16명은 내사 및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8월24일 권익위로부터 넘겨받은 국민의힘, 열린민주당 의원 13명을 더하면 수사 대상자는 산술적으로 29명이 되지만 강기윤 의원과 같이 기존 수사 대상에 있던 의원들이 일부 포함돼 있다. 경찰은 중복된 의원들을 가려내 각 지방청에 배당했다.

수사에 속도가 붙을지는 미지수다.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소수의 의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사 대상 의원들은 의정활동 및 사실관계 확인 등을 이유로 아직까지 소환조사 일정도 잡지 않고 있다. 앞으로는 의원들이 수사에 협조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9월1일부터 시작된 정기국회 100일간은 의원들이 가장 바쁜 시기다. 국정감사와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의·확정 등의 의정활동을 한다.

권익위는 국민의힘 부동산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회가 제도개선 논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의원 및 그 가족의 부동산 보유·매수 적법성을 검증하는 체계를 만들고, 부동산 개발 관련 국회 안건 심의에서 이해충돌을 방지할 세부 기준과 절차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이 같은 논의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관련 법안도 8월30일 송갑석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전부다. 이마저도 공직자 재산등록 대상에 KDI 직원들을 포함하는 내용이 추가됐을 뿐이다. 송 의원 측은 이 법안을 ‘윤희숙 방지법’이라고 명명했다. 권익위 제안과는 거리가 멀다.

부동산 검증론은 최근 대선주자들로도 확대되고 있다. 여야 대선주자 대부분이 전수조사에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주자들을 조사할 주체를 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공수처는 고소·고발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다. 권익위는 대선주자 가운데 공직자가 아닌 일반인이 섞여 있어 전수조사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공직자가 아닌 대선주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이다. 국회에선 ‘셀프 조사’를 하게 되는 만큼 신뢰성·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대선주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부동산 검증론’도 결국 선거를 앞두고 나오는 단순 정치적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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