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살 5개월의 개와 살고 있다. 나이가 드니 아무래도 전 같진 않지만, 그래도 큰 병 없이 기특할 만큼 건강하게 살아온 편이었다. 아이구, 관리를 정말 잘 해주셨네요, 하고 사람들이 자꾸 날 칭찬하는데, 실은 내가 한 건 별로 없고 개가 알아서 잘 살아준 거라 으쓱하면서 머쓱하다. 어어, 풋코. 잘하긴 니가 잘했는데 칭찬은 내가 받네? 고마워, 미안해. 사람들이 지나가고 둘만 남으면 개에게 속삭이곤 한다.
그런데 지난 5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멀쩡하던 개가 갑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뒷다리는 땅에 질질 끌리고 고개는 푹 처진 채 헥헥거리며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그 후로 한동안 매일같이 한 시간 거리의 동물병원 입원실에 가서 개는 온종일 링거를 맞았고, 나도 그 옆에 하릴없이 누워 있었다. 그땐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개를 돌보는 것 이외에, 그동안 내 뒤를 바짝 쫓던 근심걱정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생각해본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 큰 어른 인간이 개 한 마리 붙잡고 너무 생산력이랄까, 노동력이랄까 하여튼 무슨 력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과연 이러는 게 세상이 나아지는 데 먼지 한 톨만큼이라도 기여하는 바가 있을까. 동물병원은 온통 조그만 털북숭이를 끌어안고 세상 근심 다 짊어진 듯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 천지인 곳이라, 어쩌면 생산력이나 노동력, 하여튼 그 무슨 력이 콸콸 새고 있는 구멍인지도 모른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어떤 숭고한 대의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 사람들은 굳이 스스로 복실이들을 품어서 고통받고 있구나.
무지개다리에서 재회할 때 우리의 자세
사람이 죽음을 맞으면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와 반겨준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꽤 위로가 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고마운 일이지만, 나는 어쩐지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사람이 전 생애 동안 몇 마리의 (반려)동물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주었든, 그러는 동안 그 몇백, 몇천 배 이상의 동물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잡아먹고, 잡아먹기 위해 고통스럽게 키우고, 그러다 수틀리면 구덩이를 파서 포클레인으로 밀어 넣고, 그래도 어떻게든 먹겠다고 또 키운다. 만약 우리에게 무지개다리 건너에서 꿈에도 그리던 반려동물과 재회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전에 마땅히 우리가 도륙한 수많은 동물들을 먼저 만나 빚부터 청산해야 할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내가 얻으려 하고 있는 것은 환희의 극치일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일까?’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에 쓰인 문장이다. 깊은 위안을 주는 이야기는 오히려 이런 쪽이다. 회복할 수 없이 아픈 결말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이야기 말이다. 사람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건, 어쩌면 예술 활동을 하는 것과 닮은 데가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그런다고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빠져들곤 하는 것이다.
개의 건강상태는 좀 나아졌다. 우리는 올해로 열아홉 번째 여름을 함께 보냈다. 여름이면 언제나 함께 바다에서 헤엄을 쳤는데, 이젠 안 될 것 같았지만 혹시나 하고 얼마 전 개를 물에 넣어보니 역시나 더는 헤엄치질 못했다. 얼른 개를 물 밖으로 꺼냈다. 응, 괜찮아, 풋코. 그동안 실컷 헤엄쳐서 행복했으니 그걸로 됐지. 앞으로도 뭐든 행복하면 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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