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4일 전남 고흥군 도화면 발포항. 김 양식 철이 끝나면 배들이 선착장에 나온다.ⓒ시사IN 조남진

8월23일 전남 고흥군 도화면의 발포항에는 선박 20여 척이 바다가 아니라 뭍에 올라와 있었다. 이날 밤 상륙이 예고된 태풍 ‘오마이스’ 때문이 아니었다. 배들은 이미 몇 달 전부터 땅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인 김 양식에서 배를 활용해야 하는 작업이 지난 3월께 이미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일렬로 늘어선 배 뒤에는 김 양식에 사용하는 밧줄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고흥·완도·해남을 비롯한 전남 지역은 한국 김 생산량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최대 산지다.

포구 한쪽에 위치한 어촌계 창고에서는 앞으로 김 양식에 사용할 부표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최근 양식업에선 스티로폼 대신 친환경 재료로 만든 부표가 주로 사용된다. 에어캡을 주황색 방수 포장재로 감싸 물에 띄운다. 노동자들은 에어캡에 공기를 주입한 뒤 포장재에 넣어 끈으로 조이고, 다시 매듭을 묶어 깔끔하게 정리하는 작업을 단계별로 나눠 진행 중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총 4명. 모두 베트남 국적의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하루 100개씩 부표를 만들며 9월부터 재개될 김 양식 성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8월23일과 24일, 〈시사IN〉은 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가 전남 고흥 지역에서 진행한 ‘김 양식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에 동행했다. 현재 한국의 김 양식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주민이다. 어촌 인구 감소 및 노동강도에 비해 박한 보상으로 인해 한국인 노동자들은 수산업 부문의 손노동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발생한 빈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운 것이다.

고흥 지역에도 약 10년 전부터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발포리 어촌계장 박권희씨는 “성수기 기준 우리 지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만 200명 정도 된다”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은 바다 위에서 김을 키우는 작업 과정의 대부분을 담당한다. 비성수기엔 부표와 그물 등 김 양식 시설을 준비하고, 성수기엔 김 포자 이식(채묘), 김 기르기(양성), 김 수확 업무를 수행한다.

고흥의 수산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은 포항, 통영 등 전국 해안가 각지에서 일하다가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고흥을 찾게 되었다. 베트남 국적의 레반트롱 씨(45)는 인천에서 어선을 타던 사람이다. 배 위에서 조업하던 중 양망기(그물을 끌어 올리는 기계)에 손이 끼어 큰 부상을 입었다. 여덟 차례 수술하고도 완치되지 않아 장애가 남을 정도였다. 더 이상 어선을 탈 수 없게 되었다. 누엔반뮈 씨(50)는 3년 가까이 부산에서 장어 낚싯배를 탔다. 그곳에서 일한 마지막 한 달 반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다. 베트남에 있는 네 아이에게 생활비가 끊기지 않게 돈을 보내야 했다. 그는 결국 부산을 탈출해서 고흥으로 왔다.

전남 고흥 발포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김 양식에 사용할 부표를 만들고 있다.ⓒ시사IN 조남진

호앙멘 씨(30)는 포항에서 통발 고기잡이 선원 일을 하던 중 갑판에서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눈에 보이는 상처가 사라지자 고용주는 여전히 다리를 저는 그에게 다시 업무를 부과했다. 수술이 필요한 부상이었지만, 고용주 측은 “수술하면 누가 일하느냐. 약만 먹으면 된다”라고 억지를 부렸다. 제대로 작업하지 못하게 되자 그를 해고했다. “다치고 싶지 않았는데 아프니까 쫓겨났어요.”

베트남에서 가져온 약 먹는 사연

예전 일터에서 떠나게 된 사정은 다양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고흥으로 향한 이유는 비슷하다. 고흥 지역에 어업 일자리가 많다. 김 양식을 하는 데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이주노동자들이 친구의 소개 등을 통해 고흥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어선 어업에 비해 김 양식업은 작업 환경이 괜찮은 편이다. 어선을 타는 이주노동자들은 한두 달 이상씩 바다의 험한 날씨와 싸우며 배 위에서 생활해야 한다. 일과 휴식 사이 경계도 불분명하다. 김 양식 일은 매일 육지로 퇴근한다.

하지만 극단적 노동환경을 피해 선택한 김 양식이라고 해서 산업재해 위험이 없지는 않다. 작업 특성상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이 잦다. 근력이 필요하기에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경우도 많다.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윤간우 전문의가 해양수산부 용역으로 실시한 ‘어작업자 건강 위해 요소 측정 및 어업인 질환 현황 조사’에 따르면 양식 어업인의 손상률(치료 4일 이상)은 2.5%다. 어선 어업인 손상률인 3.7%보다는 낮지만 전체 노동자 평균인 0.43%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일하다 다쳤을 때 대개의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고 일터로 복귀한다. 치료비와 ‘치료 중 생활비’가 산재보험을 통해 보장된다. 그러나 고흥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치료비 부담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생활비 등 금전적 문제로 무리하게 일터로 복귀하는 이주노동자도 많다.

잔수안꿕 씨(32)는 포구에서 김을 나르다 낙상을 입었다. 발 뒤꿈치의 중골이 부러졌다. 너그러운 사장이 그의 병원비를 전부 부담해줬다. 그런데도 잔수안꿕 씨는 치료를 마치지 못한 상태로 일터에 복귀해야 했다. 치료 기간의 임금을 보전받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빚이 급속히 늘어난다. 한 달 만에 일터로 돌아간 그는 결국 상처 부위 염증이 악화되어 일을 그만둬야 했다. 그는 현재 주변 이주노동자 동료들의 도움으로 생활을 영위한다.

고흥에 오기 전 고기잡이 어선에서 조업 중 부상을 당한 레반트롱 씨의 손.ⓒ시사IN 조남진

해고가 두려워 다친 사실 자체를 사업주에게 알리지 않는 노동자도 있다. 반화이 씨(34)가 그중 하나다. 한국 노동자들의 경우 자신의 부상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으면 법적으로 요양 기간에는 해고가 금지된다. 그러나 이처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부상은 곧 해고의 위협이다. 반화이 씨는 반복적으로 무거운 화물을 들고 나르던 작업 중에 허리를 다쳤다. 사장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일하다가 아프면 사장님이 나 안 쓸까 봐요. 좀 부담돼요.” 병원비가 많이 들자 반화이 씨는 베트남에서 가져온 약으로 치료를 대체했다. “치료하면 돈이 많이 나가니까 그냥 안 해요. 베트남에서 가져온 약을 먹었는데, 오래 먹어도 효과가 없어서 안 먹고 있어요.”

이들은 왜 산재보험에 들지 못했을까?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6조는 ‘이 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라고 명시해놓았다. 그러나 예외가 존재한다. 바로 ‘농업, 임업(벌목업 제외), 어업 및 수렵업 중 법인이 아닌 자의 사업으로서 상시근로자 수가 5명 미만인 사업’이다. 가족 외 사람을 고용하는 모든 사업장 중 유일하게 재해 보상에서 제외된 대상이다. 고흥에는 김 양식 사업체가 많다. 작고 영세하다. 성수기에도 각 사업체는 4명 내외만 고용하면 될 정도로 규모가 작다. 또한 김 가공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업체는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 형태로 등록되어 있다. 예외적 법률조항과 양식업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이 부문의 이주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로 내몰려 있다. 다치거나 아프면 일자리 자체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김의 저렴한 가격, 그 뒤에는?

설사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한다고 해도 이주노동자가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으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김 양식 사업체에 고용된 이주노동자 중 대다수가 미등록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행법에서는 등록 이주민과 미등록 이주민이 산재보험 적용에서 차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건강보험·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로복지공단은 두 보험의 가입 여부에 따라 해당 사업장의 ‘근로 인원수’를 산정해 복지혜택을 부여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예컨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합친 해당 업체의 근로 인원수가 5명이라 하더라도, 미등록자는 건강보험·고용보험 가입자가 아니므로 근로복지공단 기준으로 보면 해당 업체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불과한 것이다.

선주가 제공하는 주택에서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는 김 양식장의 이주노동자들. ⓒ시사IN 조남진

물론 이주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우리 업체 근로자 인원은 5인 이상이므로 나는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라고 소명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를 입증하려면 동료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증언이 필수다. 강제 출국당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 노동건강연대 변수지 노무사는 “미등록 이주민의 존재 자체를 입증하는 일 자체가 매우 어렵다. 행정의 벽과 입증의 벽을 모두 넘어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산재보험 사각지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기댈 곳은 일부 이웃의 온정과 선의뿐이다. 순천이주민지원센터는 인근 지역 이주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의료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어가 서툰 이주노동자들을 대신해 사업주에게는 병원비 지원, 의료기관에는 치료비 감면을 요청한다. 이마저도 힘든 상황에서는 의료비의 일부를 성당에서 지원받기도 한다.

한국에서 한 해 동안 생산되는 김은 140억 장으로 수출액 규모만 6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산 김은 값싸고 질 좋기로 유명해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필수 쇼핑 목록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김들은 대부분 호앙멘 씨와 반화이 씨 같은 이주노동자의 손을 통해 길러지고 수확됐다. 순천이주민센터 황성호 센터장은 “우리가 먹는 김의 저렴한 가격은 그 생산자들의 저임금과 안전망 없는 노동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처우와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흥·순천/글 주하은 기자·사진 조남진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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