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EndPeriodPlastic. 한국어로 풀이하면 ‘플라스틱 시대를 끝내자’ 정도가 될 해시태그를 SNS에 검색하면 게시물 수천 건이 나온다. 플라스틱 소재가 쓰이지 않는 생리용품 생산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생리대 성분의 90%가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에 자극받아 2018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이 캠페인이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한국의 한 스타트업이 주목을 받고 있다. 친환경 여성용품 기업 ‘어라운드바디’이다.

김지연 대표(34)는 2018년 어라운드바디를 창업했다. 생리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경험에서 출발했다. 거치대가 설치되지 않은 화장실에서 목과 어깨 사이에 핸드폰을 끼운 채 사용한 생리대를 말아서 버리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생리대는 바로 변기에 버릴 수 없는 거지?’ 일회용 생리대가 출시된 건 약 40년 전이다. 성능이 개선된 측면은 있지만 큰 틀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달나라도 가는 세상에 생리대는 왜 그대로일까? 왜 아직도 비닐을 써서 생리대를 만들어야 할까?’ 생리대를 연구·개발(R&D)하는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생리대는 부직포 혹은 순면·펄프·방수용 비닐 등이 겹겹이 층을 이루는 형태이다. 이는 오래도록 썩지 않는 쓰레기로 남는다. 어라운드바디는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생리대 폐기물이 연간 485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김 대표는 부직포와 비닐을 쓰지 않고 펄프로만 제작해 물에 녹을 수 있는 생리대 개발에 착수했다. 펄프는 휴지를 만드는 원료다. 전국에 있는 제지공학과를 수소문해 뜻이 맞는 전문가를 찾았다. 천연 기름을 이용해 방수 기능을 갖춘 펄프 소재를 개발하고 이 기술을 생리대에 적용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어라운드바디가 추구하는 생리대는 생리혈이 새지 않도록 하는 ‘방수성’과 물에 분해되는 ‘수분해성’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시소의 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어려웠어요. ‘사람들이 안 가는 길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왜 잘난 척을 했을까’ 자책도 많이 했죠.” 스타트업으로서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제품을 설명하는 일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절대다수가 남성인 투자자들은 ‘새로운’ 생리대의 필요성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좋은 기술이긴 한데 여성들이 진짜 이걸 필요로 하느냐고 되묻더라고요.”

수천 번의 시도 끝에 지난해 10월 ‘노비닐 팬티라이너’와 ‘수분해 생리대’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 팬티라이너는 시중에서 판매 중이며, 생리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 심사를 받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을 통해 미국 쪽 판매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김 대표는 두 제품에 ‘지혜(JIHE)’라는 이름을 붙였다. “(생리하는) 여자라는 이유로 비닐 쓰레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이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그는 바란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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