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26일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낭가르하르주 잘랄라바드에서 미군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AP Photo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아프간)으로 들어간 미군의 임무는 제한적이고 달성 가능한 것이었다. 9·11 테러를 계획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찾아 제거하는 임무였다. 미국은 아프간 침공 2개월 뒤 동부 화이트 산맥의 토라보라 동굴 지대에서 빈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그를 사살하는 데 성공하면 아프간에서 미군의 임무는 신속하게 완성될 터였다.

그러나 이 토라보라 작전은 재앙으로 끝나고 말았다. ‘침략자’로서 미국의 ‘나쁜 버릇’이 도졌기 때문이다. 외국 침략자에 대한 적대감을 촉발시키지 않을 현지인을 활용해서 ‘미국의 손엔 직접 피를 묻히지 않는다’는 전략이 그것이었다. 빈라덴을 사살하려면 필수적으로 지상전을 전개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군이 상공에서 무의미한 폭격을 퍼붓는 가운데 빈라덴을 잡을 의도가 전혀 없는 맨발의 아프간 민병대들이 산속으로 들어가 산발적으로 총성만 울리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 작전을 취재하기 위해 모인 국제 언론인 100여 명보다 참여 미군의 수가 적었다.

그 와중에 동굴에서 죽기만 기다렸던 빈라덴과 탈레반 잔당들은 아프간 민병대의 태만 아래 산맥을 타고 파키스탄으로 도주할 수 있었다. 미군은 도주하는 빈라덴 일당을 추격하다가 갑자기 중단했는데 그 이유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달아난 빈라덴을 소탕하려면 미군이 파키스탄 접경지역에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해야 했는데, 이렇게 하면 부시 당시 대통령이 계획 중이던 이라크 전쟁의 부담이 커진다고 계산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이때 빈라덴과 탈레반 잔당들을 잡았다면 미군은 아프간에 20년이나 남을 이유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날의 도주 이후 탈레반이 파키스탄을 거점으로 세력을 키우면서 아프간은 끝없는 내전에 휘말려야 했다.

토라보라 작전은 실패했지만, 탈레반을 쫓아내긴 했다. 아프간에서 빠져나온 부시 대통령은 새롭게 ‘악의 축’ 발언을 꺼내며 ‘테러를 지원하는 독재정권들’로 관심을 돌렸다. 부시가 벌였던 ‘테러와의 전쟁’엔 이념적 기반이 있다. 이른바 ‘미국 예외주의’다. 하나님이 선택한 특별한 미국이 악에 대항해서 선의 가치를 전파하는 우월한 국가라는 믿음이다. 20세기 이후 패권국가 미국의 이념적 동력으로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역대 행정부는 다른 국가에 개입할 때 이런 행위를 예외주의로 합리화해왔다. 저술가 피터 베이너트는 예외주의에 대해 “현명한 전략을 흐리게 하는 마술적 사고로 미국 외교정책의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연두교서에서 미국 고유의 특성을 “정복 없이 힘을 행사하는 능력”과 “낯선 사람들의 자유를 위한 희생”으로 규정했다. 부시는 자신의 ‘테러와의 전쟁’을, 파시즘(2차 대전)과 공산주의(냉전시대)에 대항한 미국의 투쟁과 같은 이념적 지위로 끌어올렸다.

오사마 빈라덴이 살해된 다음 날인 2011년 5월2일 미국 워싱턴 시민이 관련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고 있다. ⓒAP Photo

이라크전은 나쁜 전쟁, 아프간전은 좋은 전쟁

2003년 3월20일, 부시는 국내외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엔 승인도 없이 이라크 전쟁을 개시했다. 같은 해 5월 아프간에서는 주요 작전 종료가 선언되었다. 미군은 이라크 전쟁으로 전투 자원을 옮기기 시작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라크전이 진행되는 동안 탈레반 세력이 다시 힘을 규합하는 사태를 우려했다. 이들은 이라크전을 “엉뚱한 적의 엉뚱한 전쟁”이라고 불렀다.

2004년 미국 대선의 쟁점은 단연 이라크 전쟁이었다. 민주당 대선 후보 존 케리는 ‘이라크전은 나쁜 전쟁, 아프간전은 좋은 전쟁’이라고 설파했다. 아프간 재건이 더디게 진행되는 동안 탈레반은 아프간 국경을 넘나들며 미군과 민간인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었다. 당시 민주당의 강령은 아프간 재건과 탈레반 소멸이었다. 민주당의 ‘미국 예외주의’는 아프간을 중심으로 작동했다. 아프간의 운명은 아프간 내부의 현실보다 미국 내 정쟁으로 좌우되었다.

2008년 말 부시는 아프간 전쟁이 형편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퇴임 후 회고록에 “그곳에 안정과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벅찬 일”이라고 썼다.

후임인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은 ‘탈레반 제거’라는 민주당의 강령을 확대했다. 그는 ‘이라크에서 철수하겠다’는 각오로 취임했지만, 아프간에서는 승리를 다짐했다. 그는 ‘좋은 전쟁’을 위해 모든 노력을 바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오바마는 알카에다와의 전쟁의 중심 전선인 아프간·파키스탄에 다시 집중해 테러리스트를 뿌리까지 근절하겠다고 공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전략을 새로 짰다. 취임 직후 미군 1만7000명의 아프간 추가 파병을 승인했다. 몇 달 뒤엔 3만여 명을 증원했다. 오바마의 첫 임기가 끝날 때까지 미군 6만5000여 명이 아프간에 배치되었다. 오바마의 “아프간은 충분히 좋다” 발언은, 탈레반이 이 나라를 점령할 수 없도록 차단하고, 나아가 그들을 제거하는 데 만족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오바마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당시 대통령에게 “백지수표를 제공하던 시대는 끝났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전에 반대했지만, 사실은 부시처럼 ‘테러와의 전쟁’을 신봉했다. 오바마도 미국 예외주의에 근거한 강력한 서사를 갖고 있었다. 그는 아프간의 미군을 늘리는 것 외에도 파키스탄·예멘·소말리아 등에 드론과 특수부대를 투입했다. 미군이 주도하는 나라를 75개국으로 늘렸다. 대(對)테러 전쟁의 범위를 확대했던 것이다. 또한 로버트 게이트 미국 국방장관,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미국 중부사령부 사령관, 스탠리 매크리스털 장군에게 아프간 작전의 지휘를 맡기는 등 전임 부시 정부의 주요 사령관들을 그대로 유지했다. 존 브레넌 CIA 국장은 “오바마의 대테러 정책은 부시와 현저하게 닮았다”라고 지적했다. 오바마는 전임자 부시의 대테러 전쟁 서사를 제도화·내면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 2월29일 카타르 도하에서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국 특사(왼쪽)와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탈레반 공동 창설자가 평화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AP Photo

오바마는 대테러 작전에 필요한 규모보다 더 많은 병력을 배치하는 동시에 효과적인 아프간 통치를 위해 취임 초기엔 재건 자금을 늘렸다. 그러나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폭력 사태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2009년 여름과 겨울, 반군이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있는 나토 본부와 CIA 기지에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2009년에 미군 335명이 전사했다. 전년도(2008년)의 두 배였다. 오바마는 2010년 중반까지 병력을 3만여 명 추가로 확충하라고 명령했다. 아프간 관련 미군이 10만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세 번째로 큰 군사작전인 아프간전은 ‘오바마의 전쟁’이 되었다. 미국의 여론은 몹시 나빠졌다. 2010년 초 조사에서 미국인의 66%가 ‘아프간 전쟁에 비관적’이라고 답했다. 시민들은 이 전쟁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2009년의 군사적 위기 때문에 오바마가 “전쟁이 그가 처음 믿었던 만큼 필요한지 재평가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기세를 잡았고 오바마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러나 2011년 5월 미국은 숙원을 달성했다. 빈라덴을 파키스탄에서 사살한 것이다. 오바마는 철군의 명분을 잡았다. 빈라덴의 소멸과 무관하게 탈레반의 공격이 격렬해지고 있기도 했다. 그해 8월 미군 특수부대(DEVGRU) 31명이 탈레반의 공격으로 몰살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3년 6월부터 아프간 정부를 배제한 채 탈레반과 협상을 시작했다. 이윽고 2016년까지 차례로 주둔 병력 10만명을 모두 철수시킨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GDP의 97%를 외국 원조에 의지하는 아프간의 상황에서 미군이 빠지면 심각한 경제위기와 함께 기세등등한 탈레반 세력이 나라 전체를 차지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오바마 역시 자기 임기 내에 아프간이 남베트남처럼 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2015년 10월15일, 그는 아프간 완전 철군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아프간에 남은 미군은 당시 9000여 명이었다. 오바마는 임기를 마칠 때까진 이 규모의 병력으로 아프간에서 버틸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미국 조야가 함께 겪은 아프간 전쟁에 대한 회의는 미국 예외주의의 위기로 이어지는 듯했다. 오바마는 2009년 G20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나는 미국의 예외주의를 믿는다. 그러나 영국은 영국의 예외주의를 믿고 그리스인은 그리스 예외주의를 믿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공화당은 이 발언을 빌미로 오바마의 애국심을 트집 잡으며 공세를 펼쳤다. 2012년 미국 대선의 쟁점은 예외주의였다. 아프간 전쟁을 울며 겨자 먹기로 진행하는 와중에도 민주·공화 양당 대선후보들은 앞다투어 자신이 예외주의자임을 증명해야 했다.

현실주의 강조하는 소수 우파 포퓰리즘

이 같은 미국 예외주의의 전통에 느닷없이 이단아가 등장한다. 2015년 4월, 대선 출사표를 던지기 직전, 트럼프는 한 유력 단체 모임에서 ‘예외주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트럼프는 “난 예외주의란 말을 안 좋아한다. 사업할 때 ‘나는 예외적이지만 너는 예외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미국이 예외주의를 말하는 것은 세계를 모독하는 일이다”라며 흥분했다. 민주·공화 양당 모두가 소중히 여겨온 가치인 예외주의가 트럼프에 의해 모독되는 순간, 장내엔 침묵이 감돌았다. 공화당은 당 강령에서 예외주의의 삭제를 고려해야 했다.

2011년 7월14일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에 주둔했던 미군이 철군하며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AP Photo

트럼프의 당선은 ‘현실주의를 강조하는 소수 우파 포퓰리즘’이 주류 세력으로 떠오른 사건이었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때부터 임기 말까지 ‘미국의 이득 없는 끝없는 전쟁을 종식하겠다’고 천명했다. 잭슨주의 외교정책을 따르는 트럼프 정부는 2016년 4월에 전임자들의 오만의 산물인 ‘국외 국가건설사업(national building business)’을 중단하고 “더 이상 적을 찾아 해외로 나가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잭슨주의는 미국 대중정치의 한 전통이다. 외교적인 목표는 ‘미국의 이익과 명예를 지키는 실익을 존중’ ‘반대 세력은 신속하게 응징’ 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그 역시 자기 임기 중에 아프간 정권이 붕괴하는 꼴만은 보고 싶지 않았다. 전쟁은 계속됐다. 2018년 1월 트럼프는 탈레반과 대화를 끊었다. 미국과 탈레반 사이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듯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 9월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타결한다. 이듬해 2월29일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은 공격을 중단하고 미군은 완전 철수를 결정하는 ‘도하 합의’가 체결됐다. 진보 정치인 버니 샌더스도 아프간 철군을 환영했다. 샌더스는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지위를 굳건히 하는 길은 군사개입이 아니라 미국 내 빈곤과 소득불평등을 해결하는 일이라고 경제의 렌즈로 외교정책을 봤다. 지난 1월 취임한 바이든은 트럼프의 철수 로드맵을 바탕으로 아프간의 미군 철수 시한을 5월1일로 밝혔다가 9월11일로 연기했다. 그러나 미군이 모두 철수하기도 전에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함락했다. 아프간에서의 미국 개입주의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세계는 오랫동안 미국의 오만함과 과도함을 비판해왔다.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은 미국 외교정책에서 가장 큰 재앙으로 기록되었다. 미국은 20년에 걸친 아프간 전쟁에 2조 달러 이상의 비용을 투입했다. 2400명 이상의 미군 병사와 7만여 명의 민간인 등 모두 24만1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이 아프간 정부에 제공한 무기들은 탈레반의 손에 넘어갔다.

미국인들은 이라크·아프간 두 전쟁에서 대단한 환멸감을 느꼈다. 피와 젊음과 돈을 잃었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경험은 ‘해외 민주주의 건설’에 대한 이 나라의 욕구를 앗아가버렸다. 그러던 동안 과거의 소련은 러시아로 돌아왔고 중국의 위협도 커지는 중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코로나19, 국회의사당 습격, 아프간 철군 등의 사건이 잇따르면서 ‘다른 나라를 바로잡기 전에 우리부터 잘하자’는 공감대가 확산 중인 듯하다. 보편적 가치를 확산시킨답시고 헛되이 노력하기보다 미국의 가치와 제도를 내부적으로 재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든 우파든 미국 예외주의에서 등을 돌렸다. 미국은 한동안 비개입 국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가 지적하듯 어려운 나라들은 벌써부터 미국을 그리워한다. 당장 대통령이 암살되고 지진 참사까지 겹친 아이티가 그렇다.

기자명 양수연 (재미 언론인, 4·3파우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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