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5일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 지도자들이 대통령궁에 모여 있다. ⓒEPA

탈레반이 미국에 의해 패주한 지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의 권력을 다시 장악했다. 전 세계는 최소한의 저항도 받지 않고 탈레반이 카불에 무혈입성한 것에 놀랐다. 더 놀라운 일이 있다. 유창한 영어와 SNS를 활용하며 여성의 교육권과 노동권을 허용하겠다는 탈레반의 변화된 모습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만행들을 보면 ‘탈레반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증명되는 듯하다. 지금까지 정보를 토대로 향후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의 미래에 대해 예측해보고자 한다.

사실 미국은 물론 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 등 인근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형태가 어떻든 탈레반의 정권 장악을 예상했다. 탈레반과 협상을 진행하며 상황에 대비해왔다. 주변 국가들은 서구와 달리 대사관 철수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알카에다는 물론 IS까지 등장했던 아프간은 다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온상이 되어 주변 국가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주변 국가들이 탈레반의 정권 재장악을 방조해온 것은, 탈레반과 여타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 사이의 차이점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탈레반 역시 변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고 분석하기 때문인 듯하다.

사실 탈레반은 아랍 국가들에서 등장한 다른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들과 여러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갖고 있다. 탈레반과 다른 근본주의 집단은 가장 보수적 성향의 이슬람을 지배 이념의 기초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탈레반의 목표는 다른 근본주의자들과 달리 ‘지역과 민족을 초월한 이슬람 국가 건설’이 아니다. 탈레반은 자신들의 역사적 공간 내에서 국민국가 건설을 더 큰 목표로 설정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차이로 인해 탈레반은 위기 국면에 알카에다 등 외국 출신 테러 집단들과 잠시 협력하곤 하지만 근본적인 연대는 어렵다. 특히 IS와 대립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탈레반이 수니파이며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이라는 사실만으로 다시 아프간이 국제 이슬람 테러의 온상이 되리라는 예측은 주·객관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한 탈레반은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할 경우 국제적으로 어떤 경제적 압박을 받을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서구로부터 원조가 중단되면 아프간은 경제적으로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되면 탈레반 정권 역시 내부로부터 붕괴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소수민족 탄압으로 인한 내전 확대를 저지하면서 평화적 상태를 유지하고, 옛 정부에 협조한 젊은 전문가·기술자들을 활용할 필요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탈레반이 옛 정부 복무자들과 소수민족에 대해 사면과 평화를 약속한 것도 완전한 거짓말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 여성에 대해 교육과 일을 허용하겠다는 발언 역시 경제회복에 여성의 노동력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수 있다.

특히 서구의 지원이 끊기면 중국과 러시아, 아프간 인근 중앙아시아 및 남아시아 국가들의 원조나 투자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탈레반은 자신들의 이념을 다른 나라로 확산시키지 않겠다고 천명하는 것으로 확실한 변화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게다가 오랜 전쟁으로 붕괴된 아프간 경제는 최근 지구적 기후위기로 인한 가뭄의 지속, 코로나19의 확산 등으로 한층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어렵게 획득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경제발전은 필수가 아닐 수 없다. 끔찍한 경제 상황 속에서 또다시 외국 군대의 침공을 야기할 행동은 자제하려 할 것이다.

이는 물론 근본적인 변화라고 할 수는 없다. 권력을 장기적으로 공고화하려면 국가경제를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에 본심을 감추고 유화적 모습을 연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탈레반은 하나의 단일한 중앙집권적 조직이 아니다. 지역 토호, 부족 대표, 군벌 지휘관 등이 형성한 집단이 탈레반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독자적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다른 근본주의 집단과 마찬가지로 사실상의 범죄조직들이 탈레반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향후 탈레반 중앙정부 방침과 다른 별도의 잔혹한 일들이 아프간에서 되풀이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앙에서도 강온파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존재한다. 이 권력투쟁의 결과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8월17일 카불 공항에서 프랑스인과 아프가니스탄 협력자가 프랑스군 수송기에 탑승하려 줄 서 있다. ⓒAFP PHOTO

개혁파 주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라크와 아프간에 발이 묶여 있던 미국은 인도주의적 위기를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이제 인도-태평양 전략 등 새로운 세계 지배 전략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기가 쉬워졌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미국이 유라시아 지역에서의 헤게모니를 러시아와 중국에 넘겨버린 사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정반대의 미래(유라시아 헤게모니 장악)를 노린 미국의 도박일 수 있다. 이제 인도, 파키스탄, 이란, 그리고 중앙아시아 국가들(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이해가 뒤엉키며 아프간은 물론 유라시아 전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 간에 잠재되었던 갈등이 폭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의 가치와 동떨어졌다는 중국과 러시아가 이 혼란을 해결하지 못하면 미국(서구)의 귀환이 화려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아프간은 ‘제국의 무덤’으로 불린다. 아프간 민중은 외세에 거세게 저항하는 가운데 큰 고통을 겪었다. 침략과 저항의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아프간은 심각한 저발전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미군의 철수(외세 축출)’에만 초점을 맞춰 아프간의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비서구 세계에서는 종종 외세나 부패 정권에 맞선 투쟁이 저항 이데올로기로 반동적 이념과 종교를 채택하면서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에 반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사례의 전형 중 하나인 탈레반의 정권 장악 과정을 ‘외세 축출’이라는 측면만으로 긍정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탈레반 내의 개혁파 혹은 ‘진화한 탈레반’이 상황을 주도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희박한 시나리오다. 설사 개혁적 분파가 아프간에서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인권(특히 여성 인권) 등 국내 문제에선 ‘반동의 시기’가 휘몰아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탈레반의 승리로 아프간이란 국가는 외세로부터 해방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나라 민중들은 해방되기는커녕 경제적 궁핍과 난민으로 전락, 여성과 소수민족에 대한 가혹한 인권탄압, 샤리아 법 등 전근대적 규율이라는 이중 삼중의 고통으로 절규하고 있다. 출구가 보이진 않지만 아프간이 ‘정상 국가’로 최소한의 발돋움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국제사회는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정재원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