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5월23일), 아마 오전 9시50분쯤이었다. 강연 일정도 마쳤고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난징(南京)을 둘러보려던 참이었다. 그날 첫 방문지로 잡은 징하이스(靜海寺)로 가기 위해 호텔 방을 막 나서려는 데 중국 관영 CCTV 화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이라는 자막이 뜨는 게 아닌가? 얼른 내려와 안내자 윤해연 교수(난징 대학·한국어문학과)를 만나 소식을 물으니 깜짝 놀라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다. 기념관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비보를 확인했다. 그날따라 난징의 하늘은 흐렸고 간간이 비까지 뿌렸다. 난징 대학에 방문 교수로 와 있는 소설가 임철우씨가 상하이로 가는 기차에서 전화했다. 이심전심으로 심란한 마음을 달랬다.

명(明)의 위대한 항해자 정화(鄭和)를 모신 징하이스가 아편전쟁의 패배로 중국이 맺은 최초의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1842년)이 협의된 곳이기도 하다는 비꼬인 운명을 묵상하노라니 난징학살(1937년)의 그림자가 새삼 어둡다. 점심 후 존 라베 기념관으로 향했다. ‘중국의 쉰들러’라 애칭되는 라베는 당시 지멘스 사 난징 지사장으로서 자신의 사택에 나치 깃발을 짐짓 내걸고 학살의 광기로부터 중국인을 구한 난징안전지대 국제위원회 주석이었다.

기념관을 참관하며 이 의로운 독일인의 행적과 일기를 발굴한 아이리스 창이라는 중국계 미국인을 만났다. 1997년 난징학살 60주년에 맞춰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을 출간해 그 참상을 새로이 알린 그녀는, 그러나 2004년 11월9일 자신의 차 안에서 권총 자살로 이승을 하직한다. 36세 꽃다운 나이였다. 난징에서 저지른 일본군의 잔인성을 해명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절규한 그녀를 죽음으로 몬 게 어찌 협박을 일삼은 일본 우익 탓이기만 할까?

기념관 바깥 담 안쪽에 전시된 패널에서 나는 또 한 사람을 발견했다. 미국 선교사 미니 보트린(1886~1941년), 사건 당시 진링(金陵)여자문리학원(Ginling Girls’ College) 교장으로서 난징 여성 1만여 명을 구원한 ‘활보살(活菩薩)’이었다. 일본 대사관에 만행 중지를 무수히 요청했지만 묵살당한 그녀는 오히려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난징 철수를 권고받는다. 그녀는 단호히 응답한다. “이런 순간에 중국을 떠날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지친 몸으로 1940년 귀국해 이듬해 5월14일, 태평양전쟁 발발 약 6개월 전에 인디애나폴리스의 작은 아파트에서 가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가 목격한 참상의 환영에 시달리며 더 많은 생명을 구하지 못한 데 대한 자책이 그녀를 자살로 몰아갔으니, 세상은 참으로 공평치 않다. 염치를 모르고 반성을 모르는 자들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진정한 화해를 모색하는 의인들은 오히려 죄책감에 죽어가다니, 새삼 사마천의 탄식이 절실하다. “진정 천도(天道)는 있는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 형국이 되지 않기를…

그날 저녁 호텔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니 한국 뉴스에 인색한 CCTV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다투어 보도한다. 놀라운 것은 그 거대한 애도의 물결이다. 그만큼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엄정하다는 것이고, 또 그만큼 노 전 대통령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는 시민이 많다는 의미일 테다. 노무현은 이제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 대통령에 올랐다는 신분 상승 서사의 주인공으로서가 아니라 성공 이후에도 여전히 기득권의 해체를 위해 싸웠던, 그리하여 마침내 그 대의에 순절한 투사로서. 그날 하루 한꺼번에 만난 세 죽음에 울울했던 내 마음은 이 거대한 파동으로 한결 진정되었다. 나이와 젠더와 지방을 넘어서, 무엇보다 지지 여부를 떠나서 이루어진 이 담대한 통합의 물결로 이제 한국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새삼 뚜렷해진다. 양극화의 고착에 대한 저항이 핵심이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그(녀)의 재능과 노력이 그(녀)의 삶, 그 미래의 질을 결정한다는 믿음이 현실이 되는 선순환의 사회를 향해 착실히 전진할 것!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거북이처럼 괴로운 세월”이 다가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 형국이 재현되지 않도록, 그리하여 ‘한국총통 선종율(善終率) 최저 직업’(한국 대통령은 잘 끝마치는 비율이 가장 낮은 직업이라는 중국의 보도)이라는 야유를 듣지 않는 나라가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고 간절하다. 삼가 그의 명복을 빈다.

기자명 최원식 (인하대 교수·한국어문학과)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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