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0일 오후, 건물이 붕괴된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8월5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에 남아 있는 사람은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작업복을 입은 경비원들뿐이었다. 두 달 전인 6월9일, 철거공사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해 근처를 지나던 버스 승객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친 사고가 발생한 뒤로 공사는 모두 중단됐다. 이 현장에선 김정경씨(가명)가 “빠르게 잊힐 참사에 대한 기억이 두려워” 사고 현장을 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학동4구역을 둘러싼 문제는 한국 사회에 축적된 문제의 축소판이다”라고 말한 김씨는 6월9일 붕괴된 건물 아래 깔린 버스에서 사망한 ㄱ씨의 딸이다. 같은 날, 사고 피해 유가족들은 광주경찰청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로부터 일주일 전인 7월28일, 광주경찰청은 ‘학동4구역 붕괴사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공사와 직접 관련된 시공사 현대산업개발 소속 현장소장과 철거공사 감리자, 재하도급 업체 백솔건설 대표 등 다섯 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원청업체인 현대산업개발이 불법 재하도급 사실을 인지하고도 묵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관할 행정관청인 서울시에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 사실을 통보하는 데 그쳤다. 경찰은 붕괴 원인 및 책임자 규명 수사가 일단락된 만큼 이후 재개발조합 비리에 수사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왜 불법 재하도급이 발생하고 무리한 철거공사가 이뤄졌던 걸까? 재개발은 수천억 원이 오가는 사업이다. 재개발 지역 원주민 외에도 돈을 벌고자 하는 이들이 재개발 현장에 모인다. 그 과정에서 비전문가인 재개발조합(재개발구역 내 토지와 건물 소유자로 구성)과 결탁한 기획부동산, 철거업체, 시공사 등 ‘전문세력’이 등장한다. 통상 재개발조합은 전문성이 없는 조합을 대리해서 재개발 관련 사무를 대행할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정비업체)와 계약을 맺는다. 학동4구역 재개발조합도 ㅁ정비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재개발조합 비리 의혹은 ‘조합장 선거’에서부터 나온다. 학동4구역 재개발조합도 2018년 10월25일의 조합장 선거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일었다. ‘서면 투표용지(서면결의서)’에 조합선거관리위원회 직인이 찍히지 않았다. 당시 조합장 후보(현 조합장)였던 조 아무개씨가 동원한 것으로 보이는 외주 홍보(OS, Outsourcing) 요원이 서면결의서를 걷어갔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면결의서를 걷는 건 OS 요원이 아닌 ㅁ정비업체가 할 일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은 정비업체가 조합장 선거 등 ‘정비사업의 동의에 관한 업무’를 다른 용역업체나 직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조합원 측에서 투표함 개봉을 저지해 개표가 중단됐지만, 이후 조합선거관리위원회가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투표함은 투표날로부터 6일 뒤인 2018년 10월31일에 열렸다. 개표 현장에는 과거 ㅁ정비업체 호남본부장이었던 문흥식 전 5·18 구속부상자회 회장이 등장했다. 자신을 ㅁ정비업체 고문이라고 소개한 문씨는 사설 경호업체를 동원해 개표를 강행했다. 그 결과, 조씨가 조합장에 당선되었다.

6월18일 경찰이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조합 사무실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폐쇄적인 재개발조합 운영 방식

조합장 선거에 잡음이 일어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합장이 되면 재개발조합 자체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재개발조합은 폐쇄적인 방식으로 작동된다. 조합장의 결정에 제동을 걸거나 견제할 장치가 부족하다. 학동4구역 재개발조합 조합원 ㄴ씨는 “재개발조합 임원선거와 각종 예산편성 등 모든 일에 OS 요원이 동원되고 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지 않는 게 문제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조합 측은 약 30억원을 주고 대건건설, 거산건설, 한솔기업 등과 지장물 철거 계약을 체결했다. 지장물 철거 계약서에는 전기설비, 통신 시설물, 도시가스 철거 비용 등이 담겼다. 그러나 실제 각 시설물을 해체할 수 있는 기관은 한국전력공사, 통신사, 도시가스업체 등이다. 대건·거산·한솔기업은 자신들이 할 수도 없는 일로 공사비를 받은 셈이다. 이런 철거 공정이 필요한 경우, 조합 측은 먼저 비용을 추정하고 이에 따라 여러 회사를 대상으로 입찰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사업내역서, 과업지시서 등 관련 비용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일절 없는 상황에서 조합 측은 공사금액을 제시하고 이를 할인받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처럼 비합리적인 재개발조합 운영에 관련된 조합 관계자, 공사 수주업체 등은 현재 철거업체와 유착해 공사가격을 부풀려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석면 철거 과정에서 공사대금을 부풀렸다는 의혹이다. 재개발조합은 2019년 1월 석면 철거공사 사업비를 22억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실제 석면 철거공사 면적은 계약서에 적힌 면적의 18%에 불과한 2만3000㎡였다. 경찰은 이 경우 총공사비가 4억5500만원 수준이어서 발주금액이 실제보다 18억원가량 과다 지급됐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부풀려진 공사비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학동4구역 재개발조합은 다원이앤씨와 지형이앤씨 등 두 곳에 석면 철거공사를 발주했다. 두 업체는 석면 처리 인증 업체인 대인개발에 하청을 줬다. 하지만 정작 석면 철거를 진행한 건 면허도 없는 백솔건설이었다. 백솔건설은 한솔기업으로부터 불법 재하도급을 받아 5층 건물 붕괴 현장에서 공사를 진행했던 업체다.

석면 철거만이 아니다. 경찰 수사 결과 다원이앤씨가 한솔과 일반건축물 철거공사 이익을 3대 7로 나누는 이면계약을 맺고, 사실상 철거공사 전반을 관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다원이앤씨는 이를 백솔건설에 재하도급했다. 부풀려진 공사비는 철거업체로 흘러 들어갔다. 이들이 다단계식 불법 재하도급으로 이권을 챙기는 동안 시민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재개발조합도 이런 ‘짬짜미’의 한통속이었다. 2020년 12월3일 학동4구역 재개발조합 임시총회에서 ㅁ정비업체 직원이던 사회자는 “2020년 9월22일부터 매주 월요일에 철거 관련 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철거, 석면 해체, 이주업체, 정비업체, 재개발조합, 현대산업개발 등이 참석해서 구역 내 철거 진행 상황, 철거 계획에 관해 계속 협의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조합과 현대산업개발, 철거업체가 철거 진행 상황과 계획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도, 막지도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학동4구역의 ‘시공사 현대산업개발-철거업체 한솔기업-조합장 조씨’ 조합은 2017년 7월 공사가 완료된 학동3구역에서도 구성된 바 있다. 조씨는 학동3구역 조합장이던 2017년부터 학동4구역 사업 이권에 깊숙이 개입했다. 학동4구역 재개발조합 측이 2017년 12월 작성한 위임장에는 “공사 계약금 등 전반에 관한 사항을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과 협의하도록 조씨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라며 다수 계약위원회 위원들의 뜻에 따른 결정이라는 점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당시 계약위원회에 참석했던 조합원 ㄴ씨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는 “다른 구역 조합장인 조씨가 권한을 위임받은 사실을 현대산업개발 측과 협의를 한 이후에야 알았다”라고 말했다.

재개발조합 비리 의혹은 학동3·4구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학동4구역 사고 현장 인근에서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떨어진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3구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광주지방법원은 2019년 12월 양동3구역 재개발조합장이던 길 아무개씨에게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같은 해 9월 열린 조합장 선거(참석 21표, 서면결의서 225표)에서 정비업체가 아닌 OS 요원들이 조합원들로부터 서면결의서의 일부를 걷었기 때문이다.

양동3구역 역시 절차상 문제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15년 7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당시 양동3구역 재개발조합장이던 길씨가 석면 철거, 지장물 철거 등의 명목으로 계약한 용역은 모두 25개로 금액 기준으론 127억여 원에 달했다. 이 중 대표는 같지만 회사 이름은 다른 대건건설(지장물·정비 공사), 다원이앤씨(석면 철거공사), 청명건설(범죄예방) 등 세 곳과 32억여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조합원 일부는 “다른 업체에 견적 문의를 한 결과 세 계약 모두 공사비용이 부풀려졌다”라고 주장한다. 광주 서구청은 학동4구역 붕괴 사고 뒤 ‘정비사업 조합운영 실태조사’를 진행했는데, 양동3구역 재개발조합은 ‘대건건설과 계약한 지장물 조사 계약이 총회에서 의결된 계약의 목적과 내용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행정처분을 받았다.

정의당 광주시당은 지난 7월6일부터 26일까지 재개발 비리 26건을 접수했다. 황순영 정의당 광주시당 위원장은 “현대산업개발이 책임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재개발조합 비리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 봤다. ‘재개발조합-철거업체-조직폭력배’가 연결되는 재개발조합 비리를 해결하는 게 학동4구역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재개발조합의 비리가 반복되는 이유

당초 재개발사업의 취지는 원주민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주택공급을 늘려 집 없는 사람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시민단체인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의 이원호 사무국장은 지금의 조합 주도 재개발은 공익 실현이 목적이 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한다. “세입자 분쟁이 생겨서 구청 담당자를 찾아가도 재개발조합과 얘기하라고 한다. 공무원들조차도 재개발사업을 민간사업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재개발은 공적 사업을 민간에게 위임해주는 건데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도시정비법이 절차법(사업에 대한 절차를 규정한 법)이다 보니 절차상 하자만 없으면 인허가를 해주는 거다. 재개발 과정에서 어떻게 공공성을 확보할 거냐에 초점을 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다른 지역에서 정비업체를 운영하는 백 아무개 대표는 “민간 재개발은 공익사업임에도 소유주 조합의 자체적인 개발사업이다 보니 현재로선 임대아파트를 일부 짓는 등 공익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만 하면 된다. 재개발조합 비리를 막기 위해선 공공부문에서 개발사업 전체를 총괄해야 하는데 현재 구조로선 실현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재개발사업은 구조 자체가 워낙 복잡하다. 재개발조합의 비리가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다.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개인으로서는 조합 측과 사업체가 미심쩍은 짓을 하더라도 이를 분석하거나 파헤칠 수 없다. 이에 따라 아주 심각한 사건이 아니라면 재개발조합의 비리는 사회문제로 대두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관행’처럼 넘어가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양동3구역 재개발 비리 문제를 제기했던 조합원 ㄷ씨는 답답함을 호소했다. “직무정지됐던 전 조합장 길씨가 7월28일 다시 조합장에 당선됐다. 학동4구역 사고 이후임에도 조합원들은 비리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거고, 조합장이 얼마를 가져가더라도 시공사를 뒤에 업은 길씨가 당선돼야 재개발이 빨리 진척될 거라고 생각한다.”

6월9일 학동4구역 건물 붕괴 사고 피해 유가족인 사망자 ㄹ씨의 둘째 언니는 학동4구역 철거 붕괴 사고를 목격한 시민들을 향해 이렇게 부탁했다. “현재 동생의 사고는 저희 가족에게 벗어날 수 없는 블랙홀입니다. 험난하지만 넘을 수 있는 고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은 가족들의 따뜻한 연대가 첫 번째이고, 사건에 대해 가려지지 않은 책임 소재의 규명과 그에 대한 합당하고 엄정한 처벌이 그 두 번째일 것입니다. 저희 가족은 첫 번째에 집중하고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이 탄원서를 읽고 계시는 분들은 두 번째에 온 힘을 기울여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기자명 광주·이은기 수습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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