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국회사진기자단

여론조사가 쏟아진다. 7월 한 달 동안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된 여론조사만 72건이다. 하루에 두 건 넘게 공표된 셈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각 여론조사 기관이 자체적으로 펼치는 ‘전국 정기(정례) 대선 조사’를 비롯해, 개별 언론사가 의뢰한 지자체 단체장 선거 관련 조사 등이 있다. 내년 3월과 6월로 예정된 대선과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조사다. 정치권의 시계가 빨라질수록 여론조사는 잦아진다. 지난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급속히 늘어난 여론조사는 여야 대선주자들이 출마 선언을 하면서 다시 증가했다.

여론조사가 만든 현상도 있다. 6월29일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바로 다음 날 국회 기자실을 찾았다. 기자들과 인사하며 〈세계일보〉 부스에 들른 그는 “그때 그 조사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까지도 안 왔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31일 〈세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전화면접 1007명,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여심위 홈페이지 참조)를 가리킨다. “야권 주자 중에서는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을 이끌던 황교안 대표를 윤 전 총장이 오차범위 내에서 따돌렸다”라는 내용이다. 윤 전 총장 스스로 여론조사를 출마 이유로 꼽았다. 여론조사가 중요한 이유다.

여론조사끼리 서로 다른 결과로 부딪치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에 벌인 여론조사의 결과가 확연히 차이 날 때가 있다. 특히 차기 대권주자 관련 여론조사 결과가 들쭉날쭉하면서 각 캠프는 자기 입맛에 맞는 여론조사를 홍보한다. 지켜보는 유권자로서는 헷갈리는 장면이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행에 따라 소비하는 ‘밴드왜건 효과’는 여의도 정치권에서도 통용된다. 지지율이 높은 후보에게 표가 쏠리는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여론조사를 볼 때 조사 방법을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조사 방법에 따라 응답은 달라질 수 있다. 이를 고려하고 결과를 읽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7월26일부터 28일까지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 의뢰)에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부분 1위는 이재명 경기도지사(25%)였다. 2위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19%), 3위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12%)다. 반면 7월28일부터 29일까지 뉴스더원이 리얼미터에 의뢰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는 윤석열 전 총장이 33%로 가장 앞섰다. 이재명 지사(24.2%), 이낙연 전 대표(13.4%) 순서다. 둘 다 7월30일 윤석열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실시한 조사지만, 윤 전 총장 수치가 여론조사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두 조사 모두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로 같다(자세한 내용은 여심위 홈페이지 참조). 표본오차 ±3.1%포인트라는 의미는, 위의 한국리서치 7월26~28일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지사의 지지율 범위가 21.9~28.1%, 윤석열 전 총장의 지지율 범위가 15.9~22.1%, 이낙연 전 대표는 8.9~15.1% 사이라는 뜻이다. 95% 신뢰수준의 의미는, 같은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100회 했을 때 95번은 각각의 지지율이 21.9~28.1%(이재명), 15.9~22.1%(윤석열), 8.9~15.1%(이낙연) 사이라는 의미다.

ARS는 보수 편향, 전화면접은 진보 편향?

두 여론조사의 결정적 차이는 조사 방법이다. 한국리서치는 전화면접, 리얼미터는 ARS(전화자동응답)를 실시했다. 전화면접은 사람이 직접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어보고, ARS는 기계음으로 물어본다. 두 가지를 섞어서 실시하는 조사도 있다. ARS는 상대적으로 고관여층의 응답이 많이 잡힌다. 사람이 직접 물어보지 않아 응답률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 해당 이슈에 적극 반응하는 이들 위주의 응답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여론조사를 연구해온 박종희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ARS는 보수 편향, 전화면접은 진보 편향이라고 볼 만한 자료는 없다. 다만 ARS는 기계음으로 무작위 단순 집계하는 방식이라 강한 정치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이 더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ARS가 상대적으로 많다. 휘발성 있는 이슈를 5문항 이하로 빠르게 물어볼 수 있다. ‘가성비’가 좋아 많이 쓰인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보통 ARS는 조사 한 건에 300만원, 전화면접은 1000만원 정도가 든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0년 동안 여론조사 시장에서 전화면접과 ARS가 치열하게 경쟁했다. 과거에는 주요 언론사들이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씩 전화면접 조사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화제성에서 ARS와 큰 차이가 없었다. 주요 언론사의 이런 여론조사는 점차 사라졌고, 창간 기념으로 1년에 한 번 정도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ARS는 살아남았다.” 또 다른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ARS는 상대적으로 대표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 언론사조차, 클릭 수 경쟁을 위해 ARS 결과를 자사 홈페이지에 싣는다.”

그런 특징을 이해한 다음, 시계열로 하나의 여론조사 기관에서 나오는 데이터 추세를 읽는 게 좋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지지율 숫자보다는 오름세인지 내림세인지, 아니면 제자리걸음인지를 봐야 한다. 지금까지 세 차례 대선 캠프를 경험한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여론조사 숫자에 일희일비할 것 없고, 여론조사를 꾸준히 많이 해온 한두 업체의 추세를 따라가면 여론 지형이 잡힌다. 전화면접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도 본다”라고 말했다.

기왕이면 여론조사 기관의 자체 정기조사를 보는 게 좋다. 박종희 교수는 “특정 시점에만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회사일수록 신뢰도가 높다고 봐야 한다. 단발성 조사를 하고 사라지는 조사기관은 바이어스(편향)가 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샘플 사이즈도 눈여겨보라고 조언했다. 특히 총선에서는 샘플이 적어도 1000명은 넘어야 어느 정도 믿을 만한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오차범위 내에서 1, 2위를 차지했다”라거나 “오차범위 내에서 조금 앞섰다”라고 여론조사를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이는 2016년 12월 언론 5단체가 공동으로 제정한 ‘선거 여론조사 보도준칙’이지만 아직까지 현실에선 잘 작동하지 않는다.

2012년 박근혜 캠프에서 여론조사위원을 지낸 김준철씨는 자신의 저서 〈여론조사로 대통령 만들기〉에 이렇게 썼다. “단순한 숫자 조작은 거의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여론조사 전반에 걸친 조사 환경과 결과 보도를 이용한 유권자 조작은 여전히 가능하다.” 여론조사를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여론조사와 여론조사 보도에 ‘낚이지’ 않는다는 현실 또한 여전하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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