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3일 타이 외신기자클럽에서 ‘미얀마 쿠데타 이후 저널리즘과 트라우마’를 주제로 온라인 토론회가 열렸다. ⓒFCCT 제공

“미얀마 군부가 하는 것처럼 도덕적으로 잘못된 사건을 마주할 때 언론은 중립적일 수 있는가?” BBC 동남아시아 특파원인 조너선 헤드 기자가 3월11일 타이 외신기자클럽(이하 FCCT)이 주최한 ‘쿠데타 이후 미얀마 언론’ 토론회에서 말했다. 코로나19로 접근이 어려워지자 외신들은 현지 언론에 빚지고 있다. 미얀마 언론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 중이다. BBC 미얀마 특파원도 체포되었다가 나흘 만에 풀려났다. 군부의 고문에 대한 증언이 나왔다.

“그동안 (언론계에서는) 활동가나 언론인 둘 중 하나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미얀마는 지금 모두가 활동가다.” 헤드 기자는 미얀마 쿠데타를 ‘객관적으로 보도하고 독자가 판단한다’라는 저널리즘 원칙만으로는 실상을 전하기 어려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한 국가의 인권침해와 반인륜 범죄 현장에 접근할 길이 막혔다. 유일하게 그 현장에 있는 언론인들은 군부의 첫 번째 표적이 되었다. 미얀마 시민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미얀마 민간인 946명이 숨지고 5478명이 체포·구금되었다(8월3일 기준). ‘미얀마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시사IN〉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언론인들이 받아든 모두의 질문이었다.

2월24일 FCCT와 일본, 자카르타, 타이완, 필리핀 외신기자클럽은 가장 먼저 공동성명을 냈다. ‘우리는 언론인들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미얀마 군부에 구금과 협박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외신기자 단체인 FCCT는 현재 미얀마 언론 연대를 주도하고 있다. 미얀마 독립언론인들과 ‘미얀마 저널리즘 위기’ ‘기자의 트라우마’ 등을 주제로 온라인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미얀마 예술인의 사진과 응원 티셔츠를 판매해 미얀마 언론을 위한 기금 8만 바트(약 280만원)를 모았다. 3월11일 하루 만에 120명이 참여했다. 긴급 자금은 미얀마 언론인 20명의 생활비와 취재비가 되었다. 11년째 타이 방콕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는 그웬 로빈슨 〈닛케이 아시안 리뷰〉 선임기자는 “권위주의 정권하의 타이에서 언론인으로 일했던 경험 때문에 미얀마 동료들에게 특별히 더 연대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까지 FCCT 회장직을 맡았다.

미얀마와 타이가 맞대고 있는 국경은 2400㎞로, 미얀마의 국경 중 가장 길다. 오랜 세월 앙숙이었지만 ‘군부 통치’로 현대사를 써내려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쁘라윳 짠오차 타이 총리도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2019년 총선에서 이겼다. 타이 정치학자인 폴 체임버스 교수는 4월8일 싱가포르 방송사 CNA(채널 뉴스 아시아) 기고문에서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부는 타이 모델을 따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총사령관이 쿠데타 이후 외국 정상에게 보낸 첫 서한의 대상자도 타이 총리였다. 두 인물 모두 언론 통제를 시도한다는 점, 또 퇴진 요구를 받고 있다는 점이 닮은꼴이다.

미얀마 군부의 잔혹함은 타이 언론에 큰 충격을 안겼다. 〈미얀마 타임스〉 편집장 출신인 카위 총키타완 교수(타이 쭐랄롱꼰 대학)는 〈시사IN〉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미얀마 군부가 달라진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탓마도(Tatmadaw:미얀마 군대 이름)는 과거에 언론을 검열하고 통제했으나, 기자를 체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쿠데타로 탓마도는 ‘군사정권(junta)’ 같은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제재하고 이를 어기는 언론사는 운영을 중단시켰다. 전보다 무자비해졌다.”

방콕의 로빈슨 기자에게도 미얀마 동료 언론인들의 상황이 전해졌다. 체포와 구금, 고문 소식이었다(〈시사IN〉 제725호 커버스토리 참조). “타이도 ‘왕실모독죄’와 같이 악명 높은 법이 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의 탄압은 차원이 달랐다.” 가장 시급한 건 재정 문제였다. 언론사가 문을 닫아 무보수로 일하는 기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응급 의료비와 보석금, 취재비가 필요했다. ‘부채의식’을 가진 건 타이 외신기자들만이 아니었다.   

그웬 로빈슨 〈닛케이 아시안 리뷰〉 선임기자는 지난 3월까지 타이 외신기자클럽 회장직을 맡았다. ⓒ그웬 로빈슨 제공

언론의 무덤에서 성장하는 아시아 언론 연대

FCCT는 6월부터 국내 기자로 이루어진 타이 기자협회(TJA)와 함께 미얀마 언론인을 위한 중고 장비 기부 운동을 시작했다. 노트북, 카메라, 휴대전화 등은 군경이 압수해가는 탓에 피신 중인 미얀마 언론인에게 가장 필요한 장비들이다. 지금까지 타이와 일본 외신기자들이 장비 45대를 기부했다. 타이와 미얀마 간 물류 운송이 막혀 우여곡절 끝에 미얀마 기자들에게 전달되었다. 타이 기자협회의 국제문제위원회 꼰차녹 위원은 참여 이유에 대해 “우리는 직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친구들(미얀마 언론인)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지리적 접근성을 고려할 때 미얀마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미얀마 독립언론을 위한 모금도 시작했다. 목표액은 1만 달러(약 1100만원). 여기에는 타이뿐만 아니라 타이완, 자카르타, 마닐라, 캄보디아, 홍콩 등 다른 외신기자클럽에서 연대 기금을 하나둘 보내왔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자연재해가 발생해 개별적으로 기금을 모은 적은 있어도, 동남아시아 지역 언론인이 해외 문제에 공동의 목표를 갖고 뜻을 모은 건 처음이었다. 로빈슨 기자는 “이 끔찍한 위기가 아시아 지역의 언론인들을 가깝게 만든 것 같다. 미얀마 상황을 지켜보며 동아시아 언론인들이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타이 기자들은 아시아 언론인들이 해외 이슈에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며 관여한 것은 드문 일이라고 평가했다. 무엇이 달랐을까? 미얀마의 시민 저항은 권위주의 정부하에 있는 동남아시아 언론인들에게 외면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지난 4월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21 언론자유지수를 보면 아시아 국가들은 타이완(43위), 한국(42위), 일본(67위), 몽골(68위) 등을 제외하고 모두 100위권 밖이다. 타이는 180개국 중 137위로 미얀마보다 세 단계 높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군부 독재와 언론 탄압은 동남아시아 기자들이 공유하는 위기의 본질인 셈이다.

고군분투하던 아시아 언론인들은 미얀마 위기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다. 로빈슨 기자는 타이 언론의 성격이 변화할 조짐이 포착된다고 말한다. “타이 언론은 해외 문제에 대해 (저널리즘이 아니라) ‘액티비즘’ 방식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간 타이 언론은 왕실에 대한 언급을 엄격하게 검열하는 법을 따랐다. 그런 태도가 최근 들어 변하기 시작했다. 검열에 반대하는 미얀마 언론의 투쟁을 보며 타이 언론도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미얀마 언론이 보여준 시민 저항은 아시아 언론인에게 크고 작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FCCT는 소수민족의 지역 언론에 기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미얀마 군부의 블랙리스트에는 카친주 〈74 미디어〉, 샨주 〈타칠레익(Tachileik)〉 등 소수민족 언론이 8개나 포함된다. 2~3명으로만 구성된 소규모 언론사들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로빈슨 기자는 “우리는 이 기금으로 거대 후원단체가 만든 ‘격차’를 해소하고자 한다. 적은 규모지만 변화를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언론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에서 아시아 언론 연대가 성장하고 있다. 이것은 미얀마 군부가 ‘예기치 않게’ 쏘아올린 공이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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