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5일 만달레이에서 임시 방패를 든 반쿠데타 시위대가 전경과 대치하고 있다. 방패의 ‘Z’는 Z세대를 의미한다. ⓒAP Photo

“미얀마 청년 세대는 군부의 폭압적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며 동시대 다른 나라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잘 알고 있다. 스스로 선택할 자유에 대한 소신도 뚜렷하다.”

미얀마 청년 운동가 ‘틴자 슌레이 이’는 ‘Z세대의 끈질긴 저항 동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대 후반의 슌레이는 엄밀히 말하면 ‘턱걸이 Z세대’ 또는 밀레니얼 세대에 가깝다. 그러나 미얀마의 ‘Z세대’ 담론 자체가 ‘밀레니얼-Z세대(MZ세대)’를 두루 포괄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밀레니얼 세대의 경험과 리더십에 Z세대의 활동력과 창의력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미얀마 세대론의 중심에 서 있다.

슌레이는 “타이나 홍콩 시위를 보고 영감을 얻은 면도 있지만 잔혹한 진압 양상을 보면 미얀마는 타이나 홍콩과 또 다르다”라고 말한다. “Z세대가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이유”이기도 한데, 그래서 “더욱 각성하고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각성한 세대다. ‘봄의 혁명’은 우리에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슌레이의 말이다.

시간을 되돌려보자. 반년 전인 2월1일, 미얀마에서는 33년 만에 쿠데타가 발생했다. 2월4일 만달레이 사회운동가 타이자 산 주도로 열 명 안팎의 소규모 거리 시위가 있었다. 2월6일 참가 인원 5000명으로 추산되는 시위대가 양곤 시내를 가로질렀다. 최초의 대규모 행진이었다. 이 시위를 계기로 양곤의 거리에 연일 시민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고, 전국적 규모의 항쟁의 불이 지펴졌다. 이 최초의 대규모 시위를 주동한 이는 다름 아닌 Z세대 여성 활동가 두 명이다.

2015년 교육법 개정안(학생회 금지, 소수민족 언어 고등교육에서 제외, 학교 자율성 침해 등) 반대 시위를 이끌었던 학생운동가 출신 에이 틴자 마웅(현재 국민통합정부 여성청년아동부 차관), 그리고 소수자 권익보호 활동가로 잘 알려진 이스터 제 노, 두 사람이 선두에 선 2월6일 시위엔 의류공장 여성 노동자들도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여성, 노동자, 소수자, Z세대가 함께한 항쟁의 출발선은 의미심장했다.

2019년 12월 로힝야 집단학살 사건과 관련해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에 참석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EPA

‘버마-불교도-민족주의’ 내러티브와 단절

미얀마 Z세대에 대한 일각의 담론은 이들을 쿠데타 발발과 함께 불현듯 부상한 세대로 주목했지만 ‘하루아침에 투사’라는 묘사는 Z세대의 맥락과 진실을 가릴 위험이 있다. 미얀마 사회운동가로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회학연구소(ISS)에서 ‘비판적 농업연구’를 하는 사이 삼 캄 역시 “Z세대가 갑자기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는 식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물론 일부는 쿠데타를 계기로 경각심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리더십 군단과 주요 활동가들은 이미 (준민간정부로 불리던) 테인 세인 정부 때(2011~2015년) 교육법 개정 반대운동 시절부터 다양한 저항운동에 두루 관여해온 이들이다. 이들은 전(全)버마학생동맹(ABFSU) 등 학생운동 및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과 긴밀히 연계돼 있다. 그들이 바로 현재 ‘미얀마 봄의 혁명’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이 삼 캄은 “Z세대가 88세대(1988년 항쟁을 주도한 당시의 청년 세대)보다 진보적”이라면서도 이들이 균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정치 성향도 “공산주의 좌파 성향부터 민족주의 우파 성향까지 다양하다”는 것. “ABFSU 같은 좌파 성향 조직들은 아웅산 수치를 ‘민주적’이라기보다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으로 보고 이를 유감스럽게 여긴다”라는 게 그의 관찰이다.

싱가포르 소재 동남아연구소(ISEAS)가 최근 보고서 ‘Z세대는 어떻게 미얀마의 2021 쿠데타에 맞서 혁명적 운동을 활성화했는가’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아예 Z세대가 ‘버마-불교도-민족주의’로 이어지는 주류 내러티브와 과감히 단절했다고 분석했다. 이 주류 내러티브는 오랫동안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규정하는 통치 이념이었다. 적어도 이 주류 내러티브에 관한 한, 아웅산 수치 및 민주주의민족동맹(NLD)으로 대표되는 옛 민주 진영과 군부 사이의 구분은 모호했다. 결국 아웅산 수치는 로힝야 대학살 국면에서 학살자인 군을 변호하면서 민주화 과정에 ‘흑역사’를 남겼다.

ISEAS 보고서는 미얀마의 Z세대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가치 중심’이라고 설명한다. 해당 가치는 △반군부 △중국의 확장성 반대 △탈권위주의 △반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거부다. 따지고 보면 ‘반군부’나 ‘중국 확장성 반대’는 88세대나 NLD 주류도 공유하는 가치다. 그러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권위주의로 가면 옛 민주화 세대와 Z세대 간 차이가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Z세대가 말하는 권위주의는 반드시 군부의 권위주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익히 알려진 아웅산 수치의 권위주의적 태도에 대해서도 이견과 비판을 피력할 수 있는 세대가 이제 등장한 것이다. Z세대는 아웅산 수치가 조국의 민주화에 헌신하며 자신을 희생해온 점에 대해 이전 세대가 두고두고 읊던 ‘부채감’이 거의 없거나 훨씬 적다.

7월28일 AFP는 민주 진영의 망명정부로 출범한 국민통합정부(NUG) 내 “아웅산 수치에 충성하는 이들과 (아웅산 수치를 넘어) 새 정치를 구상해야 한다는 진영의 갈등”이 존재한다는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NUG가 NLD 정치를 어느 선까지 답습할지, 아니면 새로운 정치체로 거듭날지에 대한 진통은 이미 시작된 듯하다.

따지고 보면 NUG 내각에 Z세대라 할 만한 이는 2월6일 첫 대규모 시위를 이끈 여성청년아동부 차관 에이 틴자 마웅 한 명뿐이다. 슌레이는 정책 결정권자의 자리에 더 많은 Z세대가 기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이 삼 캄 역시 “NUG 내각이 나이 많은 남성들로 가득하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Z세대에 대한 낭만도 경계해야 한다”라며 냉정한 현실을 전했다. “Z세대가 소수민족과 주류 버마족의 간극을 좁히는 가장 진보한 세력인 건 맞다. 그러나 그 진보성에도 농도 차이(gradation)가 있다는 점을 각인해야 한다. 많은 Z세대가 로힝야와 무슬림을 동등한 시민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또 다른 많은 Z세대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기자명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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