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8일 국회 앞에서 전국 정신장애인 당사자·가족단체 연맹 회원이 정신장애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비 마이너

아버지가 딸을 살해했다. 지난 4월20일, 경북 포항시에 거주하는 ㄱ씨(78)는 함께 살던 딸의 목을 졸랐다. ㄱ씨와 그의 아내는 인근 야산에 딸을 묻으려 했지만 곧 포기했다. 노부부는 시신을 옮길 만한 힘이 없었다.

40대인 딸은 8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5년 전부터 친정에 돌아와 살고 있었다. 어린 자녀와 함께였다. ㄱ씨는 경찰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정신장애를 가진 딸의 증세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나와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딸이 손주 인생에 해를 끼칠까 봐 걱정됐다.” ㄱ씨는 구속됐다.

이 사건을 다룬 기사는 채 스무 건이 넘지 않았지만 대부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ㄱ씨가 딸을 병원에 입원시키지 못해 범행을 저지른 게 아니냐는 추측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5월부터 시행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강제입원 요건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이런 언론보도에 대해 조현병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6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당사자와 가족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죽하면 부모가 딸을 죽였겠는가라는 동정론 속에서 그 딸이 살아왔던 인생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병에 걸리고 싶은 사람은 없으며 부모나 자식을 괴롭히고 싶은 정신장애인도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지옥에 있었다면, 조현병 당사자인 그 딸 역시 지옥에 있었을 것입니다. (…) 우리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딸을 죽인 부모와 죽임을 당한 딸에게 국가와 사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조현병을 앓는 30대 딸을 둔 홍수민씨도 입장문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70대 부모가 과연 조현병을 어떻게 이해했을지, 그들에게 딸과 소통하는 방식을 알려준 사람은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은 딸을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었을 거다. 나도 그랬다. 딸이 급성기(환청 등 증세가 심해지는 시기)를 겪을 때, 딸을 병원에 보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내게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입원한 딸은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홍씨가 너무 센 약을 먹이는 거 아니냐고 병원에 항의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병원에서는 복용량을 조정하는 중이라고만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집에 돌아온 딸은 무기력해져 있었다.

퇴원한 당사자는 자신을 강압적인 병원에 격리시켰던 가족을 원망하기 쉽다. 폭행이나 상해, 살해 등 사건 사고의 대상이 가족인 경우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당사자가 ‘그때 왜 나를 병원에 넣었느냐’라고 욱하면 가족들도 ‘네가 이러니까 병원에 넣었지’라고 욱한다. 그러다 싸움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또 급성기가 오면 당사자는 다시 병원에 보내진다. 끝없는 악순환이다. 이런 상황에서 ㄱ씨가 딸이 손주를 잘 돌볼 거라는 믿음을 갖기는 쉽지 않았을 거다. 딸이 손주를 돌보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조차 없었으니까.” 홍수민씨의 말이다.

7월11일 조현병 당사자·가족 모임인 ‘설악 어우러기’ 강연회에서 참가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설악 어우러기 제공

열악한 환경 알면서도 병원에 보낼 수밖에

2019년 5월 홍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딸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조현병의 국가관리 시스템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조현병 환자 수는 12만1400여 명이다. “내 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학원에서 가르치는 학생 중에서도 정신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종종 있었다. 누군가 반드시 또 겪을 거고 그게 누가 될지 모르지만, 이렇게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당시 ‘유서를 쓰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해당 청원은 청와대나 부처 장차관 등의 공식 답변을 받을 수 있는 20만명 동의를 얻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그의 글을 보고 연락해온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들이 한두 명씩 늘어났다.

그해 8월 홍수민씨는 자신의 거주지인 속초를 중심으로 ‘설악 어우러기’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었다.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알음알음 그를 찾아온 당사자는 모두 50~60대였다. 그들의 부모는 70~80대였다. “그동안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게 살아왔을 뿐, 그들은 분명히 사회에 존재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나의 미래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절박함이 생겼다.” 홍씨는 정신장애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관련 서적을 구해 읽기도 하고, 당사자 활동가들을 초청해 강연을 열기도 했다.

이후 홍수민씨는 딸을 병원에 보내지 않았다. 다시 급성기가 찾아왔지만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딸에게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먼저 물었다. “병원에서 하는 일이 가둬두고, 약을 먹이고, 재우는 것뿐이라면 그건 집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리만이 답은 아니다.”

물론 입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주위에 돌봐줄 사람이 없거나, 집에서 머무는 것만으로는 제어가 되지 않는 수준의 급성기가 왔을 때다. 적절한 외부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선택지는 병원 입원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 정신보건 시스템의 기초가 되는 곳은 ‘정신건강복지센터’다. 해당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의 사례를 모아 관리하는 곳이다. 보건복지부와 해당 지자체로부터 각각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민간 위탁기관이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전문요원’들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는 환자들로부터 동의를 받아 사례관리에 들어간다. 만약 환자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퇴원 이후 모니터링은 불가능하다. 포항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ㄱ씨의 딸은 사례관리 대상자가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전문요원들은 경찰이나 주민센터에 들어온 신고를 받고 함께 현장에 나가기도 한다. 문제는 현장에 출동한 전문요원이 제안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시 한 자치구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김재환씨(가명)는 “가장 자괴감을 느낄 때가 바로 이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고 있을 때”라고 말했다. 제공되는 서비스가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단 환자를 보낼 수 있는 곳이 병원밖에 없기 때문이다. “급성기일지라도 다 같은 급성기가 아니다. 경증인 사람도 있고 중증인 사람도 있지만 각자 상황에 맞춰 갈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갈 곳이 병원밖에 없다.”

해외에는 집과 병원 사이에 놓여 있는 중간 단계가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위기쉼터’다. 위기쉼터란 급성기를 겪는 환자가 자극을 받지 않고 혼자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병동에 입원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족과 분리돼 있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면 자발적으로 가서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지낼 수 있다.

국내에는 아직 환자가 자신의 상태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충분하지 않다. 조현병 환자가 지낼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집과 병원, 그리고 재활시설뿐이다. 병원 입원도 쉬운 일이 아니다. 환자가 자발적으로 입원하지 않는 이상 경찰의 권한으로 행정입원을 결정해야 한다.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는 상황임이 명백하지 않은 이상 경찰도 부담을 느껴 최대한 판단을 미룬다.

4월29일 서울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에서 동료 상담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제공

공감하고 지지하는 ‘동료 지원가’

그렇다고 현장에서 전문요원이 강하게 의견을 제시하기도 쉽지 않다. 그들의 권한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김재환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보통 센터는 시군구 보건소에서 민간 위탁을 받아 운영된다. 전문요원들은 모두 계약직이다. 나도 몇 번의 계약에서 살아남은 계약직이다. 센터장은 비상근이다. 일주일에 하루 혹은 반나절 동안 대학교수가 나와 결재 서류에 서명을 하고 가는 식이다.”

전문요원들의 근속연수는 평균 2~3년에 불과하다. 정신장애 특성상 한번 명단에 등록되면 평생 사례관리가 필요하지만, 정작 이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2~3년 주기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실무자들이 안정적으로 경험과 경력을 쌓기 어려운 구조다. 당사자들도 매번 바뀌는 담당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들은 ‘동료 지원가’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료 지원가란 같은 정신장애를 가진 당사자로서 일정한 교육을 받고 상담 자격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급성기를 겪고 있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닥친 또 다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귀담아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일반 지원가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면, 동료 지원가는 공감과 지지에 관심을 둔다. 애초에 정신장애는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동료 지원가를 양성하고 있는 당사자 단체는 여러 곳이다. 커리큘럼도, 자격 기준도 모두 제각각이다. 지난해 하반기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시범사업으로 동료 지원가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중단된 상태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교육과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표준적인 동료 지원가 양성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지만, 사업이 언제 재개될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라고 말했다.

동료 지원가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 이들은 정신건강복지센터뿐만 아니라 민간 병원이나 재활시설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이는 곧 정신장애인의 일자리 문제 해결과도 연결된다. 지난 7월17일 ‘당사자가 주도하는 정신보건제도’를 목표로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를 출범시키는 데 참여한 신석철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센터장은 비당사자 지원가와 당사자 지원가가 동등한 파트너로 함께 일할 수 있는 존재로서 인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원, 전문가의 역할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당사자들에게 한 번이라도 물어봐달라는 거다. 왜 약을 안 먹고 싶어 하는지, 왜 병원에 가는 걸 싫어 하는지. 24시간 환청 때문에 괴로운 사람이 도움받기를 거부할 정도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이제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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