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송민령 박사(사진)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원이다. 전공은 뇌과학. 근 몇 년간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는 분야다. 그는 지난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라는 책을 내놓았다. 뇌와 인공지능, 동기부여, ‘가짜 과학’ 등을 다룬 대중 과학 서적이다. 그런데 이 책은, 불과 1년 전 내놓은 책 〈여자의 뇌 남자의 뇌 따윈 없어〉의 개정·증보판이다. 개정판 서문에서 송 박사는 책 제목을 바꾼 까닭은 ‘타깃 독자들’에게 책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많은 사람들이 책 제목만 보고 이 책을 뇌과학 서적이 아닌 페미니즘 서적으로 오인했다는 것. 그가 타깃으로 삼은 독자는 ‘뇌과학에 관심과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책의 목적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뇌과학에 대해 전하되 흔히들 말하는 ‘과학 대중화’와는 좀 다르다고 말한다. 지식을 전달하고 ‘계몽’하는 게 아니라 쌍방 소통 방식을 지향한다. 활발히 해온 언론 기고와 강연 역시 목적은 같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에서 일정한 효능감도 느낀다. 예컨대 ‘인간은 두뇌의 10%만 쓴다던데요?’식의 가짜 정보를 믿는 사람은 근래 들어 강연 현장에서 찾기 어렵다.

송민령 박사는 8월부터 〈시사IN〉에 이와 관련한 글을 연재할 예정이다. 과학과 유사과학이 뒤엉켜 떠도는 코로나19 시대에, 뇌과학자는 열성적으로 말을 쏟아냈다.

뇌과학은 어떤 학문인가?

뇌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퍼진 신경체 전반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이다. 그래서 신경과학(neuroscience)이라고도 부른다. 신경체의 구조, 원리, 관련 질병까지 다룬다. 생명체의 기관을 연구한다는 면에서 생물학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추세를 보면 뇌과학이 ‘생물학의 일종’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생물학의 테두리 밖에 있는 심리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따위와 상호작용이 늘어서다. 특히 인공지능은 생물의 뇌를 참고해 개발되기도 하고, 반대로 뇌의 신호를 분석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수단으로 쓰기도 한다. 과거 뇌과학 세부 분야로 분류되던 학문이 인공지능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별개의 학문 취급을 받는 일도 있다.

현재 연구하는 주제는?

나는 도파민(dopamine)이라는 물질을 주로 연구한다. ‘강화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시행착오 도중 좋은 결과가 나오는 행동을 반복하고, 나쁜 결과가 나오는 행동은 중단하는 게 강화학습이다. 동물이 강화학습을 어떻게 하는지, 그동안 뇌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본다. 일상 모든 것이 일종의 강화학습이다. 누구나 세상이 어떻게 될지 가설을 세우고 목표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살아간다. 인공지능 분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렇게 해, 저렇게 해’라고 일일이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게 좋은 인공지능이다. 그렇기에 인공지능에게 (행동에 따른) 피드백만 주고도 ‘알아서 잘 해봐’라고 하는 게 목표가 된다. 이게 강화학습이다.

뇌과학은 대중적 관심이 특히 높은 과학 분야이다. 근래의 흐름이라고 느끼나?

인기는 예전부터 많았다. 사람은 타인과 자신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한다. 뇌에 대한 관심을 풀이하면 결국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마음과 가장 긴밀한 기관이 뇌이기에 예전에도 이 분야에 흥미를 가진 사람은 적지 않았다. 다만 그 양상이 획기적으로 변했다고 느낀 시점은 있다. 2013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정책을 시작한다. 휴먼 게놈 프로젝트만큼 큰 프로젝트다. 브레인 이니셔티브의 목적은 신경 기술 개발이다. 신경계를 정확히 관측하고 정밀하게 조작하는 것이다. 이 기술이 있으면 신경계 활동을 제어해 뇌 속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엄청난 시장가치를 지니는 특허가 된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혁신적 기술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후속 투자가 꾸준히 이뤄졌다. 충분한 자본과 측정 기술 발달을 통해 뇌과학 분야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고, 이를 분석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쓰게 됐다.

신경계를 읽고 제어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인공지능은 여기에 어떻게 기여하나?

과거 반신불수가 된 사람의 뇌 신경세포를 읽어 문자화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최근에는 뇌의 신호를 읽어서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을 컴퓨터가 알아맞히게 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아직은 읽을 수 있는 단어가 50개쯤에 불과하고 그 정확도도 낮다. 생각을 읽어서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집 안의 불을 켜고 끄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인공지능은 사람이 생각을 할 때 나타나는 신경 패턴을 읽는다. 가령 사람이 ‘집에 가자’는 생각을 할 때와 ‘회사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나타나는 패턴은, 인공지능 없이는 너무 복잡하기에 읽을 수가 없었다. 이게 가능해지면, 미래에는 뇌전증(간질) 환자가 칩을 장착한 후 전조 증상이 보이면 자동으로 막아줄 수가 있다. 갑자기 화가 날 것 같다거나 중독이 심한 환자도 알맞은 피드백이 가능하다.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예견하는 이들도 있다.

신경 기술 논의가 활발한 해외에서는 이미 진행 중인 문제도 있다. 뇌에 전기자극을 줄 수 있는 기계를 사서 스스로 실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뇌의 이 부분을 몇 시간 동안 자극했더니 집중력이 좋아지는 것 같다”라는 식의 글을 인터넷에 올린다. 미래에는 사생활 문제가 생길 것이다. 내 신경 정보를 타인이 읽을 수 있다. 이 정보가 디지털화되어 복사되면 어디든 떠돌아다닌다. 그간 상상치 못했던 책임 소재의 문제도 뒤따른다. 신경 제어 기술이 사람의 무언가를 바꿔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 이게 그 사람의 잘못이 맞는지가 모호해진다. 그게 고의인지, 단순한 ‘관리 부실’인지 판별하기 어렵다. 불평등도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어떤 유용한 기술이든 돈 있는 이에게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십수 년 전부터 살인자를 두고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자주 따라붙는다. 실제로 범죄자의 뇌는 일반인과 다른가?

전공 분야가 아니라 확답하긴 어려우나 사이코패스의 뇌에 대한 연구는 있다. 조현병도 연구가 활발하다. 사람의 뇌와 유전병을 근거로 향후 조현병이 생길지에 대해 연구한 결과물이 있다. 10여 년 전에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떠올리게 하는 연구도 나왔다. 미국에서 수감자가 출소하기 전 뇌를 찍은 뒤, 재범 여부를 예측한 것이다. 윤리적으로 걱정될 만한 소지가 있다.

공익에 이로운지 해로운지 판단하기 어려운 연구가 적지 않을 듯하다. 과학자 스스로 판단해야 하나, 사회가 규제를 먼저 논의해야 하나?

뇌과학이 인간과 사회에 선하게 쓰일 방법을 알아보다가 국제신경윤리학회 라는 곳을 찾았다. 약 15년 전 뇌과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학회다. 신경 기술과 인공지능에 얽힌 윤리 문제를 다룬다. 사실 이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전부터 뇌과학자들은 악용 소지를 걱정했다. 서구 학계에서는 기술발전으로 인한 문제가 터지고 나서 고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가 중시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꼽은 뒤 여기 맞춰서 기술을 개발하자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 유럽연합이 호라이즌2020(과학기술 개발, 사회문제 해결 등을 위한 EU의 대규모 프로젝트)을 진행하며 표방한 ‘책임 있는 연구와 혁신(RRI)’이 이런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모아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논의하고, 그 과실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하고, 위험은 최소화하며 수용성은 높인다.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연구는 모두 공개한다.

2016년 3월30일 스위스 제네바 캠퍼스 바이오텍에서 열린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교(EPFL)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HBP) 기자간담회의 대형 스크린. ⓒEPA

이 측면에서 볼 때 어떤 연구가 뇌과학이 ‘해야’ 하는 주제라고 보나?

예를 들어 ‘사회경제적 지위가 뇌 발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가난한 사람에게 어떤 지원을 하는 게 효과적인지와 맞물려 있다. 능력주의 논쟁과 일맥상통한다. 만약 성장한 환경과 무관하게 뇌 발달이 똑같이 일어난다면, 이건 그냥 개인이 노력만 하면 되는 문제이다. 그런데 연구 결과 그렇지 않다면 이때도 노력만 강조하는 게 정의로운가? 청소년 범죄의 경우도 그렇다. 똑같은 죄를 저질러도 가해자가 청소년이면 처벌을 감경한다. 그런데 피해자도 청소년인 경우는 어떨까. 뇌 발달 특성상 이 시기는 트라우마에 더 취약하다. 똑같은 ‘청소년 범죄’라도 피해자가 청소년인 때에는 죄질이 더 나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연령대 특성상 주변에서 보는 청소년의 사회화에도 영향을 준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을 해야 해’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이해, 수단이나 기술,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잘 조직되어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여자의 뇌 남자의 뇌 따윈 없어〉를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로 새로 펴냈다. 일련의 과정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을 느꼈다’고 했는데….

일단 책이 안 팔렸다(웃음). 페미니즘에만 관심 있는 사람이 볼 책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남녀의 뇌를 둘러싼 관심은 현실적 이해관계, 갈등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내 생각을 지지하는 과학적 근거까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자는 이래, 여자는 이래’라는 뇌과학적 근거는 없다. 남자의 뇌가 클 확률이 높지만 여자의 뇌가 더 큰 경우도 있다. 이런 내용의 내 칼럼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는데, 이게 유해 매체로 판단돼 삭제가 됐더라. 사람들이 신고를 한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나그네 외투 벗기기’다. “이거야!”라며 정면에서 때리면 설득이 안 된다. 자연스럽게 수긍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과학이라면 과학적 사실, 관측 사실을 앞세워야 한다고 본다. 항상 사실 확인이 먼저고, 특정 가치를 정면에 내세우고 말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를 둘러싼 가짜 과학도 같은 문제다.

왜 과학 대중화가 아니라 ‘과학 커뮤니케이션’인가? 가짜 과학 시대에는 전문가가 나서서 ‘그건 아니다’라고 말해줘야 하지 않나?

소통은 상대가 뭘 알고 뭘 원하는지, 어떤 상태인지 고려해 거기에 맞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가령 원전 문제를 보자. ‘원전은 안전한데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몰라서 저런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실제 반발은 다른 지점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왜 우리 마을인가’ ‘선정 절차가 정당한가?’ 이런 게 궁금하다. A가 답답하고 감정까지 좀 상해 있는데 이 사람은 B를 얘기한다면, ‘뭔가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백신 반대가 된다. 테드(TED)에 한 여성 과학자가 백신 반대를 두고 한 발표가 떠오른다. 이전에는 백신을 의심하는 이들이 무식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아기를 갖고 나니 너무 소중해서 단 하나의 위협도 무릅쓰고 싶지 않은 거다. 홍역으로 떼죽음 당한 것은 겪어보지 못한 일이고, ‘부작용’ 뉴스는 자꾸 들리니까. 과학자는 사람의 감정을 다독이면서 소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맞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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