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날씬한 몸매’에 대한 선망이 깊숙이 배어 있다. 어려서부터 디즈니 공주 시리즈를 보며 품었던 환상 때문일까? 깡마른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시작된 관념 때문일까? 그 시작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기에도 벅차다.
오랜 시간 굳어진 획일화된 미를 고집하며 스스로에게는 강박을, 타인에게는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아이에게 ‘살찌니까 그만 먹으라’는 말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아이는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당황스러울 만큼 살이 올랐고, ‘날씬하고 예쁜’ 친구들과 수시로 비교하며 자꾸만 의기소침해졌다. 아이는 거울과 저울 사이를 자주 오갔고, 남과 비교되는 겉모습 때문에 자신감을 잃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한 아이가 있다. 오데트는 과자와 사탕은 물론이고, 치즈를 듬뿍 올린 볼로네제 파스타도 좋아하며, 책 내용을 줄줄 외울 정도로 푹 빠진 ‘최애’ 작가도 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건, 꿀벌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일이다. 그런 오데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다. 아빠 엄마의 눈에는 비쩍 말라 허약한 딸, 친구들 눈에는 뚱뚱한 애, 선생님에게는 손이 덜 가는 순한 학생이다. 사실 오데트도 다른 여자 친구들처럼 날씬하고 예뻐지고 싶다. 그럼 모두 자신을 좋아해줄 것만 같다. 오데트는 먹지 않기로 결심하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따뜻하고 달콤한 초콜릿 한 잔에 무너지고 만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자신이 밉기까지 하다.
‘성장의 춤’이자 ‘독립의 춤’
그러던 어느 날 오데트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 레오 다비드를 만나게 된다. 그는 오데트가 상상했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남자가 아닌 여자였고, 출입문을 겨우 통과할 만큼 몸이 엄청나게 컸다. 게다가 오데트가 가장 좋아하는 치즈 볼로네제를 레오 다비드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오데트는 레오 다비드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용기가 생겼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오데트는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다시 꿀벌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나만의 춤’을 춘다.
엔딩의 ‘나만의 춤’은 도입의 춤과 깊이가 다르다. 나를 둘러싼 고민과 아픔, 깨달음으로 이루어진 ‘성장의 춤’이자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독립의 춤’이다. 그렇기에 더욱 기쁘고 단단한 만족감으로 꽉 차 있다. 이 지점은 그림책이 지향하는 ‘성장’과도 맞닿아 있다. 그림책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기도 하지만 가끔은 뜻밖의 장면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성찰하기도 한다. 거울과 저울 사이를 오갔던 아이에게 남들 눈에 보기 좋도록 날씬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입했던 지난날을 후회한다.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각각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긍정하며, 스스로 헤쳐 나올 수 있도록 다정한 눈빛으로 응원해주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주눅 든 아이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펴졌을 텐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지 알게 된 오데트처럼 말이다.
지금도 초콜릿 하나를 앞에 놓고, 갈등하고 있을 수많은 오데트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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