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론’은 수차례 반복되는 데자뷔와 같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야권 대선주자들이 이른바 ‘여가부 폐지’를 또다시 들고나왔다. 여가부를 폐지하고 대통령 직속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유승민 전 의원은 2017년에도 여가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같은 주장을 했다.

여가부는 뿌리인 ‘부녀국’ 때부터 무용론과 폐지론에 시달려왔다. 한국 여성정책의 시작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다. 해방 이후 남한에 주둔한 미군정은 부녀국을 설립해 여성의 사회·경제생활 개선 및 여성복지 관련 업무를 맡도록 했다. 이후 부녀국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반복된다.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엔 ‘부녀국과 원호국(사회국) 병합’이 추진됐다.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된 뒤에도 ‘부녀국 폐지로 예산 낭비를 막자’는 주장이 나왔다.

여가부 폐지론, 무용론, 해체론이 정치권만의 화두는 아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여가부 폐지 청원 글이 수백 개가 넘는다.

여가부는 정부 부처이지만 2021년 예산이 1조2300억원 정도로 서울 강남구의 1조1278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정부 전체 예산 중 0.2% 수준으로 18개 중앙정부 부처 중 최하위다. 가장 많은 예산을 확보한 보건복지부는 올해 약 89조원을 운용한다. 인력 규모 역시 277명으로 ‘청’ 단위인 기상청(1299명)의 4분의 1에 그친다. 작은 규모와 달리 여가부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역설적으로 여가부의 존폐 논란이 반복된 탓이다.

여가부는 설립부터 지금까지 국내외 정치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돼왔다. 1995년 베이징 UN세계여성회의에서는 모든 정책에서 성평등적 관점이 고려돼야 한다는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을 공식화했다. 당시 채택된 ‘베이징 행동강령’은 각국 정부가 성평등 정책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이는 여성들의 정치참여를 본격화하는 사건이었다. 대회 직후 한국에서도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10대 과제’가 발표되었다. 이 같은 사회 변화 속에서 여성부 신설을 공약으로 내건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처음으로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2년 후인 2001년, 여성부가 만들어졌다.

이후 여성부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개편을 거듭했다. 출범 후 10년 사이 부처 이름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 기능과 역할도 계속 변화했다. 정부 부처로서 일관된 정체성을 견지하고 역량을 강화하기도 어려웠다. 여가부가 처한 역사와 환경을 이해하지 않고 존폐 논쟁을 벌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여성부의 전신인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연합뉴스

‘깃발만 외롭게 남아 있던 때’도…

2001년 설립된 여성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중인 2005년에 여성가족부로 재출범한다. 보건복지부로부터 가족 관련 업무를 이관받으면서 가족정책을 수립·총괄·지원하는 부처로 재편되었다. 개편 당시 여성계 내에 뜨거운 논쟁이 일었다. ‘여성가족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성평등 업무와 가족 업무가 통합됨으로써 가부장적 성역할 분담을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비판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론’이 나왔다. 겨우 317억원 규모의 예산으로 출범한 여성부가 예산과 인력을 확대해 부처의 위상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란 의견이다.

우려와 기대 속에 출범한 여성가족부는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여성계와 큰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당시 여성단체 상근자로 활동했던 여성현실연구소 권김현영 대표는 “건강가정기본법은 반성평등법이었다”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건강가정기본법에서는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단위라고 정의한다. 법률혼 및 혈연 중심의 가족만을 ‘정상’으로 규정한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05년 권고에서 “다양한 가족·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반대 개념을 쉽게 떠올리게 해 무의식적 편견이나 차별 의식을 초래할 수 있다”라며 개정 필요성을 지적했다. 권대표는 “이런 과정에서 여가부가 성평등을 위한 부처라는 기본 전제가 흔들렸다”라고 평가한다.

이후 작은 정부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여가부를 여성부로 다시 개편한다. 애초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여가부는 여성 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부서”라며 폐지를 시사했다. 여성계의 반발로 여성가족부는 여성부로 존치되었지만 권한과 위상이 대폭 축소되었다. 보육을 포함한 가족 관련 업무가 보건복지부로 다시 돌아가면서, 2005년에 176명 정원(1실 4국 2관 19과)으로 출범했던 여가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들어 100명 정원(1실 2국 13과)인 여성부로 쪼그라들었다.

예산 변화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2007년 여성가족부 시절 1조1994억원에 이르던 예산이 여성부로 바뀐 2008년 539억원으로 급락했다. 1조1455억원(95.5%)이 깎였다. 부처의 명맥만 겨우 유지되는 과정에서 상당수 공무원이 퇴출되거나 이탈했다. 이후 여성부는 여성가족부로 다시 개편되며 청소년·가족 업무를 되찾지만 그 내상은 컸다.

여가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A씨는 당시를 ‘깃발만 외롭게 남아 있던 때’로 회고한다. “여가부가 초미니 부서로 작아지니까, 일 좀 한다는 공무원들이 보건복지부로 갔다. 부처가 크려면 초반에 능력 있는 인재를 받아 전문성과 역량을 계속 키워나가야 하는데, 항상 존폐 논란이 있다 보니 인력 구성이 안정이 안됐다.”

여가부 출범 초기부터 일해온 공무원 B씨도 여가부가 부침을 겪으며 위상이 약화되었음을 지적한다. “여성정책은 위에서 힘을 얼마나 실어주느냐가 중요한데 ‘없어질 수도 있는 부처’라는 시선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타 부처와 협상할 때 힘들 수밖에 없다. 남의 부처에 대해 함부로 언급하지 않는 게 공무원 사회의 불문율인데, 우리 부처에 대해서는 쉽게 말한다. 누군가가 ‘그러니까 여가부 폐지하자는 얘기가 나오지’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왜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그래’라고 받는 식이다.”

예산 삭감도 커다란 장벽이었다. 여가부에서 성별영향평가 업무를 지원했던 C씨 역시 무엇보다 예산 확보가 시급함을 지적한다. 여가부의 정책 집행력을 위해서다. “권한 없고 자원 없으면 부처 이기주의가 심한 정부 조직에선 할 수 있는 게 없다.” C씨는 “지금도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업이 있다”라며 지역에서 ‘여성친화형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했던 당시를 언급했다. “여가부가 예산이 없으니 국토부 사업을 ‘성인지적 관점으로 하겠다’ 해서 진행을 했다. 그런데 예산과 조직은 한 세트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계획을 가져가든 집행 라인에서 계속 바뀌었다. 돈주머니가 우리에게 없는 한, 정책을 의도한 대로 집행하기 어렵다. 나도 다른 부처랑 회의를 하면 비굴해진다. 예산 없이 입만 가져가니까.”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가부가 역량을 펼칠 공간은 결코 크지 않았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하자, 정부는 낙태죄 개정안을 준비해야 했다. 여가부는 성별영향평가에 따라 법무부에는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 복지부에는 모자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여가부의 개선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않았다. 성별영향평가는 정부 정책이 성평등 쪽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평가하는 제도이지만, 강제력이 없는 ‘권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법무부·보건복지부만의 태도가 아니다. 정부 부처 사이 만연한 ‘여가부 무시’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10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가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2017∼2019년)간 45개 중앙행정기관의 성별영향평가 개선조처 현황’ 자료를 발표했다. 자료를 보면 개선율 평균이 2017년 72.1%, 2018년 71.3%, 2019년 69.5%로 해마다 떨어졌다(아래 표 참조).

이처럼 여가부는 ‘존재의 이유와 실력’을 보여주기 어려운 환경에 십수 년간 노출되어온 셈이다. 이는 여가부 무용론, 폐지론이라는 프레임으로 쉽게 이어졌다.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홍지아 교수는 자신의 논문 〈국가 페미니즘, 여성가족부, 여성혐오〉에서 “정권에 따라 성격이 변화하는 여가부는 ‘존재감과 힘이 없는 부서’, ‘다른 부처의 협조가 있어야만 업무가 가능한 부서’라는 인상을 남겼다. (중략) 결국 행정 부처로서 여가부의 뚜렷하지 못한 정체성은 여론의 공격에 취약하며 사회적 공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높였다”라고 지적한다.

지난 4월14일 KBS 본사 앞에서 비혼출산 혐오세력 규탄 기자회견을 연 한국한부모연합·정치하는 엄마들 등의 시민단체 회원들. ⓒ연합뉴스

일 잘하는 여가부 만들기 위해선?

그렇기에 ‘여가부 폐지 논쟁’보다는 ‘일 잘하는 여가부’를 만드는 환경 조성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은 정책 결정자들의 태도가 중요하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차인순 수석위원은 부처의 존폐가 화두가 되는 것만으로도 실제 업무 역량에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대통령이 특정 부처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면 실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한 몸으로 움직이는 정부 조직에서 다른 부처들이 해당 부처에 적극 협력할 리는 만무하다.”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미니 부처인 여가부로서는 이로 인한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차 수석위원은 “여가부의 많은 정책이 기획재정부 예산 편성 단계에서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사소한 사안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취약위기가족 지원사업’이 있다. 전국 단위 사업인데도 전국 221개 건강가정지원센터 중 88개소에서만 진행된다. 청소년 근로현장 지원사업도 마찬가지다. 전국은커녕 4개 권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역양성평등센터도 5개 지역에서만 운영된다. 여가부 사업의 체감도가 낮은 이유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정춘숙 의원은 ‘일 잘하는 여가부’를 만들기 위해 결국 정부 조직법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가부는 미니 부처지만 총괄조정 업무를 해야 된다. 다른 부처와 협상해야 하지만, 강한 주장을 펼치거나 싸워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부처가 너무 약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결국은 여가부뿐만 아니라 정부 조직에 대한 전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2018년 미투운동 이후 사회 전반의 성평등에 대한 요구가 더욱 커졌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가부가 해야 할 일은 더욱 많아졌다. 여가부 무용론의 한 축은 ‘제 할 일을 해달라’는 요구와 기대이기도 하다고 여성계는 해석한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박사는 바로 이런 기대에 대한 반발(백래시 Backlash)로 대선을 앞둔 지금, 여가부 폐지론이 다시 부상했다고 진단한다.

“예전 이명박 정부 때는 여가부 폐지론에 여성계만 반발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가부 폐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크다. 이제 여가부의 존폐 여부를 두고 싸울 게 아니라 여가부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집중해야 한다. 성평등 관점에서 가족·청소년 관련 업무들도 포괄하며 창발적으로 정책들을 펼쳐나가야 한다. 외부 비난에 수세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정확하게 여가부가 뭘 하는 곳인지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의 말은 여가부에도 아프게 들릴 수 있다. “여가부는 너무 작은 부서라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측면이 있다. 체감할 수 있는 성평등 정책이 펼쳐지지 않았을 때 여성들은 ‘우리에게 국가가 있는 건가?’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사회적 조건이 무르익었다. 여가부는 정부 내 야당과 같다. 성평등 정책을 펼치기 위해 정부에 다른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 조직의 사명이다. 그게 여가부가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고,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인력·예산이 필요하다고 할 때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

참고 문헌 : 〈한국 여성운동의 국가참여 형태에 관한 연구-페모크라트의 등장과 여성운동의 제도화를 중심으로〉, 김은경, 연세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2005)

〈국가 페미니즘, 여성가족부, 여성혐오〉, 정사강·홍지아, 미디어, 젠더&문화 제34권(2019)

〈페미니즘의 도전과 젠더정책, 그리고 여성부〉, 강혜란, 민우회(2017)

〈냉전 아시아적 질서와 1950년대 한국의 여성혐오〉, 허윤, 역사문제연구 35권(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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