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정현

4월7일,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일. 저녁 8시15분에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출구조사 결과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큰 격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1시간 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방송사 출구조사 화면을 캡처해 올리며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10·20·30 나의 동지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을 잊지 않겠습니다.”

화면 속 그래프에는 연령별 출구조사 결과의 그래프가 나열되어 있었다. 그래프 속 18~29세 남성 유권자 가운데 72.5%가, 30대 남성 유권자 가운데 63.8%가 오세훈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그 게시물에 훗날 국민의힘 당대표에 오르는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선대위 뉴미디어본부장이 이런 댓글을 남긴다.

“4년간의 노력이… 오늘 와 이리 좋노.”

이준석 현 당대표가 말한 ‘4년’이란 나름 비바람을 맞은 시기를 의미한다. 그동안 하태경 의원과 이준석 대표 이름 앞의 정당 이름은 수차례 바뀌었다. 그들은 바른정당 소속으로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치렀으나 패배했다. 이후 합당(바른미래당)과 분당(새로운보수당), 또다시 합당(미래통합당)을 거치면서 오늘날 국민의힘에 이르렀다. 합당 뒤 두 사람은 당내에서도 조직이나 세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축에 속했다. 그런 시간을 겪고 난 뒤, 드디어 자신들이 수년간 주장해온 ‘20대 남성의 여론’이 수치화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이 대표에게 ‘4년’은 자신이 주장한 ‘어젠다’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데 걸린 시간이기도 했다. 이 선거 결과가 던진 화두는 몇 달 뒤 이준석이라는 30대 남성이 국민의힘 당대표에 오르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4·7 재보궐 선거가 던진 가장 커다란 화두 중 하나는 젊은 남성의 표심이다. 4년 전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지지 세력이었던 20·30대 남성들이 갑자기 보수 야당의 손을 들어준 이유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이 속에서 7월6일,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유승민 전 의원이 꺼내든 공약이 또 다른 큰 파장을 불러왔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것이었다. 같은 날 하태경 의원도 여성가족부가 ‘젠더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부처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4년 전 합리적 보수를 내세우며 바른정당을 세웠던 두 후보가 같은 날 연이어 여성가족부를 겨냥해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탄생부터 무용론 폐지론에 시달렸지만' 기사 참조). 유승민 전 의원은 2017년 바른정당 소속 후보로 대선에 나섰을 때에도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파장이 커진 것은 주목받는 국민의힘 젊은 당대표가 이 사안을 띄우는 데 나섰기 때문이다. 유 전 의원이 공약을 발표한 당일, 이준석 대표는 방송 인터뷰에서 “나중에 저희 대통령 후보가 되실 분 있으면 그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여가부 폐지론을 대선 본선에까지 주요 어젠다로 갖고 가겠다는 것이다. 당대표가 직접 특정 어젠다를 당의 전면에 내세우는 그림이 연출되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하태경 의원.ⓒ연합뉴스

언뜻 보기에는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과거 문법을 충실하게 따른다면 거대 양당 구도에서 선거는 두 가지를 잘하면 된다. 지지층의 투표율을 끌어올리고, 이념적 중도의 부동층(스윙보터)을 포섭해야 한다. 거대 양당이 부동층을 겨냥하다 보면 그들의 정책 역시 닮아가게 된다. 부동층을 자극하는 극단적인 정책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그런데 여가부 폐지는 이 전통적인 선거 전략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국민의힘에 비교적 우호적이거나 부동층이던 여성 유권자의 반발을 살 수 있다. 다만 20·30대 젊은 남성에게는 인기 있는 이슈다. 국민의힘 소속 세 정치인이 나름의 사고방식에 따라 ‘소수(20·30대 젊은 남성)를 위한 정치적 전략’을 세웠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와 두 경선 예비후보는 여가부 폐지가 더 이상 소수가 주장하는 어젠다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오히려 이 특정 연령대의 특정 성별에 호응하는 정치를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여긴다. 어떤 논리 구조 위에서 여성가족부 폐지가 다수 유권자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일까? 하태경 의원이 그동안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구상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바른정당 시절부터 따뜻하고 온건한 보수를 내세우면 유권자들이 우리를 선택할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 세대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됐다. 세대 간 자원배분이 불균형해지면서, 20·30세대와 40·50세대(민주당 지지층이 다수) 사이에서 격차가 발생했다. 적은 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세대 내에서도 격화되어 젠더 갈등으로 불거진다. 국민의힘으로 합당하며 반민주당 정서를 가진 20·30을 공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전체 유권자 파이에서 민주당을 40·50세대를 위한 소수 정당으로 전락시키고, 60대 이상과 20·30을 묶어 세대 차원으로 이들(민주당)을 포위하는 게 가능하다. 그렇기 위해 20·30세대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어젠다를 건드리고 내부 갈등을 조장하는 이들(페미니즘과 여가부)과 싸운다.’

‘세대별 샌드위치’ 구상으론 해결 못해

하태경 의원의 논리 구조 속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내부 갈등은 곧 젠더 갈등이다. 그런데 정부 부처인 여성가족부가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추기고 조장한다는 게 하 의원의 주장이다. 하 의원은 여성가족부를 ‘586을 위한 부처’로 규정한다. 그 때문에 여성가족부 폐지는 단순히 남성들로부터 표를 많이 얻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라 세대 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하 의원은 심지어 여가부 폐지가 20·30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힘이 민주당 핵심 세력과 핵심 지지층을 포위하는 ‘다수파 형성 전략’을 구축할 수 있으며, 지난 4월 재보궐 선거를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하 의원의 이 같은 논리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젠더 문제가 세대 내 경쟁과 연결되는 대목은 당사자인 20·30대 여성들을 쉽게 납득시킬 수 없을 터이다. 가령 20·30대 여성들이 제기하는 젠더 이슈 가운데 ‘안전’ 문제만 놓고 봐도 ‘경쟁’이라는 축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예컨대 남성이 주로 가해자인 SNS 성범죄의 피해를 차단해달라는 여성들의 요구를 이른바 ‘자원 경쟁’의 일환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여성가족부가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논란이 따르는 대목이다. 하 의원은 게임 셧다운제 도입, 각종 성평등 교수·학습 지도안 사례집 내용 등을 예시로 들며 현 여성가족부가 갈등을 조장하는 부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부처를 없애고, 그 기능을 쪼개 다른 부처로 넘기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방안’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또한 이 같은 ‘세대별 샌드위치(20·30과 60대 이상이 40·50을 포위)’ 구상으로는 세대 내 격차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20·30에 속하는 인구들도 상속이나 증여를 통한 극심한 ‘부(富)의 격차’에 노출되어 있다. 세대 간 자산 격차가 심각하고 이로 인해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점은 여당 인사들도 동의하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자산인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집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여당인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격차가 벌어졌다면 격차를 줄이거나 부당이익을 재분배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 여당에서는 이 문제에 대응하고자 지속적인 성장과 기본소득의 조합을 주장하거나(이재명 경기지사) 복지사회 모델(이낙연 전 대표)을 내세운다. 그러나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야권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제거한다’는 관점에 좀 더 충실하다.

2017년 12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는 여성할당제 등 페미니즘 정책을 중단하고, 여성가족부를 해체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안티페미협회 회원들.ⓒ연합뉴스

국민의힘에서 여가부 폐지 등 하태경 의원의 전략이 전폭적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같은 구상이 용인된 것은 4월 재보궐 선거의 결과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 삼아 이준석 체제가 출범했고, 이 대표에 대한 젊은 세대 남성들의 지지율이 만만찮다는 점은 여가부 폐지에 대한 논박을 어렵게 한다. 당내 한 관계자는 “저기(20대 남성)에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구체적으로 그게 무엇인지 나이 든 의원들이 알지 못한다. 이준석 당대표의 등장 이후 막연하게 ‘(20대 남성들이) 역차별 받고 있다고 느끼나 보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20대 남성에 대한 이해도는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라고 설명한다. 보수적 이념과 지역성을 기반으로 유지되어온 국민의힘이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새 지지층을 만나긴 했는데, 이 현상을 구체적으로 평가해내지는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여성가족부 폐지는 앞으로 국민의힘의 대표 어젠다로 올라설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한 내부 평가는 다소 회의적이다. 당장 지지율이 높은 후보들 사이에서 유보적이거나 비판적인 입장이 나온다. 유력 야권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7월8일 “(여가부) 폐지 문제는 제 입장에서는 조금 더 검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도 7월7일 라디오 방송에서 “역할이 별로 없다고 해서 이미 있는 부를 폐지하는 게 옳으냐는 별개로 검토해봐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홍 의원은 이틀 후인 7월9일 “현재 18개 정부 부처를 10개로 줄여야 한다”라며 입장을 조정하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여성가족부를 겨냥하며 젠더 문제를 언급하기보다는 행정조직·지자체·국회의원 감축론을 한꺼번에 꺼내들며 논의를 피해가는 모습이다.

20·30대 남성이 정말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다시 지난 4월 재보궐 선거를 돌이켜보자. 출구조사를 통해 확인된 20·30대 남성의 여론은 국민의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 집단의 투표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6월3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가장 투표율이 저조한 성별·연령대는 투표율 41.3%를 기록한 20대 후반(25~29세) 남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후반 여성의 투표율이 49.8%에 달한 것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20대 전반(20~24세) 연령대의 투표율에서는 남성(49.5%)이 여성(47.8%)보다 높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다. 그러나 30대 전반(남성 43.8%, 여성 51.5%)과 후반(남성 45.8%, 여성 51.6%)에서 모두 여성의 투표율이 남성보다 앞선다. 20·30대 남성이 하태경 의원, 이준석 대표 등의 기대만큼 유용한 득표 자원인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기존 지지층인 60대 이후 세대는 투표율 60% 이상을 기록해 여전히 야권의 ‘다수파 전략’에서 고령층 유권자 포섭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위 표 참조)

여성가족부 폐지로 대표되는 ‘소수(20·30대 남성) 전략’은 국민의힘 당내에서 아직 낯선 개념이다. 그 ‘소수’의 결집력도 저조한 상황이다. 국민의힘 내부 고민은 여기서 비롯된다. 소수 전략을 공식적으로 들이밀수록 20·30대 여성을 위한 정책을 내밀기는 어려워진다. 더욱이 20·30대 여성의 결집력은 같은 세대 남성보다 강해 보인다. 전통적인 선거 전략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기 쉬운 대선 캠프 차원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식이다.

이준석 당대표의 리더십 문제도 얽혀 있다. 과거 이 대표와 당 지도부에서 일했던 야권 핵심 인사는 지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이렇게 평가한다. “주호영 후보는 나경원 후보와 끝내 단일화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차라리 이준석 당대표 체제가 자신(주호영)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주 후보는 나 후보가 당대표로 선출되면 자신에겐 다음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터이다.”

‘모두를 위한 정치’라는 이념이 갈라지면서

국민의힘 당내에서 이준석 리더십이 탄탄하다고 보긴 어렵다는 의미다. 당대표가 여성가족부 폐지나 젊은 세대로의 침투 전략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관철하려면 당내 반발 세력을 힘겹게 설득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준석 당대표, 하태경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공약으로 획득하려는 20·30대 남성 표는 단지 뜬구름에 불과한 것일까? 세 사람의 젠더 인식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와는 별개로, 보수정당의 정치인이 나름대로 20·30대 유권자의 특수성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득표 전략으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정치권 전반에 던지는 의의가 있다.

우선 여성가족부 폐지로 젊은 세대 내 갈등을 해소한다는 주장은 몹시 생뚱맞아 보이지만, 세대 내 경쟁이 자원 부족 때문에 더욱 치열해졌다는 ‘진단’ 자체를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개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민감해진다. 더욱이 개인들의 이해관계는 각자 다르다. 한국의 대중정당들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적어도 공식적 차원에서는 ‘모두를 위한’ 혹은 ‘대다수를 위한’ 정치를 표방해왔다. 이런 정당들이 ‘개인의 이해관계’에 특별히 예민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대를 만났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대중정당은 대통령 선거 같은 전국 선거에서 개인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으로 두는 유권자를 어떤 방법으로 포섭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앞으로 닥칠 미래 환경에서 ‘모두(대다수)를 위한 정치’라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

2007년에는 ‘(대다수에게 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경제적 성공’이라는 욕망이, 2012년에는 ‘경제민주화’, 2017년에는 ‘촛불’로 상징되는 시대정신이 대중정치, 즉 ‘모두를 위한 정치’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자산 가격 폭등의 여파가 남아 있는 2022년 대선의 경우, ‘격차 해소’가 화두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또한 ‘개인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슬로건이다. 이처럼 최근까지는 대중정당들의 공식적 목표였던 ‘모두(대다수)를 위한 정치’라는 이념적 지반이 동요하며 갈라지는 틈새로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주장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한 부처의 존폐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전통적인 보수정당 내에서 새로운 ‘다수파 전략’이 제기되었고, 그 전략의 효용에 대해 앞으로 논란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한다. 소수를 움켜쥐는 공약으로 다수를 확보한다는 전략이 실제로 국민의힘에서 호응을 얻을지는 다가오는 국민의힘 예비경선 과정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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