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6월10일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연합뉴스

지난 6월10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보석으로 석방됐다. 지난해 10월28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지 8개월여 만에 출소했다.

이날 대법원 형사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김 전 차관에게 2심 재판을 다시 받으라고 판결(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았다. 항소심 유죄판결의 근거가 된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지적했다. 김 전 차관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사업가 최 아무개씨는 항소심 법정 증언 전에 검사를 만났다. 대법원은 최씨가 검사 면담 뒤 법정에서 김 전 차관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점을 문제 삼았다. 검찰이 파기환송심에서 최씨 증언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김 전 차관은 무죄를 선고받는다.

검찰은 2019년 6월 김 전 차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2013년 ‘김학의 동영상’ 의혹이 불거진 지 6년 만이었다. 검찰은 2013년 1차 수사, 2014년 2차 수사 때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두 차례 모두 ‘김학의 동영상’ 화면의 남성을 ‘김학의’라고 특정하지 않았다.

〈시사IN〉이 입수한 〈김학의 보고서〉에는 1차 수사 자료가 광범위하게 인용되어 있다. 2013년에 누가 왜 어떻게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을까? 〈김학의 보고서〉와 당시 수사를 잘 아는 관계자들을 취재해 ‘김학의 사건’을 재구성했다.

2013년 3월13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김학의 대전고검장을 법무부 차관으로 내정했다. 다음 날 언론에 ‘김학의 동영상’이 보도되었다. 경찰은 이미 동영상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발단은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내연관계였던 ㄱ씨 사이의 돈 문제였다. ㄱ씨는 윤씨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했다며 윤씨 소유 원주 별장에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두 사람은 2012년 10월부터 서로 고소·고발을 이어나갔다. 〈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윤중천씨는 아내를 통해 ㄱ씨와 자신을 간통 혐의로 고소하게 했다(윤씨와 ㄱ씨는 간통 혐의로 기소된다). ㄱ씨는 그해 11월16일 윤중천씨를 합동강간 및 상습공갈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윤중천씨에게 이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ㄱ씨는 윤씨에게 제공한 벤츠 승용차 회수에 나선다. ㄱ씨 부탁을 받은, 유명 골프선수의 아버지 박 아무개씨는 벤츠 승용차에서 이른바 ‘김학의 동영상’의 CD를 발견했다. 박씨는 이 승용차를 ㄱ씨의 허락 없이 처분해버린다. 이후 그는 ‘김학의 동영상’을 구실로 김학의 전 차관에게 연락해 돈을 받아내려고 시도한다.

박씨로부터 ‘김학의 동영상’을 전달받은 ㄱ씨는 경찰청 범죄정보과 소속 육 아무개 경감과 접촉했다. 경찰은 2013년 2월 내사에 착수했다. ‘김학의 동영상’ 보도 뒤인 3월18일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수사에 나섰다. 2013년 1차 수사의 시작이다. 이틀 뒤인 3월20일, 김학의씨는 법무부 차관직을 사퇴했다. 경찰은 윤중천 별장(3월31일)과 자택(4월2일)을 압수수색했다. 5월9일에는 윤중천씨를 소환조사한다. 한창 수사가 진행되던 중 경찰 인사가 떨어진다. ‘김학의 사건’ 수사 라인에 있던 김학배 경찰청 수사국장이 울산지방경찰청장으로(4월5일), 이세민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경찰대 학생지도부장으로(4월15일), 반기수 경찰청 수사국 범죄정보과장은 성남수정경찰서장으로(4월18일), 이명교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은 국회경비대장으로(4월18일) 전보된다. 경찰 수사 지휘 라인이 전부 바뀐 것이다.

경찰은 윤중천씨에 이어 김학의 전 차관 조사에 나선다. 김 전 차관은 출석을 거부했다. 경찰은 2013년 6월18일 검찰에 김 전 차관의 체포영장을 신청한다. 검찰은 다음 날 반려해버린다. 김학의 전 차관은 맹장수술 등을 이유로 4차례나 경찰 소환 통보에 불응한다. 결국 경찰은 6월29일 김 전 차관이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가 조사를 벌였다.

7월10일 윤중천씨를 구속한 경찰은 성폭행 혐의에 초점을 맞췄다. 7월18일 경찰은 ㄴ, ㄷ, ㄹ 여성을 특정해 윤중천씨와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해 특수강간 혐의 등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 두 사람 이외에도 16명을 입건해 역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보냈다.

ⓒ시사IN 고제규·최예린 기자

압수수색·계좌추적 대상에서 빠진 김학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윤재필)는 8월6일 윤중천씨를 사기, 경매방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그해 11월2일 김 전 차관을 비공개로 소환조사한다. 그러나 9일 뒤인 11월11일 김 전 차관을 ‘혐의 없음’으로 처분했다. 검찰은 윤중천씨에 대해서만 ‘건설사 임원에게 사업 수주를 받기 위해 300여만 원을 제공(배임증재)’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타인에게 보여준’ 혐의(협박 및 명예훼손 등)로 추가 기소한다. 이 같은 1차 수사 과정에서 성범죄나 뇌물 혐의로는 김학의 전 차관도, 윤중천씨도 기소되지 않았다. 윤중천씨는 사기 등의 혐의로만 기소되어 벌금 500만원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1차 수사 주임검사는 김수민 검사였다. 지휘 라인은 윤재필 강력부장, 박정식 차장검사,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이 낙마해, 길태기 대검 차장이 지휘 보고 라인에 있었다(아래 인포그래픽 참조). 김학의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하며 윤재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은 “‘성접대 동영상’의 실체가 불분명하고 조사할 피해 여성도 없는데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식으로 사또식 수사를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동영상에 김학의 전 차관이 등장하느냐”라고 묻자, 윤 부장검사는 “범죄사실과 관련 없는 내용이라 언급하기 부적절하다”라고 말했다. 윤재필 강력부장은 “4개월간 관련자 64명을 140회 조사하고 원점에서 압수수색, 계좌추적 등 수사했지만 혐의를 인정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대상에서 김학의 전 차관은 빠져 있었다. 검찰 수사는 여성들의 진술을 검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여성들의 피해 진술 신빙성을 탄핵하기 위해 검찰이 방대한 참고인을 소환조사하고 여성들 및 수사경찰관 사용 이메일 계정까지 압수수색하는 등 이율배반적 적극성”을 보였다고 〈김학의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검찰은 ‘윤중천·김학의 대 피해 여성들’의 구도로 접근해 여성들의 진술 신빙성을 탄핵하는 데 수사를 집중했다”.

윤중천·김학의 전 차관이 성범죄 혐의로 기소조차 되지 않자, 2014년 7월9일 ㄴ씨가 ‘김학의 동영상’에 나오는 여성이 자신이라며 두 사람을 특수강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다. 이게 2차 수사의 시작이다. 당초 검찰은 2013년에 김학의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한 바 있는 검사에게 다시 사건을 배당한다. ㄴ씨가 항의하자 검사를 교체했다. 검찰은 ㄴ씨를 소환조사한 뒤 2차 수사를 끝냈다. 2015년 1월7일 서울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강해운)는 윤중천씨와 김 전 차관의 성범죄 혐의에 대해 다시 무혐의 처분한다. 검찰은 ㄴ씨가 동영상 속 여성인지 불분명하다며 이때도 ‘김학의 동영상’ 속 남성을 특정하지 않는다. 2차 수사는 1차 수사 기록을 바탕으로 고소 사건을 묵혔다가 처리한 셈이다.

〈김학의 보고서〉의 상당 부분은 윤중천·김학의 성폭행 혐의에 대한 ㄱ, ㄴ, ㄷ, ㄹ씨의 진술에 배분되어 있다. 경찰과 검찰 수사 때 진술한 내용이다. 여성들의 피해 진술을 두고 과거사 진상조사단 조사8팀 단원들은 다수의견(제1안)과 소수의견(제2안), 그리고 별개의견(제3안)으로 나뉘었다(‘나’를 읽고 배심원이 되어주세요 기사 참조). 조사8팀 소속 최준환 검사가 작성한 제1안은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했다기보다 성접대에 동원되었다고 보았다. 김영희·배진수 변호사가 작성한 제2안인 소수의견은 여성들의 성폭행 진술에 주목했다. 제3안은 ‘김학의 전 차관의 출국을 직권을 남용해서 금지한’ 혐의로 기소되어 있는 이규원 검사의 의견으로, ‘평가 유보’였다. 여성들의 진술에 대한 평가가 갈렸지만 조사8팀은 ‘김학의 사건’ 관련 수사에 ‘의혹이 있다’는 점에 관해서는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김학의 보고서〉에 기술되어 있다. 이 외에도 보고서는 검찰의 이른바 부실 수사 혹은 봐주기 수사 의혹, 검경 부실 수사의 원인, ‘김학의 동영상’ 외 추가 동영상의 존재 가능성, 성접대 동원 여성들 내지 성폭력 피해 주장 여성들의 피해 여부 등에 대한 조사8팀의 의견을 담고 있다(암장 사이트 darkgate.sisain.co.kr 참조).

2019년 6월 검찰 과오와 관련해 대국민 입장을 밝히며 고개 숙이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 ⓒ연합뉴스

〈시사IN〉은 〈김학의 보고서〉 전문 1249쪽을 변호사 4명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의뢰했다. 각각 전문성과 성별을 고려해 검찰 출신 변호사, 판사 출신 변호사, 재심 전문 변호사, 젠더 전문 변호사를 선정했다. 이들은 익명 인터뷰를 조건으로 평가에 응했다(“피의자가 검사라 애써 수사하지 않은 사건” 기사 참조).  

〈김학의 보고서〉를 본 변호사들은 2013년 1차 수사의 문제점을 세 가지로 압축했다. 먼저 뇌물 혐의로 강제수사를 하지 않은 점이다. 김 전 차관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여러 여성들의 진술에서 확인된다.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적어도 뇌물 혐의로는 검찰 수사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1차 수사 검사는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경찰 송치 사건이므로 경찰이 송치한 죄명과 범죄사실에 충실히 수사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해명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윤중천이 아무런 대가 없이 김학의에게 성접대를 했겠나. 공무원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으면 검사는 당연히 뇌물 혐의를 떠올려야 한다. 사법시험 준비할 때 수험서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뇌물죄 구성요건인 재산상 이익에는 향응, 즉 성접대도 포함된다. 아마 수사 검사도 뇌물 혐의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쪽으로 안 간 거다.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다. 뇌물죄 공소시효 핑계를 대서도 안 된다. 조사해보고 시효를 따져도 된다”라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검찰 출신 변호사는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압수수색을 피할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성폭행 혐의로 수사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만 특정하면 되니까 압수수색 필요성이 떨어진다. 그런데 성접대로 보고 뇌물 혐의로 수사하면 압수수색이 기본이다. 김 전 차관에 대해 통신, 계좌, 자택, 사무실 등 광범위하게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압수수색이다. 언제 어디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 메모지 한 장에서 뇌물 혐의와 관련한 유력 증거가 나올 수 있다. 그런 경우가 꽤 있다.”

“검찰 고위 간부가 연루되지 않았다면…”

김학의 전 차관은 2013년 1차 수사, 2014년 2차 수사 때도 압수수색을 당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압수수색은 2019년 4월에야 처음 이뤄졌다. 〈김학의 보고서〉를 검토한 변호사들은 “검찰 고위 간부가 연루되지 않았다면 검찰이 이렇게 사건을 처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3년 1차 수사와 비슷한 시기에 윤중천·김학의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한 식품업체 대표가 공공기금을 지원받게 해달라며 경기도 안성시 공무원 두 사람에게 4차례에 걸쳐 성접대 등 800여만 원 상당의 뇌물을 건넸다. 식품업체 대표는 뇌물공여 혐의로, 성접대를 받은 공무원들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었다. 2013년 2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가 기소한 사건이다. 같은 해 11월,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검사들은 김 전 차관을 ‘혐의 없음’으로 처분했다. 2013년 2월 형사3부 사건(안성시 공무원)과 11월 강력부 사건(김학의)은 뇌물을 준 쪽은 사업가, 받은 쪽은 공무원으로 구조가 똑같다. 다른 점은 11월 사건에서 성접대 등 뇌물을 받은 쪽이 검찰 고위 인사였다는 점이다.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성접대 의혹’ 사건 현장인 강원도 원주 별장.ⓒ시사IN 이명익

여성들의 성폭행 진술에 주목한 소수의견에 동의한 변호사들도 있었다. 검찰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들의 진술 전체를 탄핵할 게 아니라 행위별로 분류한 뒤 윤중천·김학의를 성폭행 혐의로 기소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의 말을 들어보자.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 피해 여성들을 접대부로 단정하고 성폭행이 아니라는 논리로 연결시켰다. 경찰 송치 내용을 보더라도 여성들은 최초 1회나 2회 윤중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윤중천은 성폭행으로 여성들을 굴복시킨 뒤 이후 성접대를 강요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런 동일한 패턴이 보이는데도 검찰은 성폭행 혐의를 전부 무시했다. 사실상 ‘피해자 심판 수사’로 보인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 의지가 있었다면 성폭행 혐의를 ‘주위적 공소(주된 범죄사실)’로, 성접대에 해당하는 뇌물 혐의를 ‘예비적 공소(주위적 공소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추가하는 공소사실)’로 삼아 기소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역시 유사 사례가 있다. 검찰은 지난해 1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과 관련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검찰은 재판 도중 예비적 공소사실로 직무유기 혐의를 포함시켰다.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라는 상충되는 법리를 공소사실에 동시에 담아 재판부에 판단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의 수사 의지가 조국 전 장관에 대해서는 날카롭기 짝이 없었지만 김학의 전 차관 앞에서는 터무니없이 무뎠던 셈이다.

〈김학의 보고서〉를 검토한 변호사들이 지적하는 1차 수사의 또 다른 문제점은 윤중천 개인 비리를 무혐의 처분한 대목이다. 2013년 1차 수사 당시 윤중천씨는 저축은행 전무 김 아무개씨를 통해 320억원을 불법 대출한 혐의를 받았다. 윤씨는 대출 과정에서 김 전무에게 주택을 제공했다. 불법 대출금을 받아 사용한 이도 윤중천씨였다. 당시 김 전무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배임)로 구속기소되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윤재필)가 정작 윤중천씨에 대해서는 ‘배임행위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며 무혐의로 처분했다. 저축은행 김 아무개씨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권 남용이라고 항의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도 “윤중천씨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아 형평성에 어긋난다”라며 김 전무의 형량을 감형해주기도 했다. 배임 공모 무혐의 처분과 관련해 “김학의를 비롯한 검찰 관계자들에 대한 윤중천의 폭로성 진술을 막기 위한 방편은 아니었는지 사실관계를 규명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김학의 보고서〉는 지적한다.

ⓒ시사IN 고제규·최예린 기자

1차 수사 당시 윤중천씨는 김학의 전 차관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진술하지 않았다. 윤씨는 “김학의를 알긴 아는데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고 그래서 김학의가 별장에 올 정도의 사이도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김학의 전 차관도 윤중천씨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1차 수사 때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씨가 언제, 어디서, 누구 소개로 만났는지 기초적인 사항도 밝히지 못했다.

그렇게 ‘김학의 사건’은 암장되었다. 6년 뒤 과거사위원회 조사가 진행되던 와중인 2019년 3월22일 김학의 전 차관은 한밤중에 출국을 시도했다. 과거사 진상조사단 조사8팀 이규원 검사가 출국금지 신청서에 1차 수사 때 무혐의 처분한 사건 번호를 붙여 출국을 막았다.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으로 이 검사는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되었다(청와대로 향하는 네 갈래 후폭풍 기사 참조).

2019년 3월25일 과거사위원회는 김학의 전 차관을 뇌물 혐의로 수사하라고 대검에 권고한다. 또 1차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곽상도 민정수석과 이중희 민정비서관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은 당초 김 전 차관을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했다. 그러던 와중에 ‘석연치 않은 경위’로 혐의를 성폭행으로 바꿨다. 〈시사IN〉은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를 만나 왜 성폭행 혐의로만 수사했는지 물었다. 이 관계자는 “김학의라는 검찰 고위직이 포함된 사건이었다. 검사가 수사 대상이면 그동안 검찰이 영장을 내준 적이 없다. 윤중천에 대한 통신이나 계좌추적 영장도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여성들의 구체적인 진술이 있었기 때문에, 김학의 전 차관을 합동강간 혐의로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석연치 않은 경위’와 관련해 〈김학의 보고서〉는 “경찰과 검찰 수사에 함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곳은 현실적으로 당시 청와대 이외에는 상정하기 어렵다”라고 썼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뇌물 및 성접대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건설업자 윤중천씨. ⓒ연합뉴스

과거사위원회 권고에 따라 2019년 3월29일 대검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3차 수사팀)’을 꾸렸다. 특수통인 여환섭 당시 청주지검장이 수사단장을 맡았다. 조종태 당시 성남지청장이 차장을 맡고 부장검사 3명, 평검사 8명으로 3차 수사팀이 꾸려졌다. 이 3차 수사팀 유 아무개 검사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폭로한 ‘라임 술접대 사건’에 연루되었다(낮엔 김학의 수사하고 밤엔 술접대 받고 기사 참조). 낮에는 검찰 스폰서 악행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가, 밤에는 검찰청사 문을 나가 접대를 받은 셈이다. 법무부는 지난 5월31일 대검에 유 검사 징계를 요청한 상태다.

2019년 3차 수사는 검찰 자의로 시작한 수사가 아니었다. 김 전 차관의 한밤중 출국 시도로 특검 요구까지 빗발쳤다. 비판 여론이 일자 대검이 자체 수사팀을 꾸린 것이다. 당시 수사팀은 진상규명에 대한 3대 과제를 안았다. 1차·2차 수사 때 ‘김학의 사건’이 왜 묻혔는지, 윤중천씨와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해 처벌이 가능한지, 김 전 차관 외 윤중천씨로부터 성접대나 뇌물을 받은 공직자들은 누구인지 등이다.

3차 수사팀은 이 세 가지 의혹 가운데 윤중천·김학의 처벌에만 주력했다. 윤중천·김학의 두 사람만 구속기소하고 끝냈다. 3차 수사팀은 1차·2차 수사에 관여한 전현직 검사 8명을 12차례 조사했다고 밝혔다. 2019년 6월4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여환섭 수사단장은 “혹시 (과거 1차·2차 검찰 수사팀이) 외압을 받아서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았는지, 소극적으로 수사한 건 아닌지 조사했다. 더 엄격하게 조사를 하려면 (검사들을) 입건해야 한다. 입건하려면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검사 징계의 시효는 3년이며 직무유기 공소시효 역시 5년에 불과하다. 시효 만료로 더 이상의 수사를 못했다는 것이다. 6월25일 ‘김학의 사건’ 등을 사과한 문무일 검찰총장도 “(1차·2차 수사 검사들에 대해) 그럼 왜 문책을 안 하느냐’는 얘기가 나오지만 법률상 문책 시효가 지났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검찰 스스로 공소시효에 연연하지 않고 수사에 나선 적도 있다. 2016년 진경준 검사장의 ‘넥슨 주식 대박 사건’ 때다. 역시 검찰 스폰서 의혹 사건이었다. 당시 대검은 “국민적인 비판 여론을 감안해 공소시효 만료 여부를 떠나 사실관계를 명확히 따져보겠다”라며 특임검사를 임명해 수사에 나섰다. ‘선 수사, 후 시효 검토’였다. 김학의 1차 수사 상황을 잘 아는 경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김학의 사건’은 한마디로 검찰이 제 식구(김학의)를 감싸려고 덮은 사건이다. 그런 검찰이 시효를 이유로 다시 제 식구(1차·2차 수사팀 검사)를 보호했다.”

공소시효 들어 다시 제 식구 감싸기?

3차 수사팀은 과거 1차·2차 수사에 대한 내압도 외압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곽상도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 이중희 당시 민정비서관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며 불기소했다. 수사 도중 경찰 수사 라인이 바뀐 인사도 정상이라고 3차 수사팀은 결론을 내렸다.

3차 수사팀은 ‘윤중천 리스트’와 관련한 수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과거사위원회는 2019년 5월 3차 수사팀에 한상대 전 검찰총장, 윤갑근 전 검사장, 박충근 전 춘천지검 차장 등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세 사람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6일 뒤 3차 수사팀은 수사에 착수할 단서가 없다며 수사를 종결했다. 원주 별장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명함이나 윤중천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 등은 수사단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 발표 뒤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윤갑근 전 검사장 등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민형사 소송을 냈다.

3차 수사로 윤중천·김학의는 구속기소되었다. 김학의 전 차관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었다. 김 전 차관의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로 재판부마다 뇌물 혐의 판단을 달리했다. 윤중천씨는 강간치상, 사기, 알선수재, 공갈미수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 여성 ㄴ씨에 대한 성폭행(강간치상) 혐의도 포함되었다. 1심, 2심 그리고 대법원은 윤씨의 성폭행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윤씨는 사기, 알선수재 등 혐의만 인정되어 5년6개월 형을 확정받았다. 윤중천씨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 손동환 부장판사는 2019년 11월15일 법정에서 특별히 피해 여성을 언급했다. 손 부장판사는 “피해자들은 국가 형벌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좌절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2013년 당시 적절하게 검찰의 수사권·공소권을 행사했다면 피고인(윤중천)은 적정한 죄목으로 형사법정에 섰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검찰의 뒤늦은 기소로 윤중천씨의 성범죄, 김학의 전 차관의 성접대 뇌물 혐의는 법적으로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성접대 무죄의 이유 검찰의 ‘지각 기소’ 기사 참조).

2013년 누가 왜 어떻게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을까? 3차 수사팀까지 관련 수사를 외면하면서 미궁으로 빠졌다. 이렇게 ‘지연된 정의’마저 암장되었다. 과거사 진상조사단 활동으로 검찰이 어떻게 이 사건을 암장했는지 그 흔적의 일부가 〈김학의 보고서〉에 담겨 있다.

기자명 고제규·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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