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인 관련 코로나19 확진자가 퍼져 나가던 지난 1월, 서울역 광장의 노숙인들. ⓒ연합뉴스

서울역 부근에서 거리 노숙을 하는 이재남씨(가명·56)는 5월4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았다. 본인이 코로나19 백신접종 대상자라는 건 노숙인종합지원센터(노숙인 센터)에서 나온 거리 상담원을 통해 알게 됐다. 상담원은 서울역 광장의 노숙인 센터에서 접수하고, 접종도 그곳에서 받으면 된다고 했다. 이씨는 며칠 뒤 노숙인 센터에 가서 백신을 맞았다.

대다수 시민들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백신을 맞는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전파할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목적도 있다. 그가 서둘러 백신을 맞은 사연은 꽤 다르다. “내가 올해만 코로나19 검사를 열여덟 번 받았다니까? 너무 지겨워. 코로나19 검사만 안 받을 수 있으면 백신주사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맞을 수 있어.”

지난 1월 중순, 노숙인 센터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이 서울역 노숙인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약 한 달간 노숙인 100여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던 당시, 서울시는 7일 이내에 발급된 ‘코로나19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만 노숙인들이 관련 지원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노숙인들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하거나, 잠시 몸을 누일 곳을 찾기 위해 반복적으로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 시대, 거리의 노숙인은 이중고에 시달린다. 정부의 거리두기 지침을 지킬 수 없는 이들은 고스란히 집단감염 위험에 노출됐고, 방역을 이유로 식사 등 복지를 제공하던 지원기관의 이용 문턱은 높아졌다. 이재남씨가 백신접종을 간절히 기다렸던 이유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 장애인 시설 거주·이용자, 결핵 및 한센인 시설 거주자 등과 함께 노숙인을 2분기 우선접종 대상자에 올렸다. 6월17일 서울시는 ‘노숙인 코로나19 1차 백신접종 현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노숙인 접종 대상자 2953명 중 2339명이 예방주사를 맞았다. 접종률 79.2%로 취약시설 평균 접종률인 88.1%에 비하면 낮지만 전반적으로는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착시일 수 있다. 서울시 노숙인 접종 대상자 수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서울시 각 자치구에서 ‘카운팅’한(숫자를 센) 결과에 기반한 것인데, 그 카운팅 자체가 대개 노숙인 지원기관이 소재한 자치구 중심으로 이뤄졌다. 노숙 지역 인근에 노숙인 지원기관이 없는 노숙인들은 빠졌을 확률이 높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생활시설(중장기 체류를 지원해주는 시설, 88.16%)이나 이용시설(단기 체류 등을 지원해주는 시설, 89.4%)을 통해 접종받은 노숙인에 비해, 어떤 노숙인 시설에도 머물지 않은 ‘거리 노숙인’들의 1차 백신접종률(43%)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애초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거리 노숙인 수까지 고려하면 실제 노숙인 백신접종률은 훨씬 더 떨어질 수 있다(오른쪽 위 그림 참조).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박동석씨(가명·64)는 아직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백신접종을 꺼렸던 건 아니다. 지난 2월 박씨는 흰 종이에 크게 “코로나19 함께 이겨내요. 파이팅! 조금 떨어져서, 얘기해요”라는 문구를 적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게끔 박스에 붙여서 화단 위에 걸쳐두었다. 또 다른 팻말에는 ‘코로나19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전 국민 백신주사’를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씨는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아서’ 백신을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숙인 센터에서 나온 상담원은) 맞을 거냐, 안 맞을 거냐만 반복해서 물어본다. 백신에 대한 설명은 따로 없었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줄 창구는 없고 서울역에 나와 있는 일부 종교단체들은 적극적으로 백신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트렸다. “‘백신을 맞으면 죽는다’고 하더라. 이 생활(거리 노숙) 하면 건강상태가 나쁘지 않나. 안 그래도 불안한데 저기서 위험하다고 하면 더 불안하다. 노숙인 센터에서 백신이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텐트 안에서 밤새 끙끙 앓았다”

최근 ‘거리 홈리스(노숙인) 코로나19 예방접종 실태조사’를 벌인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거리 홈리스들은 백신에 대한 오해가 가득했던 1월에 머물러 있다. 접종 후 이상반응에 대처하기도 어렵고, 2차 접종 날에 맞춰서 갈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백신을 맞지 않는 건 거리 홈리스들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실질적으로 이들에게 백신접종이라는 선택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예방접종 후 안정을 취할 곳도 마땅치 않다. 최홍조 건양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안정적인 주거 상태가 없는 상황에서 백신접종을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고 짚었다. 질병관리청(질병청)은 이상반응에 대비해 백신접종 후 최소 3일간 주의를 기울이라고 안내한다. 용산역 인근 텐트촌에서 지내는 신진호씨(가명·60)는 5월4일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그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프고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텐트 안에서 밤새 끙끙 앓았다.”

서울시에서는 이상반응을 고려해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노숙인들에게 일시 보호와 임시 주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백신접종 후 일시 보호나 임시 주거를 제공받은 사례는 소수였다. 일시 보호 33명, 임시 주거 14명에 그쳤다. 노숙인들에게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다. 신씨는 임시 주거 지원을 받은 14명 중 한 명이다. 하룻밤을 텐트 속에서 앓고 난 다음 날 오후 서울시가 마련한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는 “방에 들어가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백신을 맞은 뒤에야 접종 후 주거지원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접종 안내를 할 때부터 이런 사항을 알려주면 노숙인들이 더 안심하고 백신을 맞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7일 이내에 발급된 ‘코로나19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만 노숙인들이 관련 지원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시사IN 이은기

백신접종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다만 온라인으로 접종을 예약할 수 있고, 스마트폰으로 이상반응을 신고할 수 있으며, 일정 기간 집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등의 조건은 생각보다 ‘누구에게나’ 갖춰져 있지 않다. 거리 노숙인들의 접종 문턱 사례들이 이를 보여준다.

7월부터 1차 접종을 마친 노숙인을 대상으로 2차 접종이 실시된다. 서울시는 ‘노숙인 맞춤형 백신접종’을 추진하고 1차 미접종자는 7월 중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질병청도 특정 대상군 접종일 운영, 방문 접종 등 대상자 특성에 따른 계획을 수립해 7월부터 시행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추적 관찰이 어렵고 기저질환이 많은 거리 노숙인의 특성에 맞춘 코로나19 예방접종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중이다. 코로나19 집단면역을 달성하는 과정은 이렇게, 그간 사회가 인식해온 ‘집단’에서 누락된 이들이 누구였는지 한 번 더 살펴보게끔 만들고 있다.

기자명 이은기 수습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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