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일 KBS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예비경선 첫 합동 토론회에 앞서 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낙연 캠프 제공

더불어민주당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이 7월1일 막을 올렸다. 예비후보 9명(이광재 후보는 7월5일 정세균 후보와 단일화 후 사퇴)이 8일간 TV 토론 네 차례, ‘국민면접’ 세 차례 등 총 일곱 차례에 걸쳐 당원과 유권자들에게 검증받았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예비경선 전체 일정은 지역 순회 연설 없이 진행됐다. 이 때문에 기존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후보들이 놓인 미디어 환경도 전통적인 정치 문법과는 사뭇 달랐다.

이번 예비경선의 특징은 대규모 합동연설회 대신 ‘비대면 행사’를 늘렸다는 점이다. 민주당 경선기획단(공동단장 강훈식 의원)은 이 과정에서 당내 경쟁을 ‘콘텐츠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런 특징은 세 차례 국민면접에서 도드라진다.

7월4일에 열린 ‘2차 국민면접’과 7월7일에 마련된 ‘3차 국민면접-정책 언팩쇼’는 면접과 발표회 형식을 차용해 눈길을 끌었다. 정치적 수사를 동원하는 데 익숙한 후보들로서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일부 후보는 마이크를 쥔 손이 떨리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경선과 면접이라는 언뜻 조화롭지 못한 이 조합은 그래도 나름 화젯거리가 될 법한 발언을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7월4일 1대 3 면접에 나선 이낙연 후보는 “조국 장관 임명 당시 어떤 의견을 냈느냐”라는 면접관(김해영 전 의원) 질문에 “(조국 장관을 임명)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대통령에게) 드렸다”라고 답해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7월7일 정책 언팩쇼도 정치를 다른 영역의 문법과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언팩’은 언패키지(포장을 뜯다)의 준말로, 신제품을 출시하는 기업의 상품 설명회에 해당한다. 경선기획단은 민주당 후보의 면면을 마치 신제품 라인업처럼 소개하고, 각자의 매력도와 정책을 강조하고 설명함으로써 영업 효과를 기대했다.

경선기획단이 생각한 언팩 행사의 핵심은 제품의 스펙, 곧 후보의 정책과 매력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성 정치 문법을 중시한 개별 정치인의 전략과 엇박자가 발생했다. 일부 후보들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는 대신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서 김대중·노무현을 잇는 정통성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정당은 ‘후보 라인업’을 소개하고 진영의 풍요로움을 대외적으로 내세우고 싶었지만, 개별 정치인의 합리적인 선택은 당내 경선을 위한 ‘당원 표심’을 겨냥하는 데 쏠려 있었다.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들도 눈에 띈다. 가장 실감나는 부재(不在)는 ‘조직’이다. 전국 순회 연설이 가능했던 2012년 제18대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 당시에는 카메라가 각 지역, 각 후보의 지지층을 자연스럽게 화면에 담아냈다. 그러나 후보를 콘텐츠화하는 데 집중한 이번 예비경선에서는 조직이나 지지층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영상 콘텐츠에서 독자는 실시간 댓글 등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개인’의 댓글이 등장할 뿐, ‘군집’으로 드러나는 존재감은 오프라인 순회 연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팬데믹이 만들어낸 풍경이지만, 지지층과 상호작용하기를 바라는 후보들로서는 아쉬울 법한 대목이다.

지역이 사라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 지역 순회 연설에서 각 후보들은 각 지역 유권자(당원 등)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해당 지역에 맞는 연설문을 준비한다. 그러나 경선이 콘텐츠로 바뀌면서 특정 지역을 언급하는 후보는 찾기 어려웠다. 도지사 출신인 김두관·양승조·최문순 예비후보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문제를 언급하긴 했지만, 온라인 콘텐츠라는 특성상 특정 지역을 겨냥하는 발언이 두드러지진 않았다. 모두 현장과 연설이라는 대중정치의 중요한 두 요소가 사라지면서 발생한 부수적 효과였다.

예비경선은 일종의 예고편 성격을 띤다. 그런데 이 ‘예고편’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정당은 ‘다중 채널 네트워크(MCN)’를 자처하게 되었다. MCN이 유명 스트리머나 유튜버를 모아 영상의 질을 세련되게 끌어올리는 것처럼, 민주당은 각 예비후보의 캐릭터를 부각시킬 수 있는 ‘자체 콘텐츠’를 제작해 연설회를 대체하려 했다. 하지만 ‘독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당내 반발에 부딪히는 문제가 발생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김경율 회계사의 면접관 임명과 철회 사태다. 당초 민주당은 김 회계사를 7월4일 2차 국민면접 행사에 섭외해 면접관이 면접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그림을 고려했다. “상대 진영의 공세를 먼저 경험해야… 언론의 주목도도 높일 수 있다(7월6일 강훈식 공동단장 라디오 인터뷰)”라는 게 당초 목표였다. 그러나 당내 반발이 거세지면서 결국 이 안은 철회되었고, 대중적으로 화제성을 끌어모으려던 기획단과 ‘우리 팀의 대표선수를 뽑는다’고 생각하는 당원·지지층의 인식 차가 드러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예고편(예비경선)은 뉴스의 집중도를 높인다는 목적은 이룬 셈이 되었다. 8일 중 7일 동안 일정이 잡혔고, 면접·토론 때마다 설전이 뒤따르며 정치인의 ‘말’이 주목받았다. 다만 흥행을 이끌었던 요소가 당초 기획단이 의도한 ‘정당 후보 라인업의 매력과 정책’이 아닌, 자극적인 설전이라는 점은 민주당으로서도 부담이다.

8월 본경선도 비대면·스튜디오형으로

각 후보에게 돌아가는 질문이 제한적이고 반복적이라는 점도 이번 ‘콘텐츠화’의 한계 요소다. 가령 박용진 후보에게는 ‘법인세·소득세 감면의 부작용’을, 정세균·이낙연 후보에게는 ‘현 정부 총리 출신으로서 부동산·인사 문제의 책임’을, 이재명 후보에게는 ‘기본소득 1호 공약 여부’를 묻는 질문이 반복되었다. 이재명 후보의 경우 7월5일 2차 TV 토론 도중 개인 사생활 의혹을 묻는 질문에 “바지 다시 내릴까요”라고 답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 후보의 이 같은 발언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신체 특정 부위에 점이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자, 병원을 찾아 신체검증을 받았던 과거 사례를 언급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서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거친 언행으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이었다.

문제는 컷오프 이후 8월로 예정된 본경선이다. 민주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때만은 정공법인 권역별 순회 경선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선관위 안이 확정될 경우, 8월7일 대전·충남을 시작으로 9월5일 서울 지역에 이르기까지 총 11개 지역에서 순회 경선이 펼쳐진다. 그러나 팬데믹 여파로 인해 이러한 일정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7월7일부터 일일 신규 확진자가 1000명대를 넘어서면서 본경선일지라도 일정을 미루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4월6일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경선 후보는 청중 앞에서 “이런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라는 연설로 경쟁 후보들의 색깔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다. 이처럼 대중 연설은 당내 경선에서 가장 중요한 흥행 요소 중 하나지만, 이번 본경선에서는 이런 장면을 볼 수 있으리라 확신하기 어렵다. 당초 순회 경선은 지지층이 현장을 직접 방문케 하려 했지만 코로나19 재유행이 더 커지면 대규모 집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 본경선 역시 ‘예고편’처럼 비대면·스튜디오형으로 꾸려질 수밖에 없다. 이는 8월 경선을 계획 중인 국민의힘 역시 마찬가지다. 대중정치의 정점인 대선 앞에서 정당은 전례 없던 판을 깔아야 하고, 정치인은 ‘사자후’를 대신할 무기를 찾아야 한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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