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용성의 음악은 기존 포크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개발’한다. 익숙한 문법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이끌어낸다. ⓒGoogle 갈무리

지금 이 순간에도 무너지는 삶이 있다. 수몰되는 세계가 있다. 시급한 것이 곧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는 현대에서 어떤 삶과 세계는 끝내 침묵의 커튼 뒤로 사라진다. 그러고는 호명되지 않는다. 그 호명되지 않는 삶을 끈질기게 노래하는 사람이 있다. 진실의 호루라기를 나지막하게 부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천용성이다.

위의 단락처럼 글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저런 종류의 글이 줄 수밖에 없는 인상, ‘혹시 음악이 너무 예스럽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렇지 않다. 적어도 천용성의 음악에 관한 한 저 인상은 완전히 틀렸다고 확언할 수 있다. 사운드만 놓고 봤을 때 천용성의 음악은 현대적인 포크다. 포크가 아니기도 하다. 어떤 절묘한 순간에 그는 재즈가 되기도 하고, 피아노 선율을 기반으로 하는 감성적인 싱어송라이터가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트럼펫 연주자를 동원해 노스탤지어를 강하게 자극하기도 하는데 이 순간의 천용성은 정말이지 근사하다.

기실 천용성은 비평의 세례를 한껏 받은 축에 속하는 뮤지션이다. 정규 1집 〈김일성이 죽던 해〉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반향 속에 2019년 최고작 중 하나로 꼽혔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도 ‘최우수 포크 앨범’과 ‘최우수 포크 노래’를 모두 수상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천용성이라는 뮤지션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가끔씩 나를 좌절하게 한다. 그리하여 이 좋은 음악이 왜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지 못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정규 1집에서 빛난 곡은 타이틀인 ‘김일성이 죽던 해’를 비롯해 ‘대설주의보’ ‘난 이해할 수 없었네’ 등이었다. 갓 발매한 2집에서 천용성은 음반 전체의 완성도를 놀랍게도 더욱 끌어올렸다. 빠지는 곡이 하나도 없다. 이미 싱글로 발매한 ‘중학생’은 다시 들어도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수몰’ ‘식물원’ 등에서 들을 수 있는 편곡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구석이 있다.

2010년대 이후 인디 신에서 나는 천용성보다 편곡을 잘하는 뮤지션을 거의 보지 못했다. 드럼, 플루트, 클라리넷 등을 활용한 ‘있다’의 편곡은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이라 할 만하다. ‘식물원’의 후반부 편곡도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다.

김사월, 김해원, 김제형, 정밀아, 강아솔도 있다

여러분은 포크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 통기타, 마이크, 사람의 목소리. 뭐 이 정도일 테다. 1970~1980년대 한국 포크를 좀 안다고 자부하는 독자도 어쩌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달라도 많이 다르다. 한국에만 해도 포크라는 익숙한 문법에 지독히도 밝은 빛을 비춰 거기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이끌어내는 싱어송라이터가 여럿이다. 당장 떠오르는 이름만 해도 천용성을 비롯해 김사월, 김해원, 김제형이 있다. 정밀아도 있고, 강아솔도 있다.

그러니까, 다 안다고 쉬이 여기는 포크를 검토하고 뜯어보고 여러 각도에서 쿡쿡 찔러 가능성을 길어 올리는 싱어송라이터가 ‘있다’. 그것도 많이 있다. 그들은 가사를 통해 생각의 보트를 뒤흔들고 현대적인 사운드로 기존 포크에 대한 고정관념을 (혁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재개발한다. 그리고 여기에, 그 맨 앞줄에 마땅히 새겨질 이름이 있다. 천용성이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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