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샘(‘허아람 선생님’의 애칭) 강의를 들으면 피가 뜨거워진다.” 한 수강자는 말했다. 허아람씨(인디고서원 대표)는 살아온 이력부터가 뜨겁다.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라니, 그것도 부산에서.’ 모두가 손가락질할 때 그 꿈을 이뤘다. 5년 전 일이다. 이곳에서 자란 ‘인디고 아이들’은 이미 세상을 여러 차례 놀라게 했다. 자기네가 만드는 잡지 〈인디고잉〉에 슬라보예 지젝, 사이먼 블랙번, 무하마드 유누스 등 세계적 석학의 기고를 받아내는가 하면, 지난해 대형 출판사도 기획하기 어렵다는 국제 도서전(인디고 유스 북페어)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제자들과 함께 강의장에 들어선 허씨는 “아직 혁명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혁명을 위한 싹은 뿌렸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최근에 읽은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로 얘기를 시작하겠다. 전쟁이 나면 사람도 그렇지만 동물도 끔찍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책은 이라크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남아공에서 이라크로 날아가 동물들과 함께 6개월간 사투를 벌인 로렌스 앤서니의 실화를 다루었다. 현재 영화로도 제작 중이라 한다.

여러분, 상상하실 수 있겠나? CNN에서 오락 같은 총격전을 보면서 그 속에서 신음하는 생명을 떠올릴 수 있나? 앤서니는 그랬다. 물도 먹이도 없이, 치우지 못한 배설물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갈 그곳의 동물들을 본능적으로 떠올리고, 그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이라크로 향하면서 그는 수많은 사람에게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라크에 도착한 뒤 그는 동물원 동물 중 88%가 죽어 있고, 나머지만이 살아 신음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당장에라도 총으로 이들을 죽여주는 게 이들의 존엄을 지키는 게 아닐까 싶은 현장이었다. 그 속에서 그는 물과 먹이를 구하기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물 한 동이를 얻기 위해 쿠웨이트 국경을 넘고, 난민들에게 물동이를 빼앗기기도 한다. 그래도 행복한 것은, 로렌스가 이라크에 도착한 순간부터는 동물이 단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

그렇게 동물들을 살려놓고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돌아와 가족과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던 중 로렌스는 이라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술 취한 미군 병사 총에 맞아 벵갈호랑이가 죽었다는 소식이다. 이게 책의 마지막 대목인데, 읽으며 꺼이꺼이 울었다. 요즘 인디고 서원 아이들과 이 책을 놓고 토론 중이다. 주제는 ‘우리들의 동물원은 무엇인가’이다. 여러분께도 이 질문을 드리고 싶다. 여러분에게도 본능적으로, 1초 만에 달려가 지켜야 할 동물원이 있을 거다. 때론 그 가치가 뭔지 몰라 광야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할 분도 있을 거다.

ⓒ전문수부산에서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인디고서원’을 운영 중인 허아람씨(위)가 5월19일 강단에 섰다.
인디고서원 홈페이지 한 줄 토론방에 유진재라는 친구가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라는 제목으로, 이런 독후감을 올렸다. “말을 못하는 자들은, 진짜로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 말을 하는 자들이며, 우리가 듣지 않으려는 자들일지도 모릅니다. (중략) 로렌스는 동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내 친구들 중에 바그다드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소외된 친구는 없나요? 내 이웃 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은 없나요? 인간의 건물을 짓기 위해 잘려나가는 나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나요?”하워드 진의 답변이 준 진한 감동

감동적이지 않나? 박수 좀 쳐달라(웃음+박수). ‘용기와 사랑 외에는 거의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세계와 소통한 지 5년이 다 돼간다. 그간 인디고서원을 만든 나도, 서원에 모인 청소년도 자유를 향해 끊임없이 현실의 벽을 넘어왔다. 인디고가 지난 5년간 해온 다양한 활동 중 가장 먼저 소개해드리고 싶은 게 ‘2008 인디고 유스 북페어’다. 인디고에서 만난 청소년들이 중심이 돼 도서전을 꾸렸다. 6개 대륙의 창조적 실천가 20여 명을 초청해 멋진 행사를 벌였다. 지금은 2010 인디고 유스 북페어를 준비 중이다. 여기 초청하려는 사람이 로렌스 앤서니다. 그를 만나러 조만간 남아공에 가려 한다.

미국과 인도의 초청자는 이미 결정했다. 하워드 진(미국 역사학자)과 반다나 시바(인도 환경 운동가)다. 지난 1월 인디고 청소년들이 직접 미국에 가서 하워드 진 외에 노엄 촘스키, 프란시스 무어 라페 같은 중요한 지성인들을 인터뷰했다. 왜 아무도 감동하지 않으시나? 어렵게 성사된 만남이다. 쉽지 않았다(웃음). 보스턴 대학의 오래된 계단을 올라 하워드 진을 만나러 갔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그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꼭꼭 챙겨 읽었다. 그러나 막상 그 사람을 직접 만나고 나면 책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에게 “우리가 평생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잠시 침묵한 뒤 ‘친절함(kindness)’이라고 답했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관대한 것,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느끼고 생각해보는 것, 타인을 향해 감정을 이입하고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게 인간됨의 일부라고도 했다. 평생을 저항하고 투쟁해온 진보학자가 가장 소중한 가치로 꼽은 게 정의도, 평등도, 자유도 아닌 친절함이라니 울컥했다. 한 인간의 존엄과 겸손과 아름다움 앞에서 눈물이 났다.

여러분에게도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교육의 본질을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인디고, 책을 말하다’ 지난호가 교육 특집이다. KBS가 〈TV, 책을 말하다〉를 폐지하기에 바로 그 다음 달 ‘인디고, 책을 말하다’ 코너를 만들었다. 여기에 교육 관련 책 11권을 추천했다(58쪽 표 참조). 여러분, 이 중 몇 권이나 읽으셨나? 몇 권 읽었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중 한 권에서라도 여러분이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을 받는다면 보람 느낄 것 같다.

요즘 영어 교육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가 많던데, 그분들께 11권 중 한 권인 〈간디, 나의 교육철학〉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읽어드리고 싶다. 간디와 타고르는 둘 다 당대의 지도자였지만 영어 교육에서만은 생각이 달랐다. 타고르는 현실론과 경쟁력 강화론을 들어 영어 조기교육을 적극 주창했고, 간디는 반대했다. 이들의 논쟁에서 네루 수상은 타고르 손을 들어주었는데, 훗날 네루는 자서전에서 간디가 옳았다며 후회한다. 간디는 말한다. “나는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고 창문이 꼭꼭 닫혀 있는 집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나도 바람이 자유롭게 내 집에 불어오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나는 그 바람에 내 집의 뿌리가 뽑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중략) 나는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젊은이들이 제 나라 말을 무시하고 부끄럽게 여기며 심지어 잊어버리는 일이 없기를, 혹은 제 나라 말로는 훌륭한 생각을 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한 사람이라도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뒤덮은 사교육 광풍이라는 게, 결국은 바람이 우리 집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형국은 아닐까.

강의를 마치기 전에 가장 귀한 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하워드 진, 프란시스 무어 라페, 반다나 시바를 미리 만나 인터뷰한 영상을 압축한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동물원, 곧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 중 클라이맥스 부분을 묶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세계적 석학을 만나 인터뷰한 친구들이 청소년이라는 게 믿어지시나? 입시 경쟁 속에 공부의 중압감에 시달리면서도 본질적 가치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청소년들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특별한 엘리트가 아니다. 오직 신념과 용기를 잃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연대와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이 인터뷰어였다.

지난번 미국에 갔을 때 메르디스 시걸이라는 청소년을 만났다. 아직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 전, 오바마 연설을 듣고 ‘아, 저런 사람이 우리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어 ‘오바마 당선을 위한 학생단체(Students for Obama)’를 만들었다는 친구다. 선거 직전 이 단체 가입자는 30만명까지 늘었다. 오바마 또한 이 단체를 마지막까지 소홀히 하지 않았고, 청소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경제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국은 이른바 경제 대통령을 뽑았다. 그런데 결과가 어떠한가? 경제를 살려야 할 위기에 처한 오바마가 백악관 앞에서 한 취임 연설을 들으며 나는 전율을 느꼈다.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래적·본질적 가치를 되살릴 시대의 책무가 있다고 오바마는 말했다. 공교롭게도 2010년 인디고 유스 북페어 주제로 잡은 것이 ‘가치를 다시 묻다’이다. 그런데 오바마가 그 말을 하더라. 내년에 메르디스 시걸도 초청하려고 한다. 신념과 용기만이 ‘정세청세’ 참여조건

한국 최초의 인문학 수출품이라 할 ‘정세청세’도 소개하고 싶다. ‘정세청세’는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읽은 청소년들이 ‘한국 사회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만든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토론 프로그램으로,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3년 전 부산시립미술관에 청소년 100여 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올해부터는 전국 6개 도시(서울 부산 대구 울산 전주 순천)에서 운영하고 있다. 오는 6월6일, 3차 정세청세가 열린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정세청세를 보고 깜짝 놀란다.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토론 프로그램을 청소년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느냐면서. 이 프로그램에 어른은 참가할 수 없다. 그러나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인디고서원이 추천하는 교육 관련 책〈체 게바라 파울루 프레이리 혁명의 교육학〉〈벨 훅스 경계넘기를 가르치기〉〈민주화 이후의 공동체 교육〉

〈핀란드 교육의 성공〉〈자유와 교육이 만났다, 배움이 커졌다〉〈학교를 칭찬하라〉〈가르칠 수 있는 용기〉〈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감동을 주는 부모 되기〉〈정의와 배려〉〈간디, 나의 교육철학〉저자 및 출판사 정보는 인디고서원 홈페이지(www.indigoground.net) 참조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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