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0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재개발 지역 건물 붕괴 사고 현장에서 국과수 관계자가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7차선 도로가 3차선으로 좁아졌다. 경찰이 쳐놓은 통제선 앞을 지나는 차들이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사고 현장 앞을 지나는 운전자마다 고개를 길게 빼고 무너진 흙더미를 올려다봤다. 큼직한 건물 잔해는 치워졌지만, 입자가 작은 모래는 사고 당시 흙더미가 쏟아진 모양을 그대로 보여주며 아스팔트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검은 도로 위로 하얗게 퍼져 있는 넓은 모래 자국으로 사고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6월9일 오후 4시22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1590㎡(약 480평)짜리 5층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건물이 무너진 방향은 도심의 도로 쪽이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데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도로변 버스 정류장에 멈춰 있던 54번 시내버스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건물 아래 깔렸다. 버스 앞쪽과 함께 파묻힌 가로수가 그나마 충격을 완화했다. 버스 앞쪽에 앉아 있던 8명은 크게 다쳤고, 뒤쪽에 앉아 있던 9명은 숨졌다.

사망자 곽 아무개씨(64)의 언니는 직접 쓴 긴 편지를 동생의 영전에 바쳤다. “이 일은 인재다/ 다 귀중하고 없으면 안 될 사람/ 내 부인, 내 엄마, 내 동생, 내 처제, 내 이모/ 어떻게 죽이었느냐, 살리어내라 (중략) 소머리국밥 장사하면서 호평받던 그 식당/ 누가 하지?/ 그 밥상, 그 맛 누가 할까?/ 현대산업개발은 돈만 생각하느냐/ 왜 서둘러/ 왜 급하게/ 안전은 어디에다 버리고/ 안전은 어디에다 두고.”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학동 4구역 재개발 공사를 따낸 건 2018년 2월이다. 12만6400㎡(약 3만8000평)에 들어설 29층 아파트 열아홉 동을 짓는 계약이었다. 재개발조합은 현대산업개발과 평(3.3㎡)당 28만원에 철거 계약을 맺었다. 현대산업개발은 해체(철거)전문 건설기업인 한솔기업에 평당 10만원으로 하도급을 주었다. 한솔기업은 또다시 영세업체인 백솔건설에 재하도급을 주었다. 평당 4만원이었다. 하도급에 재하도급을 거쳐 일감이 내려오는 동안 계약 단가는 85%나 줄어들었다.

‘다단계 하청’의 첫 출발은 국가나 지자체 같은 공공기관이다. 도시재개발 사업은 본래 행정상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익사업으로 분류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 제2조 2항에 따르면 재개발사업의 목적은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다. 따라서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지자체가 재개발 과정을 적극 감독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건물 붕괴 순간이 녹화된 블랙박스 영상. ⓒ차량블랙박스 동영상 갈무리
사고로 망가진 시내버스. ⓒ시사IN 이명익

“지금 생각해도 등에서 땀이 난다”

재개발이나 불법투기 등 부동산 관련 사건을 주로 맡아온 이강훈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재개발조합’이 만들어진 배경에 주목한다. “도시계획 관점에서 보면 재개발 사업은 공공사업이 분명하다. 하지만 공공사업을 관할해야 할 지자체는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민원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인허가권만 가진 채 뒤로 물러서고 공사 시행은 모두 민간에 맡긴다. 민간이 만든 재개발조합에 공법인의 지위를 부여해주는 거다. 마치 공공기관처럼.” 공공이 해야 할 역할을 민간에게 넘겨주는 순간 최우선 목표는 경제적 이익이 되고 만다.

재개발 과정 중에서도 특히 ‘욕심’을 부릴 수 있는 공정이 바로 해체(건물을 부수는 공정)와 철거(해체된 건축자재를 정리해 운반하는 공정)다. 해체 작업은 ‘증발’ 자체가 최종 결과물이다. 부수고 나면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있던 건물을 쓰러뜨리기만 하면 그만’인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기 쉽다. 그 과정에서 안전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을 해도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1년 전인 2020년 5월에야 건축물관리법을 시행한 뒤 건축물 해체 과정에 대해 본격적으로 감독하기 시작했다. 건축물을 해체하기에 앞서 관리자(재개발조합)가 허가권자(지자체)에게 ‘해체계획서’를 미리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해체 현장을 감독할 ‘해체공사 감리’도 지정하도록 했다(감리는 의무지만 감리자 없어도 된다? 기사 참조). 이번 광주 건물 붕괴 사고에서 해당 업체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 미리 해체계획서를 제출했고 해체공사 감리도 지정했지만, 형식에 불과했다.

당시 관할기관인 광주광역시 동구청에 제출된 해체계획서에 따르면, 맨 꼭대기 층인 5층부터 한 층씩 차례차례 건물을 까부수며 내려오는 방식으로 해체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이 적혀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쓰인 방식은 ‘꺾기’였다. 10년 넘게 전국의 여러 건물 해체 현장에서 일했던 굴삭기 기사 최연주씨(58)는 말했다. “요즘 방송에서 ‘밑동파기’라고 부르던데, 현장 용어로는 다 ‘꺾기’다. 옆에서 벽체를 죄다 헐어버린 다음에 남은 기둥을 하나하나 씹어(절단해) 들어가면 어느 순간 무게중심 때문에 건물이 확 넘어간다. 그게 언제 넘어갈지 모르니까 엄청 위험한데, 또 엄청 빠른 방법이기도 하다.”

광주 건물 붕괴 사고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노동자 4명은 ‘뚝, 뚝’ 하는 소리를 듣고 위험을 감지해 미리 대피해 있던 상황이었다.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에 조짐이 있다. 콘크리트가 우두둑 소리를 내면서 이슬처럼 방울방울 떨어진다. 그러면 곧 건물이 넘어간다는 뜻이니 피해야 한다. 이번 사고에서도 인부들은 자기네 쪽으로 무너질 줄 알고 피했을 건데, 반대쪽으로 넘어갈 줄은 미처 몰랐을 거다.” 최연주 기사가 말했다.

희생자 빈소에 유가족이 직접 쓴 편지가 붙어 있다. ⓒ시사IN 이명익

아차 하는 순간 콘크리트 더미에 파묻힐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굴삭기 기사들이 ‘꺾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기(공사 기간)가 하루 늘어날 때마다 적게는 몇백만 원에서 많게는 몇천만 원이 들어간다. 우리 일당뿐 아니라 먼지가 나지 않도록 물 뿌리는 살수차와 관련 인력에 들어가는 돈, 관리비 등이 추가 지출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업체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끝내고 싶을 거 아닌가. 기사는 따를 수밖에 없다. ‘적힌 대로 한 층씩 까부숩시다’ 하면 곧바로 ‘같이 일 못하겠네, 장비 빼세요’ 소리부터 나온다.”

계획서에 적힌 대로 하면 보름 정도 걸릴 해체 작업이 ‘꺾기’로 하면 2~3일 만에 끝난다. 한 층씩 부수며 내려오려면 건물 바닥이 꺼지지 않을 만큼 가볍고 작은 굴삭기를 써야 하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또 한 층씩 부술 때마다 잔해를 밖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 과정에 들어가는 품도 만만치 않다. 낮은 단가를 받고 작업하는 재하도급 업체에 ‘꺾기’는 여러모로 구미가 당기는, 위험한 유혹이다.

보통 ‘꺾기’는 5~6층 정도 높이 건물을 해체하는 시점에 들어간다. 그 이상 높은 건물을 해체할 때는 위에서부터 차례로 부수고 내려오다 건물이 한 번에 넘어가도 괜찮을 높이, 다시 말해 확보된 공터의 길이만큼 건물이 낮아졌을 때 바로 ‘꺾기’에 들어간다. “크러셔(펜치처럼 생긴 대형 절단기)로 기둥을 한 칸씩 씹어 들어간다. 마지막 칸을 딱 씹고 나서 5분 정도 있으면 건물이 자연스럽게 넘어온다.”

5분을 기다려도 건물이 넘어가지 않으면 굴삭기 기사가 다시 한번 나서야 한다. 굴삭기 팔을 쭉 뻗어 건물 어딘가를 때려서 충격을 준다. 마지막 단계를 설명하던 최연주 기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때는 정말… 지금 생각해도 등에서 땀이 난다. (굴삭기로 건물을 때릴 때마다) ‘내가 무사히 피할 수 있을까’ 떨곤 했다. 건물이 7° 정도 기울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굴삭기는 동작이 굼뜬데 건물은 와르르 무너지지 않나. 그 찰나에 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거다.”

그는 2년 전부터 해체 현장에 나가지 않고 있다. 겁이 나서다. “건물을 ‘꺾을’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제명에 못 살 것 같았다. 목숨을 내놓고까지 일할 필요는 없겠다 싶더라.” 평평한 땅에서 굴삭기로 흙 파는 일을 하는 지금 그가 받는 일당은 4분의 1로 줄었지만, 그래도 지금이 훨씬 만족스럽다고 최씨는 말했다.

6월11일 광주 동구청 주차장에 마련된 재개발 지역 건물 붕괴 사고 희생자 분향소. ⓒ시사IN 이명익

노동자뿐 아니라 시민의 안전도 위협한다

최씨는 10년 동안 일하면서 단 한 번도 ‘꺾기’가 아닌 방식으로 건물을 해체해본 적이 없다. 꺾기를 하는 동안 건물의 구조나 무게중심에 대해 상의할 사람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만의 ‘감’에 의존해 기둥을 ‘씹고’ 건물을 ‘꺾었’다. “다른 어떤 업체에서 한 층 한 층 정석대로 까부수고 내려오는 걸 본 적은 있다. 딱 한 번 본 광경이다. 속으로 ‘와, 저런 데가 있네’ 하고 신기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당연한 건데 그때는 이상해 보였다.”

여전히 현장에서는 원칙을 지키려는 모습이 ‘이상해’ 보인다. 건축물관리법이 1년 전부터 시행됐지만, 관계자가 아니면 출입할 수 없는 현장 깊숙한 곳에서 법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건 수익 논리와 관행이다. 전문가들은 법과 규제를 강화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법을 현실 속에 얼마나 잘 녹아들게 할지 고심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이강훈 변호사는 “법은 이미 마련돼 있다. 국가와 지자체가 개입할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도 인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또는 예전부터 이렇게 해왔다는 관행을 핑계 대며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광주 건물 붕괴 사고가 일어나기 전 보행자의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민원이 들어왔지만 별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4월7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철거 현장 바로 옆은 차량이 지나가는 도로다. 건물과 도로가 바로 인접해서 (철거 잔해가) 구역 외로 떨어지면 인명 사고가 날 것인데 이렇게 철거해도 되는지 확인 바란다”라는 내용의 민원이 접수됐다. 주관 부서인 동구청 도시관리국 건축과는 닷새 뒤인 4월12일 “해당 관계자(재개발조합·해체 시공자)에게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조치 명령을 공문으로 발송했다”라고 답변했을 뿐 현장에 직접 나가보지는 않았다.

결국,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법조문에 적힌 ‘안전’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 들여다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빈 구멍 사이에서 건물은 잘못된 방향으로 무너져 내렸다. 2020년 5월 건축물관리법이 시행되기 전 관련 정책 연구보고서를 작성했던 조영진 건축공간연구원 도시·설계연구단장은 더 이상 현장 노동자들만의 ‘안전’만 위협받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건물을 해체할 때 일어나는 사고는 본래 굴삭기 기사나 인부들이 매몰되는, 공사 현장 ‘내부’의 산업재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2019년 서울 잠원동 사고(개정하고 전환했다 공공의 책임 소재 빼고 기사 참조)나 이번 광주 사고처럼 공사 현장 ‘외부’의 일상생활 반경에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늘고 있다. 사실 건물 해체는 길 가던 시민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문제인 것이다.”

조영진 연구단장은 규제 강화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 2~3일 걸릴 작업을 보름 걸린다는 이유로 규정을 안 지키는 상황인데, 여기서 규제만 더 강화하면 보름 걸릴 공정은 한 달로 늘어난다. 그러면 더욱 아무도 규정을 지키려고 하지 않을 거다.” 1년 전 제정된 건축물관리법이라도 우선 현장에서 잘 지켜지도록 담당 공무원과 현장 감리가 제대로 감독하는 게 더 급선무라는 것이다. 업계 내부의 관성을 깨뜨릴 수 있는 건 외부의 ‘눈’뿐이라는 의미다.

기자명 광주·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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