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8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자 이 아무개 중사의 빈소. ⓒ시사IN 신선영

조용한 장례식장에 노래가 흘렀다. 5월21일 상관의 성추행과 2차 가해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아무개 중사가 생전에 즐겨 듣던 노래였다. “울지 마/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지/ 그 눈물을 참아내는 건 너의 몫이 아닌데/ 왜 네가 하지도 않은 일들에 사과해야 하는지/ 약한 사람은 왜 더/ 모두 다 잘될 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 뿐이지 그렇지 않니(‘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울지 마’ 가사 중).”

조문객들은 영정 아래 놓인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6월8일 오전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를 찾은 김민경씨(25)는 이 중사의 임관 소식을 들었던 순간을 기억했다. “이 중사 오빠가 ‘우리 여동생이 임관했다’면서 기뻐했거든요. 저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이 다들 축하해줬어요. 동생 정말 멋있다고, 앞으로도 잘 해나갈 거라고. 꿈을 이룬 곳에서 그런 대우를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그때는 그렇게 진심으로 축하를 해줬어요.”

사건은 3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월2일, 충남 서산에 위치한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이 중사는 그날 저녁 야간 근무를 바꿔서라도 회식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부대 업무와 상관없는, 노 아무개 상사 지인의 개업을 축하하는 사적인 자리였다.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이 중사는 회식에 참석해야 했다. 당일 회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임인 장 아무개 중사가 이 중사를 성추행했다. 이 중사는 즉시 차에서 내렸지만 장 중사도 따라 내렸다. 장 중사는 이 중사의 관사까지 뒤따라오며 “신고할 테면 신고하라”는 등 그를 조롱하고 협박했다.

이튿날 이 중사는 전날 회식 자리를 주최한 노 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 노 상사는 상사인 노 아무개 준위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노 준위는 곧바로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많이 겪는 일”이라며 이 중사를 회유했다. 당시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던 이 중사의 남자친구에게까지 “이 중사에게 (신고하지 않도록) 말 좀 잘 해달라”며 압박하기도 했다. 결국 대대장에게 보고가 이루어진 건 하루가 다 지난 오후 9시50분 무렵이었다.

군사경찰에 사건이 접수된 이후에도 부대는 성폭력 피해자인 이 중사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 부대 지휘관은 ‘국방 양성평등 지원에 관한 훈령(양성평등 훈령)’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른 공간에 우선적으로 분리해야 했다. 그러나 즉각적인 분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중사의 어머니(검은색 옷)가 영안실에 있는 딸의 영정사진을 쓰다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소속 바뀌어도 따라다니는 2차 가해

이 중사는 어쩔 수 없이 두 달 동안 청원휴가를 써야 했다. 그마저도 부대를 벗어난 날은 10여 일 남짓이었다. 사건 직후 부대 인근에서 대대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던 이 중사의 부모는 “철저한 수사와 피해자 보호를 약속하던 대대장을 믿고 이 중사를 부대 안에 남겨두고 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중사는 사실상 부대 안에서 은폐와 무마, 회유 등 2차 가해에 방치된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가해자인 장 중사가 다른 부대로 파견된 건 3월17일,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지 2주가 지나서였다.

공군본부는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여가 지난 4월6일에야 국방부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양성평등 훈령에 따르면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각 부대(양성평등담당관)→각 군 본부(양성평등센터)→국방부(양성평등정책과) 순서로 즉각 사건 보고가 이루어져야 했지만, 공군본부 역시 훈령을 지키지 않았다. 늑장 보고조차 피해 내용이 담기지 않은 ‘월간 현황 보고’ 형식에 불과했다.

4월7일 군사경찰은 사건을 군검찰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이 중사는 법률적인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유가족은 사건 직후 이 중사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했기 때문에 군에서 선임해주는 국선변호사만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였던 ㄱ 법무관은 단 한 차례도 이 중사와 직접 만나 면담을 한 적이 없었다. 유족들은 이 국선변호사가 피해자 보호는커녕 주변 지인들에게 이 중사의 신상 정보를 유출해 2차 가해를 했다고 주장한다. 유족들은 ㄱ 법무관을 상대로 직무유기와 성폭력특례법 위반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두 달간의 청원휴가를 끝낸 이 중사는 부대에 요청해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소속을 바꿨다. 하지만 2차 가해는 낙인처럼 이 중사를 따라다녔다. 옮긴 부대에서 함께 근무하는 동료로부터 “네가 왜 여기 왔는지 안다” 등의 말을 들어야 했다. 부대를 옮긴 지 나흘 뒤인 5월21일 이 중사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6월6일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자 이 중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왼쪽), 서욱 국방부 장관(가운데), 서훈 국가안보실장(오른쪽). ⓒ청와대 제공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건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유가족은 6월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랑하는 제 딸 공군 중사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청원 글을 올렸다. 주요 언론에서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군사법원은 가해자인 장 중사를 강제추행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사건 발생 석 달 만이었다.

6월3일 문재인 대통령은 “절망스러웠을 피해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하며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 이튿날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문 대통령은 즉각 수용했다. 이 참모총장은 4월14일 이미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은 바 있었다. 석 달 동안 막혀 있던 사건 수사는 대통령이 언급하고 나서야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사건이 발생한 원인도,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도 ‘톱다운(상하 수직적인 전달 방식)’이었다.

문 대통령은 6월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을 낳은 병영 문화의 폐습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라며 재차 사건을 언급했다. 추념식이 끝난 뒤에는 곧바로 이 중사의 빈소를 찾았다. 딸의 영정 앞에서 여러 번 혼절했던 이 중사의 어머니는 팔에 링거를 꽂은 채 자리를 지켰다. 문 대통령은 함께 조문한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병영 문화가 달라지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튿날 국방부는 ‘성폭력 예방 제도개선 전담팀(TF)’을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석 달 동안 잠시 운영되는 전담팀이 뿌리 깊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군대 내에서 발생했던 또 다른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변호하고 있는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사건이 축소되고 은폐되는 과정을 두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축소·은폐는 각 부대 구성원이 성폭력 사건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오선희 변호사는 각 부대 지휘관이 사건의 내용이 아닌,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말했다. “지휘관은 부대 안에서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관리능력이 의심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덮고 넘어가려는 경우가 많다.” 이 구조를 해결하지 않으면 성폭력 사건은 알려지지도 못한 채 부대 안에서 축소되거나 은폐될 가능성이 높다.

판사·검사·변호사 맡는 단기 법무관

2010년 직속상관과 부대 지휘관으로부터 잇따라 성폭행을 당했던 다른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역시 6월3일 성명을 통해 “국방부는 성폭력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새로운 대책을 발표하지만, 군대 내 성폭력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유호정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피해자가 보호되지 않고 오히려 2차 피해를 당하는 현실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매뉴얼이나 법이 없는 게 아니라, 있는데 지켜지지 않은 게 문제다. 조직 내부에서 이게 왜 성폭력이고 왜 잘못인지 인식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군 차원에서 지침에 따라 사건을 해결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나중에 더 큰 ‘문제’를 겪는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6월9일 국민의힘 여성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성추행 피해로 인한 공군 여부사관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국정조사와 서욱 국방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번째 축소·은폐는 군대 안에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군인은 일반 사법기관이 아닌 군 사법기관에서 재판을 받는다. 군대만을 위한 군사법원과 군검찰이라는 특수한 조직이 운영되는데, 이 제도를 떠받치는 인력이 바로 군법무관이다. 군법무관은 직업군인인 장기 법무관과, 군복무를 대신하는 단기 법무관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단기 법무관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 중사의 변호를 맡았던 국선변호사 ㄱ씨도 군복무 중이던 1년 차 단기 법무관이었다.

문제는 실무 경험 없이 변호사 자격증을 따자마자 갓 입대한 단기 법무관들이 각각 판사·검사·변호사를 맡으며 법률적 절차 전체를 운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성폭력 사건은 군사재판이 아닌 일반 재판에서도 다루기 까다로운 사건이다. 사기죄처럼 문서나 입금 내역 등의 뚜렷한 증거가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피해자 진술만 있는 성폭력 범죄는 무엇보다 수사기관의 의지와 능력이 중요하다. 진술을 어떻게 얻어내고 진술 신빙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또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모든 단계에서 각 주체가 고심해야 한다. 그만큼 사건이 어렵고, 그만큼 전문적으로 훈련된 사람이 다뤄야 한다. 실무 경험이 없는 단기 법무관이 맡기엔 벅찰 수밖에 없다.

재판이 과연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함께 복무해야 하는 군법무관 특성상, 판사·검사·변호사가 한 공간에 모여 있을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고인 입장에서도 황당한 구조다. 나를 수사하는 검사가 나를 재판하는 판사와 함께 지낸다고 생각해보라.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사건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다.”

오선희 변호사는 성폭력 같은 비군사적인 범죄만이라도 군대 내 권력관계가 작동하지 않는 일반 법원에서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대 내 성폭력 문제는 한시적 전담팀 운영 정도로 뚝딱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이 중사의 비극이 또 한번 드러내고 있다. 

기자명 성남·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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