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0일 경기도 화성시에서 열린 ‘GTX A노선 철도차량 목업 전시회’의 열차를 관계자들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10년간 GTX보다 많은 관심을 끈 철도망은 없을 것이다. GTX 광풍이라고 할 만하다. 본선이 통과하는 곳은 역을, 아닌 곳은 새 노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온 수도권에 넘쳐흐른다.

GTX는 10조원 이상 재원이 투입될 거대 사업이다. 그뿐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 교통망의 내부 구조와 북한 방면 철도망의 연결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수십 년 이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기회다. 한국 사회는 이 기회를 흘려보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 기회를 최선의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GTX는 수도권에 건설되는 철도망이다. 이것은 GTX 부설에 앞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뜻이다. “왜 지금 수도권에 철도가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달 시프트(Modal Shift)’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교통에서 모달 시프트란 기존에 이용하던 교통수단을 다른 수단으로 전환하는 일을 말한다. GTX 같은 여객 철도는 승용차나 버스로 이뤄지던 통행을 철도로 전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도로에서 철도로 모달 시프트가 필요하다고 말하는가? 우선 전통적인 이점이 있다. 철도망은 공간 및 에너지 절감 효과가 크고 사고율이 낮다. 철도는 도로에 비해 단위면적당 수송량이 3배 이상 크며(2016년 국내 여객 기준), 주차장이 필요하지 않아 인간의 활동이 고밀도로 집적된 도시개발을 뒷받침한다. 더불어 철도는 ‘단위 수송량당 에너지 소비량’과 ‘단위 수송량당 사고 사망률’이 승용차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하다. ‘단위 수송량당 부상률’도 40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2019년 국내 여객 기준).

오늘날 모달 시프트를 이야기할 때는 여기에 두 가지 논거를 더해야 한다. 바로 도심지의 중요성이 강화된다는 점과 기후위기 완화라는 문명사적 목표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잠시 정지되었지만, 오늘날의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거대 도시의 도심지에 밀집한 ‘생산자 서비스’다. 생산자 서비스란 연구개발(R&D)·법률·금융·정보통신(IT)처럼 다른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다. 이런 전문가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이들과 대면하는 것인데, 철도망이 늘어 도심지를 집약적으로 사용할수록 이들 전문가들과 대면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나 도심의 효용도 커진다. 도심과 그곳에 모인 전문가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집적시키는 수단이 철도다.

또한 철도는 높은 에너지 효율을 보인다. 인킬로(승객 한 사람을 1㎞ 움직일 경우)당 탄소 배출량이 승용차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속성 때문에 국제 기구들은 모달 시프트를 기후위기 완화 대책으로 손꼽는다. 국가가 보유한 토지(철도 부지)도 적지 않아 다른 교통수단보다 ‘재생에너지 100% 활용(RE100)’이라는 목표에 가장 근접하게 설계할 수 있다. 철도 부지를 활용해 태양광에너지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활용도 가능하다. 철도는 날로 중요해지는 도시의 활력을 에너지 및 탄소 효율로 뒷받침할 수 있다. 도로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이것이 바로 모달 시프트를 해야 할 이유다.

그런데 모달 시프트를 실제로 구현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대중교통의 역량과 역할이 도시의 밀도나 중심지와의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이중 교통 환경’이라는 현실이다. 서울 등 대도시권 중심부에서는 대중교통의 이점이 강화되는 반면, 승용차의 강점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대중교통 통행에 유리한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계 바깥, 수도권 지역에서는 대중교통보다 승용차의 이점이 더욱 강화된다. 이곳에서는 승용차가 교통시스템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모달 시프트를 위해서는 이러한 이중 교통 환경을 완화할 방법이 필요하다.

‘오래된 GTX’, 무궁화·ITX새마을·ITX청춘열차

GTX 노선의 우선적인 가치를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GTX A·B·C는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노선이다. 이중 교통 환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경계선인 서울의 경계를 넘어, 수도권 도시의 중심지를 서울 도심과 잇는 것이 이들 노선이다. 이처럼 대도시의 도심과 시계 바깥의 도시를 잇는 철도망을 ‘광역망’이라고 한다. GTX는 광역망 철도로서 서울시계 바깥 수도권의 대중교통을 강화해 이중 교통 환경을 완화시킬 카드다.

서울 용산역에 대기 중인 ITX청춘열차. ⓒ시사IN 조남진

광역망 철도는 수도권의 도시 체계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철도역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리고, 그에 따라 중심지가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통로를 따라 줄지어 배열된 시가지들을 ‘도시 회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최근 수도권에서는 철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토지를 낮은 밀도로 사용하는 느슨한 도시 회랑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낮은 밀도를 가진 시가지는 승용차에 유리하므로 모달 시프트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런 시가지를 철도망에 기반한 도시 회랑으로 변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같은 작업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모달 시프트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철도망 기반 도시 회랑을 구성하는 시가지는 서울 도심과 대중교통으로 연결되어 도로에 의존하지 않고도 도심의 전문가들을 활용할 수 있는 입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볼 수 있다. 이런 역할은 이미 2021년 현재 운행 중인 기존 광역망 철도가 상당 부분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 광역망 철도와 GTX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나는 속도다. GTX는 평균 시속 100㎞를 목표로 삼고 있다. 제한속도를 지키면 일반도로에서는 낼 수 없는 속도다. 또 하나는 지하 40m 깊이로 파고들어 시가지를 관통할 때 필요한 보상비를 줄이겠다는 복안이다. 빠른 속도는 사람들을 이끌고, 지하 40m 시공은 건설을 쉽게 만든다.

그렇지만 GTX 망은 접근성 면에서 약점이 크다. GTX는 총 6개 복선만 서울시계를 통과한다. 고양·성남·과천·의정부·부천·남양주 방면으로 뻗어나간다. 반면 GTX와 무관한 기존 철도망은 총 17개 방면으로 뻗어나간다. 이는 GTX 망이 이중 교통 환경을 완화하는 데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GTX는 서울 도심에서 열차를 타기 위해 지하 40m까지 내려가야 한다. 목표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정차역 간 거리를 평균 10㎞ 정도 확보해야 한다. 경기도(1만183㎢) 31개 시·군의 평균 반지름은 약 10㎞이므로 노선별로 시·군당 정차역을 1~2개만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GTX역까지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현행 광역망 철도역보다 길 수밖에 없다.

GTX는 망 전체의 ‘포괄범위’가 기존 망보다 좁다. 역 간 거리도 길다. 그래서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생겨난다. GTX보다 정차역이 촘촘히 배치된 망을 강화해 대응해야 한다. 역간 거리가 짧아지면 속도는 느려지지만, 이는 접근성이 주는 이점으로 상쇄된다. 지금의 경인선 급행이나 신분당선과 같이 역간 거리 3~5㎞, 평균 시속 50~60㎞급의 ‘급행열차’가 바로 이런 사각을 메울 수 있다.

한편 접근성에 약점을 가진 GTX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급행열차보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통행을 노려야 할 것이다. GTX를 이용할 때 급행열차보다 접근 시간이 15분 더 필요하다고 가정할 경우, 서울 도심에서 인천이나 수원에 이르는 거리(30~40㎞)를 넘어서야 GTX가 확실한 우위를 장악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GTX의 노선 범위는 서울 반경 40㎞를 넘지 않는다. 결국 GTX가 서울 반경 40㎞ 이내로 국한된 현 노선 체계대로 만들어진다면, 그보다 느린 급행열차망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GTX 고유의 우위를 누릴 수 있는 영역을 추가로 확보하려면 오히려 노선의 길이를 늘려야 한다. KTX 같은 고속철도 경쟁력이 적은 서울 반경 100㎞ 이하의 범위 까지는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아래 〈그림 1〉을 살펴보자. 공교롭게도 서울을 출발지나 도착지로 하는 통행 가운데 서울에서 35㎞ 떨어진 지역부터 대중교통의 수송분담률이 떨어진다. 이는 GTX가 이중 교통 환경의 완화를 가장 잘 이끌 수 있는 범위가 서울 반경 40~100㎞ 사이라는 방증이다. 다른 영역(서울 인접 지역 등)에서 GTX는 그보다 느린 열차들과 조합되어 활용되어야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접근을 이미 현실에 구현한 노선들이 있다. 경부선 서울~천안~대전 구간, 경춘선, 중앙선 청량리~원주 구간이다. 여기서 무궁화, ITX새마을, ITX청춘열차의 평균속도는 현재 GTX의 목표인 시속 100㎞에 달한다. 또한 이들 노선의 역 주변은 서울 도심과 연계된 오래된 중심지이며, 이들 열차는 통근과 같은 일상적인 통행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어, 교통 환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보다 느린 광역전철까지 함께 다니므로 접근성 또한 가능한 한 높여놓았다.

‘오래된 GTX’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이들 노선이 GTX A·B·C선과는 달리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현상은 이들 노선의 역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현재의 광역전철을 더욱 빠르게 만들 수단을 제안하고 싶었고, 그 결과가 바로 GTX A·B·C선이다. 종착역이 서울 반경 40㎞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은 광역망 건설 관련 법령 때문이다. 반면 경부선·경춘선·중앙선 세 노선은 20세기 초반부터 운행되어오던 이른바 ‘간선열차’의 운행구간 가운데 일부분이다. 고속철도에 부분적으로 밀린 구세대의 노선이자, 강남 방면으로 진입하지도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 노선은 광풍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렇지만 이들 노선은, 특히 속도 면에서는 GTX와 동일한 수준이다. 서로 다른 목적에서 시작되어 다른 역사적 과정을 밟았지만 결과는 유사한 일종의 ‘수렴 진화’가 벌어진 셈이다. 더욱이 이들 노선은 GTX 노선이 포괄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데다 서울 반경 40㎞보다 먼 지점까지 도달해 있다. 속도를 감안하면 경부선 등에서는 이미 GTX가 부분적으로 운행하는 셈이다. 또한 운행 범위 덕에 이들 노선은 충청과 영서 지역의 인구와 산업을 서울 도심과 연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철도를 추가로 건설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이중 교통 환경의 완화와 도시 회랑의 구축, 그리고 이를 통한 모달 시프트에 있다면, 오늘도 운행 중인 노선들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내버려두는 것은 매우 큰 실책이다.

GTX 망을 다시 생각하는 작업

광역망은 체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경부·경춘·중앙선과 GTX A·B·C선, 제2공항철도 등 경기·인천·충청·영서 지역에 추가될 철도망, 장기적으로는 북한 황해도 방면을 오가는 철도까지 모두 포괄하는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하나의 망으로서 통합 운영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망을 ‘광역특급’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아래 〈그림 2〉에 예시로 그린 광역특급망은 경기나 인천은 물론 충청 북부와 영서 지역을 포괄하여 수도권 대중교통망 전체의 뼈대가 될 수 있다. 이들은 현재 무궁화호(ITX청춘)와 GTX 사이의 역간 거리(10~20㎞)마다 정차하면서 GTX의 속도 대역(평균 시속 100㎞)으로 달리며, GTX보다 서울에서 먼 지점(세종·대전)까지 운행하고, 이를 통해 수도권에서 (고속철도를 제외하면)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될 수 있다.

현 GTX A·B·C선, 그리고 다른 추가 노선들은 모달 시프트라는 전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현 경부·중앙·경춘선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이들 노선에 위치한 역은 승객들이 서울 도심이나 수도권 주요 도시 도심부에 가능하면 가까이, 가능하면 짧은 시간 내로 접근할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한다. 막대한 사업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토목 구조 역시 비용 효율적인 동시에 훗날 확장이나 구조변형이 가능하도록 고려해야 한다. 미래에 북한과 연결되고, 모달 시프트로 철도 수요가 대폭 증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지하 40m 깊이로 파는 터널은 앞에서 지적한 여러 덕목과 부분적으로는 충돌할 수 있다. 경기도 일대, 공간 여유가 있는 곳에서는 지상으로 올라오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2019년 기준, 서울 반경 100㎞ 이내 수도권 지역에는 한국 제조업 종사자의 절반인 약 200만명이 살고 있다. 이들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현대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가와의 협업이 필요한데, 이들 전문가(생산자 서비스 종사자)는 대체로 서울에 많이 분포한다. 오늘날 제조업 지역과 서울 사이의 협업을 위한 통행은 대체로 고속도로가 지배하고 있다. 이들을 철도로 끌어들여야 한다. 제조업이 유발하는 인적 교통량을 철도로 끌어들이는 모달 시프트는 기후위기 시대 한국의 제조업 역량과 서울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수단은 제조업 기지와 도심을 잇는 광역특급 철도망이다. 제조업 종사자의 통근 여건을 직접 개선할 통근 버스 역시 특급 철도망의 역에서 출발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수도권 지역 대중교통망의 뼈대로서 광역특급망을 구축하는 작업은 재래선(무궁화·새마을호), 그리고 비수도권 광역망의 미래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들 노선은 충청 북부와 영서 지역을 직접 운행하므로 이들 지역의 광역철도망을 직접 개선하게 된다. 더불어 이들 망에서 성공한 요소들을 남부지방 대도시 간을 잇는 재래선 열차에도 도입하여 남부지방 대도시권에도 대중교통망의 뼈대를 갖출 수 있다. 가령 포항에서 진주를 잇는 동남해안 회랑에서 고속열차와 완행·급행열차 사이를 시속 100㎞급 광역특급 열차가 메운다면, 지방 대도시권에서도 도시 회랑을 구축하여 이중 교통 환경을 완화하고 모달 시프트를 달성한 사례를 만들 수 있다. GTX 망을 다시 생각하는 작업은 철도 그 자체를, 철도를 도시와 교통체계 속에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수도권은 물론 전 국토에 걸쳐 생각하는 작업이 되어야만 한다.

기자명 전현우 (<거대도시 서울 철도>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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