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4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쪽 베이트 하눈의 주민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마을의 피해 상황을 살피고 있다. ⓒAFP PHOTO

맹렬한 기세로 서로 마주보고 내달리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충돌이 일단 멈췄다. 5월8일부터 시작된 11일간의 교전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최소 243명이 숨졌다. 이 가운데 100명은 어린이와 여성이었다. 이스라엘에서도 어린이 2명을 포함해 사망자 12명이 발생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민간 지역을 공격하고 이에 대응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향해 압도적인 무력을 행사하는 충돌 양상은 2014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연상시켰다.

이후 지난 7년간 양측의 분쟁이 크게 격화되지 않아왔다. 물론 위기는 있었다. 특히 2018년 트럼프 정부의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 이전, 2020년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의 ‘아브라함 협정’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분노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워낙 큰 사안이었기에 제3차 인티파다(무장봉기)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소규모 산발적 시위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팔레스타인은 분노했고 그동안 나뉘어 있던 서안지구,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은 물론 이스라엘 국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까지 하나 되어 저항했다. 이상했다. 앞선 사안들에 비해 더 엄중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무엇이 달랐을까? 올해 우연히 겹친 절기가 문제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기념하는 축일이 겹치면서 사건에 불을 댕겼다. 이슬람력으로 올해 라마단 금식성월은 대략 4월12일에 시작해서 5월12일까지 이어졌다. 라마단 말미 절정은 ‘권능의 밤’이다. 거룩한 경전 코란이 계시된 날을 기념하는 이슬람의 축일이 올해 5월8일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기념하는 ‘예루살렘의 날’이 올해는 ‘권능의 밤’과 하루 차이인 5월9일이었다. 유대력 6월6일로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날이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수복은 시오니즘의 완성을 상징하는 가슴 벅찬 사건이다. 반면 팔레스타인에게는 1948년에 이어 두 번째로 자기 땅, 그것도 성지를 내어준 수치의 날이다. 무슬림들이 ‘권능의 밤’ 예배를 위해 회합하려던 것을 이스라엘 당국이 불허하면서 사달이 났다. 이스라엘 경찰이 무슬림들의 모임을 금지하기 위해 경계를 서는 가운데 유대인들만은 ‘예루살렘의 날’을 기념하느라 북적였다.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성전산(하람 알샤리프)은 이 엇갈린 장면의 배경이 됐다. 성전산은 유대인도 무슬림도 양보할 수 없는 성지다. 갈등의 씨앗을 품고 있는 시간과 공간이 극적으로 겹친 것이다.

올해 2월 이스라엘 예루살렘 지방법원이 내린 한 판결은 사태를 악화시키는 복선이었다. 동예루살렘의 아랍 마을인 셰이크 자라 사건이다. 예루살렘 지방법원은 이 지역에 있는 팔레스타인 가옥의 최종 소유권이 유대인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팔레스타인 가구들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했을 때 고향을 떠나 이곳에 정착했고 이후 60년 넘게 살아왔다. 2008년 유대인들이 옛 오스만튀르크 제국 시절 땅문서를 들이대며 법정 소송에 나섰고 이스라엘 법정이 유대인 편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실제 거주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여섯 가구는 판결에 저항했지만 이스라엘 대법원은 5월10일 퇴거명령을 내릴 예정이었다. 법원의 결정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반박 집회로 맞섰다. 여기에 팔레스타인이 ‘나크바(재앙의 날)’로 일컫는 이스라엘 건국기념일(5월14일)이 다가오면서 분노는 더해졌다.

우연 또는 필연으로 겹친 악재

국제정치의 흐름 역시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재로 몇몇 아랍 국가와 수교를 약속하는 ‘아브라함 협정’을 맺었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 주민들 사이에서는 박탈감과 분노가 쌓여왔다. 이스라엘과 맞서며 항상 함께해왔던 아랍의 ‘팔레스타인 대의(Palestine cause)’는 와해되었다. 형제 아랍국들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고립감이 퍼졌다.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되었다고 느끼는 팔레스타인의 무력감과 고립감은 분노로 이어졌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리더십이다. 국민들의 분노를 조율하고 불만을 수렴해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정치 리더의 구실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끌고 있는 마무드 아바스 수반의 집권 정파 ‘파타(Fatah)’는 무능했다. 대중들은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을 원하지만 파타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급기야 5월22일, 7월에 있을 입법의회 선거와 수반 선거를 연기해버렸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실망을 짐작할 수 있다. 5월 초 양측의 기념일을 전후해 긴장이 고조되고 거리에서 이스라엘 주민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충돌하기 시작했지만 파타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틈을 타 강경파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도발에 나섰다. 이스라엘 민간인 거주 지역에 로켓 공격을 시도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스라엘의 정치 상황 역시 갈등을 악화하는 데에 일조했다. 특히 초정통파 종교 세력이 득세하고 극우 세력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배타성과 경직성이 강해진 측면이 있다. 지난 2년간 네 차례의 총선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은 극심한 내부 균열을 겪었다. 올해 3월 총선 이후 사실상 아직도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 당이 제1당이 되었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단독으로 내각을 꾸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반(反)네타냐후 블록으로 정부 구성권이 넘어갔으나 최근 사태 악화로 인해 이 세력 역시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할 것으로 예상된다. 네타냐후는 이번 충돌로 기사회생의 실마리를 잡았다.

상황을 반전시키고 11일 만에 정전에 이르게 한 주역은 미국이었다. 국제사회는 사태 발생 초기부터 미국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예상대로 미국은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도 결의안 채택을 반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하마스의 공격을 비판하면서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무조건 이스라엘 편을 들던 트럼프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난처한 상황이었다. 미국은 그간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인권 문제를 들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해왔다. 정작 동맹국 이스라엘이 민간인 거주지역을 집중 공격하는 행태를 미국이 지지하면서 어떻게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을 비판하느냐는 일침은 워싱턴 입장에서 뼈아팠을 것이다. 가자지구에 갇힌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피해가 심각해질수록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가 이중적이라고 꼬집는 이들도 늘어났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의 비판은 예상대로 날서 있었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조차 민주당 의원은 물론 중도 성향의 유대인들까지 이스라엘 정부의 공격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이스라엘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대신 뒤에서 움직였다. 물밑 작업을 통해 설득하고 압박했다. 2014년 오바마 정부 부통령 시절 가자지구 전쟁을 겪은 경험 때문이라고 알려진다. 오바마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네타냐후의 정착촌 확대 정책(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유대인 마을을 건설하는 정책)이 못마땅하던 차에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이 증폭되자 네타냐후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물론 오바마도 명시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지지했지만 네타냐후를 압박하지 않고 방관하는 분위기였던 모양이다. 네타냐후는 거칠게 가자지구 폭격에 나섰고 20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이를 경험했던 바이든은 네타냐후와 변함없는 친분관계를 강조하고 이스라엘의 면을 세워주면서도 뒤에서는 일련의 압박을 통해 적극적으로 상황 관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은 네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 측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며 정전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는 교전 당사자인 하마스를 설득하기 위해 이집트를 움직였다. 인권외교를 내세우는 바이든은 이집트와 불편한 관계였지만 이번 정전 합의에서 이집트에 역할을 맡겼고 이 판단은 주효했다.

정전 이후 미국의 행보도 눈에 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정전 합의 직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상황 관리에 나섰다. 특히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극적 관여가 눈에 띈다. 동예루살렘에 팔레스타인 상주 미국 총영사관을 다시 열기로 했다. 가자지구 긴급 복구자금 500만 달러(약 56억원)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해 총 7500만 달러(약 838억원) 지원을 약속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숨진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미국이 그간 보여주었던 일방적 이스라엘 편들기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트럼프는 팔레스타인을 구석으로 몰아 극도로 압박했다면, 바이든은 팔레스타인 역시 중요한 평화의 당사자이자 주역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배려하고 있다.

5월25일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오른쪽)를 만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같은 날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아래 사진 오른쪽)과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EPA
5월25일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위 사진 오른쪽)를 만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같은 날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오른쪽)과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 Photo

사실 미국의 관심사는 이·팔(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아니었다. 중동에서는 이란 핵합의 복귀가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이란과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바이든 정부는 두 개의 큰 그림으로 중동 전략을 짜고 있다. 하나는 이란 핵합의 정상화이고,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 협정의 진전이다. 전자는 약속을 지키고 다자 협력을 중시하는 미국의 전통 외교가 복귀했음을 보여주는 조치이고, 후자는 동맹국들과 협력 기반을 다져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례다. 이번 5월 위기는 두 큰 그림을 뒤흔드는 돌발적 사건이었다.

가자지구의 비극을 빌미로 자칫 친이란 세력인 헤즈볼라까지 하마스에 가담하고 나설 위험이 있었다. 만일 헤즈볼라가 레바논이나 시리아에서 이스라엘 공격에 나서기라도 했다면 통제 불능의 준(準)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았다. 동시에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한 당사국들도 좌불안석이었다.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정작 아랍 대중의 눈에는 서명 당사국들이 학살자 이스라엘을 편드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란은 헤즈볼라를 움직이지 않았다. 아브라함 협정의 주역인 미국이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관련된 아랍 정부들도 한숨을 돌린 모양새다. 동맹(이스라엘)을 예우하면서도 외교의 방향을 바꾸어 갈등을 빠르게 해결한 사례다. 바이든이 오랜 외교 관록과 경험을 통해 임기 중 발생한 첫 번째 위기를 나름 잘 막아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향후 미국이 이·팔 평화협상을 적극적으로 중재하며 타결을 유도할 의지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 ‘두 국가 해법’을 되살려서 새로운 결과물을 도출하기엔 시간과 품이 많이 든다. 누구보다 바이든이 우선순위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팬데믹과 경기부양, 기후변화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큰 흐름을 마주한 미국이 시급히 다루어야 할 국내외 현안들이 더 위중하기 때문이다.

일단 교전은 멈췄지만 이번 사태로 정치 지형의 변화가 점쳐지고 있다. 우선 팔레스타인의 대의가 되살아날 기미가 보였다. 그동안 거주지역에 따라 의견이 조금씩 갈렸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모처럼 하나가 되었다. 서안지구, 가자지구 및 동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각기 이해관계가 다르고 팔레스타인 정부에 대한 시각에도 편차가 있었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갖고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더 달랐다. 고립이 지속되고 있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불만과 분노가 제일 크다면 이스라엘 국적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그간 관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사렛, 악고, 하이파 등 이스라엘 내 아랍 마을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충돌이 흔들어놓은 정치 지형

팔레스타인 내부 단합의 계기와는 별도로, 아랍 대중들도 이번 사태 와중에 일어난 이스라엘의 폭력적 대응에 분노했다. 지난해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한 국가를 향한 비판도 뒤따랐다. 동족 팔레스타인을 학살하는 이스라엘 정부와 수교를 추진한 데 대한 분노가 SNS를 타고 퍼져나갔다.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고 아랍 각국 정부는 부담을 느낄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 봉합에 나서고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해도 아브라함 협정이 더 확장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현재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현 시점에서 대중의 분노를 살 만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5월25일 가자지구의 한 팔레스타인 가족이 폐허로 변한 집터에 텐트를 쳤다. ⓒAFP PHOTO

팔레스타인 지지는 반이스라엘 정서로 연결된다. 이 정서는 분쟁 기간 중에 유럽과 미국에서 확산되었다. 도처에서 이스라엘의 비대칭적인 무력행위로 인한 민간인 피해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시위를 무력 진압하고, 가자지구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상황을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촉발했던 인종차별적 증오범죄와 동일시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의 팔레스타인 동조 분위기는 미약했다. 아랍 형제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을 버리는 듯했고, 미국 트럼프 정부는 이른바 ‘세기의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궁지로 몰았다. 이에 팔레스타인을 편드는 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비아랍 국가인 터키와 이란 등이 나름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원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이번 5월 사태로 팔레스타인은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급부상했다. 팔레스타인 대의가 되살아난 것이다.

네타냐후는 국가 위기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일단 벗어났다. 무조건 이스라엘 편을 들어주었던 트럼프의 퇴진으로 걱정이 늘었던 차에, 바이든의 변함없는 지지 표명으로 고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익을 냉정히 계산해보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아랍과의 수교를 통해 정상적인 중동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모처럼 마련된 여건을 상당 부분 악화시킨 셈이다. 무엇보다 국제사회 전반에 각인된 폭력국가 이미지가 뼈아프다. 어쩌면 트럼프 정부 시절 선물처럼 찾아왔던 기회가 이번 사태로 인해 상당 부분 날아가버렸는지도 모른다.

긴급한 위기 대응 차원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미국은 이·팔 평화 협상을 적극 중재할 의지도, 여유도 없다. 당분간 상황 관리 차원에서 선별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결국 이·팔 양측 당사자의 문제이고 양국 리더십의 의지와 능력이 관건이다. 하지만 현 네타냐후-아바스 구도로는 별다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국 국민의 선택으로 다시 공이 넘어온 셈이다. 새로운 비전을 가진 리더십이 등장하여 1993년 오슬로의 정신을 현재 맥락에서 재해석해 공존을 추구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과연 양국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관성적 정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 오랜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초정통파의 시대착오적 사고와 극우 시온주의자들의 이념을 극복할 이스라엘의 리더십. 하마스의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행태를 억누르고 파타의 무능을 극복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의 리더십. 이 둘의 등장이 없다면 비극적 갈등은 반복될 것이다.

기자명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in@mof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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