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에 설치된 비트코인 시세 전광판(오른쪽). ⓒ연합뉴스

4월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전날인 4월22일, 은 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날 청원인은 “금융위원장님도 부동산으로 자산을 많이 불렸더라(서울 서초구 아파트). 주택은 투기 대상으로 괜찮고 코인은 투기로 부적절한가? (은 위원장과 정부는) 투자자 보호에는 발을 빼고, 돈은 벌었으니 세금은 내라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청원에는 5월13일 현재 18만2000여 명이 참여했다.

은성수 위원장의 발언이 불씨를 댕겼지만, 전부터 쌓여온 과세에 대한 불만이 이번 청원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월6일 발표한 ‘2020년 세법개정 후속시행령 개정’에 따르면, 내년부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가상자산) 시세차익은 25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22%(지방세 포함) 세율로 과세한다. 가령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1년간 1000만원 수익을 거뒀다면 165만원(750만원의 22%)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가상자산을 규정하는 세목이 ‘기타소득세’라는 점이 특히 논란이었다. ‘기타소득’은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소득, 또는 불로소득을 아우르는 세목이다. 로또 등 복권 당첨금과 같은 분류다.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거래소(업비트·빗썸 등)는 주식거래소와 유사한 방식으로 시스템을 설계했다. 그러나 차익에 세금을 매길 때에는 전혀 다른 잣대가 작동한다.

주식이나 채권 거래를 통한 양도차익은 2023년부터 ‘금융투자소득’으로 잡힌다. 금융투자소득세는 5000만원까지 공제한 후 그 금액을 넘어서는 소득에 대해 과세한다. 가상자산의 과세 방식을 비판하는 이들은 “왜 주식거래보다 더 많은 세금을(공제금액 차이), 더 일찍부터(시행 시점 차이) 걷기 시작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기획재정부에도 나름의 사정은 있다. ‘가상자산이 금융자산이냐’는 질문에 대해 국제회계기준(IFRS)이 ‘그렇지 않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2019년 6월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는 암호화폐를 ‘재고자산’ 또는 ‘무형자산’으로 분류한다고 밝혔다. 가치의 변동이 너무 크고 바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현금 및 현금성자산’ ‘금융자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러한 회계기준을 감안해 암호화폐 차익거래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했고, 로또 당첨금 같은 여타 ‘기타소득’에 맞춰 세율과 공제액을 정했다고 설명한다. 정부와 국제 회계시스템 모두 암호화폐 거래를 금융거래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별도 법률(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로 규정된 증권거래소와 달리, 한국에서만 100곳이 넘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이제 막 법적 테두리가 마련됐을 뿐이다. 지난 3월25일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르면, 앞으로는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 접수된 거래소만 영업이 가능하다. 신고 신청을 하려면 실명계좌 발급을 위해 은행과 계약을 맺고, 자금세탁 방지 의무도 준수해야 한다.

암호화폐 거래 공제 기준, 해외 주식과 똑같다

특금법을 통한 거래소 규제는 부실 거래소 퇴출을 유도하는 조치에 가깝다. 중소 거래소는 은행과 계약을 맺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세청도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 데이터를 통해 과세 대상자를 걸러내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정부는 실명 추적이 가능한 거래소를 통해 과세 대상자를 선별하는 일종의 ‘과세 틀’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5월4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동산 현황 관계 부처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암호화폐에 깊이 경도된 이들은 정부의 이런 방침에 반발한다. 과세만 할 뿐 ‘보호’는 부족하다는 불만이다. 여기서 이들이 말하는 ‘보호’란 단순히 ‘부실 거래소 퇴출’이나 ‘거래 손해배상’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업비트나 빗썸 같은 대형 거래소에서도 대규모 해킹 피해, 거래소의 거래 지연 사태 등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반복됐다. 거래소를 정부가 ‘관리’한다면 이런 종류의 피해도 사전에 막고 억울한 피해자를 법으로 보호해줘야 한다는 요구다. 지난해 한 외국계 중소 거래소(한국에 지사 설립)에서 거래 지연으로 인해 수천만 원어치 피해를 본 투자자는 〈시사IN〉과 만나 “소송으로 대응하는 것도 어렵다. 우리가 사기업인 거래소 서버의 로그 기록을 일일이 살펴볼 수도 없지 않나. 증거를 확보하는 것조차 어렵다”라고 말했다.

‘투자자 보호’를 주장하는 거래 참여자들과 ‘애초에 암호화폐 거래는 금융거래가 아니라서 정부가 보호해줄 대상이 아니다’라는 정부의 입장은 첨예하게 맞선다. 그런데 일부 거래 참여자들의 주장대로 투자자 보호 시스템 마련을 과세의 ‘전제조건’으로 삼기는 어렵다. 과세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라는 원칙에 의거할 뿐, 조건을 주고받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 세법은 상금이나 사행성 행위를 통한 소득에 대해서도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과세한다.

암호화폐 거래에 국내 주식거래와 동일한 공제 기준(5000만원)을 적용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국내 주식거래는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목적 때문에 공제 기준이 높다. 반면 해외주식 거래는 암호화폐 거래와 마찬가지로 공제금액이 250만원에 불과하다. 해외주식 거래 차익에 대한 과세는 양도소득세로 분류되는데, 암호화폐처럼 250만원을 초과하는 소득분에 과세한다. 2020년 테슬라 주식으로 큰돈을 번 사람도 세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암호화폐 거래가 해외 주식 거래보다 공제액이 더 높아야 할 이유는 마땅치 않다.

암호화폐를 기존 금융과 동급으로 격상시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암호화폐 시장의 거래량이 급증한 것은 극단적인 변동성을 추구하는 개인의 선택이 잇따라서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주식거래와 달리 예치금이 적어도 거래총액은 많다는 특징이 있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31일 기준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 예치되어 있는 금액(대기자금)은 약 6조4864억원이었다. 반면 같은 날 유가증권시장의 투자자예탁금 규모는 62조원에 달한다. 약 10배 수준이다. 하지만 거래량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규모가 더 크다. 5월4일 업비트에서 하루 동안 거래된 ‘도지코인’ 거래금액은 11조원 수준이었다. 같은 날 코스피 전체 거래 대금은 15조9624억원. 사설 거래소 단 한 곳에서 단 한 개 코인의 거래량이 코스피 시장 전체 거래액에 맞먹은 셈이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은 2217조원인 반면 도지코인의 시가총액은 63조원에 불과하다. 단타 매매 비중이 높고 24시간 시장이 가동된 탓에 전체 거래량을 끌어올린 결과다.

거래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익을 보는 쪽은 수수료를 수취하는 거래소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2021년 1분기 영업이익은 약 5400억원이었다. 지난해 기아의 1년 영업이익이 약 2조원이었는데, 지금 추세라면 업비트의 영업이익이 기아의 영업이익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전통적인 금융의 관점에서 볼 때 가상화폐 시장은 이성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내재가치를 따질 수가 없어서 ‘밸류에이션(valuation·기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 어렵다. 즉 특정 코인의 적정 가격을 가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암호화폐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 등장한 암호화폐의 거래 풍토만은 투기적 성격을 강하게 띤다.

암호화폐 시장은 무시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 오가고, 제도화하기에는 투기 열풍을 부추길 위험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일단 투기성 거래로 돈을 번 사람들에게 과세하려는 움직임은 그 자체로 투기 방지책이 된다. 정부가 ‘빠르게 부를 늘리려는 청년층의 사다리를 세금으로 걷어찬다’는 논리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복권이나 경마장에서 걷어들이는 세금도 징수를 멈춰야 한다. 다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 정부에 부담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 인구는 500만명을 넘겼을 것으로 추산된다. 2030 세대 사이에서 암호화폐 이슈는 가장 뜨거운 주제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면, 과세에 대한 반발이 있는 곳에는 늘 정치가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가상자산 과세에 대한 반발이 거세게 일자 정치인들이 가세하기 시작했다.

야당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 대표는 5월13일 “정부·여당의 인식은 건달만도 못하다. 섣불리 시세차익에 과세하면 시장의 혼란이 생긴다”라고 주장했다. 여당 내에서도 적극적으로 세제를 개편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월27일 “암호화폐는 로또가 아닌 주식에 가깝다”라며 “기타소득이 아닌 금융투자소득으로 분류하여 합산 공제를 늘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모두 현 정부의 기본 관점과는 배치되는 주장이다.

2020년 10월23일 한국주식투자연합회 회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을 (3억원이 아닌) 현행 10억원으로 유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현재 이 기준은 유지되고 있다. ⓒ연합뉴스

과세에 대한 반발, 정치인의 가세, 기재부의 대응(양보 또는 원안 고수)이라는 과정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자산을 통해 이룬 부(富)’에 세금을 매기는 과정에서 자주 등장했다. 최근의 예시가 지난해 ‘대주주 요건’을 두고 벌어진 논쟁이다. 원래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는 ‘거래세’와 ‘대주주의 양도소득세’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를 개편하기 위해 2023년부터 도입하기로 한 게 금융투자소득세다. 2022년까지는 ‘대주주의 양도소득세’가 유지되는데, 2021년부터 이 대주주의 요건이 한 회사의 주식을 ‘10억원어치 이상 보유’하는 조건에서 ‘3억원어치 이상 주식을 보유할 경우’로 바뀔 예정이었다.

지난해 급격하게 증가한 개인투자자들이 이 조치에 크게 반발했다. 대주주 요건이 3억원으로 낮춰질 경우 세금을 피하기 위해 연말에 매물이 많이 나오고, 결국 주식시장 전체에 가격 하락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여당에서도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무시할 수 없어서 결국 당·정·청 회의 끝에 ‘대주주 요건 10억원’이라는 기준은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 냈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에 항의해 돌발성 사표를 제출하며 이목을 끌기도 했다.

자산에 대한 과세 논란으로 부동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부동산은 취득세·양도소득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거래와 보유 과정에서 모두 세금을 매긴다. 특히 자산 자체에 매년 매기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공시가격 상승으로 인해 올해 크게 인상되리라 예상된다(〈시사IN〉 제711호 ‘불가피한 공시가 상승, 호재 만난 야 지자체장’ 참조). 부동산의 보유, 부동산의 거래 차익에 대한 세금 역시 정치권에서 주목하는 이슈다. 국민의힘은 공시가격 하락과 재산세 감면을 주장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5월12일 당내에 ‘부동산 특위’를 가동하며 5선 김진표 의원을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재산세 부과 고지서가 6월 중 발송될 예정인데, 여당 처지에서는 부동산 보유자의 반발이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에 서둘러 위원회를 구성했다.

부동산 투자는 참가조차 어려운 게임

위원회는 재산세 감면 상한선을 높이고 거래세를 조정하는 안을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여당 내에서도 대표적인 부동산 감세론자로 분류되는 김진표 의원이 위원장을 맡아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은 비공개회의에서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다주택자의 양도차익을 회수하기 위한 조세정책)를 일정 기간 유예해 매물이 나오도록 하자는 주장을 했다고 알려졌다. 부동산은 관련 세제 규정에 따라 시장 거래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도 있어서 과세정책이 그 자체로 부동산 가격관리 수단으로 적용된다.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를 풀어주는 것은 암호화폐나 주식시장과 달리 ‘비싼 자산의 시세차익은 눈감아주는 모습’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 가상자산 과세에 분노한 이들 입장에서 “우리는 차액 소득이 250만원만 넘겨도 세금을 22%나 가져가는데, 억대 차익을 거두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세금을 깎아준다”라는 불만이 나올 수 있는 조치다. 양도세 중과를 풀어준다고 해서 다주택자가 집을 내놓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당내에서도 반발하는 이들이 많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부동산은 관련 세제 규정에 따라 시장 거래의 방향이 결정되기도 한다. ⓒ시사IN 이명익

넘쳐나는 유동성은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흥미로운 점은 각 자산이 일종의 세대성·계급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가상자산(암호화폐)·금융자산(주식·채권·펀드 등)·부동산자산은 최소 투자금액과 변동성, 위험도가 각기 다르다. 이 가운데 지난 몇 년간 가장 안정적으로 레버리지(빚)를 동원하고 가장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던 자산은 부동산이었다. 과열을 막기 위해 부동산 관련 금융 규제가 적용된 이후로는 최소 투자금액이 급격히 상승한 자산이기도 하다. 세상을 단순히 ‘투자의 관점’으로만 바라본다고 가정했을 때, 젊은 세대에게 부동산 투자는 참가하기조차 어려운 게임으로 인식되고 있다. 저 게임에 참여한 이들은 부모에게 자금 지원을 받은 동년배이거나 일찌감치 대출을 받은 선배 세대다. 주택은 레버리지를 동원하기 가장 용이한 자산이다. ‘빚의 수혜’ 역시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누린다.

가상자산을 예찬하는 이들 중 일부는 세상을 일종의 게임에 빗대어 해석한다. 부동산이라는 ‘상위 리그’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주식투자나 암호화폐 투자를 통해 ‘진급’을 거쳐야 한다. 암호화폐 투자 같은 ‘하위 리그’일수록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위험이 클수록 보상도 크다)’ 성격을 띤다. 가상자산을 예찬하는 이들에게는 각 자산시장이 온라인 게임 속 ‘경쟁전 티어(등급) 구분’과 닮아 있다. 세상을 이런 구분으로 이해하는 이들일수록 세금에 대한 저항은 강하다. 하위 리그에 대한 차별로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법으로 정해진 과세 체계는 어떤 형태의 소득에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세대와 계층 간 사다리가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사다리를 치운 주인공이 ‘세금’은 아니다. 암호화폐 시장 같은 가상자산 시장이 적은 돈을 크게 불리기에 더 용이한 곳도 아니다. 근거 없이 크게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어느 날 갑자기 폭락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앱에서 한 사용자는 “어차피 (암호화폐 투자가) 도박인 거 모두 아는걸”이라며 자조하는 글을 남겨 공감을 얻었다. 유동성이 넘쳐나는 저금리 시대는 노동과 투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자산 과세 논쟁은 이렇게 뒤바뀐 사회적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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