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유럽인권재판소는 구걸 행위를 인권으로 인식한 최초의 판결을 냈다.ⓒDPA

스위스 북부 도시 바젤이 지난 4월부터 특이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바젤에 상주하는 걸인들에게 유럽 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기차표와 현금 20스위스프랑(약 2만5000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원하는 걸인 누구나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떠난 뒤 스위스로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만약 다시 스위스로 온 것이 발각되면 즉시 국외로 추방된다. 지금까지 바젤의 걸인 31명이 이 제안을 수용해 스위스를 떠났다. 국적별로 보면 루마니아(14명), 벨기에(7명), 독일(7명) 등 모두 스위스가 아닌 외국 출신이다. 걸인에게 약간의 지원까지 하면서 자발적으로 도시를 떠나도록 하는 이유가 뭘까. 바젤의 이 정책 뒤에는 좀 복잡한 배경이 있다.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스위스 서부 도시 제네바에서 일어난 일이다. 루마니아 출신인 19세의 집시 여성이 거리에서 구걸을 했다. 이 여성은 직업도, 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 혜택도 없었다. 문맹이어서 일자리 찾는 게 쉽지 않았고 가족의 금전적 지원도 전혀 없었다. 극빈층인 이 여성에게 구걸은 생계를 유지하는 길이었다. 문제는 제네바에서 2008년 이후 공공장소에서의 구걸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는 점이다. 스위스에는 칸톤(주)이 26개 있고 저마다 법이 다른데, 26개 칸톤 중 제네바를 포함해 절반 이상이 현재 구걸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경찰은 이 집시 여성에게 3년 동안 9차례에 걸쳐 매번 100스위스프랑(약 12만원)씩 벌금을 청구했다. 여성은 당연히 벌금을 내지 못한다. 2014년 1월, 경찰은 한 번에 벌금 500스위스프랑(약 60만원)을 청구한다. 이번에도 벌금을 못 낸 여성은 5일 동안 구치소에 수감된다.

벌금 못 낸 걸인이 구금된 이 일은 당시 큰 이슈가 됐다. 이른바 ‘빈곤의 범죄화’가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지를 놓고 찬반 논쟁이 격렬했다. 구걸금지법에 반대하는 한 시민단체의 청원에 의해 이 사건은 칸톤 법원, 그리고 스위스 최고 법원인 연방법원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문제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자 이 사건은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회부됐고, 올해 1월19일 결정이 내려졌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스위스 정부가 유럽인권협약 제8조(사생활과 가족의 권리)를 위반했다며 이 집시 여성에게 992유로(약 134만원)를 배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판결 내용을 보자. “명백히 취약한 상황에 놓인 당사자는,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고 본인의 상황을 구걸을 통해 해결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인간의 위엄을 지킬 권리가 있다.”

이것은 유럽인권재판소가 구걸 행위를 인권으로 인식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다. 앞으로 스위스는 물론이고 유럽 전역에서 구걸금지법에 대해 재고해야 할 것이다. 앞서 소개한 바젤의 정책은 이 판결 이후 시행된 것이다. 기차표 제공은 걸인을 내쫓기 위한 우회전략인 셈이다.

3월10일 프랑스 시민단체 자원봉사자들이 파리의 노숙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PA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정과 별개로, 현실에서 과연 구걸은 인권인가. 일단 한국에서는 아니다. 스위스의 많은 칸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구걸 행위는 불법이다. 2012년에 통과되어 2013년 3월 시행된 경범죄처벌법 개정안 제3조 1항 18호에 따르면,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도록 시켜 올바르지 아니한 이익을 얻은 사람 또는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개정 이전의 경범죄처벌법은 다른 사람에게 구걸을 시켜 부당한 이익을 얻은 사람만 처벌 대상으로 한정했는데, 개정안에서 스스로 구걸하는 행위까지 범죄화했다. 자발적 구걸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었다.

걸인이 사라지면 빈곤도 사라질까?

개정안이 통과된 2012년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당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가 서울대 〈법학〉지에 실은 논문 ‘구걸 행위 금지 조항의 위헌성-미국 주요 판례를 통한 비교법적 고찰’은 구걸 행위를 처벌하는 법 조항의 문제점을 미국 연방법원 판례를 들어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이 조항이 정확히 무엇을 금지하는지 알기 어렵고, 이를 통해 자의적인 체포와 유죄판결이 가능해진다(모호성에 기한 무효). 둘째, 구걸 행위도 표현의 한 형태로, 본질적으로 기부금품 모집 행위와 다르지 않다(표현의 자유). 셋째, 국가가 범죄화하는 대상에는 한계가 있으며, 어떤 행위가 아닌 ‘빈곤하다’는 존재 자체를 처벌할 수는 없다(잔혹하고 이상한 형벌 금지).

이처럼 구걸금지법은 유럽에서나 한국에서나 법적으로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스위스에서 구걸금지법을 밀어붙이고 있는 스위스국민당(SVP)은 구걸 행위가 ‘조직화’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걸인들 뒤에 이들을 착취하는 조직이 있기 때문에 구걸을 순수한 도움 요청이라고 볼 수 없고, 적선은 범죄조직을 돕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근거는 없다. 2012년 한 스위스 칸톤에서 걸인들이 조직을 이루고 있는지 전문가들이 조사해 보고서를 냈는데, 결론은 조직범죄가 아니라는 거였다.

구걸의 범죄화에 반대하는 쪽은 주로 자유를 근거로 내세운다. 사생활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경제활동의 자유 등이다. 김지혜 교수는 앞에서 언급한 논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구걸 행위를 개인적인 곤궁이나 필요를 표현하는 것인 동시에 적극적인 사회적·정치적 표현행위, 즉 사회문제로서 빈곤의 현실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 내용이 공익을 포함한다고 보아 더욱 적극적인 보호를 받게 된다.” 여기서 ‘공익’이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걸인이 스스로의 빈곤을 표현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된다는 거다. 스위스에서 구걸금지법 반대 운동을 이끌고 있는 변호사 샤비에르 루블리는 이렇게 말한다. “거리에 앉아 있는 걸인들은 메시지를 전한다. 비록 행인들을 방해하고 귀찮게 하더라도, 그 행인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문제인지 질문을 일으키고 토론을 유발한다.” 걸인이 사라진 공공장소는 깨끗하고 안전해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빈곤이라는 사회문제가 사라진 건 아니다. 더 어두운 곳에 숨겨졌을 뿐이다. 숨겨진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구걸 행위는 빈곤이라는 사회문제를 드러냄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래서 공익적이다. 이 지점에서 구걸과 함께 거론되는 사회문제가 노숙(홈리스)이다.

‘홈리스와 함께하는 유럽 국가 조직 연합(FEANTSA)’은 유럽에서 홈리스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유일한 비정부기구다. 이 기구의 2021년 2월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전역의 홈리스는 약 70만명으로 추산된다(단 하루라도 노숙한 사람 포함). 지난 10년 동안 70% 증가한 수치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홈리스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숫자가 감소 중인 나라는 딱 하나, 핀란드뿐이다. 앞서 구걸 행위는 빈곤이라는 사회문제를 가시화한다고 했다. 홈리스는 빈곤 중에서도 특히 주거빈곤 문제를 드러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거비 과부담’이다. FEANTSA에 따르면 소득의 40% 이상을 월세 등 주거비용으로 지출할 경우 주거비 과부담에 해당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에 속한 가구의 약 10%가 주거비 과부담 문제를 갖고 있다. 저소득층으로 한정하면 이 비율은 40%까지 올라간다.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소득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는 뜻이다. EU 내에서 비교적 가난한 그리스건, 잘사는 덴마크건 이 현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홈리스라는 사회문제가 이전보다 더 부각되었다. 위는 3월1일 코로나19로 격리 중인 노숙인이 묵고 있는 체코 프라하의 한 호텔. ⓒEPA

홈리스라는 오래된 사회문제가 그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낸 것이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재택근무’ ‘거리두기’ 같은 팬데믹의 기본 원칙이 노숙인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2020년 10월 ‘국경 없는 의사회’가 파리 시내와 근교의 노숙인 쉼터에서 코로나19 항체 테스트를 한 결과, 노숙인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에 걸렸거나 이전에 걸린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국 정부가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국 런던에서는 1차 유행기였던 2020년 3월에 호텔 객실 300개를 노숙인들의 자가격리 시설로 제공했다(당시 런던의 노숙인은 약 9000명으로 추산). 유럽의회는 2020년 4월 재택근무로 비게 된 의회 건물 중 하나를 노숙인을 위해 제공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다 일시적인 것들이다. 팬데믹이 끝나고 호텔과 건물이 제 용도를 찾으면 어쩔 텐가. 팬데믹 이전보다 더 늘어난 홈리스는 어떻게 하나. 코로나19로 경제가 악화되면서 프랑스에서만 100만명이 새롭게 빈곤층에 포함됐다.

쉼터가 아니라 집이 필요하다

핀란드 사례가 주목을 받는 건 이런 상황 때문이다. 앞서 썼듯이 핀란드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노숙인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나라다. 핀란드에는 1987년만 해도 노숙인이 1만8000명 이상 있었다. 이 숫자는 2016년 7000명까지 떨어진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른 나라와 구별됐던 핀란드의 정책은 ‘주택 우선(housing first)’이다. 노숙인들 상당수는 재정·건강·중독 같은 문제를 안고 산다. 보통은 이것들이 먼저 해결되어야 홈리스 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핀란드 정부는 반대로 접근했다. 조건을 따지지 않고 집을 먼저 제공했다. 정부에서 프로젝트를 수주받아 실행하는 홈리스 지원단체 ‘Y재단’은 땅값 싼 곳에 날림으로 지은 집이 아닌,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도시의 번듯한 주택을 노숙인들에게 지원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쉼터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뿐이다. 품위 있는 삶을 살려면 쉼터가 아니라 집이 필요하다. 주택은 기본 인권이다. (중독 같은)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그다음이다(Y재단 대표 유하 카키넨).”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도 노숙인이 눈에 띄지 않는 건 핀란드 헬싱키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유는 정반대다. 2018년 10월부터 시행된 법에 따라 노숙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노숙인을 지원하는 헝가리 시민단체에 따르면 이 법 시행 후 노숙인들이 얼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근교 숲에서 지낸다. 예전에는 어디 가야 노숙인을 만나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았지만, 지금은 다 숨어서 도움을 줄 수도 없다고 한다.

구걸이나 노숙을 금지하는 건 개인의 자유를 침범하고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결정적으로 사회문제를 숨김으로써 해결을 어렵게 한다. “눈에 보이는 게 보이지 않는 것보다 나은 거야. 숨어 있는 게 더 위험하고 무서운 거란다.”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윤여정)가 뱀에게 돌을 던져 쫓으려는 손자에게 하는 말이다. 물론 걸인이나 노숙인를 뱀 같은 위험에 비유할 순 없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맨 앞에서 드러내는 존재이고, 그 존재를 쫓아내는 게 아니라 직시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출발이다.

기자명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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