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웅 칸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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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웅 칸트 씨는 원래 상업사진 작가로 일했다. 쿠데타가 발발하자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1994년생인 그에게 쿠데타는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1988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 같은 사진 기술이나 SNS가 없어서 시민들이 많이 희생되어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의 한순간이 다시 잊히지 않도록 기록하는 게 사진작가로서 소임이라 생각했다. 기자도 아니고, 소속 매체도 없지만 2월6일부터 지금까지 양곤과 만달레이를 오가며 미얀마 시위대의 얼굴을 담았다.

그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Ants Are Always Busy)에는 언론 보도에서 잘 보지 못한 반쿠데타 시위의 곳곳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어떤 장면은 ‘민감한 콘텐츠’로 가려져 있다. “시민 4명이 죽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그 순간 너무 두려웠고, 카메라를 내려놓고 같이 싸우고 싶었다.” 시민들의 손에 들렸던 피켓, 풍선, 장미가 시간이 지나면서 플라스틱 방패와 화염병으로 바뀌는 동안 시위대의 표정도 따라 변했다. 마웅 칸트 씨는 시위에 나온 이들의 다양한 감정을 포착하고 싶었다. “어떤 이들은 감정이 폭발하고, 일부는 경찰을 향해 크게 소리치기도 한다. 셔터를 누르다 보면 강렬한 감정이 전이되는 듯하다.” 그의 사진 속에서 ‘유혈 사태’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얀마 시민들의 열망과 분노, 좌절을 본다.

마웅 칸트 씨에게 그의 사진 수천 장 중에서 소개하고 싶은 몇 장을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오랜 고심 끝에 여러 장을 보내주었다. “세계가 미얀마의 현실에 대해 알길 바란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진을 계속 찍는다. 그것이 내가 희생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체포되거나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 올릴 것이다.”

3월27일 양곤에서 시위대와 대치하던 경찰은 최루탄과 실탄을 발사했다. 한 남성이 내 눈앞에서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청년 시위대 중 일부는 경찰의 눈을 돌리기 위해 화염병을 집중적으로 던졌다. 또 일부는 쓰러진 남성을 방패로 호위하며 다른 장소로 옮겼다. 그 남성은 결국 숨졌다. 이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야 했던 나는 슬프고 힘겨웠다. 이 글을 쓰는 오늘(4월27일)은 그가 사망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다. 그를 추모한다. ⓒ마웅 칸트 제공
4월21일 만달레이. 새벽에 청년들이 거리에 모였다. 시위대가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마을을 지나가자, 한 가족이 베란다에 나와서 한마음이라는 듯 응원을 보냈다. 요즘에는 새벽이나 밤중에 바깥에 나오는 것이 어렵다. 매일 밤 8시에 시민들은 저항의 의미로 냄비를 두드리곤 하는데, 이 소리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은 불시에 들이닥친다. 나로서는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도망 다녀야 한다. 가진 것이 없어도, 허름한 집에 살아도,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냄비를 두드리고, 세 손가락을 들고, 민주주의를 염원한다. ⓒ마웅 칸트 제공

 

기자명 마웅 칸트 (사진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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