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5일 인천 부평구 한 모텔(사진)에서 태어난 아기는 2개월 후 인근 다른 모텔에서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 ⓒ시사IN 이명익

인천 부평구 번화가에 위치한 ㄱ모텔에 ‘아기 가족’이 처음 묵은 건 지난해 6월이었다. ㄱ모텔 주인은 당시 아기 아빠 최 아무개씨(27)와 엄마 김 아무개씨(22)가 돌도 지나지 않은 신생아를 안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애 아빠가 아기 띠로 애를 보듬어 안고 있었어. 그때부터 가끔 와서 하루씩 자고 가더라고. 다음 날 모텔을 나가면 셋이 어디 갈 곳이나 있는지 걱정은 되는데, 손님이니까 물어보기도 어려웠고.”

두세 번 모텔을 찾아온 아기 가족에게 말없이 방 열쇠를 건네주던 모텔 주인이 결국 부부에게 말을 붙인 건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비는 오지, 날은 덥지, 애는 어리지⋯. 내가 ‘집 없어? 왜 자꾸 와?’ 물어보니까 그냥 여행 왔다고 그러더라고. 딱 봐도 아닌 거 같은데 더 물어볼 수도 없잖아.” 이튿날부터 부부는 모텔을 찾아오지 않았다. 구청에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모텔 주인도 아기 가족을 잊고 지냈다.

해가 바뀐 지난 1월, 아기 가족이 다시 ㄱ모텔을 찾았다. 부모 품에 안겨 있던 아기는 어느새 유모차를 탔다. 모텔 주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부부가 숙소를 드나들 때마다 아기를 유심히 살펴봤다. “내가 자꾸 애를 쳐다보고 살펴보고 그러니까 부모도 내가 걱정하는 걸 알았나 봐. 드나들 때마다 ‘애기는 잘 먹이고 있어요, 잘 씻기고 있어요’라며 먼저 보여주더라고.”

아기 가족이 마지막으로 이 모텔에 머문 건 2월15일이었다. “아침에 오니까 주차장에 유모차가 있더라고. 방 안이 좁으니까 유모차는 항상 밖에 세워뒀거든.” 아기 가족이 모텔에 왔다는 뜻이었다. 오전 10시가 지났을 무렵 갑자기 모텔 앞에 119 구급차가 멈췄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모텔 주인에게 구급대원이 뛰어 올라가며 말했다. “출산했대요.” 두꺼운 겨울옷 때문에 아기 엄마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던 모텔 주인이 깜짝 놀라 뒤따라 올라갔다. 아기 엄마 김씨는 비좁은 모텔 화장실에서 이미 둘째를 낳은 직후였다. 피범벅 속에서도 갓 태어난 생명이 크게 우는 소리를 듣고 모텔 주인은 안도했다.

산모는 구급차를 타고 인근 종합병원으로 옮겨졌다. “애 아빠한테 ‘어쩌려고 이런 곳에서 애를 낳았느냐’고 했더니 죄송하다는 말밖에 안 해. 애가 이렇게 빨리 나올 줄 몰랐다고, 사장님 정말 죄송하다고.” 첫째 아이를 유모차에 앉히고 비닐봉지에 담은 짐을 유모차 손잡이에 주렁주렁 매단 최씨는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멀어졌다. 택시를 탈 돈이 없었던 최씨는 병원까지 30분 동안 유모차를 밀며 걸어가야 했다.

모텔 주인은 산모 김씨가 화장실에서 출산할 당시 얇은 모텔 가운만 입고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산모가 추운 겨울날 놓고 간 빨간 패딩을 혹시 찾으러 올까 봐 버리지 않고 창고에 보관해두었다. 기저귀와 젖병 등 육아용품도 마찬가지로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살림살이가 없는 애들이니까 차마 못 버리겠더라고.”

아이가 쓰던 젖병. ⓒ시사IN 이명익

정리를 끝낸 ㄱ모텔 주인은 해당 구역을 담당하는 부평1동 행정복지센터에 전화를 걸어 모텔에서 출산한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이름이나 나이 등 구체적인 인적사항은 파악되지 않았다. 부부가 하루 숙박비 3만원을 항상 현금으로 결제했기 때문에 정보를 추적할 단서도 없었다. 부평1동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과 담당자는 이후로 두세 차례 ㄱ모텔 주인에게 연락해 가족이 모텔로 돌아왔는지 확인했다. 사회복지과 담당자는 ㄱ모텔 주인에게 아기 가족이 돌아오면 꼭 연락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부부는 ㄱ모텔로 돌아오지 않았다. ㄱ모텔 주인은 “모텔에서 아기를 낳고 소란스럽게 했다는 생각에 미안해서 돌아오지 못한 것 같다”라고 추측했다.

엄마 김 아무개씨가 둘째 아이를 낳은 인천 부평구 한 모텔에 남아 있는 가족의 짐. 빨간 패딩이 김씨의 소지품이다. ⓒ시사IN 이명익

‘사장님, 그때 저희 도와주신다고 하셨죠’

병원에서 몸을 추스르고 퇴원한 아기 가족은 ㄴ모텔로 거처를 옮긴 상태였다. ㄱ모텔에서 걸어서 5분, 직선거리로 200m 떨어진 곳이다. ㄴ모텔 주인 역시 아기 가족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몇 번 왔었거든요. 하룻밤 자고 가고 또 며칠 후에 와서 자고 가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저기(ㄱ모텔)에서 하루 자고 여기(ㄴ모텔)에서 하루 자고 그런 식으로 근처 모텔을 떠돌았던가 봐.” 당시 아기 가족의 상황을 딱하게 여긴 ㄴ모텔 주인은 ‘혹시 나중에 처지가 곤란해지면 연락하라’며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둘째 아이를 낳고 ㄱ모텔로 돌아갈 엄두를 못낸 부부가 떠올린 번호이자, 유일하게 전화를 걸 수 있는 번호였다. “전화를 받았더니 애 엄마더라고요. ‘사장님, 그때 저희 도와주신다고 하셨죠. 저희 갈 곳이 없어요’ 그러기에 오라고 했죠.”

아기 가족이 ㄴ모텔로 들어온 건 2월28일이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 2주째 되는 날이었다. 아기 아빠 최씨는 택배 물류 작업에 나가기 시작했다. 최씨가 오후 5시쯤에 나가 야간작업을 마치고 다음 날 오전 10시에 돌아오면, 11시쯤에 온 가족이 함께 외출했다. “모텔에는 취사 시설이 없으니까 밖에서 사먹고 오더라고요. 애가 둘이나 있으니까 식당도 못 들어갔던가 봐요. 항상 도시락 같은 걸 싸와서 먹었어요.” 하루에 한 번 나가서 사먹는 밥이 부부의 유일한 식사였다.

아기 가족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모텔에서 보관 중인 짐. 아기 옷, 분유 수첩(아래), 아기띠와 젖병(제일 아래) 등이 남아 있다. 분유 기록은 아기 엄마가 체포되기 직전인 오후 1시15분까지 적혀 있다. ⓒ시사IN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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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일을 하고 돌아온 최씨는 오전에 아기를 안고 나가면서 그날 벌어온 돈 중에서 2만원을 방값으로 냈다. 모텔 주인이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려도 꼬박꼬박 돈을 냈다. 주말에는 평일보다 비싼 방값을 고려해 3만원을 내기도 했다. 그런 부부를 어떻게든 돕고 싶었던 ㄴ모텔 주인은 최씨를 불러 자초지종 사정을 물었다.

알고 보니 아기 엄마 김씨는 지적장애로, 심한 장애(2019년 7월 장애 등급제가 폐지된 이후 ‘심한 장애’와 ‘심하지 않은 장애’로 나뉨)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둘의 결혼을 반대했던 최씨의 부모는 3년 전 인연을 끊었다. 김씨의 아버지도 중증 치매에 걸린 어머니(김씨의 할머니)를 혼자 돌보는 상황이었다. 부부가 인천 남동구에 빌라를 얻은 적이 있지만, 보증금 문제로 오래 살지는 못했다. 빌라에서 나온 뒤로는 모텔을 전전했다.

사정을 파악한 ㄴ모텔 주인은 부평1동 행정복지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ㄱ모텔로부터 연락을 받은 뒤로 아기 가족의 행방을 찾고 있던 행정복지센터 담당자가 가정 방문 간호사와 함께 ㄴ모텔을 여러 차례 방문해 반찬과 기저귀 등 생필품을 지원했다. 부평구청이 남동구청과 연계해 김씨에게 해산급여와 여성장애인출산지원금 등 총 270만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의 손길은 제한적이었다. 그들의 불안정한 거주 때문이었다. 부부의 주소지로 등록된 곳은 모텔이 있는 인천 부평구가 아닌, 과거 그들이 잠시 살았던 빌라가 있는 인천 남동구였다. 실제 거주지와 법적 거주지가 다른 상황에서 받을 수 있는 행정 서비스는 한정되어 있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을 받으려면 실제 거주지와 법적 거주지가 같아야 했다. 부부는 원래 살던 남동구에 거주하기를 원했다. 부평구청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이 가족이 남동구에 집을 새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대한적십자에서 보증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에도 신청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라고 말했다.

3월21일 아기 가족은 ㄴ모텔에서 자취를 감췄다. 평소와 다름없이 코인 빨래방을 다녀온다며 네 사람이 함께 모텔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바로 옆 건물인 ㄷ모텔로 거처를 옮겼다. 차 한 대 지나가는, 폭 4m의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둔 곳이었다. 모텔을 옮긴 뒤로는 구청 담당자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난 인천 부평구의 한 모텔. 출산 이후 가족은 걸어서 5분 거리의 다른 모텔로 거처를 옮겼다. ⓒ시사IN 이명익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부부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기 엄마 김씨가 사기죄로 고소를 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친구에게 총 47회에 걸쳐 돈 1153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아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였다. 하지만 김씨는 세 차례 열린 재판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아 지명수배자가 되었다. ㄴ모텔 주인은 “전입신고를 하면 주소지가 확실해지니까 경찰이 잡으러 올 거라는 걱정 때문에 연락을 끊었던 것 같다. 내게라도 도움을 구했으면 같이 재판에 가줬을 텐데, 부부가 어리니까 무서워서 무작정 도망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국선 변호인은 “김씨가 생계형 범죄를 저질렀고 전과가 없는 초범”인 점을 강조했다.

경찰이 이들 가족을 발견한 건 정작 지명수배 때문이 아니었다. 생활이 어려운 부부와 계속 연락이 닿지 않자 4월5일 남동구청은 경찰에 실종 수사 요청을 했다. 이튿날 경찰은 ㄷ모텔에 머물고 있는 아기 가족을 찾아냈다. 신원을 확인하던 경찰은 김씨 앞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알게 되었다. 곧바로 체포가 이뤄졌다. 인천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사정이 안타깝지만 구속영장이 발부돼 있는 사람을 인지한 순간 체포하지 않을 수는 없다. 대신 당시 경찰은 구청 담당자에게 모텔에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다고 연락을 취했다”라고 말했다.

이 작은 옷들을 어떡하나

김씨는 매일 4~5차례 둘째 아이에게 분유를 먹인 시간과 분유량을 꼼꼼하게 적어뒀다. 육아 수첩은 4월6일 오후 1시15분 기록으로 끝난다. 엄마가 체포된 시각은 같은 날 오후 2시. ㄷ모텔 주인은 엄마 김씨가 구속된 이후 아빠 최씨가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2개월 갓난아기(둘째)랑 19개월 아기(첫째)를 방에다 두고 나올 수가 없잖아요. 누가 대신 돌봐줄 사람도 없고. 자기 밥도 못 사러 가더라고.”

ㄷ모텔 주인은 최씨에게 반찬과 미역국을 챙겨줬다. 모텔 주인이 둘째 아기를 안고 있는 잠깐 동안 최씨는 옆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모텔 주인은 첫째 아기가 분유를 떼고 이유식을 먹어야 할 나이라는 사실을 알고 죽을 사다 주기도 했다. “나중에 방에 들어가 보니까 죽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고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까 분유만 먹던 어린 첫째가 죽을 먹을 줄 알았겠나 싶고.”

최씨는 무엇보다 구치소에 갇힌 아내를 보러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답답해했다. 면회를 가려면 아이들을 대신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주위에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었다. 이틀 뒤인 4월8일 최씨의 친구가 모텔을 방문해 아이를 돌봐줬지만 잠깐이었다. 결국 4월13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최씨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2개월 된 둘째 아기가 코피를 흘리고 숨을 쉬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내용이었다.

1년 넘게 모텔을 전전했던 가족의 숙소. 왼쪽과 오른쪽 모두에 묵었다. ⓒ시사IN 이명익

전화를 받은 병원 측은 소방서에 신고했다. 모텔로 출동한 119 구급대원은 의식을 잃은 아기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경찰은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 중상해 혐의로 최씨를 긴급 체포했다. 19개월 첫째는 즉시 보육원으로 넘겨졌다. 최씨는 처음에 “딸아이를 들고 있다가 실수로 벽에 부딪혔다”라고 진술했지만 결국 “아이가 계속 울자 화가 나 던졌다. 테이블에 아이 머리가 부딪혔다”라고 혐의를 인정했다.

인천 남동구청 아동복지과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사건 당일 오전 11시에 만나서 우선 둘째 아이를 건강검진 하고 위탁가정으로 보내기로 약속한 상황이었다. 불과 몇 시간을 남기고 이런 일이 발생했다”라고 말했다. ㄷ모텔 주인은 “비좁은 모텔방에서 그래도 어떻게든 애들을 키우려고 노력했던 부부인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모텔살이’ 아동학대로 명명된 사건의 가장 가까운 목격자인 모텔 주인들은 아기 가족의 서사를 살펴봐주길 당부했다. ㄴ모텔 주인은 “사회가 이들에게 죄를 만들어줬다는 생각마저 든다. 판사가 서류만 보고 ‘이건 사기’ ‘저건 아동학대’ 라고 단순하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 어린 가족이 돈 때문에 1년 넘게 모텔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렇게 살면서도 항상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늘 품에 안고 다녔던 모습, 이런 걸 좀 헤아려주고 사건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긋났는지를 밝혀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아기 가족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ㄷ모텔 주인 역시 그들이 남긴 단출한 옷가지와 육아용품을 모아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중이다. ㄷ모텔 주인은 캐리어 속에 담긴 짐을 바라보며 “방 한 칸이 없었을 뿐이지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애들(부부)이 애들(아기 남매)을 키우려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비록 잘못은 했지만 이번 한 번만 가족이 다시 같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겠다. 이 작은 옷들을 어떡하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옷가지 속에는 아기 아빠가 미처 씻지 못해 분유가 말라붙어 있는 젖병과 분유통이 섞여 있었다. 4월26일 사기 혐의에 대해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아기 엄마 김씨는 구치소에서 나와 현재 여성 임시보호시설에 머무르고 있다. 당시 병원으로 이송된 아기는 4월29일 현재까지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기자명 인천/글 나경희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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