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관여하게 된 게 벌써 5년째다.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에 몇 번 사양하다 덜컥 응답을 하고 말았다. 영화 전문가나 마니아도 아닌데 그렇게 한 것은 순전히 ‘도움이 된다면…’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후로 나는 부끄럽고 쑥스러운 마음을 간직한 채 매년 영화제를 맞고 있다.

영화제에서는 장애인 인권을 소재로 했거나 아니면 장애인 당사자들이 기획·출연·촬영·감독 등을 맡은 영화가 상영된다. 현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영화감독 시절 제작해 많이 회자됐던 영화 〈어른이 되면〉이 개막작으로 상영되기도 했고, 고 박종필 감독의 〈버스를 타자〉와 같은 수작도 여러 편 있다.

하지만 솔직히 일부 영화는 작품성을 논하기 어렵다. 상업영화에 길들여진 눈으로 보기에 영화는 엉성하고 무겁고 불편하고 재미가 없다. 나의 초대와 요청에 이끌려 지인들이 영화제를 찾았지만 두 번 이상 온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하다.

나는 ‘몸 부조’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사흘간 계속되는 영화제에 매년 꼬박꼬박 가서 영화를 봤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장애인들이 살아가는 ‘다른 세상’을 만났고 간접 경험과 상상을 통해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배움의 기회를 얻었다. 가고 싶은 곳으로 이동하기, 밥 먹을 식당 찾기, 카레 만들기나 제주도 여행 같은 행복 만끽하기, 또래 청년과 만나 얘기해보기, 춤추고 노래하기. 영화 속에는 비장애인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상이지만 이를 쟁취하기 위해 자신의 온 삶을 걸고 분투해야 하는 다른 세상이 있었다.

자신을 피해자로 두기보다 차별과 폭력의 단단한 구조에 균열을 내는 수많은 자기 삶의 주인공들도 등장했다. “휠체어 타고 버스를 타면 자꾸 쳐다봐서 처음엔 무서웠어요. 그러다 저상버스 마련하라고 다 같이 목소리를 낼 때 조금씩 바뀌는 게 보여서 이렇게 활동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동용 경사로를 ‘10㎝의 기적’이라 불러요. 경사로를 설치하니 이제 식당도 골라서 갈 수 있잖아요.” “나의 속도가 너의 속도와 달라도, 느리게 일한다고 미안해할 필요가 없어요. 세상의 많은 기준은 이제 달라져야 해요.”

흔히 장애인 같은 소수자들을 ‘목소리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목소리가 없는 게 아니었다. 세상이, 그리고 힘 가진 사람들이 이를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상업영화의 기준에 익숙한 눈과 귀로 접근하니 해방된 언어가 뿜어내는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다 때때로 주인공들이 내는 작은 목소리가 커다란 함성으로 느껴져 슬그머니 귀를 막곤 한다. ‘뭐라도 돕겠다’며 덜컥 영화제에 관여했던 나의 무지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도 종종 있다.

올해도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열린다. 슬로건은 첩보영화의 암호 같은 ‘1919193B20’. 19회를 맞은 영화제를 통해 코로나19 재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장애인권리협약 제 19조에 명시된 것처럼 더 이상 장애인들이 수용시설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담았다. 또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선거공약에서 차용한 ‘Build Back Better(3B)’ 즉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 또한 올해로 ‘20’주년이 된 이동권 투쟁을 확장하며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쟁취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당신의 삶을 한 뼘 확장시켜줄 영화

5월13~15일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야외공원으로 오시라.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따사로운 햇살과 유서 깊은 도심공원의 정취를 즐기면서 당신의 삶을 한 뼘 확장시켜줄 영화를 맘껏 감상할 수 있다. 그것도 공짜다. 개·폐막식에 참석하면 흥겨운 음악에 맞춰 마구 몸을 흔들어대는 장애인들의 자유를 향한 몸짓에 당신 또한 섞여 들어가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다만 다음과 같은 말을 명심하고 오면 좋겠다. 노들장애인야학의 복도 한가운데에 걸려 있는 멕시코 치아파스 원주민의 말이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기자명 문경란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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