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프로보커터(도발하는 사람)’를 대놓고 저격한 김내훈씨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만 28세의 평범한 대학원생이다. ⓒ시사IN 조남진

‘프로보커터(provocateur)’라는 말이 있다. ‘도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말·글·영상으로 개인이나 집단을 도발해 자신에 대한 관심(사이버 세계에서는 조회수)을 끌어올리는 이들이다.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영미권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관종’ ‘어그로꾼’ 같은 말과 비슷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 투사로 주목받았으나 아동 성착취물 소지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아모스 이(상자 기사 참조), 반페미니즘을 선동하는 ‘대안 우파’로 떠올랐다가 10대 때 성인과의 동성애 행위가 알려지면서 순식간에 몰락한 마일로 이아노풀로스 등은 프로보커터의 부정적 사례로 주로 거론된다.

한국에도 프로보커터로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혹시 누군가 떠오르는가. 아래 글을 읽어보자.

“레퍼토리의 반복으로 진보 논객으로서 상징 자본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도발밖에 없다. 주목이 걷히고 여유를 잃은 진중권에게는 억지와 악만 남았다. ··· 프로보커터의 말기적 증상이다.”

“여론의 추이를 살피다가 그때그때 자신의 태도를 180° 바꾸며 자극적인 발언만을 내뱉는 전형적인 사이버렉카의 모습이다. ··· 어느 쪽이든 서민은 실패한 프로보커터다.”

“음모론은 패자를 위한 것이지만 이제는 승자도 음모론에 열광한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로서는 김어준과 최대한 거리를 두면서도 상대 진영과의 진흙탕 싸움은 그에게 아웃소싱하려고 들 것이다. 진중권-보수언론 관계와 유사하게, 영향력과 하청을 주고받는 상부상조가 유지되는 한 김어준은 (여권에게) 여전히 쓸모 있는 인물이다.”

각각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서민 단국대 교수, 김어준 〈뉴스공장〉 진행자에 대한 평가다. 당대 손꼽히는 유명인 셋을 프로보커터로 규정했다. 이처럼 혹독한 비판을 가한 이는 김내훈이라는 젊은 연구자다. 1992년생 만 28세. 미디어문화연구 박사과정을 밟으며 조교 업무로 장학금을 버는 평범한 대학원생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하다 관심사를 넓혀 좌파 포퓰리즘, 정치 유튜브, 인터넷 밈 문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 〈황해문화〉에 ‘주목경제 시대의 프로보커터’라는 글을 발표한 뒤 문제의식을 확장해 이번에 〈프로보커터〉라는 책을 냈다. 진중권·김어준씨 등 영향력 있는 인물을 대놓고 저격했다는 점에서 그 또한 주목을 끌고 있다. 4월16일 그를 인터뷰했다. 달변의 독설가일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직접 만난 그는 말수가 적고 신중했다. 말보다는 글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진중권·김어준씨 같은 유명인을 비판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엄청난 용기를 낸 것은 아니다.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을 내 언어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프로보커터라는 낯선 용어를 가져왔다.

미국 포퓰리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유튜브를 찾아보다 이아노풀로스라는 인물을 발견했다.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걸로 미국에서 스타가 된 사람이다. 미국 언론에서 그를 인터뷰하는데 ‘프로보커터’라고 호명하더라. 아, 이건 새로운 직업의 탄생이라고 봤다.

진중권씨가 ‘프로보커터의 말기적 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비판했다.

지난 총선 이후 여권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 요구가 나왔을 때 진중권씨가 “180석 달성 기념으로 한명숙 대모님께 효도 좀 하려는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최대한 상대방의 아픈 곳을 찔러서 기분 나쁘게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이런 언사는 트롤링(상대방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공격적 행위)이고 도발이다. 진중권씨 한 명만 이야기하면 심심하니까 김어준씨와 서민씨까지 다루게 됐다.

진중권. ⓒJtbc 화면 갈무리

진중권씨의 언행을 두고 ‘그는 전향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프로보커터였을까?

진중권씨가 유명한 논객이 된 데에는 프로보커터를 연상케 하는 도발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싸가지 없는’ 말로 도발해서 상대방을 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우리 편’ 추종자를 확보한다. 그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논객으로 만든 건 지식인으로서 어젠다가 아니라 퍼포먼스 능력이다. 2000년 ‘안티조선 운동’ 때도 겉으로 보이는 형태는 그랬다. 그는 안티조선 운동에 부정적인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를 찾아다니며 논쟁을 벌였고, 〈조선일보〉 독자 게시판에 제목과 내용이 따로 노는 낚시성 게시물을 올리며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그가 보수정당이 집권했을 때 진보 편인 것처럼 보인 건 착시였다고 생각한다.

진중권씨가 과거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질타한 것도 프로보커터의 행태였을까?

〈디워〉 논란이나 황우석 사태 때 진중권씨는 대중영합적인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전형적인 프로보커터의 면모를 보여줬다. 예컨대 그는 21대 총선 직후 미래통합당 토론회에 나가서 “미래통합당은 뇌가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을 맹공해서 보수정당이 우리 편으로 착각하게 한 다음, 그들의 진지에서 폭탄을 투척했다. 장소가 인터넷에서 공당의 정치행사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차명진씨처럼 진보에서 ‘전향’한 프로보커터와 진중권씨의 차이는 무엇일까?

차명진 같은 이는 한 줌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무리수를 던지다 자폭했다. 진중권씨는 아직 자폭했다고 볼 수 없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느냐 안 넘었느냐 정도 차이가 있다.

서민 교수가 극렬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적대하는 것에 대해 게으르다고 평가했다.

극렬 지지층은 이른바 문빠·대깨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몇몇 지지자의 경거망동을 갖고 지지자 일반을 공격한다. 혹시 서민 교수처럼 문빠를 공격하는 이들의 유일한 어젠다가 반문(反文)이고, 유일한 처신이 문재인 지지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민 교수처럼 거의 울부짖으며 증오를 드러내는 이들에게는 문빠가 존재의 이유로 보일 지경이다.

김어준씨에 대해서는 성공한 프로보커터라고 평가했다.

똑똑하고 영악하다고 해야 할까? 그는 SNS를 하지 않는다. 사생활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딱히 권위 있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닌데, 우리 사회가 10여 년 전부터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개인 역량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서민 교수가 일반 유권자와 싸움만 벌인다면 김어준씨는 거대권력과 싸우는 모습을 연출하며 내부 결집을 유도한다.

어떤 한 가지 행동을 보고 프로보커터의 활동인지 아닌지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김어준씨가 자신의 역량을 전시하는 방법은 프로보커터와 일치한다. 농담과 유머를 가장해 법적 부담을 피하고 도발적 언사를 던지는 것은 미국의 프로보커터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일부 친문 유권자들이 이재명 지사를 공격하자 이를 작전세력의 농간이며 배후가 있다고 했다. 근거는 없었다. 사실 이 사건은 소수 유권자들의 감정에서 비롯된 해프닝에 불과했다. 김어준씨는 갈수록 양치기 소년이 되어가고 있다.

김어준. ⓒ유튜브 갈무리

일부에서는 김어준씨를 ‘음모론자’로 규정한다.

그렇게만 보면 일부 극우 정치 유튜버들과 다를 게 없다. 김어준씨가 이렇게 성장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개표 조작설, 세월호 음모론 등은 무리수였다.

‘우파 코인’과 ‘반페미 코인’을 노리는 우파 프로보커터들이 앞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왜 우파가 인기를 끌까?

좌파는 지향하는 가치가 다양해서 단순한 메시지로 결집시키기 어렵다. 더욱이 민주당 성향의 지지층은 김어준씨가 거의 독점하고 있다.

한국에도 아모스 같은 이에 비견할 만한 극단적인 프로보커터가 있나?

없다. 아직 안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어떤 선을 넘는 이들은 살아남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조두순 아들을 사칭한 초등학생 유튜버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극단적 프로보커터들이 판치는 세상이) 언젠가 한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책에 썼다.

유럽 68운동 이후 좌파의 전략이었던 전복· 위반·금기 깨기가 프로보커터의 전략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 점이 흥미로웠다.

앤절라 네이글의 〈Kill All Normies〉를 참고했다. 젊은 누리꾼들이 어떻게 프로보커터를 중심으로 결집하는지 다룬 책이다. 2011년 미국 월가 점령 시위는 전복과 위반의 미학이 대중화한 사회운동이었지만, 이후 현실정치에 닿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며 사그라들었다. 시위에 나섰던 이들 중 일부는 나중에 페미니스트를 공격했다. 이제 이런 ‘선 넘기’ 즉 위반의 미학은 하나의 장사 수완이자 극우 진영의 전략이 되었다. 그동안 학계에서 칭송한 변화와 전복의 가치는 기괴하게도 ‘극우 아나키스트’의 등장으로 변질됐다. 이는 트럼프의 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석사논문으로 ‘한국의 20대 현상과 포퓰리즘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썼다. 지금 ‘20대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치평론을 할 의도나 능력은 없다. 내 의견이 20대 전체를 대변할 수도 없다. 다만 책 내용과 연결해서 생각해보자면 지금 젊은 사람들의 언어가 변화되었다. 내로남불, 공정성, 위선 같은 말들이 ‘밈’처럼 됐다. 이것이 모든 평가와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복잡한 맥락은 가지치기되고 위선을 저질렀느냐 아니냐만 남았다. 젊은 세대는 위선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다. 이것이 말하자면 ‘생각의 그물망’이 되었다. 위선이 아니라 대놓고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은 이 그물망에 안 걸린다. 위선자인 민주당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국민의힘이 더 나쁘다 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왜 대놓고 나쁜 것보다 위선에 더 분노할까?

미국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의 위선이 문제가 됐다. 자신은 엄청난 재산을 가졌으면서도 트럼프와 달리 ‘정치적 올바름’만 입에 올리는 힐러리에게 반발했다. 젊은 세대는 우리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사회의 병폐를 이용해서 축재에 나서는 모습을 심각하게 본다. 아마도 ‘사다리 걷어차기’로 보일 것이다.

언론이 프로보커터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 때 ‘단톡방 가짜뉴스’를 검증 없이 썼다. 무분별한 인용 저널리즘으로 엄청난 사회적 대가를 치렀다. 미국에서 한국인 대상 폭행이 일어났을 때 〈조선일보〉 SNS 계정은 ‘이게 다 중국 때문… 읍읍’이라는 코멘트를 하더라. 언론이 프로보커터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첫 번째 책을 출간했다. 혹시 스스로 프로보커터를 프로보킹(도발)한 것은 아닐까 고민하지 않았나?

언급된 실명들 역시 시대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게 책의 본래 취지다. 내가 김어준씨를 비판하는 건 그가 양치기 소년처럼 될까 봐 우려해서다. 내 비판이 TBS에서 그를 쫓아내야 한다는 논리로 쓰이지 않기를 바란다. 김어준씨를 비판하는 것과 그를 방송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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