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연쇄 총격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인 3월17일 미국 워싱턴 D.C. 차이나타운에서 아시아인 증오범죄를 멈추라는 시위가 열렸다. ⓒAFP PHOTO

지난해 3월16일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처음 지칭했을 때, 미국에 사는 많은 아시아인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나온 지난해 1월 이후 아시아인을 표적으로 한 증오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기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나서서 ‘우한’ 혹은 ‘중국 바이러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트럼프와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바이러스 명칭엔 발생한 국가를 명시하는 것이 관례’라며 ‘중국 바이러스’가 인종차별 요소와는 관련이 없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트윗 이후 일주일 사이 ‘중국 바이러스(#chinesevirus)’ 해시태그가 130만 개로 크게 증가했다. 트럼프 트윗 이전에 지배적인 해시태그는 WHO가 권고한 ‘코비드-19(#Covid-19)’였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대학(UCSF) 연구팀에 따르면, 해시태그는 증오 집단 형성과 증오범죄를 예측할 수 있는 변수로 트윗 내용 자체보다 더 유용하다. 연구팀은 ‘중국 바이러스’ 해시태그를 포함한 트윗 70만 개가 인종차별 관련 해시태그와 짝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국 바이러스’ 해시태그 사용자들은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를 보였고, 아시아 국가들을 비하하고 아시아계 이민자를 제한하는 것에 동조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트럼프의 ‘중국 바이러스’ 발언이 나온 지 1년이 지난 최근, 아시아인 증오범죄 사례를 수집해온 단체 ‘스톱 AAPI 헤이트(아시아 태평양계 혐오를 멈춰라)’는 ‘2020년 한 해 동안에만 아시아인을 표적으로 한 증오 공격이 팬데믹 이전보다 2배가 많은 2800여 건에 달했다’고 보고했다. 그런데도 아시아인 증오범죄들은 미국 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해 4월 전 세계 코로나19 치명률 도표 앞에서 중국 부분을 가리키는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EPA

“너는 미국에 속하지 않는다”

아시아인 증오범죄의 심각성을 환기한 사건은 지난 3월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업소 세 곳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용의자인 백인 로버트 애런 롱은 한 시간여 간격으로 한국계, 중국계, 타이완계 미국인이 각각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마사지와 스파 업소에 침입해 총을 쐈다. 사망자 8명 중 4명이 한국계, 2명이 중국계 미국인이었고 히스패닉 여성과 백인 남성도 포함되었다. 이 사건으로 트럼프의 ‘중국 바이러스’ 발언이 아시아인 증오범죄의 근원적 원인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아시아인 증오범죄의 심각성을 보여준 또 다른 사건은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보름 뒤인 지난 3월31일 맨해튼의 한 고급 임대 건물 앞에서 벌어졌다. 걸어가던 아시아계 여성이 마주 오던 흑인 남성에게 느닷없이 폭행당하는 장면이 폐쇄회로 TV 영상에 담겨 미국 전역에 보도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거구의 흑인 남성이 여성을 발길질하고 쓰러뜨린 후 여러 번 발로 찍어 내리고 유유히 사라지는 과정에서 건물 보안요원들이 모른 척하며 출입문을 닫아버린 장면이다.

이 사건은 당시 일련의 반(反)아시아인 증오범죄들을 뉴욕 경찰이 단순범죄로 처리하여 아시아계로부터 공분을 사던 중에 발생했다. 예를 들어 같은 달, 맨해튼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인 남성이 예멘계 청년에게 칼에 찔린 사건은 인종차별적 증오범죄로 기소도 되지 않았다. 특정 인종에 대한 증오로 인한 범죄라기보다는 단순 폭력사건으로 간주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3월31일 사건의 피해자인 아시아계 여성 노인은 가해자로부터 “너는 미국에 속하지 않는다”라는 증오 발언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해당 사건이 단순한 폭행이 아니라 ‘아시아인 증오범죄’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가해자가 흑인이라는 점에서 아시아계와 흑인 간의 갈등을 점화하는 요소가 됐다. CNN은 아시아계 여성 희생자들을 조명하며, ‘미국에서 아시아계 여성을 향한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뿌리가 깊으며 미군이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아시아 여성을 잠재적 성매매 여성으로 보는 비뚤어진 인식이 생겼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타이완계인 그레이스 멩 하원의원(뉴욕)과 메이지 히로노 상원의원(하와이) 등은 ‘아시아 증오범죄 특별법(COVID-19 Hate Crimes Act)’을 발의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의회에 이 법의 신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 아시아계 증오범죄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고, 피해자 구호 기금 4950만 달러를 배정했다.

미국의 아시아계 인구는 1980년 350만명에서 2013년엔 1940만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미국 전체 인구의 5.6%를 차지한다. 아시아계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도 수년에 걸쳐 늘어났다. 미국 ‘국가 범죄피해조사(NCVS)’에 따르면 12세 이상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1000명당 8.2명에서 16.2명으로 2배 증가했다. 뉴욕 경찰국(NYPD) 조사에서도 아시아계 미국인은 2008년부터 2019년까지 살인(4.0%), 강간(4.7%), 강도(11.6%), 가중 폭행(5.2%), 절도(10.3%) 등 모든 유형의 범죄에서 피해자가 증가한 유일한 인종 집단이다. 그런데 여러 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코로나19와 관련된 아시아인 증오범죄 2800여 건의 가해자는 대부분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과 히스패닉이다. 이로 인해 아시아계 미국인 사이에서 흑인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BLM(Black Lives Matter,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흑인들이 떼 지어 아시아계 업소를 돌며 “아시아인들, 흑인에게 잘해라”라고 위협하는 영상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버드 대학 비즈니스스쿨의 중국계 로라 훵 교수는 지난 2월 트위터에 아시아인 증오범죄를 비난하며 “BLM에 소리 높였던 분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아시아인들을 지지하는지도 보고 싶다”라며 흑인을 겨냥해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흑인들은 ‘아시아인들은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당할 때 어디에 있었는가? 다른 인종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것은 흑인의 임무가 아니다’라고 대응하는 등의 논쟁이 일었다. 특히 흑인들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방관한 혐의를 받아 2급 살인죄로 기소된 몽골계 미국인 투 타오 전 경관을 거론하기도 했다.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 이후 확대된 ‘아시아인 생명도 소중하다(Asian Lives Matter)’ 구호는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와 별개로 진행되는 ‘아시아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인종차별 반대운동의 초점을 흐리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각 인종들이 ‘누가 가장 억압받는지’ 경쟁하는 ‘억압 올림픽(oppression olympics)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억압 올림픽’은, 소외된 사람들이 누가 가장 억압받는지 경쟁한다는 의미로 1993년 사회운동가 엘리자베스 마르티네스가 제시한 개념이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라는 슬로건에 다수의 아시아인이 지지 의사를 표시한 것을 문제 삼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글자 그대로 ‘모든 인종의 생명이 중요하다’보다는 ‘흑인(가해자)에게 피해를 본 백인(경찰)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뉘앙스를 띤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BLM에 맞서기 위한 슬로건이다. 그런데 일부 아시아인이 그 맥락을 살피지도 않고 이 운동에 가담한다는 비판이다. 한마디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를 포함하지만,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4월17일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열린 ‘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집회 장면. ⓒAFP PHOTO

BLM을 비롯한 흑인 인권운동은 수 세기에 걸쳐 조직화되었다. 그만큼 투쟁의 역사가 길다. 흑인 운동가들은 아시아인들 역시 흑인 운동과 좀 더 적극적으로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흑인 운동이 1960년대 시민권 운동, 1965년 이민법 투쟁 등을 통해 흑인뿐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 라틴계 등 소수민족의 권리를 위해서 싸워온 것은 사실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흑인 인권운동 투쟁의 역사에 분명히 빚을 지고 있다. 따라서 흑인 운동과 연대를 모색하는 아시아인 인권단체들은 아시아 증오범죄 해시태그도 ‘아시아인 생명도 소중하다’가 아닌 ‘스톱아시안헤이트(#StopAsianHate)’ 등을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흑인을 향한 한국계 미국인의 시각도 복잡하다. 1992년 4월 발생한 로스앤젤레스 폭동으로 인해 한국계 이민자들 사이에서 흑인에 대한 반감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흑인 운전자 로드 킹에게 과도하게 무력을 행사한 백인 경찰 4명에게 무죄가 선고된 후 화가 난 흑인들이 한인타운을 공격해 50명 이상 사망하고 1000여 명이 부상했으며 10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 경찰은 한인타운을 막고 한인들과 흑인의 싸움을 방치해 인종차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일주일에 걸친 폭동 이후 한국계 이민자들은 경제적 성공만으로 미국에서 입지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한인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최근 들어 미국의 다수 언론은 건물 옥상에서 총을 들고 숨죽이며 당시 상황에선 적일 수밖에 없었던 흑인들을 주시하는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민병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종차별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로스앤젤레스 폭동 사태에 대한 재조명이다. 그러나 아시아 인권단체들은 인종차별 문제를 아시아계 미국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으로 축소하려는 장치들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증오범죄’라는 용어는 198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아시아계 소수 집단에 대한 적대감은 미국에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800년대 초반 중국인 이민자들이 처음 미국에 도착한 직후부터 중국계 미국인에 대해, 백인의 직업을 빼앗고 세균을 가져오는 존재로 혐오하는 시각이 있었다. 이는 중국인 노동자들의 이민 금지(1882~1943년)를 골자로 하는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으로 제도화되기도 했다. 이 법은 미국에서 특정 민족의 이민을 금지하기 위해 시행된 최초이자 유일한 법이다. 아시아계를 광범위하게 차별한 법은 1924년에 마련된 이민법이다. 중국인 배척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시아계 이민 할당량을 설정하여 아시아인을 차별했다.

1992년 4월 로스앤젤레스 폭동 당시 흑인의 습격을 받은 한인 마트 모습. ⓒAP Photo

아시아계 차별 은폐하는 ‘모델 마이너리티’

그러나 아시아인들은 착실하게 백인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노력했고 다른 소수민족 집단보다 성공적으로 주류 사회에 진입했다. 이로 인해 아시아계들에 대한 ‘모델 마이너리티(모범적 소수인종)’라는 고정관념이 형성된다. 흑인이나 히스패닉과 달리 아시아계는 열심히 노력해서 높은 학력과 경제적 지위를 달성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 ‘모델 마이너리티’라는 관념 자체 때문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오히려 공격받을 위험이 더 커진다는 보고들이 나온다. 다른 인종 집단으로부터 잠재적인 경쟁자나 위협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모델 마이너리티라는 신화는 흑인 인권운동이 추진력을 얻을 당시 발생했다. 흑인 인권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사회적 장치로 사용된 측면이 있다. ‘아시아인은 인종차별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아메리칸드림을 이룰 수 있었지만 흑인은 그렇지 않다’는 논리로 악용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모델 마이너리티는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을 은폐하는 측면이 있다. 현실의 아시아계 미국인은 미국 내 모든 인종 집단 중 가장 소득불평등 정도가 심한 집단이다. 일부 하위 집단의 빈곤율은 미국 전체의 두 배 이상이다. 아시아계 미국인 인권단체인 ‘미국계 아시아인 정의진흥협회’는 “아시아계는 출신 국가와 관계없이 미국에서 영원한 외국인으로 간주될 뿐이다. 아시아계는 ‘모델 마이너리티’로 인식되어 다른 유색인종 공동체와 맞서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흑인, 히스패닉 등 다른 유색인종과 관련된 아시아계 차별은 하버드대 측 ‘소수인종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입학’의 불공정 문제로도 부각된 바 있다. 하버드대가 캠퍼스 내 인종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아시아계 입학자에게 ‘개인 평점’을 낮게 주는 방식으로 아시아계를 차별해왔다는 논란이 소송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소송엔 복잡한 딜레마가 있다. 소수인종 우대정책에 반대하고 아시아계의 편을 들면, 백인에게도 이점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에 소송을 낸 아시아계 그룹을 지원했다. 연방 법무부도 예일 대학의 소수인종 우대전형에 대해 ‘연방 시민권법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연방 법무부는 예일대 소송을 취하한다. 아시아계가 시작한 하버드대 불공정 입학 소송은 지난 2월 연방 대법원으로 이전됐다. 보수 우위로 재편된 연방 대법원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소수인종 특별대우를 비판하고 있어 하버드대 등이 패소할 소지도 있다.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반대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인지 등 아시아계 인종차별 문제가 미국에서 부각될수록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운동을 지지할지 힘겨운 선택을 해야 한다.

기자명 양수연 (해외 언론인·<뉴스엠> 편집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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