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의 자금줄로 지목된 포스코인터내셔널 인천 송도 빌딩. ⓒ시사IN 조남진

미얀마 항쟁 사망자가 500명을 넘기면서, 미얀마 군부를 주저앉힐 방법을 찾는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군부의 자금줄을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의 철강그룹 포스코의 자회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비난받고 있다. 미얀마의 외화벌이 통로가 석유와 가스인데,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얀마 4대 가스전 중 하나인 슈웨(Shwe) 가스전을 최대 주주로서 운영한다. 슈웨 가스전의 수익금은 55%가 미얀마 정부에, 45%는 지분을 가진 여러 회사들에 배분된다. 슈웨 가스전의 지분은 포스코인터내셔널 51%, 미얀마 국영석유가스회사(MOGE) 15% 등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슈웨 가스전으로부터 미얀마 정부에 지급된 돈은 2017년 3월부터 1년 동안 2073억원에 달한다.

2월1일 쿠데타 이후 두 달 넘게 민간인 학살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 사업 대금 지급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본 사업은 정권에 관계없이 민선 정부 시절에도 추진해온 사업으로, 정권 변화로 인해 군부를 지원한다는 주장은 근거도 미약하고 논리적이지 않다.” 포스코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 예산이 다 군부에 쓰이는 것도 아니고 여러 부처가 있다. 미얀마 정부 수익금은 정부에서 관리하는 국책은행 계좌로 입금되므로, 민선 정부 시절에도 지금도 ‘정부 예산’으로 쓰일 거라는 게 저희 입장이다. 미얀마 정부에 지급하는 돈이 군부에게 간다는 증거는 없지 않나.” 미얀마 정부에 입금하므로 그 돈이 정부 예산으로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는 포스코 측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던 기업이 있었다. 나이키다. 1996년 잡지 〈라이프〉가 나이키 축구공을 꿰매는 12세 소년의 사진을 실었을 때, 나이키는 ‘공급사슬’에서 일어난 일은 책임질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당시 나이키의 아시아 담당 부사장 닐 로리젠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제품 생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우리는 마케팅과 디자인을 담당하지요.” 나이키 자카르타 본부장 존 우드먼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들은 우리의 하도급업자들입니다. 노동 위반 혐의를 수사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이 아닙니다(리베카 핸더슨, 〈자본주의 대전환〉).”

그러나 나이키의 노동 관행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일었다. 나이키의 이익이 곤두박질쳤다. 결국 나이키는 공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러 나섰고, 이제는 의류 공급사슬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폭스콘에서 노동착취가 벌어지면 애플이 비난받는다. 팜유를 쓰는 글로벌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직접 벌목을 하지 않더라도 팜유 생산과정에서 삼림 파괴를 줄이려 협력한다. 최근 기업 경영원리로 각광받는 ESG(기업의 환경, 사회적 영향과 지배구조를 경영평가 요소로 반영하는 것)의 사례다.

“이른바 ESG나 ‘인권 경영’의 중심에 있는 사상은, ‘계약관계를 이행할 뿐 그 계약의 당사자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나 몰라라 하는 행위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계약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기업활동이 그 공급망을 통해 노동자나 현지 주민을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신경을 써야 한다.” 인권 문제에서 기업의 역할을 연구해온 송세련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이다(범죄 자금 된다는 것을 포스코가 모를 리 없다 기사 참조).

일부 기업의 자율적 움직임이 아니다. 이미 확립된 국제규범이 있다. 2011년 유엔 인권이사회는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 Guiding Principle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기업활동이 인권침해의 원인이 되거나 이에 기여하는 것을 사전에 막고,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해당 기업 측이 실사를 통해 확인해서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기업이 인권침해에 직접 관련되지 않았더라도 이 원칙은 여전히 기업에 의무를 요구한다. ‘비즈니스 파트너, 공급사슬, 정부·비정부기구 등과의 사업 관계에 따라 인권침해에 연루되는 경우’에도 해당 기업은 인권 존중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업상 얽힌 파트너가 인권침해를 하더라도 해당 기업에 인권을 존중할 의무가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권침해가 계속되고 기업이 (인권침해에 연루된 기관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한, 기업은 반드시 그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는 기업의 지속적인 노력을 증명해야 하고, 계속되는 관계로 인한 기업의 평판과 재정적·법적 결과를 포함한 어떠한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3월5일 미얀마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에게 공식 서한을 보냈다. 위는 틴 퉁 나잉 CRPH 재정산업부 장관. ⓒ유튜브 갈무리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얀마로 돌아오자. 현재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대금을 지급하는 미얀마 정부도, 가스전 사업의 파트너인 국영기업 MOGE도 군부가 통제한다. 토머스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인권특별보고관은 MOGE가 군부의 최대 자금줄이라며 제재를 촉구했다. 군부가 인권침해를 저지르고 있는가? 그렇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성명을 내고 “영향력을 가진 국가들은 미얀마 군부에 중대한 인권침해와 발생 가능한 반인륜 범죄행위를 중단하라고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라는 성명을 냈다.

미얀마 시민들은 포스코를 군부 자금줄의 하나로 지목했다. 미얀마 민주 진영의 임시정부 격인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는 지난 3월5일 최정우 포스코 회장에게 공식 서한을 보냈다. “석유와 가스 사업자로부터 거둬들인 수익금이 현 군사정부의 폭정에 쓰일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민주정부가 기능을 재개할 때까지 모든 대금 지급을 중단하고 대신 해당 대금을 ‘보호 계좌(protected account)’에 넣어달라.”

최정우 회장은 이 서한에 답변하지 않았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은 대금 지급을 중단할 경우 “계약 위반으로 가스전 사업 운영권 박탈이 확실시되며, 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소송이 불가피하다. 피해 규모는 당사의 가스전 관련 자산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대금 지급 중단 시 “미얀마 정부가 사업권을 중국 등 외국 기업에 넘겨 현 군사정권에 오히려 득이 될 것이라 판단한다. 대한민국 차원에서는 기업의 피해는 물론 국가적 손실로 연결될 것이 자명하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가스전 판매 대금을 제3의 계좌(보호 계좌)로 지급한다고 해서 군부가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지는 논란거리다. 오히려 불법적으로 정부를 점령한 쿠데타 세력이 계약을 파기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다만 가스전이 중국에 넘어가는 시나리오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미얀마 전문가들은 말한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교수는 말했다. “중국, 인도, 타이가 미얀마의 천연자원을 빼먹으려 기다리고 있다. 어려운 문제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회사의 수익금이 미얀마 군부의 인권침해에 쓰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에너지 기업 우드사이드는 원유 탐사개발 직원들을 철수시켰고, 일본 맥주기업 기린은 군부 연계 기업과의 협력을 철회했다. 프랑스 회사 토탈은 가스전 관련 대금 지급을 중단하지는 않겠지만,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얀마 인권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군사정권을 지지하거나, 미얀마 시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미얀마 시민단체 저스티스포미얀마 대변인 야다나 마웅 씨는 이렇게 말했다('범죄 자금 된다는 것을 포스코가 모를 리 없다' 기사 참조). 미얀마 시민 흐닌 누 씨는 “포스코는 시민들이 주도한 시민불복종운동(CDM)에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다. 포스코는 좋은 파트너가 아니다. 우리 미얀마인들은 그런 투자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미얀마 슈웨 가스전의 시추 생산을 위해 건설된 플랫폼 풍경. ⓒ포스코인터내셔널 제공

군수 지원선을 대민 지원 용도로

포스코인터내셔널의 해명과 달리, 미얀마 군부와 이 회사의 관계는 예사롭지 않다. 〈시사IN〉이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2월 당시 수출입은행 자회사이던 대선조선이 미얀마 해군에 ‘군수 지원선’ 용도로 배를 수출하려고 했다. 방위사업청은 미얀마가 북한과 거래한다는 등의 이유로 수출을 불허한다. 2017년 7월 제14차 방산수출 실무협의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포스코인터내셔널(당시 포스코대우)이 참석한다. 이후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대선조선이 만든 배의 용도를 ‘대민 지원’으로 바꿔 수출할 수 있는지 물었고, 방위사업청은 ‘가능하다’고 판정한다. 2018년 2월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얀마 조달청과 배 수출 계약을 체결한다.

〈시사IN〉이 입수한 영상을 보면, 2019년 12월 미얀마 해군의 날 기념식에 이번 쿠데타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이 참석해 “(미얀마 해군에) 현재까지 없었던 최대의 군함”이라며 이 배를 높이 평가한다. 로힝야족 학살 보고서를 만든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김기남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2017년 군부가 로힝야족 학살을 자행해 비난받던 시점에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군함을 구매 대행해주었다. 미얀마 군부와 그만큼 가까운 관계임을 보여준다. 독재자와도 비즈니스를 할 수는 있지만, 사업활동의 결과 인권침해에 연루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국제기준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뿐 아니라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도 슈웨 가스전 사업에 8.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포스코인터내셔널에 물어보니 수익금이 군부에 갈 리 없다고 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양희 전 유엔 미얀마인권특별보고관(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교수)은 “ESG, 그 이전에 유엔 이행원칙에 비춰보면 가스공사가 지분을 유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한국가스공사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인권경영헌장에는 “우리는 사업활동 영위 지역에서 현지 주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라고 적혀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구매 대행한 군함 모아타마호. ⓒReuter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모회사인 포스코는 지난 2월 이사회 산하에 ESG 위원회를 설치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독려하는 유엔 글로벌 콤팩트에도 가입했다. 포스코는 〈시사IN〉에 “가스전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윤리경영 원칙에 따라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하면서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지역사회와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최선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당사가 유엔 이행원칙과 OECD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향후 미얀마 현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이사회 차원에서도 ESG 관점에서 필요한 조치가 있는지 면밀하게 검토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양희 전 특별보고관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군부의 학살을 경험한 당시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다른 나라가 우리를 학살하는 군부에게 군함을 팔고, 중국에 넘어갈까 봐 자원 판매대금을 계속 지급한다면 어떤가. ‘중국에 넘어간다’는 건 협박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에 기여할 기회다.”

https://myanmar.sisain.co.kr/

기자명 전혜원·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