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떻게 문화재위원 됐나?
  • 오윤현 기자
  • 호수 88
  • 승인 2009.05.1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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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문화재위원장 인선을 두고 뒷말이 나온다. 그 와중에 문화재청은 규정까지 바꿔가며 언론인 출신 인사 4명을 문화재위원에 임명했다. 그 까닭은?
지난 4월9일 오후 3시. 국립고궁박물관 회의실에 동산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위원) 12명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12개 안건을 심의·검토하기 위해서였다. 첫 심의 안건은 ‘1435년에 제작된 봉정사(경북 안동) 영산회상 벽화’를 문화재로 지정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 이미 전문가들이 내려가 그 가치를 확인한 터라 결정은 쉬웠다. 문화재 지정, 의결. ‘경주 왕룡사원 아미타여래좌상’과 ‘예안 김씨 가전 계회도’도 마찬가지였다. 의논 끝에 문화재 지정, 의결.

   
문화재위원들은 문화재의 수리 및 복구를 명령할 수도 있고, 매장문화재의 발굴(사진)을 허락하거나 불허할 수도 있다.
3월6일 오후 2시에도 같은 곳에서 비슷한 회의가 열렸다. 경관분과 위원 11명이 21개 안건을 꼼꼼히 검토한 뒤, 수원화성과 선잠단지(사적 83호·서울 성북구) 그리고 홍릉·유릉 인근에 아파트(공동주택) 건축을 허가해달라는 건설업체의 요구를 모두 부결한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이 같은 회의가 한 달에 평균 예닐곱 번씩 열린다. 회의에 참석한 위원 중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학자도 있고,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은 문화예술인도 있다. 이들이 두세 시간 회의를 하고 받는 심의비(수당+자문료)는 15만~25만원. 자신들의 권위나 명성에 비하면 그야말로 푼돈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문화재위원으로서 하는 일이 금전적 보상보다 몇 배 더 가치가 있어서이다.

현재 문화재청 소속 문화재위원은 80명. 이들은 9개 분과(표 참조)로 나뉘어 유형문화재(탑·건축물·회화·서적 등)를 지정하거나 해제하고, 기념물을 사적지로 지정할지 말지를 의논하고 결정한다. 또 매장문화재의 소유권이 누구인지 가늠하고, 보상금을 얼마로 줄지도 따져 결정한다. 이처럼 권한이 막강하기에 문화재위원 위촉 제의가 들어오면 전문가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인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 자문 기구지만, 실제로는 심의·결정한 내용을 무시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권한이 크다는 뜻이다.

   
지난 4월 말 취임한 이인규 문화재위원장(오른쪽)과 이건무 문화재청장.
그렇다면 문화재위원은 어떻게 위촉할까.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문화재위원은 관련 학회나 지방 자치단체 등의 외부 추천 자료와, 문화재청 내 인력 풀 및 기존 위원들의 활동 실적 등을 종합해 문화재청장이 위촉한다. 임기는 2년. 지난 4월27일 명단이 공개된 새 문화재위원(임기 2011년 4월25일까지) 인선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최근 새로 위촉한 위원 명단을 놓고 뒷말이 적지 않다. 문화재와 별 상관 없는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도 들린다. 조선일보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한 정중헌 서울예대 부총장(건축문화재분과·천연기념물분과 위원 겸임), 코리아헤럴드 주필을 지낸 이경희 세종대 겸임교수(매장문화재분과와 근대문화재분과 위원 겸임), 문화일보 편집부국장·출판국장 등을 역임한 박석홍 건양대 겸임교수(무형문화재분과),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장(매장문화재분과)이 그들이다.

“4대강 개발 원활히 하려는 사전 포석”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왜, 언론인 출신들이 건축문화재를 지정하고, 매장문화재 발굴을 허가하는 문화재위원에 위촉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의 견해는 명쾌하다. “개정된 문화재위원 규정에 따랐으므로 문제가 없다”라고 유건상 문화재청 사무관(문화정책과)은 해명했다. 그가 말하는 규정은 문화재위원 규정 ‘제2조(구성) ②항 3번’을 뜻한다.

   
지난 9월 말 문화재청 규정을 보면, 제2조(구성) ②항은 “위원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 중에서 문화재청장이 위촉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구체적인 자격 요건 1~3번이 나와 있는데, 그중 3번은 “인류학·사회학·건축·도시계획·관광·환경·법률 분야의 업무에 10년 이상 종사한 자로서 문화재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전문가”였다. 그러니까 언론·경제계 인사는 문화재위원이 될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4월, 갑작스레 개정된 규정에는 ‘언론·경제·종교’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특정 인사들을 문화재위원에 뽑으려 규정을 개정한 게 아니냐”라고 묻자, 유 사무관은 “그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지난해에  국민의 목소리를 문화재위원회에 전달해줄 인력이 필요하다는 내부 의견이 있어서 9월부터 변경을 추진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문화재 관련 심사를 하고 업무를 추진하다보면 온갖 민원과 여론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 내용을 위원회에 전달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문화재 지정이나 해제, 또는 다른 문화재 관련 사안을 결정하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을까. 유 사무관은 “그렇지는 않지만, 여론 전달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왜 하필 그 많은 언론인 출신 중에서 정중헌씨 등 네 명을 위촉했을까. “언론학회 추천을 받았다”라고 유사무관은 짤막하게 해명했다. 그러나 황 소장은 “보수 성향의 인사들만 선정한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문화재위원은 문화재를 지정하거나 해제하고, 수리 및 복구를 명령하고, 현상 변경과 국외 반출을 통제·허락할 수 있을 만큼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 수렴 차원에서 언론인 출신 인사를 위원으로 임명한 것은 문화재위원회 규정에도 어긋난다.

식물학자인 이인규 서울대 명예교수(73)를 신임 문화재위원장에 선임한 것을 두고도 의심 어린 말들이 나온다. 현 정부가 4대강을 개발하려면 그 주변에 널려 있는 문화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걸림돌’을 쉽게 제거하려고 사전 포석 차원에서 친정부 성향의 인물을 위원장에 임명한 것 같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이 위원장은 “문화재위원 65명이 각 분과 위원장들을 후보로 투표해서 선출되었다. 정부 입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문화재위원장으로서 4대강 개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얼마 전 이건무 문화재청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말한 내용을 참고하라”고만 말했다. 지난 5월 초 이건무 청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해 “문화재가 밀집한 지형은 존치할 것이며, 사업을 해도 기본적으로 유적 훼손은 있을 수 없다”라고 못박았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수 없지만, 4대강 개발과 관련한 ‘고도로 계산된 인선’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황 소장은 말했다. 과연, 의혹을 받는 인사들이 ‘배밭에서 갓 끈을 고쳐 매는’ 일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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